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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87

        

       비밀.

         

       그는 미소를 지우며 비밀이라 말했다.

       숨기고 있는 이름이 없다는 대답이 아닌, 숨기고 있는 이름을 대답할 수 없다고.

         

       그것은 비밀이라고,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 마지막 질문은 비밀이라는 간단한, 하지만 수많은 의미를 내포한 대답으로 끝이 났다.

         

       그리고 그 대답을 들은 괴인의 눈이 호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치를 그리듯 하나, 둘.

         

       두 눈이 호선을 그리며 눈웃음을 만들었고, 입에서는 쇠를 긁는 소리로 말이 튀어나왔다.

         

       “그래. 참으로 잘 알 수 있겠다….”

         

       그 눈웃음은 생각하고 있는 결말이 맞았을 때 짓는 회심의 감정이 담겨있는 것이었으며, 99% 확신하다가 마지막 1%의 조각이 맞춰졌을 때 낼 수 있는 웃음이었다.

         

       괴인은 눈웃음을 지으며 확신을 담아 말했다.

         

       “그리도 경고했거늘 지키지 아니하였구나.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괴인은 단정 지었다.

       이제순이 주의사항을 지키지 않았다고.

         

       “왜 그렇게 섣부르게 단정을 짓습니까, 어르신?”

         

       “섣부른 단정이 아니다. 이는 확신이니라.”

         

       “어째서요?”

         

       하지만 그는 괴인의 말에 억울하다는 듯한 몸짓을 보였다.

       표정 역시 억울함과 어이없음이 공존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고.

       그 표정과 몸짓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메소드 연기(Method acting)에 통달한 배우가 아닌 이상 저것은 진실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런 표정과 몸짓을 보면서도, 괴인은 확신했다.

       이제순이 주의사항을 지키지 않았음을 100% 확신하고 있었다.

         

       어째서일까?

         

       그와 나눴던 짧은 대화 때문일까?

       주의사항은 지켰냐는 반복되는 질문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방금 던졌던 의미심장한 질문 때문일까?

         

       그는 억울함과 황당함, 그리고 약간의 의문을 담아 괴인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주의사항을 지키지 않았으리라 확신하는 그 이유를 말해달라고.

       그 근거를 자신에게 말해달라고.

         

       그리고 말하는 즉시, 반박해주겠다는 태도와 함께.

         

       그는 그렇게 괴인을 바라보았고.

         

       괴인은 그의 무언의 재촉에 입을 열었다.

         

       “끌끌, 그런 것보다는 말이야…. 자아-네….”

         

       쇳소리.

       하지만 약간의 즐거움과 흥겨움이 담겨있는.

       조롱하는 듯한 저 목소리!

         

       괴인은 우둔한 자를 눈으로 비웃고, 목소리에 숨길 수 없는 조롱을 품은 채.

         

       “양손, 언제든 휘둘러도 괜찮도록 힘이 잔뜩 들어가 있지 않은가-?”

         

       괴인의 그 말이 끝나는 그 순간, 이제순의 표정이 싹 변했다.

       미소가 사라지고 조금 굳어있던 표정은 말 그대로 표정이 그대로 지워져 버렸고, 장난스러워 보이던 몸놀림도 딱 굳어버렸다. 그리고 근육과 관절이 굳어버린 것처럼 뻣뻣하게 딱 굳어지더니, 고무줄을 힘껏 당긴 것처럼 팔의 가죽이 쑥쑥 늘어나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머리채를 휘어잡고 이리저리 흔드는 것처럼 머리가 빙글빙글 돌아갔고, 목은 뼈마디가 갑자기 늘어나기라도 한 듯 늘어나 앞으로 쭈욱 뻗었다.

         

       목이 거북이처럼 앞으로 나간다.

       목뒤에 혹이라도 생긴 것처럼 볼록 튀어나온다.

       쭉쭉 늘어난 가죽은 뼈에 찰싹 들러붙으며 뼈의 형태를 가죽 밖으로 드러낸다.

       채찍처럼 길게 늘어난 팔은 바닥에 쌓이며 똬리를 튼다.

