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88

    “모른다고? 그게 대체 무슨 말이야? 말도 안돼, 그럼 나는 어쩌라고? 너무 무책임하잖아!”

    루시의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반응에, 루크는 시선을 피하며 중얼거렸다.

    “내가 처음에 원했던 것은 그저 단순한 평행세계의 증명이었다. 평행세계의 내가 아니라.”

    “정말 웃기지도 않아!”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루시는 허망한 표정으로 주저앉아서 뒷목을 신경질적으로 긁으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아으, 이럴 줄 알았으면 그런 엉터리 소환에는 응하지 않는 거였는데! 하필이면 그게 단방향으로 평행우주를 건너는 터널이었을 줄이야!”

    그 순간, 루크의 귀가 쫑긋거렸다.

    “잠깐, 소환이라고? 지금 내가 널 소환한게냐? 그냥 휩쓸린 것이 아니라?”

    루크의 물음에 루시는 답답하다는 듯이 외쳤다.

    “그야 그건 네가 알겠지! 너, 설마 네가 그린 마법진도 모르는 거야?”

    그러자 루크는 멋쩍은 듯 볼을 긁으며 중얼거렸다.

    “….그게, 사실은 나도 중간에 정신을 잃어서 과정을 알지 못해. 증명식이 소환진으로 변이한 건가?”

    그러자 루시는 더욱 큰 목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뭐? 마법중에 정신을 잃어? 뭐 이런 머저리가 다 있어! 살아있는 게 기적이다! 대체 뭐야? 이 우주는 이런 머저리도 평행우주를 막 열어댈 정도로 마법이 발전한 거야?”

    “머, 머저리라니! 그냥 처음보는 천체활동에 모순대처가 부족했을 뿐이야!”

    솔직히 정신을 잃은 것이 머저리같은 실수였다는 건 자신도 인정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 아니었나?

    그렇게 잠시 말싸움이 이어진 후, 루시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됐어, 어쨌든 너는 능력부족이라는 것 아냐? 그럼 그런 능력이 있는 마법사를 찾으러 갈 거야. 아는 마법사 없어?”

    “미안하지만, 그럴 순 없을 걸세.”

    “뭐야, 지금 유치하게 이런 걸로 심술부리니?”

    루크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냐.”

    아마 현대 어디에서도 자신 이상의 마법능력을 갖춘 존재는 없을 테니까.

    —–

    잠시 후, 루크가 이 세계에서 웬만한 도시의 기반시설을 1년정도 원활히 유지할 수 있는 마력과, 대륙의 최정상급의 마법적 지식, 최고의 성능을 지닌 연산장치와, 먼 옛날 이미 소실된 신성력을 포함한 각종 희귀소재 등을 운용할 수 있는 유일한 개인이라는 것을 확인한 루시는 이제 반쯤 포기한 상태로 침대에 누워서 루크의 휴대전화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아하하하, 이런 거 가지고 노는 것도 나름 재밌네.”

    -와삭, 와삭.

    루크는 태연하게 꼬리와 날개를 파닥거리며 다른 손으로는 과자를 집어먹는 그녀의 적응력에 혀를 내둘렀다.

    ‘벌써부터 저런 자세가 나오는 건가?’

    그 모습에서 ‘휴대전화’를 처음 만지는 자신의 모습이 겹쳐보이는 것은 어째서일까?

    어쩌면, 그녀가 평행우주의 자신이기 때문일지도.

    그러자 시선이 느껴졌는지, 루시는 약간 쏘아붙이듯이 말했다.

    “뭘 봐? 너는 얼른 방법을 찾아야지. 안 그러면 큰일이 나는 거잖아?”

    “……그래, 그래야지.”

    그녀의 말대로, 얼른 돌려보내지 않으면 큰 일이 발생할 수 있다.

    평행우주란 본래라면 만나서는 안되는 접점.

    영원히 닿아서는 안되는, 무한히 뻗어나가는 두 직선이다.

