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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89

       화산파의 일 장로 탁일우의 제안이 들려오기가 무섭게 가장 먼저 앞으로 나선 이는 금여울이었다.

         

       혹여 일이 잘못되면 가장 먼저 화를 입을 수도 있는 볼모 역할을 자처하며 나섬에도, 그녀는 그 어떤 두려움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뇌옥의 창살 앞으로 나서며 짓고 있는 미소가 이를 증명하고 있었다.

         

       당찬 기세로 나선 그녀를 확인한 탁일우의 표정이 조금 떨떠름하게 변했다.

         

       “…황금상단의 여식이로군.”

         

       손을 쓸 수 없는 그녀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금여울이라고 합니다. 무림에 명성이 자자하신 백염매군 대협을 뵙게 되어 영광이어요.”

         

       정중한 태도와 말투.

         

       이에 탁일우가 물었다.

         

       “노부 또한 최근 소문이 자자한 금 소저를 만나게 되어 반갑네. 헌데…, 자네가 직접 볼모가 되겠다는 것인가?”

       “네. 제가 볼모가 될 테니 우리 백 가가께서 자유롭게 운신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으음…, 그런가.”

         

       턱 밑으로 길게 늘어뜨린 풍성한 수염을 매만지며 침음하는 탁일우.

         

       그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누군가를 지목도 하기 전에 나서서 볼모를 자처하는데 이를 어찌 막을 수 있단 말인가.

         

       “좋네. 백 공자가 허락한다면 금 소저를 볼모로 잡아두고 남은 이들은 풀어주겠네.”

       “…….”

         

       모두의 시선이 백우진에게로 향한다.

         

       이제 그의 선택만이 남았기 때문.

         

       그로서는 이 상황이 탐탁지 않았다.

         

       물론 자신은 흉수가 아니고, 제 손으로 반드시 붙잡을 요령이라곤 하나, 만에 하나 위험할 수도 있는 자리에 그녀를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았다.

         

       그로 인해 백우진이 고심에 잠겨 있을 무렵.

         

       “백 가가?”

         

       그녀의 나긋한 음성이 백우진의 상념을 일깨웠다.

         

       마침내 그와 시선을 마주하게 된 금여울이 말을 이었다.

         

       “제 걱정은 마시고 하고 싶은 일 전부 하세요.”

       “금 소저….”

       “아시잖아요? 제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황금상단.

         

       확고부동한 중원 제일의 상단으로 어지간한 돈은 전부 황금상단의 돈통을 한 번쯤 거쳐 지나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금력(金力) 하나만큼은 최고인 가문.

         

       그녀가 제 가문의 이름을 상기시키는 건 다분히 의도적인 행동이었다.

         

       만에 하나 섣불리 그녀에게 암수를 꾸미려거든, 각오하는 게 좋을 거라고 말이다.

         

       그들이 지닌 금력은 때때로 무력을 능가하는 힘을 보이기도 한다.

         

       화산파 또한 결국 의식주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집단.

         

       그들의 금력이 화음현 전체에 발휘되는 순간, 화산파의 제자들은 헐벗은 채로 풀뿌리나 캐고 다녀야 연명할 수 있게 될 것이기에.

         

       그뿐만이 아니었다.

         

       자신을 향해 한쪽 눈을 찡긋거리며 신호를 보내오는 그녀의 모습에 백우진은 깨달았다.

         

       혹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걱정할 만한 일은 절대 생기지 않을 것임을.

         

       마음이 편안해진 그가 탁일우를 똑바로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탁 장로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좋네.”

         

       찜찜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린 그가 뒤에 도열해 있던 제자들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그중 두 사람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와 백우진의 몸에 묶인 오라를 풀어주었다.

         

       팔과 다리의 자유를 되찾은 그는 곧장 뇌옥을 열고 들어가 조원들의 몸에 엮여 있는 오라를 전부 풀어주었다.

         

       그 뒤 홀로 남게 될 금여울의 앞에 섰다.

         

       “조금만 기다려. 금방 진범 잡아서 금 소저 앞에 끌고 올 테니까.”

         

       그러자 그녀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하길.

         

       “네 걱정이나 해. 가짜라곤 해도 화산파 장문인을 벨 정도의 실력자야. 까딱 방심했다간 당신도 베일지 몰라?”

