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9

       

       

       

       

       화악! 

       

       실비아의 깊은 녹빛 눈동자가 ‘스캔’ 마법이 발동됨과 동시에 밝은 에메랄드색을 담아 선명하게 빛났다.

       

       무영창無詠唱 마법.

       

       최소 7서클 이상의 마법사만이 쓸 수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마법사의 전력을 대폭 올려 줄 수 있는 사기적인 기술. 

       

       마나를 정제하고 세심하게 엮어 연산한 술식에 짜 맞춘 후 발동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잡념 하나 없이 완성하고, ‘맺는다’라는 과정을 ‘언어의 힘’ 없이 오롯이 해낼 수 있는 고차원적인 정신력이 필요한 기술이 바로 무영창 마법이다. 

       

       ‘그렇다고 아무 마법이나 다 쓸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현재 실비아는 검술로 9성 초입, 마법으로는 8서클의 경지에 올라 있는 상태. 

       

       검술 9성이면 페룬 대륙에서 가장 큰 제국인 카란트라 제국의 인간들 사이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이다. 

       심지어 실비아가 속한 엘프 부족인 ‘라크 룬’ 내에서는 단 두 명밖에 없는 9성을 가장 어린 나이에 달성했다.

       

       8서클 역시 엘프 사이에서는 비교적 많지만 절대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고.

       

       검술이나 마법 하나에만 집중해도 이르기 힘든 경지에 둘 다 오를 수 있었던 건 엘프의 종족적 특성인 마나 친화력뿐 아니라 천부적인 검술 재능까지 타고난 덕분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마법’ 쪽에서 수련 분야에 대한 선택과 집중을 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했다. 

       

       ‘난 속성 마법을 전혀 익히지 않았으니까.’

       

       주로 한두 가지 속성 마법을 갈고닦는 마법사들은 7~8서클이 되면 블리자드(Blizzrd)나 플레임 필드(Flame field) 같은 필드형 광역 마법을 쓸 수 있게 되지만, 실비아는 그런 속성 광역 마법은커녕 파이어 볼조차 익히지 않았다. 

       

       대신 근접 전투, 즉 검술을 보조할 수 있는 무속성 마법을 파고들고 또 파고들어, 웬만한 고위 서클의 무속성 마법도 무영창으로 발동할 수 있을 정도로 숙련했다.

       

       화아악—

       

       실비아의 눈이 빛나며 스캔 마법이 실비아를 중심으로 순식간에 전 방위로 뻗어 나갔다. 

       

       스캔 마법이 지나간 곳에 있는 모든 정보가 실시간으로 실비아의 머릿속에 쏟아지듯 들어왔다.

       

       일반인이 감당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많은 양의 정보였지만, 실비아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충분히 범위를 넓혀 스캔을 완료한 뒤에야 마법을 끝맺었다.

       

       ‘…찾았다.’

       

       선명히 빛나던 실비아의 눈이 원래 색을 되찾았다. 

       

       실비아는 여전히 졸고 있는 레온과, 뀨 소리를 내며 레온의 품에서 잠꼬대를 하는 아르를 바라보았다. 

       

       “큐우우….”

       

       레온의 옷자락을 잡은 앞발에 힘이 풀리고, 배가 하늘로 향한 자세가 되어 새근새근 자는 아르의 말랑한 배가 숨소리와 함께 부풀었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꿀꺽.

       

       ‘한 번만 쓰다듬어 보고 싶다…. 아니면 손가락으로 꾹 눌러 보기라도….’

       

       하지만 지금 아르를 맘대로 만졌다간 레온이나 아르가 깰 수도 있다.

       실비아는 설레는 즐거움을 잠시 뒤로 미루어 두기로 했다.

       

       ‘편히 자고 있어요. 아르도 푹 자고 있으렴.’

       

       레온 씨와 아르의 잠을 방해할 만한 녀석들은 금세 처리하고 올 테니.

       

       ‘블링크(Blink).’

       

       실비아의 눈이 다시 빛을 머금은 순간, 그녀의 신형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

       

       “크크크…. 오늘은 일찍부터 수확이 좋군.”

       “그러게 말입니다. 하핫!”

       “흐흐, 그야말로 운수 좋은 날이군그래.”

       

       산적들은 킬킬거리며 쓰러져 있는 사내들의 주머니에서 뭔가 더 빼 먹을 게 없나 확인했다.

       

       “오, 여기 뒷주머니에 은화가 좀 더 들어있습니다.”

       “이 자식들, 어차피 이렇게 뒈져서 우리한테 헌납할 거면 한 군데에 잘 모아나 두지. 번거롭게 일 두세 번씩 하게 만들고 있어.”

       “푸하하핫! 그러니까 말입니다.”

       

       부하들은 쓰러진 이들에게서 나온 금전을 모아 두목에게 전달했고, 두목은 만족한 듯 씨익 웃었다. 

       

       “어디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3성짜리 산적 놈들이 우리 자리를 탐내?”

       “그래도 실력은 나름 쓸 만하던데요. 물론 두목한테는 쪽도 못 쓰고 뒈졌지만요. 크큭.”