    하지만, 루시가 이 우주에 침입함으로 그 규칙이 어긋나버렸다.

    평행이란 그런 아주 약간의 틀어짐조차 허용하지 않는 개념.

    루시를 다시 되돌려놓지 않는다면, 아마 두 우주는 충돌하여 붕괴하고 말겠지.

    “나야 남의 우주가 멸망하든 말든 별 상관 없지만, 너는 아니잖아?”

    그 말대로다.

    루시에게 이 세계는 그저 ‘외지’에 불과한 곳이지만, 자신에게는 망가져서는 안되는 고향이었으니까.

    게다가 오늘이 지나면 바로잡을 기회가 앞으로 다시는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런 특수한 날은 절대 흔하게 발생하지 않으니까.

    그나마 다행인건, 어떻게든 당시의 상황을 재구성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점이다.

    이대로라면 오늘 안에 마법진을 복구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 분명하다.

    “루시, 묻고 싶은 게 있네만.”

    “뭔데.”

    “그쪽 세계도 평행우주에 관한 개념이 있는 건가?”

    “대충 그런 이론은 있지. 그런데?”

    “혹시 도움이 될 만한 정보가 있나 해서 말이네.”

    그러자 루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내 이론은 도움이 안될걸. 이 세계랑은 규칙이 달라서. 나에게 여기는 완전 새로운 세계란 말이지. 아무것도 모르겠어.”

    “…그런가.”

    루크는 그것아 무슨 느낌인지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자신도 이 시대에 처음 눈을 떴을 때는 그런 느낌에 사로잡혀 있었으니까.

    잠시 후, 루크는 다시 질문했다.

    “그럼, 그대의 우주는 대충 어떤 느낌인지 설명해 줄 수 있나? 좌표를 잡을 때 참고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필요에 의한 질문이라며 포장하기는 했지만, 사실 반쯤은 그냥 호기심이었다.

    평행우주를 넘어온 존재가 어디 흔한가?

    새로운 발견은 종종 완전히 새로운 시각에서 시작되는 만큼, 다른 세계에서 온 존재의 의견은 어

    쩌면 새로운 발견에 큰 도움이 될 수도 있으리라.

    루시 또한 그것을 알아차린 눈치였지만, 별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입을 열었다.

    “음, 그러지 뭐. 어떤 게 궁금한데?”

    그녀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루크는 곧바로 가장 궁금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그 세계도 마법이 있나?”

    “물론. 이쪽같은 형태는 아니지만, 존재는 해.”

    “그래? 어떻게 다른거지?”

    “음… 글쎄.”

    루시는 잠시 설명할 방법을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여기처럼 세계의 규칙을 권한을 통해 사용한다기보단, ‘어그러짐’을 응용한다고 봐야할까? 규칙을 망가트려서 현상을 일으킨다는 느낌이지.”

    “생소한 개념이군. 불안정할 것 같은데.”

    “글쎄, 나에게는 이게 더 익숙한데. 내게는 너희들이 사용하는 방식이 더 불안정해보여.” 

    루시의 말에 루크는 그 방식에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여기서도 사용할 수 있는 방식일까? 보여줄 수 있나?”

    “내 방식을 사용하기에 이 세계는 너무 견고해. 섬세하기도 하고. 내가 잘못건드리면 완전히 망가져버릴 것 같은데, 보고싶어?”

    “아니, 사양하지.”

    루크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또다른 자신이라면, 세계를 망가트릴 수 있다는 게 허세는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의 자신도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었으니까.

    궁금하기는 하지만, 잠깐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려고 세계를 망가트리는 짓은 역시 할 수 없었다.

    “그나저나, 돌아갈 때 이거 하나는 가져가고 싶네. 괜찮을까?”

    “하아, 맘대로 하게. 휴대전화 정도야…….”

    루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휴대전화 자체는 요새 잘 사용하지도 않으니.

    “고마워!”

    그 순간이었다.

    -쿵쿵쿵.

    “저기, 손님인가본데?”

    “음. 그럼, 실례하지.”

