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86

    “……그랬던거야. 다행인 일이지.”

    “으음, 그랬구나.”

    그렇게 헬레나를 달랜 후, 당시 상황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헬레나의 시점으로 듣게 된 루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 그렇게 타이밍 나쁘게 파이리스가 등장한 이유가, 헬레나의 기도 때문이었다니…….

    대충 그럴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당시 현장에서 정령을 부를 만한 친화력을 가진 인물이라면 헬레나 뿐이었고, 그녀가 바란 것이 아니라면 파이리스가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이곳에 올 이유가 없었을 테니까.

    ‘시루드를 지켜달라는 부탁이어서 굳이 헬레나에게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던 모양이구나. 하긴, 그 때는 급한 상황이었지.’

    헬레나와 만나서 이런저런 자초지종을 설명하기에는 조금 다급했다.

    애초에, 파이리스로서는 자신이 받은 부탁을 설명해야 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고.

    어찌 되었든, 모두 무사하면 되었다.

    그러고 있으니, 헬레나가 문득 떠오른 듯이 중얼거렸다.

    “근데 시루드는 왜 이렇게 화장실에서 안 나오지? 혹시 무슨 일 있나?”

    “글쎄…….”

    헬레나가 품는 의문에는 루크도 어느정도 공감하는 부분이 있었다.

    겨우 세수만 하고 오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걸까?

    세수하는 김에 화장실을 사용하는 중이라고 하더라도 좀 오래 걸리는 편이었다.

    헬레나는 갑자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혹시, 시루드한테 무슨 일 생긴 것 아냐?”

    화장실에서 미끄러운 바닥에 넘어지면서 정신이라도 잃었나?

    아니면 저번 사건의 영향으로 뭔가 잘못된 것이 있었다던가….

    헬레나의 추측에 루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적어도 그건 아닐거다. 그러기엔 비명소리나 넘어지는 소리같은 게 전혀 나지 않았으니까.”

    “응… 하긴, 그렇네.”

    어쩌면, 젖은 옷 대신 갈아입으라고 갖다 준 옷이 문제가 되는 걸지도….

    사이즈에 문제가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든 루크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음, 일단 내가 가서 데려오지. 헬레나, 너는 여기 잠시만 앉아서 기다리고 있거라.”

    —–

    그 무렵, 시루드는 화장실에서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휴우, 이제 다 말랐네.”

    젖은 옷에 열을 내보내거나 물을 떼어내서 물기를 제거하는 법은 이미 예전에 바다에 놀러갔을 때 루크한테서 배운 적이 있는 마법이었다.

    당시에는 아직 미숙해서 제대로 사용하지는 못했는데, 지금은 꽤 간단히 재현할 수 있었다.

    뭐, 처음으로 쓰는 거라 처음에는 조금 헤메긴 했지만.

    ‘조금 차 냄새가 뱄으려나?’

    벗어놓으면 잘 빨아서 말려주겠다는 루크의 얘기도 있었고, 실제로도 그냥 옷을 갈아입었으면 빠르고 자신도 편했겠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시루드는 수건으로 얼굴에 남은 물기를 닦아내며 바구니 안에 놓인 의상에 다가갔다.

    “이걸 나한테 입으라고 가져다 주다니….”

    그것은 루크가 아직 자신과 키차이가 많이 나지 않았을 당시 자주 입곤 하던 하얀색 블라우스였다.

    버릴 타이밍을 재지 못해서 그냥 옷장에 채워놓고 나중에 동생들이 크면 물려줄 생각이었다고 했던가?

    지금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은 차이가 나지만 루크도 자신과 키가 비슷하던 때가 있었던 만큼, 사이즈만큼은 자신이 입어도 잘 맞을 것 같았다.

    문제라고 하면, 그냥 평범한 셔츠가 아니라 장식된 프릴레이스 부분이 화려한게 어쩐지 ‘여성복’이라는 느낌이라 남자인 자신이 입기에는 조금 거부감이 드는 점이랄까.

    하기사, 여자애밖에 없는 루크의 집에 남자인 자신이 입을 옷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이상하긴 하지.

    “음….”

    여기서 자신이 이걸 입는다고 뭐라고 할 사람 따위는 없다는 걸 알아도 입기는 싫었다.

    아마 루크가 다른 무난한 옷을 가지고 왔더라도 그랬겠지.

    그리고 아무리 잠깐만 입고 말 옷이라지만, 결국 루크가 입던 옷 아닌가?

