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전(前) 용사라고요? ( 10 )
삐걱- 삐걱
비행선은 힘겹게 난기류를 헤쳐 나아갔다. 낡은 수레가 가죽끈에 의지해 간신히 움직이는 형색이었다.
비행선에 있는 사람 모두가 맡은 바 임무를 다했다.
한스와 이안은 죽어라 손잡이를 돌려서 날개를 회전시켰고, 케니스는 막강한 화력을 꾸준하게 공급했으며, 데이지와 아리아는 쉬지 않고 뛰어다니며 돛에 바람을 가두었다.
“허억, 허억. 더, 더 손잡이를 돌려어엇! 여기서 멈추면 다 죽어!!”
그중 가장 바쁘게 갑판을 누빈 것은 드워프였다.
짧은 다리가 무색하게 뛰어다닌 드워프의 정성이 하나 된 분에게 닿았음일까.
“구름이 사라지고 있다!”
온통 우중충했던 먹구름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난기류를 마주하고 꼬박 24시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흐, 흐하하! 흐하하하! 이, 이걸 심연까지 끌고 왔어! 해냈다고!”
드워프가 실성한 사람처럼 웃었다. 과연, 저 멀리 솟구친 심연의 대지가 이제는 손에 닿을 듯 가까웠다.
“…하아. 정말로, 어떻게든 심연에 도착했네요.”
“그러게. 어떻게 되는 줄 알고 진짜 걱정했는데.”
데이지와 한스가 괜히 땀 닦는 시늉을 했다. 케니스와 한스, 데이지는 바다에 빠져도 딱히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들은 어떻게든 바다에서 제 한 몸 건져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안과 아리아, 드워프는 달랐다.
바다에 빠지면 체온이 낮아질 것이며, 체력의 한계도 금방 찾아왔을 것이다.
“여기는 변한 게 없네요.”
케니스가 난간에서 심연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심연의 풍경은 예전에 찾아왔을 때와 크게 변한 것이 없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였는데, 이 땅에서만큼은 통용되지 않는 말인 듯 보였다.
“이제 고도를 낮추겠네.”
드워프가 무언가를 조작했더니 비행선이 천천히 하강하기 시작했다.
끼리리릭- 철썩!
비행선이 바다에 착륙했다. 물레바퀴를 닮은 비행선의 날개가 마구 물장구치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비행선이자 훌륭한 배였다.
“……이거 바다에서도 움직이네요?”
“그러게?”
생각해보면 애초부터 이 비행선은 바다에 떠 있었다. 그렇다는 말은, 굳이 개고생하면서 날아올 필요가 없었다는 말 아닌가?
모두의 시선을 받은 드워프가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거, 우리도 첫 비행인데 기왕 하는 거 실험 자료를 좀 수집해야 하지 않겠소?”
“……휴.”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일단 심연에 오기는 왔으니까.
“자아. 도착이오!”
일행은 비행선에 준비된 쪽배를 타고 모래사장에 도착했다. 드워프는 비행선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사박- 사박-
모래사장을 밟고 올라서서 사방을 둘러보니, 이럴 수가.
푸른 하늘 대신 불길할 정도로 붉은 하늘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 아닌가.
“맙소사….”
마치 하늘이 피를 흘리는 듯 보였다.
생소한 풍경에 이안이 살짝 몸을 떨었다. 아직 허리춤에 걸려있는 롱소드가 유달리 무겁다.
키르르륵- 끼에엑, 콰즈즉! 까득!
저 멀리, 모래사장의 끝에 펼쳐진 울창한 밀림 속에서 기괴한 비명과 울음이 들려온다.
수천수만 가지 형상의 악마가 그림자에 숨어 목덜미 물어뜯을 기회만 노리는 듯하였다.
“이안. 너무 두려워하지 마렴.”
“이런 걸로 떨 필요 없다.”
케니스와 한스가 이안을 진정시켰다. 이안은 금방 침착함을 되찾을 수 있었다.
언제 어느 때라도 빠르게 이성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은 이안의 큰 장점이었다.
“…용사님, 한스 님. 분명 지난번에는 마왕의 하수인이 마중 나올 것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주변에 아무도 없어요.”
가볍게 주변을 한 바퀴 정찰하고 온 데이지가 말했다.
좋지 못한 소식이었다.
“……설마 마왕이 저희를 속인 것은.”
“아닐 거예요. 그 녀석은, 치졸한 수를 쓸 녀석이 아니니깐.”