         

       걱정 반, 장난 반 섞인 말투에 백우진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럴 일은 없을 테니 행여라도 내 걱정은 말아.”

       “아유, 든든해.”

         

       애정이 뚝뚝 묻어나는 시선.

         

       두 사람의 애틋한 시선 교환은 화산파의 제자 중 하나가 불쾌한 감정을 헛기침으로 드러내고 나서야 끝이 났다.

         

       금여울을 제외한 조원들과 자유를 되찾은 백우진.

         

       지하 뇌옥을 막 나선 그에게 탁일우가 짐짓 여유 있는 태도로 말했다.

         

       “자네가 범인이 아니라면 부디 진범을 찾아 본파의 원한을 풀어주게. 내 부탁함세.”

         

       느낌이 묘했다.

         

       마치 잡아볼 테면 잡아보라는 식의 도발처럼 느껴지는 말투.

         

       어쩌면 그가 화산파의 장문인을 암살하려 한 흉수는 아닐까?

         

       가능성 중 하나를 떠올리며 백우진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반드시 그리하지요.”

         

         

       * * *

         

         

       자유를 되찾은 백우진이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중태에 빠진 장문인이 죽은 듯 누워 있는 그의 침소였다.

         

       널따란 침소 한가운데에 누워 있는, 선풍도골의 중년 사내.

         

       겉보기엔 사십 대 중년으로 보이나, 실제 나이는 칠십을 훌쩍 넘은 그가 바로 화산파의 장문인이자, 매화검선이라는 별호로 유명한 주운이었다.

         

       훗날 정파 무림에 또 다른 현경의 고수가 탄생한다면 반드시 매화검선일 거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뛰어난 고수 중의 고수.

         

       백우진은 그의 옆에 앉아 팔을 뻗었다.

         

       “잠시 상처 좀 보겠습니다.”

         

       이쪽을 감시하는 제자들의 날 선 시선을 받으며 주운이 덮고 있는 이불을 내리는 백우진.

         

       느슨하게 묶인 고름을 풀어 헤치자, 약 냄새 가능한 고약이 잔뜩 발린 환부가 드러난다.

         

       우측 위에서 좌측 아래로.

         

       사선으로 길게 가로지르는 치명적인 상흔.

         

       이를 통해 그가 상처를 입던 순간을 머릿속에 그린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일격이었어.’

         

       기본기가 탄탄하기 그지없는 검수의 일격.

         

       그러나 무언가 의아했다.

         

       ‘상처가 생각보다 얕아.’

         

       상대를 반드시 죽이기 위한 일격이라고 보기엔 상처의 깊이가 조금 부족해 보였다.

         

       여기서 한 치만 더 깊었어도 주운은 이때까지 버티지 못하고 일찌감치 명을 달리했을 터.

         

       장문인이 몸을 비틀어 회피했을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그랬다면 가슴에 난 상처가 지금보다 훨씬 더 지저분하거나, 선이 어긋났을 테니.

         

       그 말은 결국 검을 휘두른 상대가 일부러 그가 즉사하지 않게 깊이를 조절했다는 뜻인데.

         

       ‘대체 왜?’

         

       어째서 그래야만 했을까.

         

       답은 얼마 지나지 않아 도출되었다.

         

       ‘그래야만 범인이 나라고 지목할 수 있을 테니까.’

         

       흉수의 진짜 목적이 자신을 범인으로 내몰기 위한 거라면 이해된다.

         

       그가 즉사하는 순간 범인을 특정하기가 힘들어진다.

         

       하지만 흉수에게 중상을 입은 장본인이 직접 그 이름을 입에 담고 쓰러진다면?

         

       ‘화산파 제자들의 모든 시야가 나 한 사람으로 좁혀져.’

         

       만약 그렇다면 여기서 또 하나의 의문이 생겨난다.

         

       상대는 어째서 자신을 범인으로 내몰고자 하였는가.

         

       그 답 또한 어렵지 않았다.

         

       ‘화산파와 내가 서로 반목하기를 바랐던 거지.’

         

       서로 목숨을 노리고 싸우면 더 좋았을 테고.

         

       그러한 일이 벌어졌을 때 웃을 수 있는 집단은 딱 한 곳뿐.

         

       ‘마교.’