         

       뱀처럼.

       뱀이 똬리를 튼 것처럼.

       하지만 전갈이 꼬리를 바짝 세운 것처럼 위협적으로 보이는 망치와 재단용 칼을 꾸욱 쥔 채.

         

       그렇게 그는 사람보다는 괴물이나 악귀에 가까운 형태가 되어 괴인을 빤히 바라보았다.

       고개를 앞으로 쭈욱 늘린 상태에서 눈을 치켜뜨고, 머리를 빙글빙글 돌리느라 산발이 되어 기괴한 모습으로.

         

       그는 괴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르신. 이 이제순이는 말입니다. 숨기고 있는 이름이란 게 없습니다. 이 이제순이는, 멀쩡하다 이 말입니다.”

         

       항변하듯 담담한 말투였지만, 도저히 숨길 수 없는 감정이 깃들어 있기도 했다.

       더 이상 건드리면 자신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꾹꾹 눌러 담은 분노가 그 안에서 미미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하지만 괴인은 경고에 가까운 그의 말에 겁을 먹기는커녕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그래…. 이제순은 숨기고 있는 이름이 없겠지….”

         

       타악.

         

       괴인은 뾰족한 발을 바닥에 찍으며 말했다.

         

       그의 말에 동의하는 듯하면서도, 또 다른 뜻이 담겨있는 듯한 묘한 말투로 말이다.

         

       톡.

       톡.

         

       괴인은 지팡이로 땅을 두들겨 다지듯, 발을 작게 구르며 말했다.

         

       “이보게, 자네 그거 아는가? 주술의 세계는 참으로 심오하고 기이하다네. 수많은 형식, 수많은 효과. 그리고 수많은 대가….”

         

       톡.

       토옥.

         

       “심지어는 같은 방식의, 같은 절차의 의식을 밟는다고 할지라도 거기에 약간의 변화가 더해지면 완전히 다른 의식이 된다네. 참으로 기이한 일이 아닌가?”

         

       토옥.

         

       “옛적, 어느 지역에서는 신과 인간은 엄격히 구분되어있었지. 신족을 이끄는 자이자 천공을 지배하는 위대한 주신 제우스가 주관하는, 신들과 인간의 운명(μοῖρα)을 구분 짓는 의식이 바로 그러하네. 그런데 이 간단한 의식이 말이야, 약간 상징을 바꾸거나…. 절차의 순서를 살짝 바꾸거나, 주언(呪言)을 조금만 바꾸어도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괴인은 한 손을 들어 올리며 웃었다.

         

       “큰 소를 잡아 위대한 주신 제우스께 선택을 종용하니, 뼈에 기름을 덮어 불을 붙여 신께 바치고 가죽에 고기와 내장을 감추고 숨겨 인간이 가지니 이는 기만이라.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뼈와 지방에 불이 붙자 제우스께서 진노하였으니 이는 지혜가 인간에게 전해진 순간이요, 인간에게 풍족함이 주어지는 순간이라. 하여 이 의식이 끝난 후에는 가축들의 병이 낫고 무럭무럭 자라날 것이요, 인간은 가축의 살코기를 뜯어 먹으며 살을 찌울 수 있음이라.”

         

       말을 끝마친 괴인의 주먹 쥔 손에서 손가락 하나가 펴지고, 하나를 가리키는 모양새가 되었다.

         

       “큰 소를 잡아 위대한 주신 제우스께 바치나니, 뼈에 기름을 덮어 불을 질러 제물을 위로 올려보내니. 하늘까지 이어진 연기를 타고 제물이 올라가 불멸성을 찬양하도다. 뼈와 지방이 타면서 나는 냄새는 인간의 필멸성을 상징하는 것이며, 썩지 않는 뼈는 신의 불멸성을 말하는 것이니 둘의 운명(μοῖρα)이 명확하게 구분이 되었나니. 그 모습이 신들이 보시기에 참으로 좋았음이니, 고개를 조아리고 명확히 신과 선을 그은 인간에게 마땅히 신의 선물이 내려올 것이로다…. 그리하여 하늘이 진노하는 일이 적어지니, 나라에 평온이 찾아오리라.”

