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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88

   쿠오오오!

   

   저 멀리에서 전해지는 용의 울부짖음을 들은 순간 유덴은 머잖아 찾아 올 진동을 대비했다.

   

   이건 분명 드래곤 브레스다.

   

   지상에 존재하는 최강의 종.

   

   과거에는 신이라 숭배되기까지 했던 최강의 짐승.

   

   용병으로 일하며 용을 상대해 보았던 유덴은 울음소리를 듣자마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했고 그녀의 예측은 현실이 됐다.

   

   대지가 진동한다. 땅 깊숙한 곳에서 시작된 진동이 대지를 괴롭히고 그 위에 선 자들의 발치를 뒤흔든다.

   

   갑작스레 찾아 온 지진에 모두의 발치가 불안정해진 그 때 유덴은 파고 들어갈 틈을 몇 개나 보았지만 검을 휘두르는 대신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중심을 잃어버린 건 유덴의 뒤편에 있던 이들도 마찬가지였으니까.

   

   흐음. 저 쪽에 당황한 기색이 비치는 걸 보면 악신의 추종자들이 무슨 일을 벌인 건 아니고.

   

   무언가 변수가 생긴 건가.

   

   무슨 일이 생긴걸까 생각하던 유덴은 자신을 여기로 데리고 온 건방진 꼬마아이를 떠올렸다.

   

   방금 전에 슬쩍 어디론가 향하더니 무슨 일을 벌이고 있나 보네.

   

   근데 몰래 뭔갈 할 거면 좀 조용하게 일을 벌이던가. 이렇게 난장판을 피우면 어쩌자는 거야?

   

   “파트란 영애. 아직입니까?”

   

   무얼 할 생각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프레테님마저도 신용하는 사람이라면 도움을 줘야지.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면 검을 휘두르겠다 생각하던 유덴이었지만 조이의 대답은 달랐다.

   

   그녀는 유덴의 물음을 듣고서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다급히 목소리를 냈다.

   

   “검성님. 혹시 저 마법학장의 흉내를 내는 자의 집중을 방해해 주실 수 있나요?”

   “그러면 해결될 것 같습니까?”

   “네.”

   

   방금 전 대지가 흔들리는 그 순간 조이는 자신의 마법이 다시금 구성되는 것을 느꼈다.

   

   마법학장을 흉내내는 자가 조이를 방해하는 방식은 본래 학장에 비하면 세련되지 못하다.

   

   그러니 잠시라도 집중이 끊어진다면 충분히 마법을 발현할 수 있다. 조이가 확인을 가지고 고개를 끄덕이자 유덴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 거라면 쉽죠.”

   “계획을 짜실 거라면 좀 더 소곤소곤 이야기하셔야 하지 않습니까? 저희도 귀가 있습니다만.”

   

   루카의 흉내를 내는 자가 장난스러운 어투로 중간에 끼어들었지만 유덴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래서?”

   “예?”

   “너희가 안다고 뭘 할 수 있는데?”

   

   상대가 무얼 할지 안다는 것은 분명 유리함을 가져오는 일이다.

   

   허나 상대와의 격차가 한없이 크다면 정보의 유리함은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한다.

   

   하늘에서 번개가 내리치는 것을 안다 하여 그를 막을 수 있는가.

   

   바다에서 해일이 몰아쳐 대지를 뒤엎을 것을 안다 하여 한낱 인간이 무얼 할 수 있는가.

   

   한 인간이 자신에게 죽음이 찾아올 것을 안다 하여 운명을 피할 수 있는가.

   

   “검성이라는 직위가 좆으로 보이나 봐?”

   

   가벼운 웃음을 흘린 유덴이 검을 위로 치켜 든 순간 루카를 흉내내는 자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무엇이 두려운지 물어도 대답하는 건 불가능했다.

   

   대체 어떤 지점이 문제인가 스스로 생각해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확실한 것은 하나였다. 저 검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순간.

   

   처음으로 목검을 집은 아이라도 할 수 있을 그 간단한 동작이 취해지는 순간.

   

   사형집행인의 도끼가 내려쳐질 때처럼 자신의 목이 바닥에 떨어질 거란 사실 뿐.

   

   죽음에 이를 결말을 예상했다면 무엇인가 대처를 해야 하거늘 루카를 흉내 낸 자는 그 어떤 것도 하지 못했다.

   

   검을 휘두르는 상상을 해도.

   

   뒤로 도망치는 상상을 해도.

