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9

        촤아아악!

       

        쏴아아~!

       

        푸르게 흔들리는 바다.

        지금에야 이세계에서 흘러들어온 외래종? 외계종? 아무튼 아주 심각하게 멀리서 온 외래종에 의해 뒤죽박죽된 상태이긴 하지만 어쨌든 겉보기엔 평화로워 보이는 장소.

        모든 생명을 탄생시킨 생명의 어머니이자 생명의 보고.

       

        퍼어엉!

       

        그 푸른 요람의 한가운데에서 무언가가 솟아올랐다.

       

        = 후우우…….

       

        투둑! 투두둑!

       

        마치 거대한 바다뱀처럼 보이는 길쭉한 몸체.

        하지만 바다뱀이라기에는 너무나도 길고 굵직한 몸.

        그리고 동양의 용을 보는 것 같은, 짙은 남색의 비늘을 번들번들하게 빛내는 존재.

       

        = 이쯤인가?

       

        심해룡 에나 벨제투스.

        그가 북극해의 한가운데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 흠.

       

        대서양에 있어야 할 그가 북극해에 왜 나타났는가?

        그 이유는 설명하기 위해서는 잠시 시간을 돌려야 한다.

       

       

        *            *            *

       

       

        지금으로부터 약 5시간 전.

       

        막내 여동생의 수다에 약 4시간 정도를 탈탈 털리던 벨제투스의 텔레파시 기관에 믿을 수 없는 정보가 들어왔으니…….

        바로 그의 어머니가 인간들의 아이돌이 되었다는 소리였다.

       

        = 뭐라고? 어머니가?!

       

        = 응!

       

        그동안 영혼 없는 대꾸만 해주던 둘째 오라버니의 살아 있는 리액션이 반가웠던 것일까?

        슈르네는 슈르네대로 신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런 슈르네의 반응에…….

       

        = ……그런데 ‘아이돌’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 ?!

       

        그렇다.

        자신이 싫어하는 인간들 사이에서 자기 어머니가 뭔가 유명해졌다는 소리를 들어서 본능적으로 발끈하긴 했는데, 벨제투스는 인간들의 문화에 대해 너무 무지했다.

        물론 벨제투스가 인간들에 대해 아예 모르는 것은 아니다.

        자고로 애정의 반대말은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하지 않던가?

       

        무언가를 사랑하든 혹은 싫어하든, 둘 다 그 대상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벨제투스는 인간들을 ‘혐오’하는 것이지, ‘무관심’한 것이 아니다.

        아니, 어떤 의미로는 형인 블레이즈보다도 더 인간들에게 관심을 가진 것이 바로 벨제투스다.

       

        문제는 벨제투스가 알고 있는 인간들의 정보가 상당히 편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가 알고 있는 것은 ‘인간들의 문제점’이나 ‘인간들의 전투력’ 정도.

        그 외의 정보는 관심이 없기도 했고, 딱히 알 필요도 없어서 모르는 상태였다.

       

        = 에휴~! 오빠는 그렇게 무식해서 어떻게 앞가림하고 살래?

       

        = …….

       

        아니, 그렇다고 이 머릿속이 꽃밭인 막내 여동생에게 저런 소리까지 들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되는데요?

        생각지도 못한 막내 여동생의 디스를 듣게 된 벨제투스가 충격을 받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벨제투스의 앞에서 쯧쯧 혀를 찬 빛 덩어리가 말을 이었다.

       

        = 에휴~! 어쩔 수 없지. 슈르네가 설명해 줄 테니까, 잘 들어야 해?

       

        이 무식하고 딱한 둘째 오빠를 위해, 슈르네는 자신이 인간 세상을 둘러보며 알게 된 정보를 풀어놓았다.

       

        = 아이돌은 말이야, 수많은 인간들에게 구애의 춤을 추는 인간들을 말해!

       

        ……’자신’이 인간 세상을 둘러보며 알게 된 ‘주관적인’ 정보라고 했지, ‘객관적인’ 정보라고는 안 했다.

       

        = 뭐라고?!!!

       

        = 꺄악!

       

        슈르네의 상당히 잘못된, 편파적인 정보를 곧이곧대로 믿어 버린 벨제투스의 뚜껑이 열려 버린 순간이었다.

       

        = 인간 놈들! 감히 어머니를, 어머니를 넘보다니!!!

       

        쿠과과과과광!!

       

        한숨 느긋하게 자려던 계획 전면 취소.

        강렬한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벨제투스의 신형이 빠르게 바닷속을 헤엄치기 시작했다.

        목표는 어머니의 기운이 느껴지는 방향!

       

        = 가만두지 않겠다!!!

       

        그렇게 벨제투스는 바닷속을 헤엄치기 시작했다.