       “당연한 소릴 하고 그러냐. 이제 곧 5성이 될 분이신데.”

       “크으…. 부럽습니다. 하늘이 내린 재능!”

       

       부하들은 연신 감탄을 내뱉었다.

       

       사실 4성이나 되는, 그리고 곧 5성이 될 검사가 이런 길목에서 산적질을 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하지만 용병으로 일하며 자신이 한 노력, 자신의 가치보다 돈을 적게 받는 것도, 의뢰인과 마찰을 겪으면서도 돈 때문에 참아야 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는 자신과 뜻이 맞는 이들과 함께 살인과 약탈을 서슴지 않고 저지르며 돈을 쓸어담고, 또 흥청망청 써댔다. 

       

       하지만 더 놀라운 사실은, 그들에게는 아직 현상금조차 걸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뭐, 죽인 걸 들켜야 현상금이 걸리지. 크크큭.’

       

       그는 탐색 및 알람(Alarm) 계열 마법, 그리고 은신 마법이 주특기인 마법사들과 항상 함께 일을 벌였다.

       

       먼저 탐색을 해 보고 안 될 것 같은 싸움은 시작도 하지 않고 숨었고, 일을 벌이고 나서는 항상 뒤처리를 완벽하게 했다. 

       

       현장의 목격자는 살려두지 않았고, 일을 벌인 후에 뒤늦게 누군가 접근하는 건 알람 마법으로 빠르게 알 수 있었다.

       

       ‘이렇게 편하게 돈을 벌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크하하핫!’

       

       특히나 오늘처럼 기대도 안 했던 놈들의 주머니가 두둑할 때에는 아무 생각 없이 긁은 10쿠퍼짜리 복권에 당첨되기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저희들만 있었으면 한두 명은 죽었을 텐데….”

       “두목님 덕에 털끝 하나 안 다치고 깔끔하게 끝났습니다.”

       “크으, 역시 두목님!”

       

       두목은 그런 사탕발림이 기분 나쁘지 않은지 피식 웃더니, 쓰러진 셋을 가리키며 말했다. 

       

       “됐고, 새끼들아. 시체나 잘 끌고 와서 저기다 감쪽같이 처리해. 흙도 퍼다가 여기 피도 좀 덮어 놓고.”

       “근데 어차피 얘네들도 산적이라 죽인 거 들켜도 별 상관 없지 않습니까?”

       “멍청아, 뒷처리를 해 놔야 다음에 지나가는 놈들이 피 보고 경계하는 일이 없지.”

       “아하, 그런 뜻이!”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일이 마무리되자 그들은 다시 숲 안에 숨어, 알람 마법에 행인이 걸릴 때까지 대기했다.

       기다리는 동안 두목은 놈들에게서 빼앗은 돈을 모아 세어 본 뒤 한 주머니에 넣었다.

       

       “크크, 5골드 37실버라. 하루 일당치곤 정말 짭짤하군. 이번에 지나가는 놈들까지만 잡고 술이나 퍼 마시러 가 볼까.”

       “좋습니다!”

       “제가 지난번에 알아 놓은 술집이 있는데….”

       

       그렇게 오늘 번 돈을 어떻게 잘 쓸까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던 중.

       

       “…두, 두목님.”

       

       알람 마법을 시전 중이던 부하가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뭐냐? 벌써 걸렸냐?”

       “저…. 그게, 조금 이상합니다.”

       “이상하다니?”

       “알람 마법에는 분명 아무것도 안 걸렸는데, 탐색 마법 반경 안에 무언가 낯선 기척이 하나가 들어와 있습니다. 문제는 알람 마법에 집중하느라 이게 언제부터였는지 저도 잘….”

       “그건 또 뭔 개소리야?”

       

       두목은 그게 무슨 대수냐는 듯 고개를 꺾었지만, 마법사의 표정은 굉장히 불안해 보였다.

       

       “그게…. 이런 상황이 발생하려면 누군가 알람 마법이 발동하는 경계를 정확히 알고 그 안으로 순간이동이라도 한 게 아닌 이상 말이 안 되는 건데….”

       “아, 거 참 답답하네. 그래서 뭔데? 탐색 마법에는 걸렸다며. 그럼 알아낼 수 있을 거 아니야! 한 놈이면 어차피 내 손에 끽 소리도 못 하고 죽….”

       

       하지만 두목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서걱—

       

       눈 깜짝할 사이에 두목의 머리가 하늘로 치솟았다. 

       

       “……!”

       

       탐색 마법을 시전하고 있던 마법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두목의 몸이 무너지고 머리가 치솟으며, 그 너머에 있던 검사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

       

       보석을 박아 넣은 것처럼 빛나는 아름다운 눈과 시선을 마주친 순간, 그의 시야는 암전되었다. 

       

       그리고 잠시 후.

       

       “음, 이 정도면 지나갈 때 눈치 못 채겠지?”

       

       현장을 말끔하게 정리한 실비아는 두목의 품 안에 있던 돈을 꺼내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이건 아르 간식비로 쓰면 되겠다.”

       

       돈을 챙긴 실비아는 빠르게 다음 지역으로 향했다. 

