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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9

       (구)마쓰다 백화점에는, 방이 참 많다. 당연한 일이다. 애초에 ‘백화점’으로 사용하려고 지은 거니까.

        

       물론 백화점이라는 용도만을 두고 생각해보면 오히려 작게 느껴지기도 한다. 건물 자체는 고작 2층짜리였으니까. 2층뿐이다 보니 천장도 굉장히 높고 면적도 넉넉하게 잡고 있기는 했지만, 현대의 ‘백화점’들과 비교해보면, 아니, 이 건물이 지어지던 20세기 초의 다른 백화점들과 비교해보더라도 그리 크지는 않았다.

        

       후에 건물의 역사를 찾아보고 알게 된 거지만, 원래 이 백화점은 일반인들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명품, 예술품 특별관으로써 당시 조선에 방문한 일본의 고위계층이나 조선귀족, 왕족들을 대상으로 비싼 물건을 수입해 장사했다는 모양이다.

        

       그래서 모양도 일반적인 근대 백화점과는 다소 다르게 생겼다.

        

       사람들을 많이 모아야 하는 특성상 코너에 툭 튀어나오듯 위치하며 위층으로 4~5층씩 올라가는 일반적인 백화점과는 다르게, 이 저택은 널따란 정원이 딸린 부지 한가운데에 뒤집은 대문자 파이(Π) 형태로 지어졌다.

        

       내부도 화려하고, 넓게 비어있는 공간도 몇 군데인가 있어서 한창 잘나갈 때는 결혼식 같은 것도 열리고 했다는 모양이다.

        

       지금은 대부분 방은 전부 비어있고, 제대로 쓰는 곳은 얼마 되지 않지만.

        

       그랬다. 사용인들이 일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공간을 제외하면, 이 저택에서 제대로 ‘방’이라고 부를만한 공간은 내가 쓰는 방뿐이었다.

        

       애초에 예사라를 감금하기 위해 사용되던 곳이니 다른 방에 굳이 가구를 들여다 놓지도 않았고.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예비용 이불은 있었다. 문제는 그 예비용 이불이라는 것이 전부 예사라가 ‘덮기 위해’ 쓰는 이불이지, 바닥에 깔기 위해 쓰는 이불은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이 건물의 원래 용도는 백화점이었기 때문에, 바닥은 차가운 대리석이다. 보기에는 예뻐도 그 위에 이불 깔고 눕기에는 여러모로 문제점이 많다. 그나마 아예 서양식 집처럼 실내에서도 신발을 신고 생활하는 극단적인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실내용 슬리퍼를 신지 않으면 그냥 맨바닥을 맨발로 걷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도 아직 밤이 늦지 않은 시간이라, 조금 급하게 이불을 구하면 못 구할 것도 없는 시간이긴 했지만—

        

       “뭐 하러?”

        

       이불을 구해와야겠다는 내 말을 들은 신소희는 뭘 그런 걸 걱정하냐는 표정으로 말했다.

        

       “침대가 저렇게 넓은데 굳이 바닥에서 잘 필요가 있어?”

        

       “……뭐?”

        

       내가 나의 귀를 믿지 못하고 그렇게 되물어보자, 신소희는 나를 빤히 보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침대가 저렇게 넓은데 굳이 누군 바닥에서 자고 누군 침대에서 자고 정할 이유가 있냐고.”

        

       나는 신소희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내 침대를 보았다.

        

       ……확실히 넓긴 넓다. 솔직히, 나 혼자서 쓰기에는 엄청나게 넓은 침대이긴 했다. 일반적인 가정에서, 혹은 원룸에 딸린 1인용 침대의 넓이가 아닌, 정말 판타지 영화 속 공주님이 쓸법한 거대한 크기의 침대였다.

        

       그래, 솔직히 나 혼자 쓰는데 뭐 하러 저렇게 크게 만들었나 싶긴 해. 아마 침대 규격 외에 해당하는 크기가 아닐까? 그냥 엄청나게 큰 방에 어떻게든 비율을 맞춰보려고 주문 제작 한 침대인지도 모른다. 백화점을 리모델링해서 살고 있는데 돈 쓰는 걸로 놀라면 안 되겠지.

        

       인제 와서 놀라는 것도 웃기긴 하지만. ……방의 비율에 잘 맞아떨어져서 의식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아무튼, 그래. 침대가 넓긴 했다. 어쩌면 우리 넷이 나란히 누울 수도 있을 것 같긴 하다. 여기 있는 넷 중에서는 신소희를 제외하면 ‘키가 크다’라고 할만한 인물은 없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넷이 눕기에는 너무 비좁지 않나?”

        

       아무리 규격 외의 침대라도, 두 사람 이상, 어쩌면 부부와 아이까지 세 사람까지만 생각하고 만들었을 것이다. 이제 슬슬 성장이 멈춰가는 여고생 네 명이 한꺼번에 누우라고 만들 변태가 어디에 있겠는가.

        

       “나는 소희 말에 찬성이야.”

