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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85

        

         

       한쪽에만 비치는 가로등의 불빛.

       전등을 가리려고 발악하는 벌레떼들.

       그 아래에서 어둠과 빛의 경계에서 절묘하게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서 있는 남자.

         

       남자는 몸을 움직였다.

       몸을 비틀고, 발을 놀리고, 뛰며 웃고 있었다.

       그림자에 비춘 저 얼굴, 저 얼굴!

         

       음영이 드리웠다가 사라지며 비치는 저 얼굴을 보라.

         

       길어졌다 줄어들었다 하는 것이 마치 길고 긴 매부리코를 킁킁대는 것과 비슷하지 않은가.

       입꼬리는 올라갔다 내려가는 것이 귀까지 찢어진 듯하고, 중간중간 광기에 가득 찬 눈빛이 번뜩이며 모골을 송연하게 한다.

         

       탭댄스라도 추는 듯 현란하게 움직이는 발은 좌에서 우로, 위에서 아래로 계속해서 움직인다. 뒤꿈치가 땅에 닿았다가 앞꿈치가 땅에 닿고, 발이 X자를 그리며 움직였다가 쫙 벌어진다. 피겨스케이팅을 하는 것처럼 몸을 빙그르르 돌리며 위로 솟구쳤다가 땅에 떨어지기도 하고, 발레라도 하는 것처럼 다리가 한껏 뻗어졌다가 바닥에 닿기도 한다.

         

       춤사위라고 하기에는 기괴하고, 사람의 움직임이라도 하기에는 인형에 가까운 몸놀림이다.

       마치 위에 보이지 않은 실로 조종이라도 당하는 듯….

         

       혹은.

         

       발에 신겨져 있는 신발이 멋대로 움직이면서 춤을 추게 만드는 것처럼.

         

       그렇게, 기괴하다.

         

       “히, 히익….”

         

       그 기괴한 모습에 절로 입에서는 비명이 새어 나온다.

       차마 크게 소리치지 못해 미약하기 짝이 없는 비명이.

       그 비명은 높게 솟아오르려다가 아래로 깔리며 덧없이 흩어지는 안개와 같은 것이었고, 미몽처럼 산산이 부서지는 요청이었다.

         

       그리고 그 요청을 짓밟으며 남자는 점차 그들에게 다가왔다.

         

       따닥.

       따닥.

         

       발을 움직이며.

       빛과 그림자의 사이에서 이리저리 형태를 바꾸어가며.

         

       구두에서 하이힐.

       하이힐에서 부츠.

       부츠에서 운동화.

       운동화에서 광대나 신을법한 신발로.

         

       신발의 형상이 바뀐다.

       그림자가 비침에 따라 매부리코가 길어졌다 줄어든다.

         

       그렇게 남자가 다가오고…마침내 얼굴의 윤곽이 드러나는 곳까지 왔을 때.

         

       “어, 어…?”

         

       그제야 비로소 얼굴을 알아볼 수 있게 된다.

         

       차이네는 익숙한 얼굴에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내었다.

         

       ‘그때, 그…?’

         

       익숙한 얼굴이다.

       인상 깊게 보았던 터라, 한 번밖에 보지 못했지만,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얼굴이었다.

         

       그때 그 광인.

       그녀를 도와주었던 광인이다.

         

       자신을 기자라고 했던 미친 사람…!

         

       그 미친 사람이 지금, 한 손에는 망치를, 한 손에는 칼을 든 채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도 기괴한 움직임을 보이면서 말이다!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으면 무엇이든지 될 수가 있지. 누군가가 신고 춤을 추었던 식어버린 강철 신발을 신으면 계모가 될 수 있다네. 못된 언니가 될 수도 있고, 마녀가 될 수도 있지. 지푸라기를 엮어 만든 신을 신으면 일꾼이 되고, 가죽으로 대충 휘감은 신을 신으면 여행자가 될 수도 있지. 부주의하게 밖에 벗어놓은 신발을 신으면 남편 행세하며 안으로 들어가 대접을 받을 수도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신발의 특별함. 신발의 특별함이다!”

         

       남자는 굳어버린 몸을 삐거덕거리며 움직이는 모양새로 그녀들에게 다가왔다.

         

       “임산부의 신발을 훔쳐서 신으면 아이가 들어서리라. 사랑하는 사람의 신발을 훔쳐 신으면 그 사람의 사랑을 받게 되리라. 네 잎 클로버를 뒤축에 넣고 결혼을 소망하며 걸으면, 오 맙소사! 첫 번째로 마주치는 남자와 연이 이어지나니! 이것이 바로 신발, 신발, 신발의 힘! 신발은 미래에 연결되어 있다네. 신발은 자손으로 이어진다네. 신발은 이성과 연결이 되어 있다네. 이것이 바로 신발의 마법, 스미클링(Smickling)이지!”

