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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86

       백호 녀석은 지금 바로 달려가겠다고 소리를 쳤지만 거기에는 물리적인 한계가 있었다.

       

       백호 녀석이 아무리 빠르다 한들 본인처럼 공간과 공간을 접어가며 달리지는 못하니. 회사가 있는 곳에서 여기까지 오려면 최소한 몇 시간이 필요할 터이지.

       

       그 동안 혼란에 빠진 한서우를 가만 내버려 둘 수도 없었기에 나는 일단 녀석과 백화령을 이끌고 근처의 애견카페로 향했다.

       

       최근 들어 만날 일이 잦았던 카페의 사장은 최초의 들뜸 대신 느슨한 반가움으로 본인을 반기다 한서우와 백화령을 보고 눈을 끔뻑였다.

       

       “…화령님. 옆에 계신 분들은.”

       “저랑 닮은 사람은 제 동생이고 그 옆의 분은 잘 알지 않으세요?”

       “잘 알죠! 한서우님이라니! 잠시만요! 종이랑 펜좀 가지고 올게요!”

       

       카페사장의 호들갑에 백화령이 가벼운 웃음소리를 낸다.

       

       “네가 꽤 유명하긴 한가보구나. 저리 좋아하는 걸 보니 말이야.”

       “대단찮은 유명세입니다. 스승님.”

       “허허. 겸손도 과하면 독이 되는 법이다. 이 놈아.”

       

       여기까지 오는 사이에 한서우는 백화령이 자신의 스승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크게 복잡한 작업은 아니었다. 한서우의 스승인 백화령은 한서우 놈의 흑역사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무엇부터 이야기를 해줄까. 네가 주먹 같지도 않은 주먹을 일권이라 부르던 것? 곰을 이겨보겠다고 달려들었다가 한 방에 박살난 거? 그것도 아니면.’

       ‘…그만해주십시오. 스승님.’

       ‘그만하긴 뭘 그만해. 아. 그래. 신교의 남자아이가 여자인 줄 알고.’

       ‘제발. 제발 부탁드립니다. 이 불충한 제자를 용서해 주십시오.’

       

       얼굴이 벌개져서 어찌할 줄을 몰라하는 한서우와 그를 웃으며 놀리는 백화령의 모습은 신교에서 결코 볼 수 없을 정겨운 것이었지.

       

       본인도 제자를 들였다면 저런 광경을 만들 수 있었을까하는 망상을 하게 될 정도로.

       

       허나 그 망상의 끝은 분명했다. 과거의 본인이 제자를 들인다 한들 그 끝이 어찌 끝날지는 훤한 일이었으니까.

       

       지금이라면 조금 다를 것 같기는 하다만 이제 와서 본인에게 제자가 필요한가 물어보면 참 애매하구나.

       

       무공의 전수에는 별 관심이 없고 사람과의 관계도 이미 충분한지라.

       

       “봐라! 제자야! 동물들이 도망치지 않는다! 날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렇네요.”

       “흐아악! 이 녀석이 내 발 위에 자기 손을 턱하고 올려놨다! 어찌해야 하느냐? 어찌하면 좋으냐?!”

       “쓰다듬어 주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쓰…쓰다듬어도 되는 것인가?”

       

       조심스레 강아지의 머리 위에 손을 올린 백화령은 강아지가 손길을 거부하긴커녕 오히려 자신의 머리를 부비는 것을 보고 여자아이 같은 해맑은 웃음을 지었다.

       

       당분간은 저 행복을 즐기느라 바쁠테니 가만 내버려 두자꾸나.

       

       “한서우.”

       

       강아지들 사이에서 어찌할 줄 몰라하는 백화령을 구경하며 그 제자의 이름을 불렀더니 녀석이 조심스러운 눈빛으로 날 살폈다.

       

       “혼란스럽나?”

       “…예. 너무도 갑작스러운 이야기니까요. 환상이라 생각했던 세상이 실존한다니.”

       “얼마 안 가 익숙해질게다. 새로운 걸 알게 되었다한들 네 세상은 그대로일 테니 말이다.”