    남자인 자신이 여자애가 입던 옷을 아무렇지 않게 입을 수 있을 리 없다.

    “뭐 됐어, 어차피 안 입을 거니까. 이제 여장은 질색이야.”

    그렇게 시루드가 옷을 다시 개어놓으려던 순간.

    “음?”

    어딘가 익숙한 향이, 시루드의 코를 간지럽혔다.

    ‘이 향, 분명 다른 곳에서도 맡아본 적이 있었는데.’

    기시감이 느껴지는 향의 정체를 찾아 잠시 기억을 뒤져 알아낸 그것의 정체는 바로 ‘라벤더향’.

    사실 그것은 평소에 루크에게서도 흔하게 풍기는 향이었다.

    그 향을 좋아하는지, 아니면 그냥 집에서 사용하는 세제가 그런 향인 건지, 항상 루크의 주변에 있으면  일상적으로 은은한 라벤더의 향을 맡을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루크의 집에서 그런 향이 풍기는 게 특별히 이상할 이유는 없었다.

    루크가 입던 옷에서 그런 향이 나는 것은 더더욱 이상하지 않고.

    문제는 바로, 시루드가 비슷한 향을 전혀 다른 곳에서 맡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냥 ‘라벤더향’은 흔하니까.

    시루드는 조금 심각한 표정으로 루크의 옷을 코에 살짝 가져갔다.

    그리고 확신했다.

    ‘확실해. 이거, 분명 그 케이프에서 맡은 적이 있어.’

    꽃을 비롯한 식물의 향기에 민감한 엘프이기에 알 수 있었다.

    이건, 그것과 정확히 같은 세제의 향이었다.

    ‘틀림없어. 같은 향이야.’

    옷장에 오랫동안 걸려있어서 향이 조금 옅어졌기 때문인지, 두 향 사이에서는 더욱 확실한 공통점이 느껴지고 있었다.

    ‘루크가 테러범이 사용하는 것과 같은 세제를 사용한다니… 그냥 우연인가?’

    하지만 세상에 세제가 한두개가 아닌데 우연히 같은 세제를 쓴다는 건 조금 이상했다.

    루크가 아니면 이길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한 상대였는데, 마침 우연히 루크가 그 장소에 있었다는 것도 이상했다.

    마침 딱 알맞게 자신을 잔해에서 발견했다는 것 보단, 이미 그 전에 자신과 함께 있었다는 게 훨씬 말이 되니까.

    테러리스트와 몸집이 지금의 루크와 차이가 있지만, 그건 루크가 ‘폴리모프’를 사용할 줄 아니까 큰 의미는 없는 차이점이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어딘가 묘하게 자신을 가지고 노는 것 같았던 그 마법도, 왠지 익숙한 느낌이 든다.

    결정적으로, 자신은 루크와 테러리스트가 함께 있는 장면을 직접 본 적이 없었다.

    충격에 머리가 아팠다.

    식은땀이 흐르는 듯 했다.

    ‘설마, 아닐거야. 루크가 테러리스트라니. 그건 말도 안 되지.’

    하지만, 한번 의심을 품기 시작하니 걷잡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루크를 테러리스트라고 가정하면, 자신이 그동안 이상하다고 생각한 것들이 하나하나 해결되어버리니까.

    ‘루크가 바로 그 테러리스트였다’라는 명제에서 필사적으로 모순을 찾던 그 순간, 시루드의 머릿속에 설명되지 않는 한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잠깐, 그럼 그 드래곤은 대체 뭐였는데?’

    루크는 분명, 잔해 아래에서 드래곤과 싸워서 자신을 비롯한 모두를 구했다.

    루크가 정말 자신이 맞서 싸웠던 테러리스트라면, 그 드래곤은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모순이란 말인가?

    그 순간이었다.

    -드륵!

    “시루드, 지금 뭐하고 있느냐?”

    “힉!”

    —–

    화장실의 문을 열고 들어온 루크는 시루드가 자신의 옷을 빤히 내려다 보는 것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문을 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시루드는 조금 놀란 눈치였다.

    어쩐지 조금 안절부절하는 것 같기도 하고.

    “시루드, 왜 그러지? 혹시 내가 준 옷에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

    “아, 딱히 문제는 없는데……”

    “그럼, 왜 아직도 옷을 갈아입지 않은 게냐? 젖은 옷을 계속 입고 있으면 감기에 걸릴텐데.”

    “오, 옷은 이미 다 말렸으니 걱정 마. 그, 그러니까 이건 필요 없어.”

