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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88

        

         

       “요정과 관련된 주술은 기이하게도 정신에 영향을 주는 것들이 많은 편이라네. 그리고 정신이라는 것은, 주술사들이 가장 자신있어하는 요소이기도 하고.”

         

       요정과 관련된 주술은, 대가로 정신에 영향을 주는 경향이 짙었다.

       대부분이라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다른 주술에 비해서는 확연하게 정신 쪽으로 쏠려 있었다.

         

       그리고 주술사가 자신 있어 하는 것은 바로 정신력.

       일반적인 사람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고 확고한 자아(自我).

         

       정말로 거대한 수준이 아니라면 견뎌낼 수 있고, 이겨낼 수 있다.

       설령 대가를 이기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고, 다시 쌓아 올릴 수 있다.

         

       정신의 힘이란 위대한 것이니까.

       그것이 바로 주술의 길을 걷는 이들의 정신이었으니까.

         

       하지만.

         

       자아가 확고하지 않다면?

       외부의 요인을, 외부의 시선을 의식한 채 그것을 덕지덕지 몸으로 두른 뒤 이것이야말로 자신의 진면모라면서 매달리는 이라면?

       자신에 대한 가치를 매기는 것을 외부에 맡기고, 거기에 휩쓸려 다니는 사람이라면?

         

       그렇다면 그 사람은….

       이겨낼 수 있을까?

         

       “그나마 주의사항을 지켰다면 나았을 것을. 주의사항을 지키지 않아 눈을 가리고 낮은 숫자와 높은 숫자를 뽑는 도박을 하였으니, 내 그 정신이 멀쩡하지 않음을 안다. 마치 요정에게 홀려 정신을 놓아버린 이처럼 그 정신은 휘청휘청 흔들리고, 그 안에 요정의 존재감이 들어차고. 마침내 인격이 나뉘기라도 한 듯 정신 한쪽에 요정을 흉내 내는 정신이 자리를 잡게 되었음이니.”

         

       “…쳐.”

         

       “그것이 바로 남용의 대가이니라.”

         

       “닥쳐-!”

         

       이제순은 시뻘건 눈으로 진성을 노려보며 외쳤다.

         

       “닥쳐, 닥쳐! 어르신이라고 존댓말 하면서 존중해줬더니 개소리, 개소리. 개-소-리! 개 같은 소리나 하고 자빠졌어! 어디서 벌레라도 처먹고 와서 헛소리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이 빌어먹을 늙은이야! 내가 정신병자라도 된다는 이야기야?!”

         

       “흐.”

         

       “정신병자, 정신병자라니! 이 내가. 이 이제순이가 정신병자라고? 나는 엘리트야! 너 같은 이상한 옷이나 입고 다니는 사회의 낙오자, 사회의 변방에서 살아가는 놈이 아니라고! 광대라도 되는 것처럼 이상한 옷이나 입고 다니고, 수십 년 동안 길바닥에서 먹고 잤던 노숙자보다도 더러운 목소리로 지껄이고, 무슨 판타지 영화라도 찍는 것처럼 겉멋만 잔뜩 든 옷을 입고 다니는 빌어먹을 새끼랑은 다른- 이 사회를 구성하는 일원이라고!”

         

       “크흐, 그러한가?”

         

       정신병자.

       이제순은 그 단어가 역린이라도 되는 것처럼 격렬하게 반응했다.

       금방이라도 입에 게거품을 물 것처럼, 발작하듯 소리를 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기세는 정말로 미친 사람처럼 보이는 것이었지만….

       진성도, 이제순도 개의치 않았다.

         

       “잘 들어. 나는 정신병자가 아니야. 현대인들이 많이 가지고 있는 우울증조차 없는, 완전무결한 사람이라고. 신발의 힘 덕분에 수많은 정보를 얻었고, 그 정보를 토대로 위로 올라갈 일만 남았어. 많은 기자의 존경과 기대와 질투를 한 몸에 받는 몸이고, 앞으로 전 세계에 이 이름 석 자를 각인시킬 사람이야. 알겠어? 알겠냐고-!”

         

       “흐, 그런가?”