       

       

        *            *            *

       

       

        그리고 현재.

        북극해의 한가운데에서, 시베리아 방향을 바라보며 벨제투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 ……여기가 아닌가?

       

        그렇다.

        이 차원에 도착한 이후로, 벨제투스는 오로지 대서양에서만 지냈다.

        즉, 벨제투스는 지구의 전체적인 형태를 모른다는 소리다.

       

        그나마 이 차원에 막 도착할 때, 우주 공간에서부터 지구로 떨어졌다면 지구의 전체적인 형태를 대충이나마 알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벨제투스는 이 차원에 도착할 때부터 이미 바닷속에서 튀어나왔었다.

       

        멸천룡이 공간 그 자체를 뛰어넘는 방식으로 차원을 이동한다면, 그 자녀들은 어머니의 방식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따라 하여 차원을 넘는다.

        블레이즈가 자기 몸을 광자화하여 초광속 워프를 하는 방식으로 차원을 뛰어넘고.

        헤니시아는 세계수의 가지를 통해 공간을 연결한 후 차원을 이동한다면.

        벨제투스는 ‘바다’라는 매개체를 이용해 차원을 뛰어넘는다.

       

        결국 이 차원에 도착한 이후로 벨제투스는 대서양에서 나간 적이 없었고, 다른 대륙이나 바다에도 딱히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어머니와 같은 차원에 도착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했을 뿐.

       

        그리고 지구의 지형을 모르던 벨제투스는, 그저 어머니의 기운이 느껴지는 방향만 바라보며 직진했고.

        어느새 북극해에 도착해 있었다.

       

        = 젠장. 어머니는 육지에 계신 건가?

       

        하얀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러시아 방향을 바라보던 벨제투스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딱히 바다를 벗어나는 것이 싫다던가, 혹은 무섭다던가 같은 것은 아니다.

        비록 벨제투스는 육체의 형태를 수중에서 생활하기 알맞게 진화시켰지만, 그렇다고 해서 물을 벗어난다고 확 약해지지는 않는다. 그랬다면 ‘엘더 드래곤’이라는 이름은 진작에 버렸어야지…….

        문제는 두 가지.

       

        하나는 대륙엔 반드시 그가 싫어하는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

        다른 하나는 이 앞에 존재하는 ‘영역’의 기척이다.

       

        = 이 영역표식은…… 블레이즈군.

       

        그의 형이자, 빛을 다루는 엘더 드래곤.

        그리고 감히 아버지를 죽인 인간들을 수호하는 배신자이자, 인간들에게 푹 빠진 얼간이.

       

        = 끙…….

       

        인간들이 땅 위에서 바글바글하는 것을 보기도 싫어 죽겠는데, 하필 어머니를 보기 위해서는 그 원수의 영역에도 들어가야 한다.

        인간을 좋아하는 놈이니, 분명히 그놈 영역에는 인간들이 바글바글할 것이다.

        그 혐오스러운 광경을 볼 생각하니…… 어우…….

       

        = 진짜 싫다.

       

        하지만 어머니를 보기 위해서는 감수해야 하는 혐오감이다.

        벨제투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내가 인간 놈들이 싫어서 바닷속으로 들어간 건데…….

       

        본래는 지룡의 진화 테크트리를 탔었던 벨제투스였으나, 인간이 싫어서 해룡으로 진화 루트를 틀었었다.

        인간이라는 족속들은 바닷속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였으니까.

        물론 차원에 따라서는 바닷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도 존재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미 상황은 이렇게 되어 버렸고,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서는 악으로 깡으로 버텨서 육지로 올라가야 하는 상황!

       

        부글부글…….

       

        벨제투스의 지배력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이어서 주변의 바닷물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끓어오른 바닷물은 순식간에 구름이 되어 벨제투스의 몸을 감싸고, 이내 그는 구름을 탄 동양의 용이 되어 하늘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쉬이이잉-!!

       

        = 응?

       

        ……아니, 올라가려고 했다.

        갑자기 허공에 뭉치기 시작하는 빛 덩어리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삐이이잉!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빛이 제대로 된 형태를 이루었다.

        그리고 나타난 것은, 하얀 깃털이 나 있는 2쌍의 날개를 파닥거리는, 백색 비늘을 가진 드래곤이었다.

       

        = 벨제투스.

       

        = 블레이즈?!

       

        두 형제가 북극해의 한가운데에서 만난 순간이었다.

       

        = 네가 여긴 무슨 일이냐 블레이즈!

       

        벨제투스가 형에게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가족인데, 이건 너무 싫어하는 것이 아니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알아야 하는 사실은, 드래곤의 습성은 인간과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야생 동물만 보더라도, 같은 부모 아래에서 태어난 형제들이 반드시 서로를 아껴주고 위해주는 것은 아니다.