         

       괴인의 손가락이 또 펴졌다.

       그리하여 둘을 가리키는 모양새가 되었다.

         

       “같은 대상에게, 거의 비슷한 절차로 의식을 하는 것임에도 효과가 이리도 차이가 난다네. 하나는 가축에, 하나는 기상에. 이것이 바로 주술의 신비이자 주술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으리.”

         

       게다가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상징을 살짝 뒤틀기만 한다면 완전히 다른 효과를 낼 수도 있었다.

       제우스에게 바치는 것이 아닌, 프로메테우스를 기리는 것으로도 바꿀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역시 앞선 의식에서처럼 가축의 병을 물리치고 성장을 촉진하는 효과를 낼 수도 있고, 의식 범위 안의 지역에 재앙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었다. 여러 조건과 합쳐져서 어마어마한 낙뢰를 떨어뜨릴 수도 있었고, 기상이변을 일으킨 뒤 화재를 일으킬 수도 있었다. 혹은 주술의 효과가 닿는 범위를 화재가 일어나기 쉬운 환경으로 바꾸어놓을 수도 있었고.

         

       이처럼 주술이라는 것은 참으로 심오한 면이 있었다.

         

       올바른 방법만 알고 있다면 누구든지 행할 수 있지만, 그 방법은 이토록 다양하니….

         

       이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렇게 심오한 것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기에 괴인은, 진성은 주술을 사랑하는 만큼 주술을 알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그리고 주술을 알고자 하는 마음만큼이나, 주술의 대가를 알기 위하여 노력을 해왔고.

         

       주술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는 것은 기본.

       주술을 직접 사용한 이를 관찰하며 대가를 추론하거나, 직접 물어 대가를 알아내기도 하였다.

       그리고 자세한 기록도 없고 사용하는 이도 없는 주술의 경우 직접 사용해가며- 그 대가를 직접 알아내기를 반복하였다.

         

       물론 그 탐구가 참으로 험난하여, 종국에는 시체나 다름없는 몸뚱이가 되기는 했지만.

       시간이 뒤틀린 지금, 그는 알고 있었다.

         

       그가 사용했던 주술들의 대가를.

       그리고 그 대가들의 공통점을.

         

       그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말이야…. 이게 참 기이한 일이지. 중구난방인데다가 정리하기조차 쉽지 않은 주술이지만, 그 안에서도 분명히 비슷한 것이 존재하기는 한다네…. 그리고 그 비슷한 것 중에는, 내가 일찍이 자네에게 건네준 것이 있지….”

         

       요정 모방체 생성 의식.

         

       기록 속의 요정을 흉내 낸 ‘요정 모방체’라 불리는 주물(呪物)을 만들어 사용하는 주술 의식.

       접근성이 좋은 편이라 주술사들 대부분 하나둘은 알고 있을 정도로 접근성이 괜찮은 주술이기도 했다.

         

       하지만 접근성이 괜찮다고 그것이 안전하다는 것은 아니다.

         

       당장 독버섯도 세계 곳곳에서,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먹으면 죽지 않는가?

         

       요정 모방체 생성 의식이 바로 그러했다.

         

       접근성이 좋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자면 익히고 있는 이들이 많다는 말.

         

       그렇기에 주술의 메커니즘에 따라 요정 모방체 생성은 운이 좋다면 티끌만 한 대가를 지불하고 사용할 수 있었지만, 운이 나쁘다면 상상을 초월하는 대가를 지불해야만 했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위험성이 높고 대가가 거대한, ‘비효율적인’ 요정 모방체 생성 의식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했지만….

         

       놀랍게도 요정 모방체 생성 의식은 지금까지 인기가 높았다. 많은 주술사가 하나에서 둘 정도 요정과 관련된 주술을 익히고 다닐 정도이며, 심지어는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요정과 관련된 주술을 주력으로 사용하는 ‘요정술사’까지 있기까지 했다.

         

       어째서인가 하면….

       바로 요정과 관련된 주술의 대가 때문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한편 더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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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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