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전(前) 용사라고요? ( 11 )
《아빠아아아악!!》
하늘에서 내려온 용의 외침. 일대에 침묵이 찾아왔다.
하필이면 용이 한스를 바라보고 있던 까닭이다.
“…아버지?”
“아, 아니야! 아니라고! 진짜 아니야!”
한스의 필사적인 변명. 이안은 떨떠름하게 한스를 바라봤다.
아직 아버지를 믿고 있기는 하지만…. 혹시, 설마……, 진짜로…?
《아빠아아아아! 도착했어 아빠!!》
그러거나 말거나.
온통 누런빛의 작은 용은 자신의 등을 향해 외쳤다. 한스를 아버지라 여기는 모습이 아니었다.
“이, 이거 봐! 내가 아니라니까?! 저 용은 나를 아빠라고 부른 게 아니라고!”
“……전 항상 아버지를 믿고 있었어요.”
“거짓말하지 마라!”
“…….”
부자간의 정이란 이토록 얄팍한 것이다.
땅에 내려앉은 용이 활짝 펼쳤던 날개를 접고 몸을 낮췄다.
이제껏 날개에 가려져 있던 용의 등에서 한 인영이 날렵하게 뛰어내렸다.
온 세상의 그림자를 빚어 만든 것처럼 어둡고 또 어두운 신체. 눈을 마주치면 절로 움츠러드는, 그야말로 생명의 적대자라는 말이 어울리는 자.
《흠. 수고했다 로티. 썩 나쁘지 않은 비행이었다.》
마왕.
발가르 칸 가르데나.
“마왕?”
《음. 필멸자인가. 예상보다 일찍 도착했구나.》
한스는 용을 타고 온 마왕의 모습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 용, 내 기억이 맞으면 네가 돌보던 그 새끼용… 맞나?”
《맞다. 필멸자치고는 기억력이 제법 우수하군.》
“……도대체 왜?”
마왕은 날 수 있다. 날기만 할까. 마음만 먹으면 하늘을 나는 존재 중 가장 빠르게 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마왕이 도대체 왜 이런 작은 용을 타고 왔단 말인가?
《하찮은 필멸자. 네 녀석이 알 필요 없는 내용이다.》
“크윽.”
발가르가 붉은 눈동자를 불길하게 빛냈다. 한순간 사방으로 깔리는 위압감.
이안과 아리아는 가벼운 현기증을 느낄 정도였다.
한스가 이를 악 물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아이들이라도 지켜야 해.’
각오.
한스는 언제라도 등 뒤에 있는 이들을 위해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일촉즉발의 순간.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았던 긴장감은 참 우습게도 휘발되고 말았다.
《삐이이익-! 아빠, 아빠! 나 잘했지! 내가 아빠를 태우고 여기까지 날아왔어!》
“흥. 나쁘지는 않았다. 네 녀석치고는 제법 노력했으니, 특별히 도장을 찍어주마.”
《삐이이이! 삐이익!》
누런빛의 용, 로티가 기쁨의 포효를 지르며 꼬리를 씰룩씰룩 흔들기 시작한 것이다.
살랑살랑 흔들리는 꼬리, 앙증맞게 움직이는 엉덩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흐뭇한 웃음을 짓게 하는 것이라.
발가르가 품에서 작은 종이를 꺼내더니 손가락을 꾹 찍었다.
로티의 칭찬 도장이었다. 이걸로 8개가 모였다.
《끼이이이! 끼이이이익ㅡ! 8개야! 신난다! 끼익!》
“……귀, 귀여워.”
아리아가 중얼거렸다.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로티는 무척이나 귀엽고….
또 귀여웠다.
찌리릿.
한스의 의수가 미약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의수 안에 깃들어 있는 용왕의 사념, 그것이 한스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 것이다.
《음…? 계, 계약자여. 자, 잠시… 저 어린 용을 조금만 더 자세히 볼 수 있게 해다오.》
‘갑자기?’
《이, 이 몸을 저 어린 용을 향해 뻗어다오. 어서!》
평소 의수 안에 있는 용왕이 먼저 말을 거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별일이 다 있다고 생각하며,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기에 한스는 순순히 용왕의 부탁대로 움직였다.
《으음, 으으음.》
“삐ㅡ익?”