    루크는 루시에게 잠시 양해를 구한 뒤, 몸을 일으켜 문을 향해 다가갔다.

    발소리와 노크소리만으로 이미 누군지 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찰칵.

    “언니, 언니! 나랑 놀아!”

    “놀아!”

    노크를 한 이들은 역시 디아나와 파이리스였다.

    어쩐지 오늘은 조용하다 싶더라니…….

    “지금은 바빠서 안돼. 나중에 놀자꾸나.”

    “힝……, 맨날 바쁘대……”

    “맨날 바쁘대…….”

    디아나가 실망한 소리를 내자, 파이리스가 메아리처럼 따라했다.

    요즘 아이들을 놀아준 일이 별로 없다보니 그 모습에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오늘은 정말 어쩔 수 없는 날이었다.

    “그래도 어쩔 수가…….”

    그 때, 루시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응, 그럼 내가 대신 놀아줄게.”

    그에 아이들은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루시를 바라보았다.

    “와!”

    “정말로?”

    하지만 루크도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그대가?”

    루시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나 애들하고 잘 놀아줘.”

    루크로서는 상당히 의외인 발언이었다.

    “루시, 그대가 아이들을 좋아하는 줄은 몰랐군.”

    루시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글쎄, 아이를 싫어하는 존재도 있어?”

    —–

    “자, 그럼 이제 뭐하고 놀거니?”

    그렇게 루시는 아이들의 사이에 앉았다.

    “루시언니, 우리 소꿉놀이하자!”

    “소꿉놀이? 그게 뭘까?”

    “언니, 소꿉놀이 해본 적 없어?”

    디아나의 물음에 루시는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역시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글쎄, 해본 적 없어.”

    “음, 그러면 알려줄게!”

    디아나는 소꿉놀이를 전혀 모른다는 루시를 위해 차근차근 소꿉놀이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간단해! 내가 엄마를 하면, 언니가 아빠처럼 하는거야. 이해했어?”

    디아나의 설명은 소꿉놀이를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하는 설명이라고 하기에는 한참 부족한 설명이었지만, 다행히 루시는 이해를 한 것처럼 보였다.

    “아, 그거 혹시 역할놀이 같은 건가?”

    “맞아!”

    “응, 이해했어. 네가 엄마역할을 하면, 내가 아빠 역할을 하라는 거지?”

    “응!”

    자신의 완벽한 설명에 금방 이해했다고 생각한 디아나가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파이리스가 다가와 물었다.

    “디아나, 그럼 나는 뭐해?”

    “파이, 너는 아기야.”

    “응애.”

    순식간에 역할에 몰입한 정령의 모습에, 루시또한 질 수 없다는 듯이 웃었다.

    “좋아, 그럼 나도-.”

    -스륵, 스윽….

    루시의 행동에 디아나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언니, 옷은 왜 벗어?”

    “응? 아, 혹시 이쪽은 보통 옷을 입고 하는 편이니? 근데 나는 벗고 하는 게 좋은데.”

    더욱 이해할 수 없는 대답에 디아나는 자신과 그녀 사이에 뭔가 어긋남이 있다는 것을 느꼈지만, 그 정체를 눈치채지는 못하고 있었다.

    “무슨 말이야? 언니가 하던 동네에서는 소꿉놀이를 벗고 했다는 거야?”

    디아나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자, 파이리스가 눈치챘다는 듯이 손가락을 들어올리며 외쳤다.

    “아! 나, 뭔지 알 것 같아! 저건……”

    그 순간이었다.

    “멈춰어엇-!!”

    갑자기 튀어나온 루크의 모습에 루시는 전혀 모르겠다는 듯 순진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머, 너는 바쁘다고 하지 않았니? 놀아주러 와도 괜찮은 거야?”

    “루시, 애들한테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건가!! 소꿉놀이를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번 에피소드는 하편에서 끝납니다만, 할로윈이 지나고 나서 완성될지도 몰라서 일단 올려봅니다.
    다음화 보기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