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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86

        

       서이령은 정신없이 그릇을 비웠다. 나무 그릇을 벗겨 먹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남은 음식을 박박 긁어 마지막 한 입을 비운 서이령은 그제야 호천안의 시선을 의식했다.

         

       “허허, 본인을 만나고자 꽤나 고된 여행을 한 모양이오. 오래간만에 제대로 된 음식을 먹는 모양이구려?”

         

       서이령의 얼굴이 단숨에 붉게 달아올랐다.

         

       “그…”

         

       서이령이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 호천안은 국자를 들어 냄비에 남은 요리를 펐다. 서이령은 반사적으로 그릇을 내밀었다.

         

       “많이 드시게나.”

         

       결국 서이령은 세 그릇을 깨끗하게 비웠다. 그러고도 모자랐는지 서이령은 남은 요리에 눈독을 들였지만 호천안은 가볍게 웃었다.

         

       “남은 것은 내일 아침으로 먹읍시다. 물을 붓고 새로운 양념을 해 밤사이 뭉근하게 끓여 걸쭉해진 국물로 아침을 시작하면 제법 활력이 돋는다오.”

         

       꿀꺽.

         

       “그, 그렇습니까…뜻에 따르겠습니다.”

         

       대저 요리란 조리 시간이 길면 길수록 맛있어지는 법이었다. 서이령은 내일 아침에 재 탄생할 요리를 상상하며 간신히 미련을 접었다.

         

       호천안이 냄비에 물을 붓고 양념을 털어 넣은 뒤 그 뚜껑을 덮자 서이령은 그제야 제정신이 돌아왔다.

         

       대체 이게 무슨 추태인가.

         

       남의 식량을 가지고 식탐을 부린 것도 모자라서 다음 날 아침 분량까지 호시탐탐 눈독을 들이다니!

         

       서이령은 수치심에 얼굴을 감싸쥐었다.

         

       무림의 안녕을 위해 목숨을 버릴 각오까지 하면서 호천안과의 동행을 택한 것이 아니었던가.

         

       서이령은 그렇게 마음을 다잡아보려 했으나 도무지 마음의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타닥. 타다닥.

         

       어처구니없게도 뚜껑 덮인 냄비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그 안에 든 요리 때문이었다.

         

       쉬이이이..

         

       냄비 뚜껑의 숨구멍으로 아주 조금씩 새어나오는 요리 내음이 계속해서 상상의 나래를 자극했다.

         

       방금 전에 맛본 요리의 재료들과 양념들이 푹 우러나온 국물의 맛은 과연 어떠할까.

         

       아는 맛이 무섭다고 했다.

         

       아예 몰랐다면 상상이라도 하지 않았을 터인데 기본이 되는 요리를 맛본 뒤이니 자꾸 그 맛을 알 것만 같았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양념과 국물이라는 소재가 또 어떤 새로운 맛을 내줄지 모를 일이니 아는 맛과 새로운 맛에 대한 기대감이 자꾸만 상상력을 부추겼기 때문이었다.

         

       ‘이령아! 정신 차리거라…! 무림의 안녕을 위해서 동행한 것이지 밥을 얻어먹으려고 동행한 것이 아니지 않느냐!’

         

       서이령이 치솟아오르는 식탐을 다스리기 위해서 분투하고 있는 와중 호천안은 몸을 일으켰다.

         

       “본인은 슬슬 숙면을 취할까 하는데 어쩔 생각이시오?”

         

       서이령은 호천안의 물음에 정신을 차리고는 답했다.

         

       “저 역시 수면을 취할까 합니다.”

         

       “음. 혹시나 침구류가 있으시오?”

         

       “무인이야 대지를 침상 삼아 자는 법 아니겠습니까.”

         

       “허허, 여인을 그리 두니 마음이 편치가 않구려. 혹여나 괜찮으시다면 이 녀석들과 함께 주무시겠소?”

         

       “…예?”

         

       호천안은 설명보다는 시범이라는 듯이 서공에게 다가가 서공에게 몸을 기댔다. 서공은 익숙하다는 듯이 몸을 들썩이며 호천안이 잘 공간을 내주었다.

         

       “어떻소?”

         

       “으음…”

         

       푹신푹신한 털에 기댄 모양새가 확실히 따뜻해 보이기는 했지만…서이령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영물과 한데 뒤엉켜 잔다는 것은 서이령에게는 너무 거부감이 큰 행위였다.

         

       맹수랑 한 우리에서 자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물론이고 어지간한 무인들도 벌벌 떨 것이다.

         

       그런데 영물의 품 안에서 잠을 자라니?

         

       “알겠소. 강권하지는 않으리라.”

         

       꾸어엉.

         

       석웅이 칭얼거리며 호천안과 서공에게 붙었다. 사슴 영물은 잠시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내리고 잠에 들었다.

         

       서이령은 흑립을 내리고 잠에 든 호천안을 빤히 바라보았다.

         

       ‘대체 뭐 하는 사람일까…’

         

       영물을 뼛속까지 믿기라도 하는 것일까. 이 영물이 호천안의 손에 떨어진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서이령에게는 호천안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모르겠군.’