용왕이 한참이나 의뭉스러운 목소리를 흘렸다. 신기하게도, 로티 또한 한스의 의수에서 무언가 느꼈는지 의수에 코를 툭툭 치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건, 이건 정말로… 네페로스? 네페로스가 맞는 것이냐?》
“네페로스? 그게 누군데?”
한스가 중얼거렸다. 이를 들은 발가르가 의외라는 듯 한스를 바라봤다.
《필멸자. 뭐냐, 그 이름을 어떻게 아는 거지? 그건 로티의 본래 이름일 터.》
“어, 어어. 그게 말이지.”
의수 안에 있는 용왕이 말해줬어요ㅡ. 라고 말하면 그걸 믿을까?
‘애초에 나한테 밖에 목소리가 안 들리는 상상 속의 친구 같은 존재인데.’
한스는 한참이나 대답을 못 하고 우물쭈물했다. 그러자 발가르는 흥이 식었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하. 됐다. 로티 앞에서 괜히 그 이름을 꺼내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발가르는 매정하게 뒤돌더니 다시금 로티의 등에 몸을 실었다.
성인 남성도 올려봐야 할 정도인 발가르가 송아지 정도 크기의 로티에 올라타고 있으니, 그림이 참 묘했다.
“삐이익. 아빠, 아빠! 나 힘 완전 쌔! 아빠 하나도 안 무거워!”
《흥. 당연한 거다.》
한스는 볼 수 있었다.
로티의 등에 앉은 발가르의 몸이 살짝 떠 있는 것을.
“삑! 아빠, 나 다른 친구들도 태워줄래! 태워줄 수 있어! 삐익!”
《하찮은 녀석들이여. 영광으로 알아라. 로티의 등에 탈 수 있는 영광을 주도록 하겠다.》
“……아버님?”
“…이, 일단 타자.”
아리아와 이안, 한스가 쭈뼛거리며 로티의 등에 앉았다.
좁은 등 위에 네 명이 앉았더니 숨이 턱 막혔다.
우웅ㅡ
‘앗.’
가벼운 부유감. 로티의 등에서 살짝 떠올랐다.
한스가 발가르를 바라봤더니, 조용히 하라는 듯 표정을 구겼다.
펄럭! 펄럭!
《끼이이이! 나, 힘 엄청 강해! 네 명도 태울 수 있어!!》
로티가 힘차게 날갯짓하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 기세는 가히 용맹했으나, 속도는… 꽤 느렸다.
“이 속도로 마왕성에서 여기까지 왔다고?”
《예상치 못하게 너희들의 도착이 빨랐던 탓이다.》
“…….”
한스와 일행은 약속했던 시기에 딱 맞춰서 도착했다. 발가르가 늦은 것이지.
한스는 입을 꾹 다물었다. 굳이 안 해도 될 이야기였다.
펄럭! 펄럭!
로티는 일행을 태우고 천천히 하늘을 날았다. 고도는 제법 높았다. 발밑으로 울창한 밀림이 지나갔다.
쿠구궁! 쿠웅! 쾅!
빼곡하게 자라난 밀림에서 연달아 굉음이 들리며 거목이 우수수 쓰러져갔다. 매우 빠른 무언가가 거목을 쓰러트리며 일직선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아. 저기 케니스랑 데이지다.”
유심히 아래를 살피던 한스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혹시나 하였는데 역시나.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삐, 삐이이ㅡ. 아빠아아…. 저기 두 명이 더 있는데, 더, 더 태워…?”
로티가 죽는소리를 하며 발가르를 바라봤다. 로티의 등은 이미 만원이었다.
물리적인 공간이 부족했다. 만약 태운다면 꼬리나 날개에 매달려야 할 판이다. 아무리 로티라고 해도 그건 무리였다.
《저 둘이라면 알아서 잘 올 것이다. 필멸자, 네가 알아서 신호를 남겨라.》
언뜻 정 없어 보이는 발가르의 말이었지만, 이는 케니스와 데이지를 어느 정도 인정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안. 아리아.”
후읍ㅡ
한스가 크게 숨을 마시며 가슴을 부풀렸다.
“귀 막아라.”
“…!”
이안과 아리아가 재빨리 귀를 막았다.
한스의 입에서 커다란 고함이 울려 퍼졌다.
