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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89

    <489 – 교수님이 너무해>

     

    브론즈 교수님의 키는 작아졌지만 그 영역마저 무가치해지지는 않았다.

     

    “잘 보렴. 세계를 구성하는 기본원소, 마나란 이런 식으로도 다룰 수 있단다.”

     

    마나가 정해진 퍼즐을 맞추면 술식이 완성되고, 특정마법이 발동한다.

    몇 개의 술식을 추가해서 주문의 위력과 효과를 바꾸거나 강화할 수도 있지만 브론즈 교수님이 지금 벌이는 짓은 그런 차원을 넘어섰다.

     

    ‘한 스킬의 극의. 발동만으로도 특화영역이나 다름없는 세계에 의지가 각인될 정도의 기술!’

     

    한 기능의 초강화, 극의발현.

    일례로 즈앙의 극에 달한 은신의 극의는 <상급은신>으로 펼쳐진다.

    반면, 플레이어인 내가 은신의 극의에 도달하면 언젠가 <절대은신>마저도 펼칠 수 있다.

    그렇다.

    같은 극의의 영역에서도 모두의 위력이 같지는 않다.

    누군가는 복수의 기능을 섞어 엄청난 상승효과를 일으키기도 하고, 누군가는 기능의 한 특성만을 극한으로 향상시켜 신의 권능수준의 효과를 발현한다.

     

    <의적의 그림자>

     

    브론즈 교수님의 의적의 그림자는 전자에 가깝다.

    복수의 기능이 섞인 독특한 극의.

    플레이어인 나조차도 밑천을 다 털지 못할 정도로 수많은 극의가 뒤섞였다.

    세상에서 오직 브론즈 교수님만이 구사할 수 있는 그녀의 복합연계기능.

    통칭 고유기능.

    복잡하게 파고들면 그림자이동, 물질전송, 영체화 등의 온갖 기능이 덕지덕지 발라져있지만 핵심만 따지면 이렇게 볼 수 있다.

     

    자신이 손으로 만진 그림자에 그 사람의 인격과 의지를 실어 조종하는 재주!

     

    때문에 어떤 그림자는 원본보다 강한 힘을 발휘하기도 하고, 어떤 그림자는 원본과는 다른 엉뚱한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 사람의 인격과 의지에 잠재된 가능성이 개화되거나 작고 미세한, 외면해온 인격의 파편을 비대화해 구현시킨 결과물이다.

    특정한 인격을 노리고 일으켜세우지 않는다면 일어나는 인격은 랜덤.

     

    [후후후]

    [디스트로이어, 당신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어린아이나 다름없네.]

     

    브론즈 교수님이 결코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게 일깨워진 인격이 하필이면 하비노디였다.

     

    [언제나 자신의 길만을 걸어가고 다른 곳에는 한눈을 팔지 않는 남자. 그 어리석고도 우둔한 고집을 성인이 되어도 우직하게 지켜온 어른아이.]

     

    나와는 다른 암막커튼에 숨어있던 매스각키 황녀가 눈을 빛내며 주시하는 시선이 볼에 뜨겁게 닿았다.

     

    “잔인한 기술이군. 욕망을 바라보는 자, 욕망 또한 자신을 바라보리니. 그렇게 주장하고 싶은가.”

     

    디스트로이어 교수님의 시선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거 좀 위험하지 않아…?

    강의시간에도 분위기로만 느껴지던 교수님의 빡친 모습이 이 순간만큼은 <안전범위>를 아득히 넘어선 심도까지 감정이 깊게 내려앉았음이 느껴졌다.

     

    [욕망의 불씨는 포기해줘.]

    [라고 해도 당신이라면 분명 듣지 않겠지? 불씨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아. 이야기를 하자.]

     

    하비노디의 그림자는 하비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장난스럽게 디스트로이어의 발치에 등을 기대앉았다.

    열린 등불 밖으로 엉금엉금 기어 나오려던 불꽃덩어리가 하비노디의 손가락에 맞았다.

    따악!