         

       서이령은 자신이 호천안이라는 자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기에 동행을 청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어찌 사람을 하루아침에 이해할 수 있을까.

         

       ‘악인으로 보이지는 않지만…지켜봐야겠지.’

         

       서이령은 눈을 감았다. 쉼없이 경공을 펼치고 호천안이랑 합류한 이래 계속 긴장하고 있더니 피로가 몰려왔기 때문이었다.

         

       호천안과의 여정은 결코 쉽지 않을 터이니 쉴 수 있을 때 쉬어둬야겠지.

         

       서이령은 희미하게 풍기는 요리 냄새를 맡으며 생각했다.

         

       무엇보다 내일 아침 국물 요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결코 늦잠을 자서는 안 될 일이리라.

         

       *** ***

         

       너무 과식했나.

         

       서이령은 속이 거북한 것을 느끼며 후회했다. 하루종일 경공을 전개해야 할 것을 알고 있음에도 정신을 차려보니 냄비 하나 분량의 국을 죄다 흡입해버린 뒤였다.

         

       다다다닥.

         

       오늘 아침에 먹은 양을 떠올려 본 서이령은 부지런이 발을 놀리고 있는 서공의 등에 타고 있는 호천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치를 보았다.

         

       혹시 식량을 너무 축낸다고 쫓아내지는 않겠지?

         

       그때 호천안의 입이 열였다.

         

       “한 가지 묻고 싶은게 있소만.”

         

       “예?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주의하겠습니다.”

         

       “음? 뭐 때문에 그러는지 모르겠으나 사과를 할 필요는 없소. 그나저나. 혹시 작명에는 재주가 있으신 법이오?”

         

       “작명, 말입니까?”

         

       “그렇소.”

         

       호천안의 시선이 옆에서 달리고 있는 사슴 영물에게로 향했다.

         

       “혈교의 잔당들은 누가 혈교의 잔당 아니랄까봐 영물에게 죄다 혈 뭐시기라는 이름을 붙여 놓지 뭐요? 그런 이름들보다는 제대로 된 이름을 지어주고 싶으나 딱히 작명에는 소질이 없어서 말이오.”

         

       “그렇습니까.”

         

       서이령은 사슴 영물을 살피는 호천안을 바라보았다.

         

       어제도 느꼈지만 참으로 특이한 사람이었다.

         

       영물이 지닌 가치와 힘을 의식하기보다는 그저 커다란 짐승으로 대하고 있었으니까.

         

       “혹시 다른 영물들의 이름도 알 수 있겠습니까?”

         

       “이 녀석은 서공. 저 녀석은 석웅이라 지였다오.”

         

       찍?

         

       서공이 제 이름을 알아듣고 고개를 들었다. 호천안은 그런 서공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서공이라는 이름은 내가 지은 것은 아니라오. 석웅에게 석웅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기는 했으나 영 세련된 이름은 아닌 것 같구려.”

         

       “그렇습니까.”

         

       서이령은 사슴 영물을 바라보았다. 마치 고목의 가지를 연상케 하는 길게 뻗은 뿔에 더해 유려한 몸체는 제법 고고한 맛이 있었다. 부지런히 울어대는 서공이나 석웅과는 달리 소리 한 번 내지 않은 성정 역시 그런 고고함에 한몫 하고 있었으니 서이령의 머릿속에는 이내 적합한 이름이 떠올랐다.

         

       “…묵금(默金). 묵금이 어떻습니까.”

         

       “묵금(默金)이라. 좋은 이름이구려.”

         

       호천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슴 영물을 향해 말했다.

         

       “그래. 이제부터 네 이름은 묵금이란다.”

         

       사슴 영물, 아니 묵금은 알아 들었는지 알아듣지 못했는지 동그란 눈망울로 호천안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서이령은 호천안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어르신께서는 어찌하여 혈교의 영물을 거두고 계십니까.”

         

       “왜라.”

         

       호천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서공이야 다른 무림천하에서 혁기린과 인연이 있어 보였으니 거둘 이유가 있었지만 사실 다른 영물들을 거둘 필요는 없었다.

         

       “이 녀석들이 나를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이오.”

         

       “그렇습니까?”

         

       서이령으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답이었다.

         

       호천안이 영물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영물이 호천안을 필요로 한다?

         

       “허허. 그렇소. 내가 해 준 것이 뭐가 있다고 나를 이리 살갑게 맞아 주는 녀석들 아니오. 고된 여행길도 마다하고 함께하겠다고 하는 것을 굳이 내칠 이유는 또 무엇이겠소.”

         

       진심으로 하는 말일까.

         

       아니면 영물을 모으는 일을 방해받고 싶지 않으니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세 마리의 영물을 잘만 활용한다면 천하를 자신의 발아래 놓을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서이령이 여태동안 쌓아온 상식은 호천안의 말이 거짓이라 외치고 있었지만 서이령의 머릿속에서는 어제 영물들에게 영초를 던져주던 호천안의 모습이 떠올랐다.

