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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87

       “쟤들 왜 저러는데?”

        

       어느새 다가온 루카스가 나에게 물었다.

        

       아마 ‘쟤들’이라는 단어에는 황제도 포함되어있겠지?

        

       “그러게. 나도 잘 모르겠는데.”

        

       나는 멀찍이 떨어져 춤추는 둘을 보면서 말했다.

        

       무도회에서 춤추는 남녀는 보통 세 부류로 나뉜다.

        

       우선, 어린 딸이 자기 아버지와 춤추는 모습.

        

       보통 아버지는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 흐뭇한 표정으로 딸을 바라보고, 딸은 매우 즐겁다는 듯 웃고 있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이런 경우는 딸이 무척 어린 경우가 많다. 주변에서도 그런 둘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기도 하고.

        

       그런데 저 둘은 일단 아버지와 딸 관계이기는 했지만,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벨라는 나보다도 나이가 많기도 했으니, 절대로 ‘처음으로 사교회에 데뷔한 어린 딸’ 같은 모습은 아니다. 황제도, 벨라도 서로를 즐겁다는 듯 쳐다보지 않았고.

        

       두 번째로는, 연인.

        

       당연히 이 경우는 전혀 맞지 않는다. 패스.

        

       마지막으로 흔한 사교댄스다. 말 그대로 친분을 쌓기 위해 별다른 감정 없이 친목의 의미로 춤을 추는 행위.

        

       그런 경우 두 사람의 관계는 꽤 친한 친구일 수도 있고, 반대로 무척 사이 나쁜 두 가문일 수도 있다.

        

       어…… 이 경우에는 그중에서도 후자로 보였다. 서로 다른 가문은 아니었지만, 벨라가 황제를 바라보는 시선은 싸늘했다.

        

       주변 사람들이 잔뜩 긴장한 채 춤추는 벨라와 황제를 바라볼 정도로.

        

       “…….”

        

       우리는 어느새 두 사람을 조금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서 황제에게 악감정을 가질 가능성이 가장 큰 사람을 꼽으라면, 우리 모두 주저 없이 벨라를 꼽을 거다.

        

       루카스도, 제이든도, 비교적 어린 나이에 자기 힘을 보여서 황제의 손에 들어왔지만…… 벨라는…….

        

       황제와 벨라 사이에는 어떤 이야기도 오가지 않았다.

        

       그저 서로 눈을 마주친 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을 뿐.

        

       그렇게 몇 분 정도 두 사람이 빙글빙글 돌자, 음악이 끝났다.

        

       “후우.”

        

       벨라는 숨을 살짝 내쉬면서, 테이블에 올려두었던 자기 잔을 다시 잡았다.

        

       그리고 샴페인을 한꺼번에 입 안에 털어 넣었다.

        

       “춤, 잘 추시네요. 솔직히 실력이 녹슬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벨라와 황제가 춤춘 적도 있었나?

        

       “기억하실지 모르겠네요.”

        

       “……기억하고 있다마다.”

        

       “음.”

        

       벨라는 웨이터가 들고 온 쟁반에서 새로운 잔을 받더니, 술을 한 번에 쭉 들이켰다.

        

       그리고 황제에게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럼 신사분, 우리 잠깐, 은밀하게 대화를 나눠보지 않겠어요? 다른 사람 없는 곳에서.”

        

       조금 소름이 끼치는 광경이었다.

        

       물론 그건 벨라가 의도하고 있는 것이긴 할 거다. 자기 아버지를 보고 진짜 성적인 유혹을 할 리는 없으니까.

        

       “……좋지.”

        

       황제는 잠깐 고민하다가 그렇게 말했다.

        

       두 사람은 나란히 걸어가더니, 그대로 연회장을 나가버렸다.

        

       “…….”

        

       레코드판을 바꾸기 위해 대기하던 사용인조차 입을 멍하니 벌린 채, 두 사람이 나간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눈을 마주친 뒤, 얼른 두 사람 뒤를 따라 나갔다.