    숨 쉬듯이 자연스럽게 손끝에서 터져 나온 암흑마나에 적중당한 불꽃덩어리가 등불 안을 뱅글뱅글 회전하며 몸을 가눌 줄 모르고 눈이 핑핑 돌았다.

     

    [있지. 우리 사이에 아무런 일도 없었다면, 그래서 다시 평화롭게 재회했다면 뭘 했을 거야?]

    “무의미한 가정이다.”

    [0점. 스스로를 위한 작은 공상조차도 허락하지 않는 건 너무해. 그렇게 꽉 막힌 머리로 도적처럼 잔재주가 필요한 클래스는 어떻게 했나 몰라.]

    “진짜 하비는 죽었다.”

    [그래서 네 마음을 돌아볼 기회조차도 날려버릴 거야? 쭉 후회하고 있잖아. 날 그런 식으로 죽였던 순간을.]

     

    꼴깍.

    건너편에서 매스각키 황녀의 긴장된 목울대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아이 참, 다 들키겠네!

    쉬잇.

    어린이 브론즈 교수님의 말랑한 손가락이 매스각키 황녀를 구박하려던 내 입을 꾸욱 눌러 막았다.

     

    [난 말이지. 디트가 자유로워졌으면 좋겠어. 죽은 여자 생각에 평생 다른 여자는 하나도 만나지 못하고 늙어 죽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아.]

    “…혁명가냐? 하비의 흉내를 내는 불쾌한 분신을 보낸 끄나풀은.”

    [그러니까 다시 생각해봐. 정말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두 번 다시 하비의 이름을 빌린 망령이 너로부터 생겨나지 않도록.]

    “…….”

    [우리가 다시 재회한다면 디트는 뭘 했을 거야?]

     

    회장을 가득 채우는 바이올린의 연주 너머, 하비의 그림자를 마주한 디스트로이어 교수님의 입이 무어라 움직였다.

    그 대답은 소리를 통해 전해지지는 않았지만 독순술을 익힌 내 눈에는 조금이나마 보였다.

     

    【청혼】

     

    의심이 확신이 되었다.

    역시 교수님은 하비를 좋아했어.

    그 마음을 어린이에게 투영했고, 그래서 날 좋아하는 거였어!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잖아. 이 바보.]

     

    손가락으로 디스트로이어의 허리를 콕 찌르며 잔망스럽게 구는 그림자.

    하비노디는 교수님을 우려하는 내 마음을 담아서 그의 한을 풀어주려고 노력했다.

    한이 풀리면 교수님이 학생을 사랑하는 불순이성교제도 자연스럽게 해소되리라 여기며.

     

    ‘하비이지만 노디이기도 한 하비노디, 내 분신답게 기특한 노력이야!’

     

    하비노디의 머리에 디스트로이어 교수님이 천천히 손을 얹었다.

    매스각키 황녀뿐만 아니라 로지니마저도 입가에 두 손을 가져다댈 정도로 어머어머스러운 분위기의 두 사람의 모습!

    아자아자, 힘내라 하비노디.

    할 수 있다!

    교수님의 한풀이를 성공시키는 것이다!

    열심히 응원하던 도중, 갑자기 교수님의 손에 마력의 파동이 일어났다.

     

    “이것이 내가 지닌 욕망의 파편이라면, 이 또한 내가 보일 답이다.”

     

    디스트로이어의 손끝에서 그림자가 흘러내렸다.

     

    [정말 바보네]

    “알고 있다.”

    [프로포즈 선물로 죽음을 선물하는 왕바보는 당신뿐일 거야]

    “내 안의 욕망을 향한 선언이다.”

    [그게 나한테 하는 거랑 뭐가 다르담]

     

    후후. 희미한 웃음과 함께 하비노디의 그림자가 바닥에 스며들어 사라졌다.

    스스슥

    그리고는 발치의 그림자가 되돌아왔다.

    제멋대로 일어서지도 않고, 후후후 하고 웃지도 않고.

    제 주인의 몸짓을 따라 잔망스러운 몸짓은 하되 말은 할 줄 모르는 평범한 그림자로.