         

       “하. 한국, 아니 전 세계 기자들의 우상이 될 내가! 저널리스트의 표본이자 역사로 남게 될 이 몸이 정신병자라고? 미친 소리, 개 같은 소리 하지 마. 하, 역사적인 기자 이제순은 사실은 정신병을 앓고 있었다? 난 그딴 건 절대로 원하지 않아. 그건 오점이야. 그딴 건, 빌어먹을 오점이라고!”

         

       이제순은 얼굴을 흉하게 일그러뜨리며 진성을 노려보았다.

         

       “감히 나에게 그딴 개소리를 해! 그딴 오명을 나에게 묻히려고, 이 이제순이가! 이 이제순이의 명예에, 업적에 감히 오명을 묻히려고 해! 그런 건 용납할 수 없어, 용납할 수 없지. 듣는 것만으로 귀가 더러워지는 기분이야.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감히 이 이제순이에게, 순대에게! 감히 이 몸에게 그딴 개소리를 지껄여-! 나는 그런 소리가 싫어. 그딴 개소리가 끔찍하게 싫다고, 이 늙은이야—!”

         

       그는 금방이라도 진성에게 채찍처럼 늘어진 팔을 휘두를 것만 같았다.

         

       “그런 소리가 싫-다…. 그래, 그렇겠지. 그것은 틀림없는 진심일 것이야. 진심이 아니면 그런 목소리로 소리치기는 힘들 것이니, 그래. 진심이겠지. 그런데 말이네, 이보게 자네. 혹시 과거가 기억이 나는가? 그래, 내가 먼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네. 그냥 간단하게 나를 만나기 전- 거창하게 뭐 어린 시절까지 갈 필요는 없네. 고등학교, 대학교, 막 기자가 되었을 무렵…. 그 시절을 떠올려보게.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보게나.”

         

       그때도 ‘정신병’이라는 단어에 이리도 민감했었나?

         

       나지막한 진성의 질문.

         

       그 질문에, 이제순의 몸이 덜커덕 멈췄다.

         

       “자네 말대로 현대인에게 정신병이라는 참으로 익숙한 것이 되었지…. 우울증은 주위에서 정말로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고, 공황 장애 같은 불안 장애 역시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것이 되었어.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 같은 반사회성 성격장애는 익숙해지다 못해 아예 수많은 창작물의 재료로까지 이용되고 있지. 그뿐인가? 뇌에 관한 연구가 활발해지고, 정신병에 관한 연구 역시 활발해지고 있지 않은가.”

         

       “….”

         

       “그래, 미신보다는 과학이 주가 된 세상에서 정신병이라는 것은 크나큰 걸림돌이라고 할 수 없네. 자아, 잘 생각해보게. 어느 의사가 다중 인격장애라고도 불리는 해리성 정체감 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를 두고 악마가 들렸다고 하겠는가? 어느 의사가 섭식장애를 보고 신에게 벌을 받았다고 말하겠는가?”

         

       “….”

         

       “그 누구도 정신병을 두고 악마에게 홀렸다고, 신에게 벌을 받았다고 말하지 아니하네. 악마에게 홀렸다고 고문에 가까운 짓을 행하지도 아니하고, 신에게 미움받았다고 마을 밖으로 죽이거나 처형하지도 않지. 그저 정신이 힘들었다, 뇌에 문제가 생겼다, 약을 먹어야 한다-이 정도로만 여기는 것이 현실이야. 이는 정신병의 원인이 초자연적인 두려운 존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 덕분이기도 하며, 몇몇 정신병이 이미 일상에 녹아들 정도로 익숙해진 까닭이기도 하네.”

         

       “….”

         

       “그러니 다시 묻겠네. 자네는 언제부터 정신병이라는 단어에 이리도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었는가? 정신병이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듣지 않더라도, 그 뉘앙스만 듣더라도 이렇게 발작할 만큼 자네는 그것을 진심으로 혐오하였는가? 과거 자네의 행동이, 자네의 모습이 바로 그러하였는가? 자네의 기억 속의 자네 모습이 그러하였는가? 진심으로 그러하였는가?”

         

       “….”

