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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88

       당장 사생결단을 벌일 기세로 자신을 압박해오는 모습에 백우진은 깨달았다.

         

       ‘무언가 일이 벌어졌다.’

         

       그것도 아주 커다란 일이.

         

       섣불리 결백을 주장하다간 천마와 맞서 싸우기 전에 화산파와 자신, 둘 중 하나가 세상에서 사라질 때까지 싸울지도 모르겠다는 불길한 확신이 섰다.

         

       하여 백우진은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

         

       “대저 무슨 일인지 모르겠으나, 일단 순순히 추포에 응하겠습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대열의 가장 앞에 서 있던 중년의 사내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물었다.

         

       “…무엇이냐.”

         

       백우진이 답했다.

         

       “죄를 인정해서 추포 당하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싸움을 원치 않아서 붙잡히는 것입니다. 하니, 나와 조원들을 인도적으로 대우해 주십시오.”

         

       그러자 몇몇 제자들에게서 잡음이 새어 나왔다.

         

       “참으로 뻔뻔하기 짝이 없는 작자입니다!”

       “저런 제안에 응할 것도 없습니다, 장로님! 저희에게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모두의 목숨을 걸어서라도 저자를 추포해 오겠습니다!”

       “맞습니다!”

         

       가장 앞서 있던 사내, 화산파의 삼 장로 ‘기중선’이 제자들을 향해 소리쳤다.

         

       “다들 정숙하라!”

         

       제자들은 젊은 혈기에 저리 말할 수 있으나, 그만큼은 그래선 안 됐다.

         

       어지간한 상대라면 자신 또한 일언반구의 말도 듣지 않았을 터다.

         

       허나, 눈앞의 상대는 어지간한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은 사내.

         

       ‘백우진….’

         

       혈교와의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며 ‘천광검신’이라는 별호와 함께 일황(一皇), 삼존(三尊)과 어깨를 거의 나란히 할 만큼 명성을 쌓아 올린 중원 무림의 현재이자, 미래.

         

       그런 상대와 제자들이 칼을 맞대는 순간 화산은 제자들의 피로 붉게 물들어버릴 터.

         

       문파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나, 실리 또한 그만큼 중요했다.

         

       그것이 제자들의 목숨과 직결되어 있다면 더더욱.

         

       심지어 무슨 꿍꿍이인지는 몰라도 상대 쪽에서 먼저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지 않았나.

         

       그의 제안에 응한다고 한들, 문파의 자존심이 크게 상할 일은 없으리라.

         

       머릿속으로 생각을 마친 그가 대답했다.

         

       “…좋다! 본 장로의 말에 순순히 따른다면 인도적인 대우를 약조하겠다.”

       “좋습니다.”

         

       백우진이 조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일단 무슨 일인진 모르겠지만, 얌전히 따르자.”

         

       불만 어린 표정을 짓는 조원들.

         

       허나 이를 격렬하게 표출하지는 않았다.

         

       그들이 상대해야 할 적은 천마.

         

       그녀와 싸우기에 앞서 화산파와 적대하는 행위는 더없이 어리석은 짓이기에.

         

       “저들을 포박하라!”

         

       그의 뒤에 도열해 있던 제자 중 제법 연배가 있어 보이는 이들이 나서서 백우진과 조원들을 옭아매고, 단전 근처의 혈도를 눌러 단전의 움직임을 일시적으로 봉쇄했다.

         

       순식간에 힘이 빠지는 조원들.

         

       그러나 백우진과 혈수마녀만은 혈도를 짚였음에도 그 기색이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고작해야 일류에서 절정 사이의 무인이 사용한 점혈로는 그들의 혈도를 온전히 누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

         

       그들을 모두 옭아맨 뒤, 기중선이 돌아섰다.

         

       “복귀한다!”

         

       예상과 다른 느낌이지만, 어쨌든 화산파로 입성하는 순간이었다.

         

         

       * * *

         

         

       제아무리 인도적인 대우를 약속받았다고 한들, 일방적으로 죄인 취급받는 그들의 거처는 정해져 있었다.

         

       화산파 외곽에 자리한 지하 뇌옥.

         

       그곳에서 백우진은 마침내 그들이 길길이 날뛰는 이유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상황은 이러했다.

         

       지난밤 화산파의 장문인을 향한 암살 시도가 있었다고 한다.

         

       다행히 잠결에 암습을 눈치챈 장문인이 반격하여 목숨을 잃지는 않았다고.

         

       문제는 검을 맞대고 겨루는 과정에서 가슴을 사선으로 길게 가로지르는 중상을 입고, 그대로 혼절하여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장문인이 쓰러지기 직전 흉수를 지목하였는데.