     

    “나는 욕망을 넘어섰다. 이 불쾌한 쇼의 끝을 보기에는 아직 부족한가?”

     

    교수님의 시선에 로지니가 힉 하고 딸꾹질을 했다.

    우승상금의 주인이 정해지는 순간이었다.

     

     

    * * *

     

     

    “그렇게 쫄지 마. 그림자가 죽는다고 본체도 죽고 그러는 일은 없어.”

     

    어린이 브론즈 교수님은 나름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지만 당사자인 내 입장은 조금 달랐다.

    하비노디가 살해당했다.

    교수님은 내 예상과 달리 한풀이 방식을 아주 화끈하게 골랐다.

    살해.

    쿨하게 그냥 하비의 잔재를 죽여서 해치웠다.

    그래서 더 무섭다.

    이거 내가 본체로 가도 같은 꼴을 당하지는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으앙. 다시는 하비노디 흉내는 안낼 거예요. 후후 소리는 아카디아 언니나 하라고 떠넘길 거야!”

     

    어린이 브론즈 교수님이 피식 웃었다.

     

    “의적새내기한테는 너무 어려운 도전이었네. 그래도 한 사람을 빼고는 다른 모두의 자신감은 훔쳐내는데 성공했으니 마냥 실패라고 하긴 어렵겠어.”

    “정말요?”

    “직접 봐. 저기 자신감을 잃은 추한 사람을.”

     

    어린이 브론즈 교수님이 가리키는 곳에는 마지막까지 디스트로이어 교수님과 함께 불꽃쇼에서 탈락하지 않았던 하얀두건을 두른 남자가 항의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항의는 오래 가지 않았다.

    우승자인 디스트로이어 교수가 몸소 행차하며 결과에 불복하는 남자의 눈앞에서 영역을 펼쳤다.

     

    “…!”

     

    기가 충돌하며 허공에 그 여파가 보일 정도의 강렬한 충돌.

    출력은 대단했지만 열세는 명백했다.

    하얀두건의 남자는 밀렸고, 살벌하게 눈을 치뜨며 무언가를 저지르려던 그를 고양이수인이 말렸다.

     

    “……!”

     

    하얀두건의 남자와 고양이수인 단골손님은 함께 회장을 벗어났다.

     

    “굉장하지? 준 금패급의 강자를 기세만으로 제압해낸 저 사람.”

    “그, 그렇죠!”

    “그가 무섭니?”

    “딱히요? 하, 하비노디가 되지만 않으면 살해당할 일은 없거든요? 들키지만 않으면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릴 일도 없고요!”

    “그걸 무섭다고 하는 거야.”

     

    어린이 브론즈 교수님이 큭큭 웃었다.

     

    “그래도 곤란하게 됐어. 모처럼 어린이까지 되었는데 저렇게 자신의 과거와 칼같이 선을 긋다니. 모처럼 본업 모먼트를 취했는데 아깝게 됐어.”

    “디스트로이어 교수님한테 뭘 하려고 하셨는데요?”

    “유혹?”

    “헉!”

    “지금은 지나간 일이란다. 네 그림자, 흥미로웠어. 그 남자를 저기까지 동요시킬 수 있는 것도 놀라웠고. 그래도 이젠 헤어져야 할 시간이야.”

    “가시게요?”

    “언젠가 기회가 되거든 다시 만나자꾸나.”

     

    석양을 향해 걸어가던 어린이 브론즈 교수님.

    아이의 모습과 달리, 어른의 그림자를 지닌 그녀가 뒷짐을 진채 돌아보았다.

     

    “참.”

    “?”

    “조심하렴. 그 남자는 그림자를 해석했지. 틀림없이 <하비>만이 아니라 <너>도 읽어냈을 거란다.”

    “히에에에엑?!”

    “의적에게는 정체를 의심하는 끈질긴 탐정이 따라붙기 마련이지. 축하해. 이걸로 너도 훌륭한 의적에 한걸음 다가섰구나.”

     

    하나도 고맙지 않은 소리를 하며 브론즈 교수가 사라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괜찮아 안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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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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