         

       야심이 있는 자라면 결코 그렇게 귀한 영초를 낭비하지는 않았을 터.

         

       그러니 서이령은 호천안의 의도를 파악할 수가 없었다.

         

       그런 서이령의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호천안은 그저 자신의 몸을 서공에게 맡긴 채 태연하게 앞을 바라볼 뿐이었다.

         

       *** ***

       

       “흠.”

         

       혼란한 시기. 연천백의 뒤를 이어 무림맹주의 직위에 오른 무림맹주 조용상은 검후 서이령의 서신을 읽으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대의 의중을 모르겠구려.”

         

       조용상은 검후 서이령을 떠올렸다. 현재는 여중제일인이라 불리며 전 무림의 여협들에게 우상으로 숭배받고 있는 거물이었지만 조용상에게는 그런 거물이라기보다는 함께 난세를 헤쳐나온 동지에 가까웠다.

         

       그만큼 조용상은 서이령을 굳게 믿고 있었다.

         

       ‘내 부관을 못 믿으면 못 믿었지, 이령 그대는 믿을 수 있거늘.’

         

       문제는 이리 굳건하게 믿고 있는 서이령이 영 갈피를 못 잡고 있다는 점이었다.

         

       ‘호천안이라…’

         

       운남. 광주. 광서. 호남. 광동. 강서. 복건. 절강까지.

         

       천하의 남쪽을 모두 순회하며 호천안이 손에 넣은 영물은 무려 일곱이었다. 딱히 서이령이 보내온 서신이 아니더라도 떼거지로 몰려다니는 영물을 목격한 행인들의 목격담은 끊이질 않고 있는 상황.

         

       이미 민간에는 그 소문이 널리 펴져서 아예 호천안을 야수왕이라도 부르고 있을 지경이었다.

         

       “골치 아프군…”

         

       사실 호천안의 행보는 협객에 가까웠다.

         

       혈교의 잔당들이 중원에 끼치는 악영향은 막대했다.

         

       차라리 혈존이 살아 있을 때만 해도 깔끔하게 영물만으로 천하를 정복하려 했지만 구심점이 무너진 뒤의 잔당들의 행동은 혈교가 왜 무림공적이 되었는지를 익히 알게 해 주었다.

         

       무공이 고강한 이를 붙잡아 혈괴로 만들려 하거나 타인의 피를 갈취하여 제 경지를 올리려 하는 것은 기본.

         

       진정한 혈교의 후계자가 되겠다는 욕심을 부리는 자들은 혈술을 연구한답시고 문자 그대로 수많은 이들의 고혈을 짜냈으니 그 해악을 일일이 입에 담는 것이 어려울 지경이었다.

         

       지금까지 호천안은 각 지방을 돌면서 그런 혈교의 잔당들을 깨끗하게 일소하고 있었다.

         

       혈교의 잔당들이라고 해서 반드시 영물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혈괴 한 두 마리를 데리고 떵떵거리는 잔당들도 적지 않았는데 호천안은 영물이 없는 잔당들까지도 놓치지 않고 처리하고 있었으니 호천안의 행동만 놓고 보면 충분히 협객이라 부를 수 있는 자였다.

         

       문제는 그런 호천안과 함께 하고 있는 서이령의 서신에는 무림맹이 어떻게 움직여 주었으면 한다는 의견 자체가 하나도 없다는 점이었다.

       

       함께 여행한지 제법 오래되었으니 협객이면 협객이다. 아니면 속이 시커먼 위선자다. 충분히 결론을 내릴 수 있을 시간이 지났거늘.

         

       정기적으로 날아오는 서신에는 엉뚱한 내용만 가득했다.

         

       차라리 영물들과 친해졌다는 소식은 영물의 특징을 담고 있으니 어느 정도 쓸모라도 있지.

         

       호천안에 대한 이야기는 별거 없으면서 왜 요리 이야기만 한가득 쓰여 있는지.

         

       “애매하군 애매해…”

         

       여러 영물들의 틈바구니에 있으니 행동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건 조용상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으나 아무런 단서가 없으니 뭘 할 수가 없었다.

         

       조용상은 서이령이 보내온 서신의 말미를 바라보았다.

         

       안휘를 거쳐 강서로 올라간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본디 무림맹은 하남에 자리잡고 있었지만 황국의 무림세력 탄압이 시작되자 정파들의 연맹인 무림맹은 도무지 하남에서 버티고 있을 도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새로이 자리잡은 곳은 안휘였다.

         

       그런데 호천안과 서이령이 안휘를 지나친다라.

         

       “내 눈으로 그 자를 직접 보아야겠군.”

         

       조용상은 호천안을 직접 만나보기로 결심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뭐야 작가의 말이 빠졌잖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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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무협게임 속 고수들이 집착하는 낭인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Ho Cheon-an, a second-rate warrior in the martial arts game [Murim Cheonha].

To survive, I had no choice but to give enlightenment.

Martial arts masters began to obsess over me.

In Murim Cheonha, where fame means difficulty, getting attention meant death.

Please, just go away.

Please, let me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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