       

       곰방대를 꺼내어 잎을 꾹꾹 눌러 담은 다음 손가락에 삼매진화를 피워 불을 붙이자 한서우가 그를 멍하니 바라봤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면 얼마든 물어 보거라. 백호 녀석이 올 때까지 시간을 떼워야 하니.”

       “어. 그. 화. 아니. 아라님께선 무인이셨던 겁니까?”

       “그래. 본인은 화룡무인과 한없이 비슷하나 다른 세계의 천마였지.”

       

       그만한 경지를 지니고 있었기에 나약한 육신으로도 이적을 벌일 수 있었노라 이야기를 하자 한서우가 눈을 빛냈다.

       

       “바깥에서 얻은 경지가 게임에도 적용될 수 있는 거군요.”

       “당연한 것을 묻는군. 네 놈도 화룡무인의 경지를 아피스 속에서 펼치지 않았나.”

       “…그랬었죠. 그렇다면 현실의 제가 천마신공을 배운다면.”

       “지금보다 더 빠르게 강해질 수도 있겠지. 대신 그만큼 위험할 테고.”

       “위험하다는 것은?”

       

       이는 백번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한 번 보여주는 것이 빠르겠군.

       

       천마신공의 내기를 손 위로 끌어 모은 나는 한서우 녀석에게 그를 보여주었지만 한서우는 고갤 갸웃거리기만 했다.

       

       허어. 천마의 제자란 녀석이 이를.

       

       아. 참. 현실의 이 놈은 아직 일반인이었지.

       

       그를 깨달은 나는 신공의 내기를 지우고 그 자리를 삼매진화의 불로 채웠다.

       

       “불꽃은 사용자에게 많은 것을 베풀지. 멀찍이서 바라볼 때에 이만큼 유용한 것을 찾기도 어려울 것이야. 허나 불꽃에는 이지가 없다. 사용자와 얼마나 오랜 시간을 보냈더라도 불길이 닿는 순간 그를 집어삼키려 들지.”

       

       그리고 일부러 삼매진화를 내 손에 붙였다. 살갗이 타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도록.

       

       “아라님?!”

       “천마신공이 이렇다. 자칫 잘못하는 순간 사용자를 집어삼켜 자신의 먹이로 삼으려 하지.”

       “아니 지금 불이!”

       “얼마 전 심마에 빠졌던 때를 떠올려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물! 물을 빨리!”

       “되었다.”

       

       한 번 손을 휘젓는 것으로 불길을 지우자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손이 모습을 드러냈다.

       

       “과거 그대가 심마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까닭은 현실의 육신에 내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천마신공을 배운 채였다면 그대는 이미 영원한 침묵을 배우게 되었을 것이야.”

       “…”

       “네 놈은 강해지기 위해 목숨을 내걸 수 있나?”

       

       그대가 강해지기를 바라는 이유가 오롯이 파이스를 이기기 위함이라면 현실의 육신에 천마신공을 담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다.

       

       승리로 얻을 쾌락은 짧으나 신공을 배움으로 인해 생겨날 후회는 길고도 길 터이니.

       

       “아라. 너라면 다 해결할 수 있는 문제 아니냐?”

       

       백화령이 아끼는 제자가 영문도 모른 채 죽지 않기를 바라며 설명을 이어나가던 중 내 무릎 위에 똬리를 틀고 있던 바루가 느슨한 목소리를 냈다.

       

       “해결하다니?”

       “신공의 내기가 지닌 공격성이 의도된 것이라는 걸 그대가 보여주지 않았나. 그를 교정할 수 있다는 것도.”

       “…어. 그렇긴 하다만. 천마신공의 근간은 마공이다. 태생이 그런 이상 위험성을 어찌할 순.”

       “본인이 무공에 대해 그리 잘 아는 것은 아니다만 말이다. 마공은 마공으로만 남아야 하는 것이냐? 마공의 깨달음은 마공일 때만 유효한 게야?”

       

       마공은 마공으로만 남아야 하는가. 과거의 본인이었다면 이 물음을 듣고 웃음을 흘렸을 것이다.

       

       마공이 마공인데는 이유가 있다. 빠르게 강해지기 위해 올바르지 못한 수단을 택한 것이 마공이지 않은가. 올바르지 못함을 떼어놓으면 그를 어찌 마공이라 부르겠는가.

       

       라고 답을 하며.