   

   바닥에 넙죽 엎드려도.

   

   동료를 방패로 삼아도.

   

   검은 끝까지 쫓아와 자신의 머리를 떨어트렸으니까.

   

   결국 루카를 흉내 내는 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자신의 목을 떨어트릴 검이 내리쳐지는 것을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죽는다.

   

   죽는다.

   

   이렇게 허무하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악신께서 세상을 무로 되돌리는 것을 바라보지도 못하고.

   

   그 지옥 속에서 우리만이 군림하는 광경을 꿈꾸다가.

   

   죽는 거다.

   

   “오와. 대단하네요. 역시 파트란 가문의 영애시란 건가요.”

   

   저도 모르게 눈을 꾹 감았던 이는 유덴의 태연한 목소리를 듣고서 뒤늦게 눈꺼풀을 들었다.

   

   처음에 남자는 자신이 살아남았음에 안도했다.

   

   다음으로 남자는 자신의 생각이 루카 그 미치광이와 멀어졌음을 깨닫고 다급히 주변을 둘러봤다.

   

   마지막으로 남자는 다른 이들도 공허의 권능에서 벗어났단 사실을 확인하고 경악했다.

   

   “검성님 덕분이죠. 시선을 끌어주지 않았다면 전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렇게 말해주시니 감사하네요. 사실 아무 기대도 안 하고 있었는데.”

   “…네?”

   

   유덴은 조이의 당혹어린 목소리를 들으며 앞으로 튀어나갔다.

   

   지금 이 순간 유덴의 감각을 가로 막고 있던 것들은 모두 사라졌다.

   

   그녀의 눈에는 악신의 추종자들의 모습도, 그들이 둘러 맨 아이들의 몸도 명확하게 보였다.

   

   그러니 이제 남은 것은 하나 뿐이었다.

   

   검을 휘둘러.

   

   저들에게 자신의 믿는 자가 지킬 곳을 보여주는 것.

   

   한 번의 검격이 휘둘러 지고. 하나의 머리가 떨어진다.

   

   또 다른 검격이 휘둘러지고. 하나의 몸이 무너진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방금 전까지 루카를 흉내 내고 있었으며, 이제는 비루한 얼굴로 죽음을 기다리는 남자뿐이었다.

   

   “자. 우리 친구. 내가 몇 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

   “죽여라! 네가 무슨 수작을 부리더라도 나는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하하. 뭔가 착각을 하고 있네. 자기가 바란다고 뒤질 수 있는 건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의 것이란다. 너한테는 그 자격이 없어. 악신을 믿는 쓰레기 새끼야.”

   

   살벌한 웃음을 지으며 남자의 앞에 다가간 유덴은 몸에 묶인 아이를 떼어내고는 남자의 몸을 걷어차 그를 바닥에 눕혔다.

   

   “파트란 영애. 성녀님. 잠시 고개 좀 돌려 주실래요? 그리 보기 좋은 풍경은 아닐 거라서.”

   “저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답니다. 슬픈 말이지만 익숙하거든요.”

   “…저는 페이비와 달리 익숙하진 않지만. 괜찮아요. 파트란 가문의 영애인걸요.”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검을 잡은 유덴의 손에 힘이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진다.

   

   *

   

   “여긴 뭐냐.”

   “찌질한 동정마법사가 예전에 여기 머무를 때의 흔적이죠. 여기저기서 동정 냄새가 나지 않아요?”

   “…동정 냄새는 또 뭐냐.”

   

   글쎄. 메스가키 스킬이 제멋대로 내뱉은 거라 나도 잘 모르겠는데. 대충 밤꽃 냄새 비슷한 거 아니려나?

   

   그런 생각을 하며 어깨를 으쓱인 나는 무너진 벽 너머로 걸어 들어갔다.

   

   <무언가를 봉인해두었구나.>

   ‘뭔가 느껴져요?’

   <아니. 감지되는 것은 없다. 그렇지만 에르기누스 그 놈팽이가 하는 짓엔 익숙하지.>

   

   복도로 새겨 놓은 것들만 보아도 대충 짐작이 간다는 할아버지의 말에는 약간의 그리움이 묻어나왔다.

   

   <그래서 여긴 무엇을 감춰 둔 장소냐.>

   ‘악신의 추종자들이 이를 악물고서 공격하는 거 보면 대충 감이 오지 않아요?’

   <…설마. 악신 아그라가.>

   ‘네. 정답이에요. 정확하게는 그 조각이 봉인된 곳이죠.’