“우ㅡ리ㅡ먼ㅡ저ㅡ마ㅡ왕ㅡ성ㅡ으ㅡ로ㅡ갈ㅡ게ㅡ!!!”
공기가 터져나가는 굉음.
코앞에서 벼락이 친 듯 고막이 사정없이 울렸다.
“삐이, 삐이이이! 아, 아빠! 아빠!!”
놀란 로티가 비틀거리며 발가르를 부르짖었다. 발가르의 눈이 더없이 난폭해졌다.
《네 녀석 필멸자여! 정녕 너의 영혼을 갈기갈기 찢어서 심연의 가장 어두운 곳에 처박아야 만족하겠느냐!!》
“아, 아니. 그, 미안…. 저 아래까지 들리도록 하려면 어쩔 수 없었어.”
《두 번은 없다. 조심해라….》
한스가 멋쩍게 사과했다.
사실 조금 억울한 부분이 있었다. 한스의 잘못이 아니었다.
‘야, 도대체 왜 그러는 건데!’
의수에 깃든 용왕이 멋대로 힘을 증폭시킨 탓이다.
《크흐흐흐흫! 크하하하하! 세상에, 비늘이 다 벗겨질 지경이군! 네페로스가 저렇게 엉덩이춤이나 추는 꼴이라니! 흐하하하하하ㅡ!》
‘…드디어 미친 건가.’
한스가 고개를 저었다.
저 아래에서 한스의 신호를 제대로 확인한 케니스와 데이지의 답변이 날아왔다.
“금ㅡ방ㅡ갈ㅡ게ㅡ!!”
쿠웅, 쿵! 거목 쓰러지는 속도가 한결 빨라졌다.
저 둘이라면 통곡의 산도 거뜬히 넘어올 것이다.
《가자, 로티.》
“삐이, 가자! 간다!!”
로티가 힘차게 날갯짓했다.
펄럭, 펄럭.
네 명을 태운 로티는 통곡의 산을 향해 열심히 날아갔다. 속도는 조금 느렸다.
…그들이 통곡의 산을 완전히 넘는 데에는, 무려 이 주일이나 걸렸다.
“왜 이렇게 늦었어?”
“…분명 먼저 와 계실 줄 알았는데.”
오죽했으면, 진작에 통곡의 산을 통과한 케니스와 데이지가 그들을 추월했을까.
“하….”
한스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로티를 타고 온 덕분에 늦었다.
발가르의 은밀한 배려 덕분에 로티가 일행의 무게를 감당하는 일은 없었지만, 고작 생후 10년 조금 넘은 아룡에게 통곡의 산은 너무 높고 험했다.
“삐이…. 삐, 히, 힘들어어….”
날아가다 쉬고, 또 날아가다가 쉬고.
몇번이고 쉬면서 산을 넘어야 했다.
‘이래서… 이래서 약속한 시일보다 늦게 도착한 거였나.’
그러거나 말거나.
발가르는 품에서 다시 종이를 꺼내 손가락 도장을 꾹 찍고 있었다.
《잘했다. 이걸로 도장을 9개 모았군.》
“끼이ㅡ! 신난다! 신난다!!”
로티가 신나게 꼬리를 흔들었다.
아리아가 로티에게 물었다.
“……그… 죄송하지만, 그 도장을 전부 모으면 상을 받으시나요?”
아리아, 그녀의 나이 9살.
한창 칭찬 도장에 관심이 많아질 나이였다. 데이지가 아리아에게 칭찬 도장 같은 말랑한 것을 해주지는 않았지만.
‘…이안 오라버니에게 부탁해볼까요…?’
8개의 도장을 모은 선구자, 로티가 날개를 활짝 펼치며 으쓱거렸다.
“삐이! 이거 10개 모으면, 아빠가 진흙 쿠키 만들어 준다고 했어!”
“진흙… 쿠키?”
아리아가 발가르를 바라봤다.
어떻게 진흙을 먹일 수가….
“삐! 이거 봐! 나 진흙 완전 잘 먹어!”
챱챱.
로티가 바닥에 있는 진흙을 꼬리로 뭉쳐서 한입에 쏙 넣었다.
옴뇸뇸, 대지용이라서 가능한 식성이었다.
“……하나 된 분 맙소사.”