         

       “하지만 신발을 훔쳐 신었다고 너무 기뻐서 뛰어다니면 안 되지! 맞아, 그건 조심해야 할 일이지! 벽돌의 금을 밟으면 벽돌과 결혼하게 될 것이고, 막대기의 금을 밟으면 막대기와 결혼을 하게 될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야! 벽돌은 구멍이 있지만 아이를 낳을 수 없고, 막대기는 길쭉하기는 하지만 아이를 가지게 해줄 수 없다네!”

         

       “결혼식에는 딱정벌레들이 참석하겠지! 축복도 축하도 없는 비참한 결혼식이 될 거야! 그리고 그 끝에는 곰이 쫓아와서 몸을 찢어버릴지도 모르니, 아 비참하다 비참해! 그러니 신발을 신고 함부로 뛰어다니면 안 되지 않겠니!”

         

       “금, 금, 금. 금을 조심하며 하나둘 셋. 경쾌하게 발걸음. 뒤꿈치를 앞으로, 앞꿈치를 뒤로! 순서가 어느 쪽이든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발놀림으로! 춤을 추듯이 왈츠로 하나둘, 레이피어를 들고 내지르듯 탭탭! 하지만 금은 조심해서, 금은 조심해서! 금을 밟으면 너희 엄마의 등이 부러질 거야! 너희 엄마가 가장 아끼는 그릇이 깨지고, 등 역시 깨져버릴 거야!”

         

       그 기괴함이란 평범한 사람이 견디기 힘든 것이어서.

       몸을 떨던 떨리게 하고, 어서 이곳에서 떠나라는 본능에 지배당하게 만드는 것이라서.

         

       “히야아악!”

         

       그래서 두 여자 중 한 명은 도망을 쳐버리고 말았다.

       얼어붙은 한 사람을 버려버리고, 그대로 왔던 길을 돌아서 도망을 쳐버리고 말았다.

         

       “어…?”

         

       그렇게 남은 사람은 한 명.

       얼어붙은 채, 아는 얼굴임을 떠올렸던 여자 한 명.

         

       차이네였다.

         

       “도망, 쳤어…? 날 버리고…?”

         

       그녀는 매니저가 자신을 버리고 도망을 치자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그리고 자신 역시 도망을 치기 위해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마치 호랑이의 시선에 노출되기라도 한 듯 몸은 덜덜 떨리고 제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었으며, 풀썩 주저앉은 다리에는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허리는 빠져서 제대로 비틀기조차 쉽지 않았고, 손을 바닥에 내디뎌서 몸을 끌고서라도 도망을 가기에는 괴한이 너무나 빠르게 그녀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탁.

       타닥.

         

       괴한은 뛰는 것보다는 느린 속도로, 하지만 걷는 것보다는 확연하게 빠른 속도로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차이네에게 다다른 괴한은 히죽 웃으며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 구면이지?”

         

       “히, 히익.”

         

       “나 기억하지?”

         

       차이네의 바로 앞까지 온 괴한은 그녀 앞에 자기 얼굴을 들이밀며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소름 끼치는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기울였다.

         

       45도 각도로 머리를 기울인 채, 괴한은 차이네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기억이 안 나시나 봐? 기억이 나게 해드릴게. 그때 내가 똑똑 하고 노크했었죠. 기억이 나요? 똑똑. 똑똑.”

         

       그는 차이네를 바라보며 ‘똑똑’이라며 입으로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정말로 문을 두드리는 듯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죠. 반갑습니다, 차이네 씨. 저는 사회부 기자, 이제순이라고 합니다. 잠시만 이야기하시죠. 그래, 그때 저는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뭐라고? 이제순이라고.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사회부 기자라고. 그렇게 저는 자신을 소개했었고, 제 존재를 알렸지요. 그때가 기억나시나요? 기억이 나요? 기억, 나겠지?”

         

       “힉….”

         

       “기억나는 것 같네?”

         

       이제순은 거기까지 말하다가 잠시 입을 꾹 닫았다.

       그리곤 차이네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근데 차이네 씨, 왜 대답을 하지 않으시나?”

         

       “히약…!”

         

       한 손에는 망치를.

       한 손에는 시퍼렇게 날이 서 있는 재단 칼을.

         

       두 손에 흉기를 든 채, 광기로 번들거리는 눈동자를 굴리는 사람이 앞에 있다.

         

       차이네는 그 사실에 덜덜 떨리는 입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당연히 혀를 움직일 수도 없었고, 입술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말을 할 정신도 없이 그저 덜덜 떨고만 있을 뿐이었다.