        

       내가 제기한 이의를, 입을 헤 벌리고 내 방을 둘러보던 하늘이가 거부했다.

        

       “멋대로 자고 가겠다고 한 건 우리잖아. 여기까지 와서 더 이상 민폐를 끼칠 수는 없어. 침대 하나에서 넷이 자면 이불도 더 꺼낼 필요 없을 거고.”

        

       침대에 네 명이 누워 잔다는 건 둘째치고, 넷이 나란히 누웠는데 이불 하나만 덮으면 끝의 한 명은 결국 이불 밖으로 나가게 되지 않을까?

        

       “그치? 그렇다니까.”

        

       신소희가 활짝 웃으며 하늘이의 말에 공감했다.

        

       너희 바로 조금 전까지 내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싸우고 있지 않았냐.

        

       갑자기 서로 친밀하게 구는 둘을 보고, 나는 순간 의아함을 느꼈다.

        

       “나, 나도 그게 좋다고 생각해. 우리가 말도 없이 온 거니까…….”

        

       아니, 내가 불편하다니까요.

        

       물론 나를 배려하는 이 아이들의 면전에 그런 말을 내뱉을 수는 없었다.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같은 침대에서 자자고 하자마자 나도 모르게 한순간 기대했던 것은 사실이다. 뭐 그렇고 그런 일 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그, 있지 않은가. 십 대 시절……뿐만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종종 하던 망상 같은 거.

        

       신소희는 한눈에 보기에도 몸매가 엄청 좋다. 그렇다고 이수아의 몸매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그, 미드 사이즈는 신소희와 조금 차이가 나더라도, 키는 나와 거의 비슷해서 오히려 그 비율의 차이가 더 강조되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하늘이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처럼 대놓고 크지는 않지만, 그 적당한 크기 때문에 전체적인 몸의 밸런스가 훌륭했다. 과연 미연시의 여주인공다운 모습이라고 해야 하나.

        

       ……게다가 셋 다 미모의 경우는 내가 뭐라고 평가할만한 건더기도 없다. 셋 다 굉장한 미모다. 둘은 애초에 공략 대상인 히로인이었고, 한 명은 여주인공이니까. 각자 다른 매력을 가진 얼굴이긴 했지만, 그렇기에 비교하는 것은 난센스였다.

        

       그런데, 그런 세 명과 같은 침대에서 낑겨 잔다니. 사춘기 때 꾸는 꿈에도 나오지 않을 자극적인 이벤트가 아닌가.

        

       하지만, 그래. 문제는 그거다.

        

       그 자극적인 이벤트를 현실로 겪었을 때, 내가 참을 수 있는가?

        

       ……아니, 뭐. 예사라 몸으로 참지 않아봐야 곧장 진압되겠지만.

        

       몸을 움직이는 것은 무서우니 그렇다 쳐도, 세 사람 사이에 끼어서 내가 잠을 제대로 잘 수 있을지가 문제였다.

        

       당장 오늘 하늘이와 수업 시간에 취했던 자세들만 기억해도 잠들기가 어려울 텐데.

        

       “그래서? 세 명 다 동의하는데?”

        

       내가 혼자 고민에 빠져있으니 신소희가 재촉하듯 물었다.

        

       …….

        

       에라 모르겠다.

        

       사실 저렇게까지 말하면 더 이상 거절할 명분도 없다. 애초에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데 혼자 이상하게 생각하면 정말 이상하니까.

        

       생각해보면 친구 여럿이랑 같이 펜션 같은 곳에 가도 알아서 널브러져서 잘만 잤었으니까. 친구 집에 단체로 집들이 가서 아무 곳에서나 자고…… 여기는 누울 곳이 침대밖에 없으니까 그냥 저런 반응이 나올 뿐인 거다. 아무리 이불을 깔아도 대리석 바닥은 대리석 바닥이니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신소희를 포함한 세 명도 환하게 웃었다.

        

       ……이거 맞는 선택이겠지?

        

       ……그렇겠지?

        

       *

        

       “그런데, 어떻게 할까. 그냥 이렇게 모여 앉아서 아무것도 안 하기는 조금 그렇지 않아?”

        

       이 저택에서 자고 가자는 말을 꺼낸 주동자답게, 신소희가 그렇게 물었다.

        

       “아직 잘 때까진 시간이 한참 남았잖아. 8시도 안 됐으니까. 뭐라도 시켜 먹을까?”

        

       “아, 그럼 메이드를 불러서—”

        

       “아냐, 아까 저녁까지 얻어먹었으니까.”

        

       신소희는 나의 제안을 깔끔하게 거절했다.

        

       “적어도 야식은 우리가 사야지. 그리고 솔직히, 지금 당장 뭐 먹기에는 조금 배도 부르잖아? 아무리 사용인이라고 해도 6시 이후에 뭐 해달라고 부려 먹는 건 좀 아닌 거 같지 않아? 보통 사람들은 퇴근할 시간이잖아.”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다. 슬슬 일 다 끝나고 쉬는 시간인데, 야식 먹겠다고 사람 부르는 건 조금 그렇긴 해.

