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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86

       처음에는, 괜찮았다.

        

       물론 아이들이 황제한테 친근하게 말을 걸거나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말 다행히 서로를 적대하는 일은 없었다.

        

       소금만 적당히 친 생선구이는 꽤 맛있었다. 나는 뼈를 발라야 해서 그냥 고기가 더 낫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뭐, 이런 곳에서 다 같이 모여앉아 먹는 것이 아닌가. 원래 음식의 맛에는 분위기도 포함되는 법이다.

        

       “아, 맞아.”

        

       제이든이 말했다.

        

       “실비아, 지금부터 그 ‘오라버니권’을 쓰고 싶다만.”

        

       “…….”

        

       내 쪽으로 시선이 확 몰렸다.

        

       심지어 황제의 시선마저 몰렸다.

        

       “아, 그럼 나도 쓸래.”

        

       벨라도 한 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아무튼 내가 하겠다고 한 일이었으니, 어쩔 수 없지.

        

       “그런 식으로 묵언수행을 해버리면 거래한 게 의미가 없지 않냐?”

        

       루카스가 약 올리듯 말했다.

        

       “거래까지 했다면 조건을 지키는 것이 옳겠지. 안 그러면 다음부터 상대가 제안에 따르지 않을 테니까.”

        

       “아, 알고 있어, 알고 있다고.”

        

       그냥 한동안 말을 놓아버렸다가 다시 존댓말을 쓰려니 엄청나게 어색해서 그렇다.

        

       이쪽 세계에서 나는 거의 평생 존댓말을 써온 사람이었지만, 고작 잠깐 말을 놓았다고 다시 존댓말 하는 게 이렇게 어려웠다.

        

       “……지금부터 이틀간, 오라버니라고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좋아, 좋아. 훌륭하다, 동생.”

        

       제이든이 엄청나게 뿌듯한 표정으로 말하고는 생선을 한입 물었다.

        

       “…….”

        

       그리고 벨라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숨을 한 번 참았다가, 토해내듯 말했다.

        

       “일주일 동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언니. 그런데 저희는 일주일 동안 있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은 쓰지 못하게 되겠네요.”

        

       “아, 괜찮아, 괜찮아. 결국 휴가 내내 쓰게 된다는 거잖아? 그 정도는 봐줄게. 이월 같은 것도 시킬 생각 없으니 편하게 언니라고 부르라고.”

        

       “…….”

        

       앨리스와 루카스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너희들은 거래부터 하고 말하라고.”

        

       “지금 당장 나를 언니라고 부르지 않으면 차기 황제 자리를 너한테 넘기겠어, 라고 하면 어때?”

        

       “언니, 저런 협박에 굴복하면 안 돼!”

        

       아니, 그럼 고작 언니라고 부르는 걸 못 참아서 제국의 차기 황제가 되라고?

        

       “제국의 차기 황제가 되면 그 권력은 클레어에게 전부 이양하겠어.”

        

       “……언니?”

        

       “…….”

        

       황제가 살짝 웃은 것 같다.

        

       “이 나라의 최고 권력을 가지고 싶지 않아서 서로 돌리는 걸 보니 조금 어이가 없네.”

        

       루카스가 말했다.

        

       “그만큼 나한테는 필요 없는 거니까.”

        

       “나는 네가 황제가 되면 꽤 잘할 거라고 생각한다만?”

        

       “……그럴 리가요, 오라버니.”

        

       “내가 언니권 회수해줄 테니까, 황제 자리는 나한테 넘기면 안 돼?”

        

       “그건 안 되겠습니다, 언니.”

        

       내가 정색하고 말하자 벨라는 푸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음, 역시 너한테 권력을 주는 건 안 되겠네. 언니 소리를 듣는 다른 방법을 찾아보겠어.”

        

       아니, 얘는 왜 갑자기 불이 붙은 거냐고.

        

       클레어가 앨리스를 노려보고, 앨리스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렇게 느긋하게 대화하면서 식사하는 와중에,

        

       “여러분.”

        

       어느새 우리 근처로 다가온 사용인이 정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요리가 끝났습니다만, 홀로 안내해드려도 되겠습니까?”

        

       그 말에 우리는 엉덩이를 털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

        

       식사는 작은 연회처럼 이어졌다.

        

       커다란 식탁에 앉아서, 요리로 만들어진 ‘호수의 주인’을 맛본다. 이렇게만 말하면 무슨 식인이라도 하는 것 같아서 조금 꺼려지지만, 아무래도 이 호수의 주인이라는 게 진짜로 이 물고기를 칭하는 이름인 모양이다.

        

       조만간 생물학자나 뭐 그런 사람을 불러서 제대로 된 학명이라도 붙여줄까.

        

       “와, 그런데 이거 정말 맛있네.”

        

       루카스가 감탄했다.

        

       맛있긴 했다.

        

       민물고기의 살에서 날법한 흙냄새도 전혀 나지 않았고, 스테이크처럼 구워낸 살이 달콤한 소스와 어우러져 훌륭했다. 살이 갈라지는 방식은 확실한 생선이었지만, 씹는 질감은 고기에 더 가까운 것 같기도 했다. 대체 어떻게 그런 맛이 나는 건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식사 뒤에는 가볍게 마실만한 술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모쪼록 즐겁게 지내시길.”

        

       우리가 워낙 높은 사람들이라 그런지, 아니면 여기 서비스가 원래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식사 내내 사용인들이 근처에서 자리를 지켰다.

        

       하긴, 그냥 군인에 대한 서비스였다고 해도 이상하지는 않다. 귀족으로 구성된 장교진과 평민으로 구성된 일반병 사이에는 꽤 큰 장벽이 존재하고, 전장에서도 장교들이 스테이크를 썰 때 일반병들은 딱딱하게 굳은 빵을 먹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하니까.