        

       저 상태로 두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잖아.

        

       죽여버리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

        

       벨라와 황제를 찾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저택이 넓긴 했지만 그래봐야 집이다. 무슨 백화점만큼 넓은 곳은 아니다.

        

       나는 벨라와 황제를 3층에서 찾았다.

        

       발소리를 죽이고 계단을 올라가니, 벨라의 목소리가 작게 들려서, 그 목소리를 따라 천천히, 최대한 발소리를 죽여 걸었다.

        

       두 사람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니, 따지자면 벨라가 혼자 말하는 것에 더 가까웠다.

        

       “왜 그랬던 거야?”

        

       벨라는 매우 직설적으로 그렇게 물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갔다는 사실은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당신이 날 버려두어서……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알기는 해?”

        

       목소리가 눈물에 젖어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말이었지만, 오히려 목소리 자체는 덤덤했다.

        

       그래서 억지로 참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

        

       두 사람은 복도 끝에 난 테라스에 있었다.

        

       나는 두 사람에게 들키지 않게, 테라스 바깥벽에 몸을 기댔다.

        

       “…….”

        

       황제는 대답이 없었다.

        

       “당신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면, 굳이 뭘 증명해 보일 필요도 없었잖아. 그냥 데리고 와서, 적당히 키우다가, 적당한 귀족이랑 결혼시킬 수 있었던 거 아니야? 내 능력이 안 되더라도.”

        

       벨라는 한탄하듯 말했다.

        

       “왜? 그렇게 황제의 피를 이어받은 인간들이 생기는 게 싫었어? 당신이 그렇게 모든 권력을 손에 다 넣었어야만 했냐고.”

        

       마치 정해진 대본을 읽는 것 같은 목소리.

        

       심장이 쿵쿵 뛰었다. 벨라가 황제를 죽이려 들면 어쩌지?

        

       황제는 오늘 내내 왠지 행동 하나하나에 힘이 없었다. 처음 잡혔을 때는 곧장 다른 계획을 세워서 실행하기라도 할 것 같은 표정과 목소리였지만, 한참 동안 혼자 지낸 황제에게서는 뭔가…… 의욕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거 알아? 내가 내 혈통에 대해서 듣고 나자마자 당신을 죽여버리고 싶었던 거.”

        

       “……이해한다.”

        

       “이해해?”

        

       벨라는 코웃음 쳤다. 여기서 들은 말 중에서 처음으로 감정이 섞인 소리였다.

        

       “그럼 죽어줄 수 있어? 나는 내 손을 더럽히기 싫거든.”

        

       황제의 반응에, 벨라가 말했다.

        

       여기서 튀어 나가야 하나? 고민하다가, 일단은 계속 숨어있기로 했다.

        

       “당신에 대한 이 감정, 어떻게 죽일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아서 말야.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진짜 언젠가는 죽여버리려고 하지 않을까?”

        

       “…….”

        

       “궁금하지 않아? 그렇다면 왜 그렇게 하지 않는지?”

        

       벨라는 멍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참고로 목숨 때문은 아니야. 어차피 나는 죽으려고 임무에 나간 적도 많으니까. 어쩌다 보니 다 살아 돌아오긴 했지만.”

        

       “…….”

        

       “언니, 라고 하더라.”

        

       나는 몸을 딱딱하게 굳혔다.

        

       “아니, 뭐, 언제나 언니라고 불러줄 성격인 애는 절대로 아니긴 하지만 말이야, 이상하지 않아? 여건만 되었으면 내가 걔 목을 잘랐을지도 모르는데, 걔는 날 살리려고 하더라고. 그리고 여기서 이렇게, 가족 비슷한 걸 만들려고 하기도 하고. 이상한 애라니까. 걔도 당신한테 이용당한 건 마찬가지인데.”

        

       “……그런가.”

        

       황제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실비아 때문인가…….”