“그건 그렇긴 하지.”
케니스는 확신할 수 있었다. 마왕 발가르는 대적자라고 인정한 자에게 졸렬한 속임수를 쓸 인물이 아니었다.
“흠.”
자연스럽게 일행의 리더를 담당하게 된 케니스는 고민했다.
선택지는 두 개였다.
이곳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마왕의 심부름꾼을 기다리거나, 저 앞에 보이는 무지막지한 통곡의 산을 올라서 마왕성으로 향하든가.
‘우리들뿐이라면 산을 올라도 상관없겠지만….’
이안과 아리아.
이 둘에게 통곡의 산은 너무나 가혹한 시련이 될 것이다.
‘원래라면 마왕의 심부름꾼이 통곡의 산을 손쉽게 넘도록 도와줄 것이라고 했는데….’
계획 변경이다.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산을 오르는 건 너무 위험해.”
“좋은 생각이야.”
“…야영할 준비를 해야겠네요.”
한스와 데이지, 케니스가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뚝딱뚝딱 그럴듯한 간이 건물을 금방 만들어냈다. 어디선가 굵은 목재를 가져오더니 울타리까지 튼튼하게 세우고, 푹신한 나뭇잎으로 따뜻한 이부자리까지 그럴듯하게 만들어냈다.
인간의 한계를 진작에 초월한 전사 3명은 30명의 노동자가 할 일을 거뜬히 소화했다.
“와.”
“……뭔가 도와드릴 일이 없네요.”
이안과 아리아는 얌전히 구석에서 부모님들이 일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한스의 어깨에 커다란 통나무 여섯 개가 있는 모습을 보니, 새삼 실감이 가기 시작했다.
‘아버지랑 어머니가 정말로 용사였구나.’
그러면 이제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그런 엄청난 분들도 마왕과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했는데, 아무런 힘도 없는 내가 마왕과의 결전에서 도움이 될까?’
하다못해 옆에 있는 아리아가 자신보다 훨씬 강할 텐데.
“휴우.”
모르겠다. 이안의 머리는 복잡해져 간다.
* * * * *
심연에 간이 베이스 캠프를 설치하고 일주일이 지났다.
케니스와 한스, 데이지는 한곳에 모여 심각한 표정으로 의견을 나눴다.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어. 이건… 이건 뭔가 이상해.”
“…정말로 마왕의 함정인 건 아닐까요?”
“아니야. 내가 장담할 수 있어. 애초에 함정은 약자가 강자에게 대항하기 위해 쓰는 거지. 마왕은 함정 같은 걸 쓰지 않아도 우리를 몰아넣을 수 있는 자야.”
“…그렇다면 왜 일주일이나 소식이 없는 건지.”
“….”
일주일.
심연에 도착하고 일주일이나 지났다.
오기로 했던 마왕의 하수인은 소식이 없었다. 준비해온 식량은 바닥을 보였다.
이제 행동으로 움직일 차례였다.
“……어쩔 수 없죠. 둘로 찢어지는 수밖에.”
이안과 아리아를 심연에 방치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통곡의 산에 올라갈 수도 없다.
그렇다면 한 명이 이곳에 남아서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
“저기, 그…. 저희가 너무 짐이 되는 것 같은데, 이렇게까지 해서 저희를 데려올 필요가 있었나요?”
“그럴 가치가 있단다.”
“너희들이 이번 결전에서 중요한 역할이거든.”
“…사실상 전부라고 봐도 무방해.”
“윽.”
부담감이 형체를 갖춰 이안의 어깨를 짓누르는 듯했다. 이렇게나 부담스러울 수가.
“그럼, 음…. 데이지가 여기에 남으면 되겠네요.”
“…아뇨. 용사님이 여기에 남으시면 될 것 같아요. 제가 한스 님과 다녀올 테니.”
“……….”
“……….”
두 여인의 숨 막히는 신경전.
일대의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 그냥 내가 애들이랑 있을게.”
자진해서 한스가 남는 것으로 상황은 마무리됐다. 두 여인에게 만족스러운 결론은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럼, 아이들을 잘 부탁해요.”
“…아리아. 한스 님을 잘 보필하렴.”
더 지체할 것도 없다. 케니스와 데이지는 간단하게 짐을 꾸려서 산을 향해 출발했다.
이들의 목적은 하나였다.
마왕성으로 가서, 마왕을 직접 데려오는 것.
타타탓!