       

       ‘블링크.’

       

       이번에는 마차의 경로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마물 중 3~4서클의 마법사로서는 잡기가 까다로운 하이오크 쪽으로 접근했다.

       

       서걱—

       

       “꾸엑?!”

       

       영문도 모른 채 순식간에 팔 하나가 날아가고, 한쪽 무릎의 뒤쪽 신경을 절단당한 거대한 덩치의 마물이 비명을 질렀다.

       

       ‘이 정도면 되겠지.’

       

       하이오크가 실비아의 존재를 눈치채기도 전에 바로 블링크로 자리를 뜬 실비아는, 하이오크의 피가 묻은 검을 마차의 이동 경로 쪽에서 가볍게 한 번 턴 뒤 마차로 돌아갔다.

       

       ***

       

       “뀨우웅….”

       “으음…. 아르야…?”

       “뀨우.”

       

       나는 지척에서 들린 아르의 뀨 소리에 눈을 떴다. 

       

       아르를 안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졸던 탓에 눈을 뜨자마자 아르의 매끈한 배가 보였다.

       

       “헉!”

       

       나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왠지 모르게 개운한 이 기분.

       잠깐만 꾸벅꾸벅 졸고 일어난다는 게, 아무래도 꽤 오래 자고 일어난 것 같았다. 

       

       ‘바보 같이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면서 푹 자 버렸잖아.’

       

       나는 황급히 실비아가 앉아 있던 쪽을 바라보았다. 

       

       “…….”

       

       휴우.

       

       다행히 실비아도 잠이 든 듯, 구석에 상체를 기댄 채 편안히 눈을 감고 있었다.

       

       “뀨움!”

       

       나와 함께 일어난 아르가 커다랗게 하품을 하며 몸을 쭈우욱 펴 기지개를 켰다. 

       

       ‘귀여워….’

       

       쪼그만 몸으로 더 펼 게 어디 있다고 쭈우욱 팔다리를 뻗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미소가 절로 입가에 걸렸다.

       

       ‘꼬리까지 쭉 펴지는 게 진짜 귀엽네.’

       

       아르는 배부르게 먹자마자 누워서 잠을 자서 그런지 몸을 일으키며 작게 트림을 했다. 

       

       “뀨룩.”

       

       나는 그런 아르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었고, 아르는 작게 트림을 몇 번 더 하더니 속이 편해진 듯 쀼 소리를 내며 웃었다. 

       

       나는 아르를 허벅지 위에 두고 양손으로 아르의 배를 만지작거리다가, 살살 간지럼도 태우고, 빵빵한 아르의 볼에 손바닥을 대고 문지르며 놀아 주었다.

       

       “아르르르~”

       “쀼웃!”

       

       내가 치는 장난에 꺄르르 웃으며 앞발을 휘휘 젓는 아르를 보며 힐링을 한 뒤, 나는 다시 아르를 품에 안고 이번엔 창가 쪽으로 조금 옮겨 앉았다. 

       

       “날씨 진짜 좋다, 그치?”

       “쀼우!”

       

       따뜻한 햇빛이 창가 쪽으로 기분 좋게 들어와 나와 아르를 비추었다.

       

       ‘평화롭구만.’

       

       창밖으로 고개를 쓱 빼고 앞을 봐도, 길이 좀 험하다 뿐이지 저 앞까지 아무런 장애물 없이 탄탄대로가 깔려 있었다.

       

       ‘벌써 해가 중천을 넘어 가라앉고 있는데 아직 산적도 한 번 안 만났고 말이야.’

       

       내 기억으로 히파르에서 캐머해릴 쪽으로 가는 길 첫날에는 꽤 높은 확률로 산적을 마주쳤었는데, 보아하니 이번엔 아무도 없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마물은 적당히 나타나는 게 좋긴 한데.’

       

       너무 강한 마물은 좀 그렇고, 적당히 레어 울프나 홉고블린 정도면 괜찮을 것 같은데….

       

       하지만 역시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는 모양.

       

       해가 넘어가기 직전 즈음, 별일 없이 전진하던 마차가 멈추며 앞에서 마부의 고함이 들렸다. 

       

       “요, 용병님들! 저 앞에 마물입니다! 마물!”

       

       그 말에 슬슬 저녁 먹을 준비를 하고 있던 마이어 씨가 손을 멈추었고. 

       

       내가 중간 중간 아르와 놀아 주는 모습을 미소를 담아 바라보던 실비아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검을 챙겼다.

       

       그리고, 아르와 함께 마차에서 내린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맙소사. 하이 오크가 왜 여기에…?”

       

       여유롭게 잡으려면 5서클 초입은 되어야 하는 꽤나 강력한 마물, 하이오크.

       

       ‘잡기만 하면 경험치는 확실하겠지만…. 이건 너무 위험한데.’

       

       아무리 앞 라인을 담당해 줄 실비아가 있다지만, 아무래도 고전을 면치 못할 것 같았다. 

       

       “응?”

       

       하지만 다음 순간, 하이오크를 자세히 본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왜 쟤, 팔 하나가 없냐?

       

    다음화 보기


           


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