        

       “그래. 따지자면 그렇지. 참 얄궂게도, 걔가…… 피 한 방울 안 섞인 걔가, 나를 계속 찾아와서 말을 걸더라. 죄다 이상한 소리였어. 권력이니 대의니 그런 거랑은 영 동떨어져 있는 헛소리들. 그런데 있잖아? 내 인생에서 그런 식으로 말을 걸어준 애는 걔가 처음이거든?”

        

       벨라가 웃었다.

        

       “그러니까, 응. 조금 아쉬울 것 같아. 내가 죽거나 해서 걔랑 말을 못 하게 되면.”

        

       “…….”

        

       벨라는, 원작에서도 클레어에게 공감하여 많이 아껴주었었다고 나온다. 클레어가 죽는 순간까지 쓰던 무기가 벨라의 검이었던 걸 생각하면, 그만큼 사이가 각별했다는 뜻이겠지.

        

       사실 벨라는 누구보다 가족을 원하고 있었던 거다. 그게 아버지건, 어머니건…… 자기 형제나 자매건 말이다.

        

       “걔한테 걸어보려고 하는데, 아무래도 당신은 좀 거슬려.”

        

       “……그런가…….”

        

       “실비아, 엄청 착하지? 당신 생각보다? 이런 상황에서도 아버지랍시고 챙겨주고 있잖아? 루카스도 제이든도 당신을 볼 때마다 흠칫거리는데. 어쩌면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 집안 중심은 실비아였는지도 몰라. 그때부터 당신 계획도 망가지고 있었던 거고.”

        

       “…….”

        

       “……아까는 죽으라고 했지만, 역시 그건 조금 곤란하겠어. 걔가…… 이제 계획을 되돌릴 방법이 없거든.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결론을 내기 위해서는, 걔 계획에 협조해줘야겠어. 착각하지는 마. 당신 용서하는 건 아니니까. 아마 평생 용서하지 못할 거고. 뭐, 감정이 다른 감정에 묻힐 수는 있겠지만.”

        

       “알았다.”

        

       황제가 대답했다.

        

       “오, 정말?”

        

       “그래. 나도 꽤 오랫동안 생각을 해봤다. 연금 기간 동안 생각할 시간이 많았지.”

        

       황제는 천천히 말을 이어 나갔다.

        

       “계획은 막혔다.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어떤 방식으로 계획을 짜도 선택지가 없더군. 전부 너희들과 연결되어있었지. 만약 내가…… 너희와 조금이라도 제대로 된 신뢰 관계에 있었다면, 어쩌면 나도 새로운 계획을 실행하려 했을지 모른다.”

        

       “하, 참 당신다운 결론이네.”

        

       “이제 와서 소중한 것을 찾았다거니, 그런 소리를 할 생각은 없다.”

        

       황제가 말했다.

        

       담담하게. 자기 옆에 있는 벨라처럼.

        

       “하지만…… 네 이야기를 들으니 확실히 흥미롭긴 하군. 실비아가 세운 계획이라는 게. 나는…….”

        

       “뭐, 말하지 않아도 대충은 알 것 같아.”

        

       벨라는 테라스 난간에 기대서 말했다.

        

       둘은 한참 말이 없었다.

        

       음, 이제 슬슬 나가봐도 될까, 하고 생각하던 때.

        

       “실비아!”

        

       저 멀리서 빨간 머리가 툭 튀어나왔다.

        

       루카스가 계단을 올라와 나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오, 뭐야, 전부 다 여기에 있었—”

        

       벨라가 황제를 찌르지 않았다는 것에 조금 안도한 것 같은 표정으로 올라오다가, 내가 벽 뒤에 숨어있는 것을 보고는 루카스의 얼굴이 딱 굳어버렸다.

        

       나는 이마에 손을 올렸다.

        

       아니, 부를 거면 좀 작게 부르라고!

        

       처음부터 듣고 있었던 거 다 들켜버렸잖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이 이야기도 정말 끝에 거의 다 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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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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