발가르를 바라보는 아리아의 눈빛은 경악, 그 자체였다.
살갑게 대하는 듯 보여서 딸처럼 여기는 줄 알았더니. 설마 진흙을 먹일 줄이야….
‘이게, 인류의 대적자 마왕……!’
* * * * *
우여곡절 끝에 온통 얼음으로 만들어진 마왕성에 도착했다.
진작에 합류한 케니스와 데이지도 함께였다.
《네 녀석들, 하찮은 필멸자들. 오늘 구태여 다시 이 자리에 모인 이유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옥좌에 앉은 발가르의 목소리가 웅웅 사방에서 울렸다.
목소리에 깃든 위엄… 때문은 아니었고, 그냥 알현실이 너무 넓고 아무것도 없어서 소리가 울리는 것이었다.
“우리는 언젠가, 못다 한 승부를 결정짓겠다고 말했었죠.”
《옳다. 허나, 그때 본인은 피와 강철로 끝 보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케니스의 대답에 발가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개개인의 무력으로 나름 정점에 올랐다고 자부하는 이들이다.
그러나 어찌하여 무력으로 결판내지 않겠다고 말했는가.
“…폭력과 전쟁의 시대가, 저물고 있었죠….”
《시대는 변하고 있었다. 아니, 이미 변하고 있다. 거대한 물살에 휩쓸린 물고기는 격류를 깨달을 수 있는가?》
발가르는 창가를 향해 다가가며 팔을 벌렸다.
하나 된 분의 기적, 대격변, 은총.
지상과 하나 된 심연.
《이 거대한 변화 속에서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했으니. 악마들 또한… 예외는 아니다.》
심연을 흐르던 독무는 사라졌다. 심연의 환경이 크게 변했다는 뜻이었다.
바다와 호수가 생기고, 바람이 분다. 생명이 자라는데 최소한의 조건이 갖춰진 셈.
이미 심연에 뿌리내린 억센 풀들이 자라고 있었다.
심연은 변하고 있었다. 이미 변했다.
하지만 악마들의 근원은 여전히 변치 않았다.
인간의 부정적인 감정.
허나, 이전처럼 무조건적으로 생명의 피와 살점을 탐하는 욕구가 줄어들고 있었다.
몇몇 하급 악마 중에서는 흐릿하지만 이지가 깨어난 이도 있을 정도였다.
《난 그들을 보듬는 만마의 제왕. 피와 폭력 대신, 지혜와 관용을 휘두르는 시대를 맞이해야 할 터이니.》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주역이 있어야 하죠.”
케니스와 한스, 데이지, 발가르의 시선이 흩어졌다.
각자의 자식을 향해.
그들의 시대는 순리대로 흘러간다.
어머니의 손에서 딸에게,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어, 으에?”
“……어머니? 아, 아버님?”
“삐익?”
당황한 아이들이 주춤 물러난다.
부모들은 시선을 맞추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자. 이제 마지막 승부네요.”
《옳다.》
“…결판을 내죠.”
갑작스레 흐르는 비장한 공기.
이안은 마른침을 삼켰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연회장 안에서 나누는 대사를, 이안은 단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처척!
발가르가 천장을 향해, 아니!
그 너머, 하늘을 향해 손을 뻗으며 우렁차게 외쳤다.
《하나 된 분이시여, 어버이시여!!》
그 뒤를 이어, 케니스.
이글거리는 대검을 하늘로 높게 들어 올렸다.
마치 타오르는 횃불처럼, 어둠을 찢어발기는 불씨처럼.
“그대의 검이 바랍니다. 당신의 종이 간절하게 바라나이다!”
그리고 한스와 데이지.
“부디, 그대의 거룩한 눈으로 임하시어 저희를 굽어살피소서. 감히 우리들의 청을 들어주소서!”
콰아아아아아ㅡ
연회실 전체에 거대한 존재감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저 하늘 너머, 구름으로 가려지지 않는 곳.
아득하고 공활한 곳에 고고히 자리 잡은 일곱 개의 별들이, 눈동자의 형상을 그리는 천체가 움직인다.
신이 사랑하는 이들의 부름을 쫓아서.
그들의 외침은 공기를 타고 흐르는 파동을 초월하여, 그보다 더 근본적인 부르름이 되었으니.