         

       “…그게 저라는 겁니까?”

       “아닌 척하지 마라, 이놈! 장문인께서 직접 네놈을 흉수로 지목하셨거늘, 어찌 발뺌하려 한단 말이냐!”

       “뻔뻔하기도 정도가 있지, 사람의 탈을 쓰고 어찌 저리 뻔뻔할 수 있는지…!”

         

       백우진을 추궁하기 위해 모여든 화산파의 장로들이 그를 향해 비난을 쏟아냈다.

         

       그들로서는 그럴 만도 했다.

         

       장문인이 쓰러지기 직전 직접 지목한 흉수가 남 얘기인 듯 시큰둥한 태도로 되물으니, 저리 분개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백우진도 어이없고, 답답하기는 매한가지였다.

         

       ‘대체 어떤 새끼가 또….’

         

       흉수와 직접 칼을 맞댄 장문인이 자신을 범인으로 지목했다면 그건 자신이 맞는 거다.

         

       단, 겉모습만.

         

       역용술과 축골공에 능한 자라면 얼마든지 자신을 흉내 내는 것이 가능하다.

         

       다만, 한 가지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면 그의 실력이었다.

         

       ‘화산파의 장문인에게 중상을 입힐 정도라면 그 경지가 낮지 않다는 건데….’

         

       정파 무림의 기둥인 구파일방.

         

       그중 하나인 화산파의 당대 장문인의 이름은 ‘주운’.

         

       이름보다 매화검선(梅花劍仙)이라는 별호로 잘 알려진 그의 무공 수위는 화경의 끝자락.

         

       현경에 도달하는 마지막 얇은 벽 하나를 앞에 둔 사내에게 중상을 입히려면 최소 그와 준하는 실력이거나, 현경의 고수라는 뜻.

         

       제아무리 무림에 은거기인이 많다고는 하나, 현경의 고수는 그리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하니 그들이 일말의 여지없이 자신을 흉수로 지목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

         

       그가 묵묵히 생각에 잠겨 있자, 화산파의 장로 중 하나가 일갈했다.

         

       “입이 있으면 무어라 말을 해보거라, 이놈!”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호통에 퍼뜩 정신을 차린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제가 한 짓이 아닙니다.”

       “뭐, 뭐라…!”

       “이놈이 감히 망발을!”

       “모진 고초라도 겪어야 진실을 입에 담을 놈이로구나!”

         

       고작 한마디 내뱉었을 뿐인데 쏟아지는 건 세 마디, 네 마디.

         

       가까스로 화를 삭인 그가 쏟아지는 폭격 속에서 말을 이었다.

         

       “저와 조원들은 어제 해 질 무렵에 화음현에 도착했습니다. 그 뒤엔 곧장 객잔의 별채를 빌려 여독을 풀기 위해 일찍 잠들었고요.”

         

       이를 증명해줄 사람은 많다.

         

       당장 화음현에 자리한 개방의 거지들이나, 하오문도에게만 물어도 그들의 행적이 낱낱이 밝혀질 테니.

         

       그러나 이것만으론 부족했다.

         

       “그것이 자네의 결백을 증명할 증거가 될 수는 없네. 장문인께서 변고를 당한 시간은 자시 무렵. 자네의 경지라면 능히 본파에 잠입하여 장문인을 암습하기 충분한 시간 아닌가.”

         

       논리적으로 그의 말을 반박한 이는 화산파의 일 장로인 ‘탁우일’.

         

       화산파 안에서 장문인 다음가는 이인자로서 장문인이 중태에 빠진 지금의 화산파를 이끄는 인물.

         

       희고 풍성한 수염이 군자의 풍모를 연상케 한다고 하여 무림에서는 ‘백염매군(白髥梅君)’이라는 별호로 알려져 있다.

         

       그의 말은 실로 그럴듯했다.

         

       그 때문에 조금 전 백우진의 말이 아무런 의미 없는 발악으로 둔갑하고 말았다.

         

       그렇기에 조금 더 확실한 증거를 내놓아야만 했다.

         

       자신이 장문인을 암습한 흉수가 아니라는 보다 명백한 증거.

         

       이에 그는 조금 더 과감한 수를 택했다.

         

       “제가 정녕 장문인을 암습한 흉수였다면…, 장문인께서 살아계실 수 없었을 겁니다.”

       “뭐, 뭐라!”

         

       과격하기 짝이 없는 발언에 화산파의 장로들이 분개했다.

         

       “이놈이 정녕 치도곤을 당해 봐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그런 식으로 본파를 우롱하면서 인도적인 대우를 바라는 것이냐!”

         

       그들로서는 충분히 자존심 상할 수 있는 발언이었다.