         

       이제순은 멍한 표정으로 기억을 되짚어보았다.

         

       고등학교 때, 정신병이라는 단어에 어떻게 반응했었지?

       대학교 때에는?

       기자가 되기 위해서 피똥 싸면서 공부할 때는?

       기자가 막 되었을 때는?

         

       그때, 어떻게 반응했었지?

         

       “그때…. 나는….”

         

       그냥 그러려니 넘기지 않았던가?

       그냥 운 없으면 걸리는 병이라고.

       근처에 있으면 불안하긴 하지만 그리 특이한 일은 아니라고 여기지 않았던가?

       아니,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긴 적도 있다.

       불면증 같은 수면장애는 성공한 사람의 세금 같은 것이라면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것을 오히려 자랑하기도 했었다….

         

       “…어째서?”

         

       그런데 지금은 왜?

       왜 갑자기 정신병이라는 단어만 들으면 이렇게 화를 내게 되었지?

       도저히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왜…?

         

       “흐, 어째서. 어째서인가….”

         

       진성은 미소를 지으며 이제순의 물음에 답해주었다.

         

       “죽고 싶지 않은 것이 생물의 본질이라면, 정신 역시 그러함이 옳지 않겠는가.”

         

       생물은 죽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굶어 죽지 않기 위해 먹이를 찾아 헤매고,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다면 생물을 이루는 일부인 정신 역시 죽지 않기 위해 노력함이 당연하다.

         

       “…씨발.”

         

       이제순은 진성이 한 말의 뜻을 깨닫고 나지막하게 욕설을 내뱉었다.

         

       흐릿해졌던 초점이 서서히 또렷해졌고, 흐리멍덩했던 눈동자에는 또렷한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이제순의 두 눈알이 진성의 벌레를 연상케 하는 가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씨발…!”

         

       진성의 간단한 말.

       하지만 간단했던 말과는 다른, 번개처럼 짜릿하고 강렬한 충격.

       이제순은 머릿속에 낙뢰가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리고 얼굴을 손으로 감싸 파묻으려다가, 팔이 길게 늘어져 바닥에 늘어져 있는 것을 본 뒤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곤 그 상태로 고개를 천천히 떨구고, 진성의 시야에서 정수리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푹 숙인 채 적지 않은 시간 동안 그 자세를 유지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리기 시작하였고, 아까와 같이 진성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씨발.”

         

       앞서 했던 것과 같은 욕설.

       하지만…그것은 앞서와는 전혀 다른 감정이 담겨있는 것이었다.

         

       그는 얼굴을 와락 찌푸린 채 진성을 바라보았고, 허리를 쭉 편 뒤 어깨를 돌리기 시작했다.

       마치 격한 운동을 하기 전에 몸을 풀기라도 하는 듯.

         

       그리고는 목을 움츠렸다 펼치기를 반복하더니, 목을 앞으로 쭉 펼쳤다.

       정말 사람이 아니라 거북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리고는 허리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천천히.

       허리를 천천히 비튼다.

         

       그리고 그 비틀림은 점점 커진다.

         

       점점.

       점점.

         

       뿌드득.

         

       근육이 한껏 뒤틀린다.

       걸레를 쥐어짜는 것처럼 뒤틀린다.

         

       뿌드득.

         

       근육과 함께 뼈 역시 움직인다.

       가동 범위의 한계에 도전하기라도 하는 듯, 상체가 계속해서 움직였다.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몸을 풀기 위해서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과할 정도로.

       체조의 수준을 한참 넘어서, 이제는 기괴하다고 여겨질 정도로.

         

       상체가 뒤틀리고, 허리가 뒤틀린다.

         

       그리고 마침내….

         

       뿌드득.

         

       정말로 뼈가 분질러지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리고 그 소리와 함께 그의 얼굴에 소름 끼치는 미소가 감돌고.

         

       “포보르(Fomhoire) 같은 병신 늙은이야, 뒈져.”

         

       뿌드드득-!

       투-웅!

         

       뒤틀린 몸과 함께 바닥에 늘어져 있던 팔이 채찍처럼 진성에게로 쇄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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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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