땅을 박차는가 싶더니 금방 작은 점으로 사라지는 두 여인. 한스는 둘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온몸에 힘이 쭉 빠진다. 저 둘이 같이 있으면 맹수 두 마리를 한 울타리에 넣은 기분이었다.
“고생이 많으시네요 아버지.”
“…너도 곧 내 심정을 알게 될 거다. 조심해라….”
“?”
한스의 영문 모를 격려에 이안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축 앉아있던 한스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할 일도 없으니 몸이나 움직여볼까?”
“…? 뭘 움직여요?”
아무것도 없는 이 야영지에서 뭘 하시려고?
이안의 의문에 한스는 적당한 나뭇가지를 하나 주워오는 것으로 대답했다.
“검이나 들어봐라. 실력이 얼마나 녹슬었는지 한번 보자. 보나 마나 수련을 한 번도 안 했을 테지.”
“윽.”
이안이 얼굴을 찌푸렸다. 한스의 말대로였다. 집을 떠나고 제대로 검술 훈련을 한 적이 없었다.
따악! 따닥ㅡ! 따다다닥!
“구아아아아악!”
모래사장에 이안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한스의 나뭇가지가 신나게 이안을 두들겼다.
“눈으로 보고 반응하라니까! 허리는 항상 세우고, 하체는 단단히 고정!”
“끄아아아아악!”
너덜너덜해진 이안은 형편없는 꼴로 모래사장에 쓰러졌다.
뉘엿뉘엿 해가 수평선 아래로 저물기 시작했다. 심연의 붉은 하늘은 당장이라도 핏물이 뚝뚝 떨어질 듯 더욱 붉어졌다.
금방 어둠이 밀려오더니 밤이 도래했다.
“아리아. 이안 좀 옮겨주겠니?”
“……네, 아버님.”
9살밖에 되지 않은 아리아였지만 이안을 거뜬히 등에 업을 수 있었다.
끼르르륵! 키킥, 햐아아악!
밤이 깊어졌다. 저 멀리 수풀에서 이름 모를 것들의 괴성이 들려왔다.
한스는 야영지의 울타리를 따라 천천히 걸으며 경계를 시작했다. 심연의 많은 악마들이 마왕의 지배에 있지만, 그럼에도 이곳이 심연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펄럭ㅡ 펄럭ㅡ
“…음?”
밤의 적막을 찢는 소리. 한스가 눈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 어두운 밤보다 더욱 새까만 그림자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저건…….”
어디서 본 것 같은 형태인데.
알 수 없는 형체가 점점 지상에 가까워진다. 저것의 정체를 깨달은 한스는 머리털이 쭈뼛 솟아오르는 착각마저 들었다.
“어디서 봤더라…?”
한스는 기억한다.
아주 오래전, 이안이 태어나기도 전에 심연에 왔을 적. 마왕의 곁에 작은 용이 있었다.
“아니, 진짜 용이잖아?”
ㅡㅡㅡㅡㅡㅡ!!!
한스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날개를 크게 펼친 용이 포효했다.
‘덩치가 작은 것을 보니 그때 그 녀석이 맞는 것 같은데.’
용의 포효에 곤히 자고 있던 이안과 아리아까지 뛰쳐나왔다. 깜짝 놀란 기색이 역력하다.
“아버지!”
“…저건 도대체.”
“용이다. 다들 물러나 있어.”
마왕이 보낸 심부름꾼인가? 한스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슬쩍 검을 잡았다.
쿠웅ㅡ
작은 용이 모래사장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가까이서 바라본 용의 자태는 가히 장관이었다.
전체적으로 누런빛의 비늘은 어둠 속에서도 황금처럼 빛났고, 아직 덩치는 작지만 엄연히 용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고고한 위엄이 흘렀다.
쉬익, 쉬이익.
용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렇게 한참이나 호흡을 고르더니.
날개를 활짝 펴며 외치기를.
《아빠!!!》
“…??”
“??”
“……?”
모래사장에 도래한 침묵.
이안이 떨리는 눈으로 한스를 바라봤다.
“……아, 아아, 아버지?”
도대체 당신이라는 인간은.
“아, 아니야! 아니라니까! 진짜 아니야!!”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정말 엄청나게 무지막지하게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감사합니다…!! 혼잣말이 개고생을 시키는 세상 졸렬하고 한가한 신… 케넬름!! 여기 너네 신이 또 헛짓거리 한다!!! 원숭이 손처럼 행동하잖아!! 살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