         

       허나, 백우진은 조금도 그럴 의도가 없었다.

         

       그저 사실만을 전달했을 뿐.

         

       “우롱도 아니고, 허세도 아닙니다. 그저 실력에 대한 자신감이자, 자부심일 뿐.”

       “그, 그래도 이놈이…!”

         

       백우진은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드는 한 장로의 말을 싹둑 잘라내며 말을 이었다.

         

       “제가 누군가를 죽이고자 마음먹고 검을 뽑아 든다면 이에 살아남을 사람은 세상에 몇 없습니다.”

         

       실로 광오한 말투.

         

       그러나 그들은 조금 전과 달리 쉬이 입을 열거나, 행동하지 못했다.

         

       저리 말하는 백우진의 몸에서 일순 어마어마한 기세가 쏟아져 나왔기 때문.

         

       참으로 요상한 일이었다.

         

       오라에 칭칭 얽매여 추궁당하는 상대가 도리어 자신들을 추궁하는 듯한 느낌을 주니, 어찌 이상하지 않으랴.

         

       백우진은 자신을 포박한 삼 장로 기중선을 향해 읊조렸다.

         

       “분명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불필요한 싸움을 원치 않아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요.”

         

       쉬이 입을 열지 못하는 그들을 향해 백우진이 말을 이었다.

         

       “저는 화산파 장문인을 암습하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제가 뭐 때문에 그런 짓을 한단 말입니까. 저는 여러분과 같은 정파의 무인입니다. 하물며 장문인께서 작고하신다고 한들, 제게 돌아오는 이득이 있으리라 보십니까?”

         

       그의 호소에 장로들의 기세가 조금씩 누그러들기 시작했다.

         

       일단 과감한 발언으로 정신이 번쩍 들도록 뺨을 후려갈긴 뒤, 당근을 주어 달래는 것.

         

       백우진이 자주 사용하는 방식 중 하나였다.

         

       묵묵히 이야기를 들은 일 장로 탁우일이 입을 열었다.

         

       “자네의 말에도 일리가 있음을 인정하네. 허나, 그 말만으로 자네의 혐의점을 모두 벗을 수는 없네.”

         

       백우진 또한 거기까지 바란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들과 평등한 선에서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랐을 뿐.

         

       “이해합니다. 그러니 제게 며칠의 말미를 주십시오.”

         

       그의 말뜻을 이해한 탁우일의 미간이 좁혀졌다.

         

       “으음…, 자네가 직접 흉수를 잡겠다는 말로 들리네만.”

       “그렇습니다.”

         

       백우진의 대답에 제 수염을 쓸어내리며 고심하는 그.

         

       “자네가 직접 흉수를 잡는다면 그보다 확실한 증거는 없을 테지. 허나…, 여전히 흉수로 가장 유력한 자네가 본파를 들쑤시고 다닌다면 그 또한 우리에겐 위협이 되지 않겠나.”

         

       그가 슬쩍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을 잇는다.

         

       “자네가 말했듯, 자네가 칼을 뽑으면 본파의 누구도 자네를 막을 수 없으니 말일세.”

         

       쓰게 웃는 백우진.

         

       그들을 어르기에 앞서 던진 말로 도리어 자신을 압박하다니.

         

       제법인 영감이었다.

         

       “하면 어쩌면 좋겠습니까.”

         

       그가 묻자, 잠시 고심하는 듯하던 탁우일이 무언가 떠오른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듣자 하니, 조원들을 목숨보다 끔찍이 여긴다고 들었네.”

         

       눈살을 살짝 찌푸리는 백우진.

         

       그의 말에서 무언가 좋지 않은 낌새를 느낀 탓이었다.

         

       그리고 그 불안은 이어지는 그의 말에 확신으로 변모했다.

         

       “자네의 조원 중 한 사람을 볼모로 잡아두는 것을 허락해주게. 하면 자네가 직접 흉수를 찾아 나서는 걸 허락하지.”

       “…….”

         

       그 말을 들은 순간, 백우진의 기세가 순간 거칠어졌다.

         

       실제로 그의 머릿속은 생각하고 있었다.

         

       ‘그냥 확 전부 뒤집어 엎어버려?’

         

       천마를 상대하고 나발이고 그냥 성질대로 뒤집어 엎어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진심으로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

         

       뇌옥 안에 갇혀 있던 조원 중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서며 말을 꺼냈다.

         

       “…제가 볼모로 잡혀 있을게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내일은 추석 차례 전날 친척들이 올라오시는 관계로 휴재 가능성이 있습니다.

    만약 휴재하게 되면 따로 공지를 통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저는 다음 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_ _)

    다음화 보기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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