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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87

    하늘에는 아주 오래 전부터 해와 달이 있었다.

    생명과 육신을 상징하는 해.

    그리고 지식과 광기를 상징하는 달.

    밝음과 어두움, 탄생과 죽음, 양과 음.

    이 첫번째 대비는 생명으로 뒤덮인 세계의 근간을 이루는 첫번째 모순이자, 모든 것의 시작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하나의 세계가 지탱하기엔 지나치게 비대한 규칙이기도 했다.

    돌덩이를 뒤흔들고, 물을 움직이며, 바람을 불게 하고, 불을 일으키며, 나아가 모든 것에 의지를 부여하는 거대하게 짜여진 하나의 규칙.

    그 복잡하고도 압도적인 규칙과 모순을, 그 모든 시간동안 완벽하게 유지하는 것은 그 모든 것을 창조한 신의 힘을 빌더라도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의 대비가 만들어내는 모순된 규칙들은 서로를 잠식하며 쌓여나간다.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그렇게 쌓인 모순들은 마침내 일시적으로나마 해를 숨기고, 달을 숨기는 지경에 이른다.

    그것이 바로 일식과 월식.

    마법을 다루는 이라면 모두가 하나로 입을 모아 굉장히 깊은 마법적 의미를 지닌다고 일컫는 날이었다.

    그리고 지금, 외딴 숲 속에 덩그러니 놓인 저택 안.

    기껏해야 아카데미의 숙제로 골머리나 썩히고 있을 법한 나이로 보이는 소녀가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었다.

    “좋아, 아주 완벽해.”

    종이와 컴퓨터에 무언가를 끄적거리던 소녀는 잠시 후, 스스로 하는 작업에 굉장히 만족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누가 본다면 단순히 소녀가 이제 아카데미 숙제를 마치는 모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장면이었지만, 소녀의 주변에 잡동사니처럼 널브러진 복잡한 수식과 섬세한 장치들의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이 본다면 전혀 다른 광경으로 보이리라.

    평생 그것을 연구하는 마법사들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할 정도로 복잡하기에 악명높은 술식을 너무나도 완벽하게 응용하고 활용하여 재창조한 발상과 증명들이 어떠한 관리조차 없이 마치 가치없는 낙서라도 되는 양 흩어져있는 모습이었으니까.

    하지만 이 소녀에게는 이미 전혀 특별할 것이 없는 일상이었다.

    다차원 연합식, 시공간 적출식, 대원소 안정식 등을 포함한 각각의 24가지의 수식과 이론들은, 이미 못해도 수십번은 직접 사용하며 실제로 개인적인 성과까지 낸 상태였으니 말이다.

    이 소녀의 이름은 루크 이루시.

    그것은 5000년 전에 탄생한 불세출의 대마법사이자, 세계의 법칙에서 벗어난 마왕의 목을 새로운 법칙으로 베어낸 영웅의 이름이었다.

    “음, 음. 아주 좋아. 역시 이론상 보이는 문제는 없군.”

    루크는 그렇게 자신이 작성한 문서들을 들어올려서 대충 훑어보고는 바닥에 툭 던져버렸다.

    평소라면 이렇게 어지러운 환경은 절대 만들지 않겠지만, 오늘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왜냐하면, 오늘은 일생에 언제 다시 올 지 알 수 없는 아주 특별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일식과 월식이 동시에 발생하는 날.

    이처럼 망자의 날과 공허의 날이 동시에 발생하는 것은, 이는 지성체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세기 시작한 이래 단 한번도 관측된 적이 없는 엄청난 일이었다.

    이런 천문학적인 모순은 절대로 흔하게 발생하지 않으니까.

    그러니 루크가 정리정돈에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정리를 하느라 연구가 늦어지면, 앞으로 다시 없을 이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이니 말이다.

    실제로 루크 뿐 아니라 대륙의 수많은 마법사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오늘의 특별함을 빌어 각자의 연구와 실험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니, 루크의 반응이 특별히 유별한 것도 아니리라.

    “오늘 같은 날이 오다니, 정말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 아닌가!”

    루크의 목소리는 마치 대단한 선물이라도 기대하는 사람처럼 매우 들떠 있었다.