그들의 거룩한 의지는 구름을 넘어서, 하늘을 초월하여, 그보다 더 공허하고 아득한ㅡ 끝없는 곳을 향해.
* * * * *
따르르릉ㅡ! 따르르르릉ㅡ! 따르르릉ㅡ!
안락한 잠을 방해하는 불청객이 찾아왔다. 귀가 찢어져라 울어대는 알람 소리에 나는 귀를 막고 돌아누웠다.
“…우, 으음…. 케넬름…. 저것 좀 어떻게 해 봐…….”
부스럭.
옆에서 인기척이 움직인다.
따르르르ㅡ
시끄럽게 울던 벨소리도 잦아들었다. 다시금 정신이 가라앉는다. 안락한 수면의 세계에 나를 던지는ㅡ
“일어나세욧!”
“으하앗?!”
우렁찬 케넬름의 외침에 정신이 번쩍 들고 말았다. 젠장 도대체 무슨 일이야?
“무, 뭐야? 무슨 일이야?”
“이거 당신을 찾는 거잖아요. 직접 해결하셔야죠.”
“으윽. 아침부터…?”
“아침이라뇨. 해가 중천인데.”
벌써 그렇게나 됐다고?
케넬름이 둥둥 떠 있는 거울을 손가락으로 나에게 밀었다. 허공을 날아서 다가오는 거울 속으로, 익숙한 얼굴들이 보인다.
“뭐야. 벌써 한자리에 다 모였네?”
– “위대하신 분의 말씀을 기다리나이다!”
– 《어버이시여, 아뢰옵기 황공하게도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스, 데이지, 케넬름, 발가르.
아주 떼거리로 모여서 나를 부르는 강령쇼를 열고 있었다.
“어그으윽.”
뚜둑, 뚜두둑ㅡ
간밤의 노고를 증명하듯, 몸 곳곳에서 시원한 소리가 들려왔다.
“팝콘 좀 가져올까요?”
“어, 응. 부탁해.”
케넬름이 침대에서 일어나더니 얇은 가운만 걸친 채 걸어갔다. 가운 너머로 살랑살랑 흔들리는 여체의 굴곡이 내 눈동자를 유혹한다.
“…후우. 참자, 일단 이 녀석들부터 해결하고.”
아슬아슬했다. 솔직히 조금 혹했지만….
‘할 일부터 하고 난 다음이라면서, 케넬름이 허락하지 않을 테니….’
의욕이 팍팍 솟아난다.
후딱후딱 처리하자고.
“크흠. 《말하여라.》
이제는 익숙해진 발성 방식이다. 소위 말하는, 위엄있는 산의 목소리.
거울 속 녀석들은 몇 번이고 들었던 만큼 익숙하게 머리를 숙였다. 아리아와 이안, 로티만이 익숙하지 않은 존재감에 덜덜 떨고 있다.
– “미천하고 우둔한 저희로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난제가 있나니!”
– “…바라옵건대, 당신의 빛나고 영험한 지혜의 일부분을 빌려, 저희들의 난제를 해결해주시기를 바라옵니다.”
“씁.”
하필이면 이런 부류인가.
살짝 미간을 구겼다.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면 나보다는 케넬름이나 리아가 더 제격인데.
‘케넬름은….’
팝콘을 튀기는 중이다.
‘…리아는.’
우리 둘이서 꽁냥거리는 거 보기 힘들다고 멀리 떨어진 곳에 거주지를 만들었다. 당장 불러오기는 조금 힘들다.
어떻게든 해보는 수밖에.
《…말해보아라. 세상의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고 결과가 있는 법이니. 너희들은 나에게 낱낱이 고하여라.》
– …끄덕
거울 속 녀석들이 시선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발가르가 대표로 나서며 힘차게 외쳤다.
– 《저희들의 자식 중에서, 누가 가장 잘난 자식인지 헤아려 주시옵소서!!》
“아이 씻팔.”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
그런 건 너희들이 알아서 정하란 말이야!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정말 엄청나게 무지막지하게 감사합니다…!!
이제 외전도 슬슬 끝이군요…!!!!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이안의 미래는… 관측되지 아니하였으니… 슈뢰딩거의 중첩 현관 상태입니다…!! 저 현관문을 열기 전에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그야말로 초ㅡ중첩 다중 현관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