         

       그 이유는 아마 천마가 이곳으로 오고 있기 때문일 터다.

         

       자신과 화산파가 합심하여 그녀의 앞을 가로막기 전에 떼어놓을 심산이었겠지.

         

       그 말인즉.

         

       ‘이 근처 또는 화산파 안에 마교의 세작이 숨어 있다.’

         

       그 즉시 한 사람이 떠오른다.

         

       조금 전 제게 묘한 말투로 도전 욕구를 자극했던 화산파의 일 장로 탁일우.

         

       그가 화산파에 숨어 있는 마교의 세작일 가능성은?

         

       ‘조금 말이 안 되긴 하는데….’

         

       다섯 살 때 당시 매화검수였던 스승의 손에 거둬져 화산파 제자가 된 그다.

         

       하물며 장문인인 주운과는 어릴 때부터 동문수학한 사형제 관계.

         

       우애도 돈독한 것으로 알려진 마당에 그가 장문인을 살해할 이유는?

         

       ‘없어.’

         

       배신이든 뭐든.

         

       그 이유가 있어야 명확해지는 법인데, 탁일우에게는 그런 게 없다.

         

       장문인의 자리가 탐나서, 라는 게 가장 그럴싸한 이유인데.

         

       그 또한 이유로는 빈약하기 그지없었다.

         

       ‘스스로 물러난 자리에 갑자기 탐욕이 생기는 것도 이상하지.’

         

       과거 전대 장문인이 물러날 때가 되어 새로운 장문인을 추대할 때 탁일우와 주운, 두 사람이 후보에 오른 적 있다.

         

       그때 탁일우는 스스로 장문인 후보 자리에서 물러나 일 장로에 머물렀다.

         

       그랬던 그가 늘그막에 장문인 자리가 탐나 우애 깊은 사형의 목숨을 노렸다?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해도 쉽지 않을 정도야.’

         

       논리적으로 따지면 탁일우는 가장 먼저 용의선상에서 제외되어도 좋을 정도.

         

       하지만 조금 전의 말투가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한 거지?’

         

       만에 하나의 확률로 그가 범인이라고 해도 무언가 석연찮기는 매한가지.

         

       만약 자신이 범인이라면 그걸 숨겨도 모자랄 판국에 도발하는 말투로 자극하는 것도 말이 안 되지 않나.

         

       “…머리 아프네.”

         

       쓰게 웃는 백우진.

         

       여인도 아니고 사내 때문에 이토록 골머리를 앓게 될 줄이야.

         

       ‘매몰되지 말자.’

         

       당장은 탁일우에 대한 생각은 접어두기로 하였다.

         

       하나의 생각에 매몰되면 그만큼 시야가 좁아지는 법이기에.

         

       주운의 상처를 한 번 더 확인한 뒤, 자신과 함께 그의 침소를 찾은 설수연을 부른다.

         

       그녀의 성력이라면 이 정도 상처쯤은 흔적도 없이 낫게 할 수 있을 터.

         

       “치료 좀 부탁할게.”

       “네, 알겠어요.”

         

       자신만만한 태도로 나선 그녀가 백우진의 옆에 앉아 주운의 환부에 손을 얹는다.

         

       이윽고 끌어올리는 성력.

         

       회복과 재생에 치중된 기운이 그녀의 혈도를 타고 흘러 그의 환부로 향한다.

         

       은은하게 새어 나오는 빛무리.

         

       일다경의 시간이 흐른 뒤 환부에서 손을 떼어낸 그녀가 당황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사, 상처가 회복되지 않아요….”

         

       그녀의 말에 백우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지난 편에 어제 휴재 가능성이 있다고 말씀드리긴 했습니다만, 공지로 말씀드리지 못해 송구합니다.

    친척 분들이 올라오셔서 한 잔, 두 잔 받아 마시다 보니 취해서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네요;;

    워낙 애주가 집안이라 그중에서 정상인 저는 매번 버티질 못해 명절마다 참 애를 먹고 있습니다.

    연휴 동안은 아마 새벽 시간대에 연재가 이어질 듯합니다.

    집에서는 자꾸 늦은 시간대가 되어서야 글이 써지기 시작해서요.

    독자님들의 너른 양해 바랍니다.

    그럼 저는 다음 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_ _)

    다음화 보기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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