        

       ……그런데 야식을 먹을 생각인 건가? 대체 몇 시쯤에 자려고? 아무리 봐도, 신소희는 그냥 온 김에 자고 가려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자고 가는 김에 확실하게 놀고 가려는 거지.

        

       이 멤버가 그렇게 마음에 들었던 걸까? 아니면 원래 다른 친구들 집에서도 자주 놀고 가는 타입인가? 둘 다라고 해도 이상한 캐릭터가 아니라서 판단이 잘 서지는 않았다.

        

       “아, 그러면 치킨이라도 시킬까?”

        

       하늘이가 말했다.

        

       “좋네. 어차피 지금 시켜도 좀 기다려야 하니까. 그동안 씻고 기다리면 될 거고.”

        

       이수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치킨, 치킨이라…… 생각해보니 이쪽에 오고 나서는 후라이드 치킨은 먹은 적이 없는 것 같다. 굳이 따지자면 지난번에 신소희 따라 서민 음식 코스 따라가면서 먹은 치킨버거 안의 치킨이 전부였다.

        

       치킨 좋지. 기왕이면 시원한 맥주도 같이 마시고 싶지만…… 지금 나이로는 무리다. 게다가 예사라 몸으로 술 같은 걸 마셨다가는 무슨 난리가 날지 모른다.

        

       대학생이 되면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조용히 세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메뉴가 어떻고, 딸려오는 게 어떻고 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뭐, 치킨이야 엄청나게 심각한 곳에서 시키지만 않는다면 맛없을 일은 잘 없으니, 그냥 저 세 사람에게 맡기고 가만히 앉아있으려니,

        

       “아, 그래. 너는 먼저 씻고 있어.”

        

       하늘이가 멍하니 앉아있는 나를 눈치채고 그렇게 말했다.

        

       “어, 그래도 돼?”

        

       내가 그렇게 말하자, 세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응. 여긴 사라네 집이니까.”

        

       이수아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나는 주춤주춤 일어나며 말했다.

        

       “어, 그러면, 나 먼저 씻을게……?”

        

       그렇게 말하면서도 뭔가 위화감을 느꼈다. 아니, 저 세 사람한테 위화감을 느꼈다기보다는…….

        

       그래, 여자한테 씻고 오라는 소리를 들었다는 것에 위화감을 느낀 것이다. 평소에는 들을 일이 없던 말이니까.

        

       …….

        

       하, 나도 참 어지간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런 별 뜻 없는 말에 그렇게 반응하다니, 무슨 사춘기 소년이냐고.

        

       숨을 길게 내쉬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래, 친구니까 별 뜻 없는 말일 거다. 내가 이 집 주인이니 씻는 순서를 양보했을 뿐이지.

        

       아까부터 혼자 무슨 상상을 그렇게 하는 거냐고.

        

       “알았어. 그럼 나 먼저 씻을게.”

        

       내가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그렇게 말하며 몸을 완전히 일으키자, 세 사람은 나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사심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는 밝은 미소였다.

        

       *

        

       찰칵.

        

       방 안에 딸린 욕실 문이 닫혔다. 남은 세 사람은 한동안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 세 사람이나 있다고는 믿어지지 않는 적막한 공간.

        

       그 공간에서, 잠시 뒤에 싸아- 하는 물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소리가 들리자마자 자리에서 제일 먼저 벌떡 일어난 것은 신소희였다.

        

       그녀는 앉아있던 침대에서 훌쩍 뛰어내리더니, 곧장 옷장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 문을 벌컥 열었다.

        

       “아, 허락도 안 받고……!”

        

       갑작스러운 신소희의 행동에 당황한 유하늘이 소리치자, 신소희는 그녀에게 미간을 살짝 찌푸려 보이며 말했다.

        

       “아까 말했잖아? 옷 빌려 입을 생각이라고.”

        

       그 말을 들은 유하늘과 이수아의 입이 떡 벌어졌다.

        

       신소희는 아무렇지도 않게, 옷장에 걸린 옷을 고르기 시작했다.

        

       “음, 생각보다 옷의 종류가 별로 없네.”

        

       “……!”

        

       그리고, 유하늘은 그제야 저번 토요일에 자신이 사라와 함께 쇼핑했던 것을 기억해냈다.

        

       그 옷만큼은 안 돼……! 하고, 유하늘의 뇌내 경보가 울렸다.

        

       유하늘은 벌떡 일어나, 아까 신소희가 했던 것처럼 침대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나도 빌려 입기로 했으니까!”

        

       그랬다.

        

       유하늘은 속옷도 빌려 입겠다고 선언하고 이 집에 들어왔던 것이다.

        

       신소희의 눈이 가늘어졌지만, 유하늘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 키 차이에도 전혀 겁먹은 분위기는 없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그런 그 둘을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이수아는, 분명히 그 둘의 시선 사이에서 스파크가 튀는 것이 보였다고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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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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