        

       제국은 그나마 땅이 넓고 식량도 이것저것 많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음식이 그렇게 맛있는 편은 아니라서. 나도 작전할 때면 전투식량보다는 그냥 내가 식사를 따로 챙겼었다.

        

       그렇게 느긋하게 식사가 끝나자, 식당에 있는 축음기에 음악을 틀었다.

        

       실제 연주하는 것보다는 음질이 확연히 떨어졌지만, 그렇다고 이런 장소에 연주하는 사람들을 굳이 불러오기도 조금 그랬고, 나 개인적으로는 그 약간 지직거리는 음악이 조금 마음에 들기도 했다.

        

       참고로 내가 알던 엘피판과는 조금 다른 것인지, 음악은 한판에 한 곡 정도, 그것도 5분 조금 안 되는 정도의 음악만 들어있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옆에 음반을 길게 나열해두고 사람이 한 명 서서 음악이 끝날 때마다 한 곡식 새로 재생하고 있었다.

        

       ……뭐, 본인들이 그렇게 힘들어하지는 않으니 다행이지만.

        

       “……좋네.”

        

       벨라가 말했다.

        

       우리는 손에 음료를 들고 있었다. 나, 클레어, 앨리스는 탄산수에 과실즙을 탄 음료수였고, 벨라는 진짜 샴페인이었다.

        

       딱히 취한 건 아니었지만, 얼굴이 살짝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취기가 오르긴 한 건가?

        

       벌써 몇 잔이나 마셔댔으니 뭐 그럴 만도 했지만.

        

       “왜? 나같이 나이대 맞지 않는 사람이 너희 사이에 섞여 있어서 불편해?”

        

       그렇게 칭얼거리는 걸 보니 취한 게 맞는 것 같기도 한데.

        

       나는 시선을 돌려서 루카스와 제이든을 보았다. 굉장히 하기 싫은 표정을 짓고 있는 데미안을 심판 삼아서 팔씨름을 하고 있었다.

        

       굳이 여기까지 와서 저래야겠냐고.

        

       “여기에 여자라곤 우리밖에 없으니까.”

        

       “으응, 그렇지. 그래서 여기 있는 거지. 하아.”

        

       벨라는 숨을 크게 내쉬며 시선을 돌리다가, 문득 황제를 보았다.

        

       “…….”

        

       그 시선이 고정되는 것을 보고, 나, 앨리스, 클레어는 얼른 시선을 나누었다.

        

       혹시라도 여기서 무슨 사고가 터지면 막아야 했으니까.

        

       벨라가 내 어깨를 툭툭 쳤다.

        

       뭔가 재미있는 생각이라도 났다는 듯 쿡쿡 웃고 있기까지 했다.

        

       “얘, 저기 멋진 남성분이 있는데, 혹시 아는 사람이야?”

        

       “…….”

        

       나는 조금 아연한 표정으로 벨라를 올려다보았다.

        

       진짜 취한 것인지, 아니면 그냥 장난스럽게 말을 하는 것인지 가늠해봤는데, 아무래도 후자인 것 같았다. 나는 조금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다시 앨리스, 클레어를 한 번씩 본 다음 벨라에게 말했다.

        

       “소개해줄까?”

        

       “어머, 그래 줄래?”

        

       벨라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 벨라를 뒤에 이끌고 황제에게 다가갔다.

        

       황제는 창문 근처에 서서 잔을 든 채 그 밖을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그 뒤에 벨라가 함께 오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뒤, 나를 다시 보았다.

        

       눈에는 약간의 의문이 담겨있었다.

        

       혹시 관계가 완전히 깨졌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나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정중하게 인사했다. 내가 황실에서 배운 예절 그대로.

        

       황제는 잠깐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하는 눈치였지만, 이내 나처럼 정중하게 황실 식 예법으로 인사했다.

        

       “아름다운 숙녀께서 무슨 일이십니까?”

        

       “그게……”

        

       나는 벨라 쪽을 살짝 보고는 다시 황제를 보았다.

        

       “……여기 있는 숙녀분께서, 신사분께 인사를 드리고자 하셔서요.”

        

       내 말에 벨라가 한걸음 나와서 우아하게 인사했다. 딱 달라붙는 바지를 입고 있긴 했지만, 허공에서 치마를 잡는 손은 확실히 배운 사람의 움직임이었다.

        

       “벨라 팬그리폰이라고 합니다. 이 제국의 훌륭한 핏줄을 운 좋게 이어받았지요.”

        

       비꼼 가득한 말이었지만, 황제는 딱히 표정을 일그러뜨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렇습니까. 귀한 분께서 말을 걸어주셔서 영광입니다.”

        

       마치, 처음부터 아예 모르던 사람인 것처럼. 둘은 그렇게 대화하고 있었다.

        

       관계를 처음부터 다시 다지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그저 비꼬고 있는 것인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일단 벨라의 말만 보면 비꼬는 것에 가까운 것 같았지만…….

        

       잠깐의 침묵 사이를, 레코드판이 돌아가며 나오는 음악이 비집고 들어왔다.

        

       “멋진 신사분, 혹시 저와 한 곡 춰보시겠어요?”

        

       벨라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기 손을 내밀었다. 손들을 위로 해서, 춤 신청받는 숙녀처럼.

        

       마치 자기가 어린 시절 누리지 못했던 것을 재현하듯이.

        

       “…….”

        

       황제는 잠깐 그 손을 내려다보다가, 이내 천천히 손을 움직여 그 손을 받치듯 잡았다.

        

       “……영광입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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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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