         

       “뭐 됐습니다. 오늘 사회부 기자, 이제순은 말입니다. 당신과 인터뷰하기 위해서 찾아온 게 아니에요. 취재를 하기는 할 건데 그 대상이 당신이 아니란 말입니다. 왜? 나는 연예부 기자가 아니거든. 가십거리나 쫓고, 찌라시나 쫓고, 맞으면 좋고 아니면 말고를 반복하는 그런 연예부 기자가 아니라! 누구나 인정하는 엘리트의 길- 사회부 기자에서 매번 커리어를 갱신하고 있는 유망주, 사회부 기자로서의 일하기 위해 이곳에 찾아온 것이라 이 말입니다! 왜? 나는 기자니까, 사회를 뒤흔들만한 일을 취재해야 하는 기자니까 말이야!”

         

       “순대야, 순대야. 나의 먼 후손아. 그리고 겸사겸사 나의 힘을 사용하기 위해서임도 잊어서는 아니 되느니라. 이 구두장이의 손으로 신발을 재단하고 그것을 신어 요술을 부릴 수 있으니, 너는 마땅히 이 핏줄에 경의를 표해야 할 것이니라!”

         

       “오, 알고 있습니다. 구두장이의 후손은 마땅히 가죽을 만지고 신발을 만들어야 하는 법이 아니겠습니까? 가죽끈을 자르고, 구멍을 뚫고, 끈을 그사이에 넣고. 그게 바로 제가 할 일의 일부이지요. 하지만 오늘은 남의 신발을 훔쳐 신어야 하니 재단 칼과 망치는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오, 일머리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나의 후손아! 술이 너무 좋아서 제정신인 적이 거의 없는 나의 후손아! 맞지 않는 신발을 신었으니 그것을 어떻게든 신을 수 있도록 망치로 구멍을 뚫고, 재단 칼로 잘라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게 뚫은 구멍에 신발 끈을 넣어 꽉 조여야만 걸어 다닐 때 발이 편안한 법이로다!”

         

       “오, 조상님. 조상님.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오, 이 주정뱅이야. 술마다 다른 모양의 잔으로 마시는 것과 같은 이치이니라!”

         

       “아, 이해했습니다! 조상님은 정말 대단하시군요!”

         

       “아, 주정뱅이, 주정뱅이, 이 주정뱅이 같으니! 악마에게 홀린 인간도 이렇게 술을 퍼마시지는 않을 텐데!”

         

       기자, 이제순은 마치 이중인격이라도 되는 것처럼 혼자서 대화했다.

       그 모습이 참으로 무서운지라.

       기괴한 몸놀림과 합쳐져 사람 같지 않았던 까닭에.

         

       차이네는 그 공포에 차마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그래, 차이네 씨. 본명은 김-김 뭐지? 하, 잘 모르겠군. 기억이 잘 안 나. 술 때문인가? 어쨌든 차이네 씨. 내가 말입니다. 당신 소속사 사장이 일본과 연결되어 있다는 자료를 얻었어요. 근데 그 자료를 보니까 내가 찾는 사람과 연관이 되어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단 말이야. 그래서 그곳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오 맙소사. 당신은 곧 쫓겨날 신세라서 쓸모가 없는데…. 당신 옆의 사람은 아니네? 그래서 내가 그 사람 모습을 좀 빌려서 들어가려고 하는데, 응? 협조해 주겠지? 근데 차이네 씨, 당신 이름이 뭐더라?”

         

       “….”

         

       “아 기억이 나지를 않아. 후손아, 이 여자 이름이 뭐였지? 이봐 차이네, 이름이 뭐지?”

         

       “….”

         

       “쓰읍. 이름이 기억이 나지를 않아. 이름을 들어야 대화를 좀 더 깊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봐 차이네 씨. 당신 진짜 이름 말 안 해줄 거야?”

         

       “….”

         

       “하, 됐어. 당신 이름 듣고 싶지 않아. 나중에 보자고. 지금은 당신을 버리고 도망간 여자를 쫓아가는 게 더 바쁘니까! 그 여자의 신발을 벗겨서 신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 말이야-! 그렇게 신고 들어간 곳에는 특종이 있나니, 그 특종은 부츠의 끝까지 금화로 채운 것보다도 감미롭다네! 용이 보관하던 술을 훔쳐 먹는 것보다도 사람을 취하게 만들지! 하-하-하!”

         

       이제순은 끝까지 대답하지 않고 떨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차이네에게 혀를 차고는 그대로 걸어갔다.

       자기 말대로 도망친 사람을 쫓기 위해서.

         

       그렇게 앞으로 걸어가던 이제순은 몇 걸음 걸어가다가…갑자기 멈추어 섰다.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서 차이네를 습격하기 위함이 아닌….

       그가 가려는 곳에 누군가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ཨོཾ་མ་ཎི་པ་དྨེ་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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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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