    루크는 시루드가 건네주는 옷을 받아들며 시루드의 상태를 살폈다.

    확실히, 마법을 사용한 흔적이 있는 걸 보아 마법으로 옷을 말린 모양이었다.

    가르쳐 준 적이 있으니까 그것을 사용한다는 게 잘못된 건 아니지만, 마법사라고 마법을 쓰는 게 항상 간편한 건 아니다.

    자신이야 뭐 잠을 자면서도 마법연산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일상적인 거지만, 아직 입문자인 시루드는 아무리 감각이 있다고 해도 마법으로 옷을 말리는 건 옷을 갈아입는 것 보다는 훨씬 복잡하고 어려운 작업이었다.

    게다가, 옷에 묻은 액체가 그냥 물도 아니고 입 안에 있던 차라서 굉장히 찝찝할 텐데…

    “뭐, 네가 정 그렇다면 됐다만…. 왜 그러지? 설마, 내 옷에서 냄새라도 나는게냐?”

    그러고보면, 아까 시루드의 모습을 잘 떠올려보니 그건 아마도 냄새를 맡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뭐, 그걸 탓할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일반적으로는 남의 옷에 코를 가져가는 게 잘하는 행동은 아니지만, 자신이 입을 옷이었으니 꾸짖을 일 또한 아니었다.

    한동안 입지 않고 옷장에 그냥 걸어두었던 옷이니 꿉꿉한 옷장의 냄새가 조금은 날 수도 있으리라.

    어쩌면, 시루드는 그 묘한 나무향기가 맘에 들지 않았던 걸지도?

    아까 시루드는 조금 심각한 표정이었던 것 같기도 하니 말이다.

    그렇게 생각한 루크가 자신이 가져온 옷의 냄새를 맡고 있던 때였다.

    “맞아. 나, 지금 너랑 그 얘기를 좀 하고 싶었어.”

    “응? 무슨 이야기를 말이냐?”

    시루드의 갑작스러운 대화 제안에 루크는 자신이 가져다 준 옷의 냄새를 맡던 행동을 멈추고 시루드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시루드는 꽤 진지한 표정이었다.

    마치, 반드시 이 말을 꼭 해야겠다는 것처럼.

    뭔가 중요한 말을 하려는 것 같아 루크는 재촉하지 않고 시루드가 천천히 말을 고를 때까지 기다려주기로 했다.

    “……있잖아, 루크.”

    “응, 말하거라.”

    “그……. 저번에 그 테러리스트한테 탈취했다는 그 후드케이프 말이야.”

    “케이프라면 그, 방어마법이 인챈트 된 아티팩트 말이냐? 하하, 내가 조사관에게 증거품으로 넘겨주게 된 건 괜찮다고 하지 않았느냐.”

    “아냐, 지금 내가 하려는 건 그 얘기가 아니라….”

    “아니라?”

    시루드는 조금 뜸을 들이는 듯 하더니 곧 결심을 내렸다는 듯 마침내 입을 열었다.

    “실은, 그 케이프에서 맡은 냄새랑 똑같은 게 너한테도 나거든. 혹시, 뭔가 아는 거 있어?”

    결국 말했다.

    그건 해석하면 ‘혹시, 네가 테러리스트인 거 아냐?’라는 질문과 다름이 없는 말이었다.

    자신을 의심하는 것이 그만큼 충격적이었던 것인지, 루크는 곧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설마……’

    자신의 추측이 정말인걸까?

    시루드가 복잡한 마음으로 루크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으니, 잠시 후.

    루크는 크게 당황하고 놀란 목소리로 벌벌 떨면서 입을 열었다.

    “아, 아니, 그건 지금 내가 지금 일어나는 바람에 목욕을 못 해서…! 머, 머리도 안 감은 상태고…! 혹시 그 정도로 내게서 풍기는 냄새가 심했더냐? 아무리 그래도, 그 더러운 케이프랑 똑같은 냄새가 내게서 난다니….!”

    “…뭐?”

    “미안하다, 아무래도 지금은 이야기를 못 하겠구나. 지금 바로 나가주거라.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몸을 씻어야 할 것 같으니까.”

    심각하게 자신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으며 말을 쏟아내는 루크의 반응에 시루드는 그제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그, 그게 아니라! 아니, 아닌 건 아닌데! 잠깐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런이런, 여자애한테 냄새가 난다니…….
    시루드도 신사는 못 되겠군요.
    다음화 보기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