   

   악신들의 구심점이 되었던 아그라라는 존재는 주신 아르마디의 대척점에 설 수 있을 만큼 막대한 권능을 지녔던 자다.

   

   수십의 신격 중에서도 압도적인 위용을 지녔던 괴물이란 말이다.

   

   그런 자를 봉인하는 것이 다른 악신들을 봉인하는 일과 같을 순 없었다.

   

   길고 긴 싸움 끝에 패했다 한들 그 존재가 품은 권능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할아버지를 비롯한 영웅분들은 아그라의 권능을 나누어 봉인하는 쪽을 택했죠.’

   

   영웅들은 악신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지만 그 승리는 결코 영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를 알아차린 영웅들은 당장에 도박을 하기보다 최악의 결말을 뒤로 미루는 쪽을 선택했다.

   

   주신의 도움을 받아 악신이 지닌 많은 것들을 찢어 서로 다른 장소에 봉인하는 걸 택한 것이다.

   

   ‘여기도 그 중 하나에요.’

   

   결과적으로 말해서 그들의 선택은 옳았다. 권능이 갈기갈기 찢긴 악신 아그라는 지금까지도 완전한 힘을 되찾지 못했으니까.

   

   그리고 앞으로도 아그라는 제 힘을 되찾지 못할 것이다.

   

   소울 아카데미라는 봉인이 무너지지 않는 한, 그리고 그 곳에 내가 자리하고 있는 이상, 아그라가 할 수 있는 일은 키보드 워리어마냥 내게 메시지를 보내며 자신의 찌질함을 드러내는 것 뿐일 테니.

   

   <잠깐. 잠깐만. 네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루시 네가 하려는 일은 무척이나 위험한 일 아니더냐!? 저들이 찾는 것을 네가 직접 알려준 준 셈이잖으냐!>

   ‘설마 제가 그런 것도 생각 안 했겠어요?’

   <허나!>

   ‘제가 정 못 미더우면 에르기누스님을 믿어요. 그 분께서 안전장치도 제대로 안 만들어뒀을까봐요?’

   

   이 곳을 수도 없이 공략해보았던 나이니 단언할 수 있다.

   

   여기에서 봉인이 있는 장소까지 무작정 도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사막 한 가운데 있을 에르기누스의 해골을 여기에 데려온다 하더라도 봉인까지 도달하진 못할 걸?

   

   설령 봉인 앞에 도달한다 하더라도 딱 거기까지 일테고 말야.

   

   그만큼 이 아래에 준비된 것들은 더럽다.

   

   아. 물론 우격다짐으로 뚫는 방법이 있긴 한데 현실에서 시도할 만한 건 아냐.

   

   이게 모니터 너머일 때는 실수 한 번으로 죽어도 리트라이를 하면 그만이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잖아.

   

   썩은물인 나조차도 목숨가지고 도박한단 생각이 들 지경인데 다른 놈들은 어떻겠어.

   

   단언컨대 악신의 추종자라는 놈팽이들이 이 아래로 향했다간 10초 내로 몰살당할 걸.

   

   <…네가 그렇게 말할 정도라니. 에르기누스 그 놈 대체 무슨 짓을 해놓은 거냐.>

   ‘침입자를 배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거죠. 뭐.’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면서도 쉴 새 없이 발을 움직인 나는 채 몇 분이 지나기 전에 목표로 하던 장소에 도착했다.

   

   “여기에요.”

   

   아카데미의 결계에 마력을 전하는 마법이 있는 곳에 말이다.

   

   “허약한 병신이었던 최초의 솔라딘과 동정마법사가 약속을 한 장소.”

   

   악신 아그라의 봉인에서 흘러나오는 힘을 정화하여 아카데미의 결계로 보내는 이 장소는 본래 왕가의 인장이 있어야지만 올 수 있는 장소다.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그 물건이 있다면 방금 전 같은 소란 없이 멀쩡한 루트로 여기에 방문할 수 있지.

   

   왜냐고? 에르기누스가 솔라딘 왕가에 이 곳의 관리를 맡겼거든.

   

   피를 타고서 전해지는 길고도 긴 계약을 통해서.

   

   “자. 불쌍왕자님. 한심하기 짝이 없는 당신께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말을 하려던 나는 아서의 얼굴을 보고 순간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의 동공에 생기가 사라져 있었다.

   

   환상에 잠식되어 버린 사람이 그러하듯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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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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