       

       허나 지금은 마냥 웃을 수 없었다.

       

       부정한 방식으로 얻은 깨달음은 그 깨달음까지 부정한가?

       

       그럴 리가.

       

       결국 모든 깨달음은 하나의 바다로 이어지는 강줄기일 뿐이니.

       

       어떤 방식으로 얻은 깨달음이라 하여도 그것이 부정할 순 없다.

       

       곰방대를 입에 문 채 생각을 거듭한다. 천마신공이 지닌 깨달음과 부정함을 떼어낸다.

       

       천마신공이 마공이라 불린 까닭은 떼어내고 그 안에 깨달음만을 남긴다.

       

       여러 자잘한 부분을 모두 지우고 천마신공이라 불린 무공이 추구하는 것만을 남긴다.

       

       그 끝에 남은 것은 결국 하늘이었다.

       

       인간의 의지로 하늘을 부수겠다는 것.

       

       그리고 그 자리에 새로운 하늘을 써내려가겠다는 것.

       

       파천과 창천.

       

       다른 모든 것은 이 결론에 도달하기 위한 부수적인 가치일 뿐.

       

       그렇군. 신공이 지닌 강함은 마공이 아니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강줄기의 속도가 느려질 지언정 강줄기는 여전히 바다로 향하고 있어.

       

       허공으로 날아가는 연기를 본 나는 키득거리면서 바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최근 마법에 관심을 가지더니 사고관이 많이 바뀌었구나.”

       “무슨 소릴. 돌산의 바깥으로 나온 그 순간부터 본인은 이전의 자신과 결별했다. 이는 그 연장선일 뿐이야.”

       

       천마신공의 재편.

       

       그 안에 깨달음만을 남기고 모든 것을 무너트린 다음 새로운 건물을 세우는 것.

       

       불가능하리라 생각하진 않는다.

       

       시조라 자칭하던 그 쓰레기가 지닌 하늘이 본인의 하늘보다 높지는 않을 터이니 말이다.

       

       “따로 부를 사람이 생겼군.”

       

       내 옆으로 다가오던 강아지를 으르렁대는 것으로 쫓아낸 바루는 이내 내 무릎에 턱을 괴고 눈을 감았다.

       

       그런 녀석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하고 있으려니 백호가 문을 박차고서 등장했다.

       

       녀석은 우선 내 얼굴을 살피고 내 앞에 있는 한서우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동물들의 품에 안겨 행복을 누리는 백화령까지 확인하고는 멱살이라도 잡을 것마냥 내 옆으로 달려왔다.

       

       “이건 너무 하지 않습니까?!”

       “어차피 언젠가 일어날 일이지 않나.”

       “그 언젠가가 지금은 아니지요!”

       

       현대의 사람에게 이세계의 존재를 알린다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한 일이라며 열변을 토하던 백호는 내 심드렁한 표정을 보고서 입술을 곱씹었다.

       

       “최소한 일을 저지르기 전에 미리 말씀이라도 해주셨어야죠. 그랬다면 저희도 여러모로 생각한 후에 답변을 드렸을 터입니다.”

       “다음부터는 그리 하마.”

       “예! 제발 다음. 다음이요?”

       “그럼 미리 허락을 구해두겠다. 몇 사람에게 무공의 존재에 대해 알릴 생각이거든.”

       

       저 멀리서 다가오는 기척을 느낀 나는 눈을 끔뻑이는 백호를 내버려 둔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서 문을 열기 무섭게 숨을 가다듬고 있는 설아와 눈이 마주쳤다.

       

       “빨리도 왔구나.”

       “중…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 그러셔서…”

       “뭐어. 일단 숨부터 고르거라. 그리 급한 것은 아니니.”

       

       가만 설아를 다독이던 나는 슬며시 그녀의 안에 도사리고 있는 광신의 씨앗을 살폈다.

       

       현대에 오고 나서도 한참 동안 본인을 괴롭히던 것을 바라봤다.

       

       비틀림에 매혹된 자가 자연스레 품게 되는 심마를 노려봤다.

       

       그리고서 확신했다.

       

       내가 더 이상 이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말이다.

       

       “제대로 된 무공을 배우는 데에 다급함이 필요하겠느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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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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