    사실은 의식에 공백기가 너무 길어서 오랫동안 ‘살아’왔다고 말하기 어렵기는 하지만, 이 시기에 눈을 뜬 것만큼은 확실히 천운이나 다름이 없다.

    이 또한 자신이 지닌 운명의 축복인 걸까?

    그렇게 스스로의 행운에 만족하며 미소를 짓던 루크는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가 마법진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자아, 그러면……. 시작할까.”

    그동안 수많은 가설을 직접 증명해온 루크조차 미처 건드릴 시도조차 할 수 없었던 영역의 가설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평행우주.

    우주는 선택을 통해 수십갈래로 분화되며, 각 우주들은 서로에게 간섭할 수 없는 평행을 이룬다고 하는 가설이었다.

    시공간의 비틀림이 존재함에도 이 세계가 모순에 잡아먹히지 않고 존재할 수 있는 원인으로 가장 가능성이 높은 가설이지만, 동시에 마법적으로 증명할 길이 없어 그저 논리적인 수준의 단계에 머무르는 가설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두 우주의 평행을 무너트리지 않는 한, 우주들은 서로 어떠한 영향도 주고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논리적으로는 가능할 것이라 예측되지만, 어떤 방식으로도 영향을 관측할 수 없으니 증명이 불가능한 가설.

    그러나, 오늘만큼은 다르다.

    ‘생과 사, 빛과 어둠, 그 모든 대비가 모순이 되어 극대화되는 오늘이라면……!’

    일반적으로는 불가능한 마법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공간은 빛에 감싸였다.

    -파앗!

    —–

    잠시 후, 루크는 머리를 부술 듯한 두통에 의해 눈을 떴다.

    “으으……. 정신을 잃었던 건가.”

    실험 도중에 정신을 잃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욱씬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은 채로 주변을 둘러보니, 마법의 여파로 저택의 마나가 나갔는지 방의 불이 꺼져 깜깜해진 상태였다.

    그에 루크는 불을 켜기 위해 몇번 불을 켜는 신호를 보내보았지만, 조명은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센서 고장인가….”

    급격한 마나고갈로인해 아직 몸을 움직이기 쉽지 않았지만, 루크는 스위치를 켜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이래서야 실험의 과정은 커녕, 결과를 확인 할 수도 없지 않은가.

    “으윽, 분명 스위치가…….”

    그 순간.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던 루크의 발 끝에, 무언가가 걸렸다.

    -툭.

    자신의 기억이 잘못된 것일까?

    이곳은 분명 불이 꺼지기 전에는 아무것도 없던 장소였을 텐데.

    “……!”

    예상치 못한 장애물에 중심을 잃고, 마나고갈 때문에 넘어짐에 대응하지 못해 꼴사납게도 성대한 소음을 내며 바닥에 이마를 박아버리고 말았다.

    -빠악!

    “아으악……!”

    루크가 머리 안팎으로 느껴지는 환장할 두통으로 고통스러워하며 신음하는 사이, 예르나가 빠르게 계단을 올라와 방의 문을 열어젖혔다.

    “루, 왜 그래? 무슨 일이니?”

    -찰칵, 파앗!

    방 문을 연 예르나가 불을 켜자, 루크는 자신의 발을 걸었던 물체를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으윽, 이건…?”

    “어머, 이게 다 무슨….”

    —–

    “만나서 반가워. 나는 그냥 ‘루시’라고 불러주면 돼.”

    “안녕. 루시! 아줌마가 너무 놀라서 미안. 루크한테 친척이 있을 줄은 몰랐거든.”

    루시의 말에 예르나는 금방 납득했다.

    아무래도 조금 많이 특별한 모습이기는 하지만, 루크의 먼 친척이라면 그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도 아니다.

    아마 ‘시설’에 있을 때 조금 떨어지게 되었다가, 이제서야 겨우 만나게 된 거겠지.

    “루시, 내 집이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있으렴!”

    “응, 고마워!”

    “고마워 할 것 없어!”

    그렇게 말하는 예르나의 흐뭇한 표정에, ‘루시’는 루크를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예르나에게도 다 들릴 정도로 속닥이며 말했다.

    “이봐, 이런 좋은 새엄마에게 날 이야기하지 않은 거야? 이거 섭섭한걸.”