        무리를 이루는 동물이 아닌 이상, 일정 나이가 되면 독립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리고 이렇게 독립한 동물들은 부모 자식의 관계라고 하더라도, 나중에는 생존경쟁을 위해 배제해야 하는 라이벌 관계가 되기 십상이다.

       

        그리고 인간들의 관계를 생각해 봐도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다.

        생각해 보자.

        형제자매가 있는 주변인들이, 서로의 호적메이트와 사이가 좋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 하여간 호적메이트 아니랄까 봐.

       

        = ???

       

        자기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벨제투스를 바라보며, 블레이즈는 작게 혀를 찼다.

        그러거나 말거나, 벨제투스는 블레이즈를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 블레이즈! 여긴 무슨 일로 왔냐고 묻지 않았나!

       

        = 형에게 그게 무슨 말버릇…… 아니지. 드래곤에게 이런 거 말해봤자 소용이 없지.

       

        존댓말이라던가, 호칭 같은 것들은 어디까지나 인간들과 같은 지성체들의 문화다.

        물론 엘더 드래곤이라면 ‘지성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무리 생활 보다는 독립적인 생활에 더 적합한 엘더 드래곤들에게 이런 문화를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다.

        나도 인간들에게 많이 물들었군…… 이라고 중얼거리던 블레이즈가 다시 말을 이었다.

       

        = 영역에 콕 박혀 있던 놈이 갑자기 내 영역 쪽으로 다가오는데, 신경이 쓰이잖나!

       

        = 흥! 네가 신경 쓸 것 없다!

       

        = 그러니까 어떻게 신경을 안 쓸 수 있냐고!

       

        자기는 대서양 근처에만 가도 지랄 발광을 하는 주제에…….

        상당히 오랜만에 보는 마이페이스 동생의 모습에, 블레이즈는 자기 머리를 부여잡고 싶어졌다.

        분명히 같은 부모님 아래에서 태어났는데 왜 이렇게 성격 차이가 나는 걸까? 역시 유전 형질을 인위적으로 바꿀 수 있는 드래곤이라는 종족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인 걸까?

        도저히 닮은 구석이 없어.

       

        = 하! 됐다. 어차피 어머니를 뵈려는 것이겠지.

       

        = 흥!

       

        = …….

       

        저 개새…….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쌍욕을 꿀꺽 삼키고.

        블레이즈는 기세를 드러내며 말을 이었다.

       

        = 어머니를 뵈러 가는 것은 좋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들에 대한 공격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

       

        = ……뭐라고?

       

        그 순간 벨제투스의 두 눈이 이글이글 타오르기 시작했다.

        엇차?! 하는 순간 벨제투스의 지배력이 움직이고, 이내 바닷물이 강철도 잘라버리는 압력으로 블레이즈를 향해 쏘아졌다.

       

        쉬이잉!

       

        = …….

       

        = …….

       

        물의 칼날에 베인 블레이즈였으나, 절단되었다고 생각했던 부분은 그 순간 광자가 되며 물의 칼날을 통과시켜 버린 상태였다.

        물의 칼날이 지나간 자리를 한 번 쓱 바라본 블레이즈.

       

        = 하 참.

       

        쿠구구구구구구-!!!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린 블레이즈의 주위로 어마어마한 기세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 목표는 감히 형에게 선빵을 행한 동생 놈.

       

        = 그러고 보니 우리가 마지막으로 싸운 게 2500년 전이던가?

       

        블레이즈의 전신에서 빛이 흘러나오며, 백색의 비늘을 뒤덮는 빛의 깃털로 변해 그의 온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블레이즈에 맞서, 벨제투스의 온몸을 감싸고 있던 암석 껍데기의 안에서 뜨거운 마그마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치이이이익!

       

        = 감히 나에게 명령하지 마라!

       

        = 오냐. 넌 오늘 나한테 처맞는 날이다!

       

        쿠과과과과과광!!

       

        그렇게 형제 싸움이 시작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형제끼리 사이 좋지 않은 것은 어디나 마찬가지죠. ㅋㅋㅋ

    늦게 올려서 죄송합니다.

    저는 다른 소설도 써야해서…… 이만…….

    다음화 보기


           


Dragon’s Internet Broadcast

Dragon’s Internet Broadcast

드래곤님의 인터넷 방송
Status: Ongoing Author:
Fantasy, martial arts, sci-fi... Those things are usually products of imagination, or even if they do exist, no one can confirm their reality. But what if they were true? The broadcast of Dragon, who has crossed numerous dimensions, is open again today. To tell us his old stories...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