    “그래, 루크. 엄마한테 미리 말했으면 진작에 찾아봤을 텐데. 그동안 루시가 얼마나 힘들었겠어?”

    ‘그것’의 태연함에 루크는 잠시 눈살을 찌푸렸지만, 이내 표정을 고쳐내며 예르나에게 말했다.

    “아하하, 글쎄요……. 제게 이런 친척이 있는 줄은 저도 몰랐네요.”

    “음, 그래. 몰랐다면 어쩔 수 없지만. 루시, 그런데 그 옷은 춥지 않니? 배도 훤히 드러나고. 다른 옷을 가져다 줄까?”

    예르나의 물음에 루시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마음은 고맙지만, 괜찮아. 이게 내게는 익숙해서. 다른 건 오히려 불편해.”

    “으음, 그래도.”

    “저기, 엄마. 죄송한데……. ‘루시’하고 단 둘이 이야기를 좀 할 수 있을까요?”

    “아!”

    루크의 말에 예르나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처럼 잠깐 놀란 표정을 짓더니, 당연하다는 듯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둘이서 얘기 많이 하렴! 많이 반가울 테니까.”

    그렇게 예르나가 방에서 사라진 후.

    루크는 곧장 ‘루시’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따지기 시작했다.

    “허, 친척이라니? 웃기지도 않는 소리가 아닌가! 피 한방울 섞이기는 커녕, 평생동안 만나본 적도 없는 생판 남인 주제에!”

    호통에 가까운 루크의 목소리에, ‘루시’는 어깨를 으쓱하며 가볍게 대꾸했다.

    “하지만 설명할 방법이 없잖아? 평행우주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우민에게 대체 무슨 설명이 통하겠어?”

    “그, 그건…!”

    확실히, 그건 그랬다.

    아무리 루크가 자세하게 평행우주에 대해 설명을 늘어놓더라도, 예르나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보다못한 ‘루시’가 말을 끊으며 ‘그냥 아주 먼 곳에서 온 친척’ 이라고 말하기 전까지, 예르나는 그저 목소리에따라 고개를 끄덕이는 인형에 불과한 상태였다.

    각각의 선택에 따라 평행 우주가 무한히 분열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시공간에 대한 고차원적인 마법적 모순을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예르나는 그 정도로 마법적 이해가 높지 않은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루시는 교차한 손으로 뒤통수을 받치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딱히 틀린 말도 아니잖아? 넌 평행우주의 나니까. 아주 먼 곳에서 온 ‘친척’인 셈이지?”

    “…하지만, 네가 어떻게 평행세계의 ‘나’라고 확신할 수 있지? 이름도, 종족도, 가치관도, 어느 것 하나 닮지 않았잖나?”

    자신의 앞에 놓여진 생물은 자신과 닮은 것이라고는 거의 없었다.

    하얀 단발, 금빛 눈동자에 검자위를 지닌 역안, 양처럼 말린 뿔 한쌍과, 그 밑에는 공격적으로 좌우로 뻗어나온 뿔 한쌍, 거기에 경박한 분위기까지.

    자신과 묘하게 닮은 분위기가 아니라면, 완전히 별개의 인물이라고 봐도 되는 수준이었다.

    그것은 양과 엘프의 그것을 반씩 섞은 듯한 길쭉한 귀를 까딱거리며 대답했다.

    “뭐, 그건 각자의 ‘본질’에 관한 문제 아니겠어? 그리고 애초에, 그 정도의 공통점이 아니라면 나는 이 세계에 끌려오지도 않았을 걸? 그리고 딱 봐도 보이잖아? 우린 닮았다는 거.”

    “…….”

    그 말에 루크는 말문이 막혔다.

    확실히, 그것에게는 알 수 없는 동질감이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온 자신’… 그런 확신이 들었다.

    “…그럼 나도 너를 ‘루시’라고 부르면 되겠는가?”

    “그건 맘대로 해. 나는 어차피 남에게 어떻게 불리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니까.”

    “……”

    “됐고, 날 불러낸 게 너니까, 말해봐. 나를 돌려보낼 방법 정도는 아는 거겠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직 일주일은 안 되었지만, 할로윈이 아니면 쓸 수 없는 에피소드라고 생각해서 일단 어떻게든 써봅니다.

    이번에 이태원에서 변을 당하신 모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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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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