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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9

       이제야 좀 살 것 같구나.

       

       역시 짜증이 날 때에는 무언가를 박살을 내는 것이 최고지.

       

       VR은 참으로 좋다.

       

       무림에서 돌산 같은 것을 박살 낼 때는 이후에 뒷수습도 직접 했어야 했는데 VR에선 그런 고생을 할 필요가 없지 않으냐.

       

       홀가분한 마음으로 돌아오니 어째서인지 엔리가 내 눈치를 보았다.

       

       갑자기 왜 이러는 것이야? 무슨 일이라도 있었느냐?

       

       그리 물었지만 엔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보다 아라 씨! 랭크 게임 돌리러 가실 거죠?”

       “그럴 생각이긴하다만 그에 관해 묻고 싶은 게 있다.”

       “뭔가요?”

       “그대들은 일방적인 싸움을 보면서 재미를 느끼느냐?”

       

       아피스의 랭크게임을 하면서 그 누구도 나에게 위협다운 위협을 준 일이 없었다.

       

       매번 게임을 할 때마다 데케이가 얼마나 괜찮은 이였는지를 깨닫는 게 일상이었으니.

       

       그것은 금강에 올라오고 난 뒤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에게 아피스에서의 투쟁이란 갓난 아이들과 놀아주는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일방적인 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어요.”

       

       – 화령님이 양학하는 거 보면 좀 경외로워서.

       – 약간 마술 보는 느낌이지.

       – 맞아. 딱 느낌임. 그냥 보고 있으면 신기함.

       

       그렇게 봐준다면 다행이다만.

       

       뭐어. 일단 매칭이 잡혔으니 내가 하는 것을 보고 평가를 해주면 되겠구나.

       

       그대들이 재미없다 그러면 내 한 번 광대를 자처해 흥미진진한 전투를 연출해 줄 수도 있다.

       

       [게임이 준비되었습니다.]

       [천마 VS 그래플러]

       [20초 뒤에 게임이 시작됩니다.]

       

       어디 보자. 이 장소는… 호수구나.

       

       찰랑거리는 호수에 발목이 잠긴 채 싸워야 하는 곳.

       

       별 다른 변수는 없지만 물속의 불안정한 바닥과 호수 자체가 거슬리는 장소다.

       

       나 같은 경우에야 물을 밟고 다닐 수 있는 인간인지라 이 호수도 평지나 다름 없지만 말이다.

       

       “아쎄이!”

       

       거센 목소리에 고개를 드니 상의를 탈의한 근육질의 남성이 서 있었다.

       

       눈을 가리는 기다란 챙의 모자와 기이할 정도로 비대한 어깨와 팔근육.

       

       본인을 위압적으로 보이게 만들려는 노력이 가상했다.

       

       “이 해병대를 봤다면 희망을 버려라!”

       

       – 해병대가 왜 여깄음?

       – 저 사람 마스터 수문장이잖아. 점수 많이 떨궜네.

       

       “무어냐. 유명한 자더냐?”

       <네. 마스터 구간에 상주하는 컨셉러라. 사람들 사이에 잘 알려져 있어요.>

       “실력은?”

       

       – 잘하는 편이긴 함.

       – 굳이 비교하자면 데케이보다 좀 못 하는 정도?

       – 뭔 소리야. 챌이 물로 보임?

       – 요즘에 화령님한테 맞고 다녀서 그렇지. 데케이도 잘하는 사람이야.

       

       쉬이 말해 데케이보다 한참 못한 녀석이란 소리지 않으냐.

       

       가지고 놀만한 수준은 되려나. 처음부터 너무 박살을 내는 모습을 보이고 싶진 않다만.

       

       [3]

       [2]

       [1]

       

       [게임 시작]

       

       남자는 앞뒤를 신경 쓰지 않고 무작정 돌격을 하기 시작했다.

       

       의도가 너무 뻔히 보이잖으냐.

       

       어떻게든 나를 붙잡겠다는 생각이겠지.

       

       관절을 꺾던 무얼 하건 간에 초근접전을 선택해 주먹의 거리조차 주지 않겠다는 것일 터.

       

       나쁘지 않은 선택지이긴 하다만 그래도 뻔한 것은 감점의 요소다.

       

       상대에게 노림수를 성공시키려면 일단 의도를 숨겨야지. 이 놈아.

       

       남자가 양 팔을 벌려 나를 덮치려 하는 순간 물을 걷어차 시야를 가렸다.

       

       그리고 나서 물을 밟아 위로 뛰어오르니 남자가 방금 전까지 내가 있던 자리를 덮쳤다.

       

       남자의 정수리를 한 번 꾹 밟아 준 후 다시 뛰어 물 위에 착지하자 상대의 이글거리는 시선이 느껴졌다.

       

       “다시. 방금 전은 너무 어설펐다. 제대로 해 보거라.”

       “새끼… 기열!”

       

       여전히 돌격이 뻔하구나.

       

       어떤 느낌인지 알겠다.

       

       그대는 어떻게든 상대를 붙잡기만 한다면 승리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거겠지.

       

       여태까지 그래왔을 것이고, 이길 때마다 그런 식으로 이겼으니 본인을 의심하지 못했을 터.

       

       아마 자신이 패했을 때도 붙잡는 데 실패해 그랬다 생각했을 것이야.

       

       허나 그대가 모르는 점이 있다.

       

       일정 경지 이상의 사람을 상대하는 것은 약한 이를 상대하는 것과 전혀 다른 문제다.

       

       강한 이는 그대의 뻔한 수에 놀아나지 않으니 말이다.

       

       무얼. 이것도 인연이다.

       

       내 한 번쯤은 그대에게 가르침을 내려주마.

       

       

       *

       

       해병대가 또 다시 허공을 끌어안았다.

       

       “화령 씨. 절대 안 잡혀 주시네요”

       

       게임을 하는 내내 해병대는 어떻게든 그래플링을 성공시키려 노력했다. 그렇지만 아라는 단 한 번도 그의 손길을 허용하지 않았다.

       

       농락을 하듯 언제나 한끝 혹은 두 끝 차이로 해병대의 수를 무위로 돌릴 뿐이었다.

       

       – 투우 하는 거 같다.

       – 해병대가 소야?

       – 무지성 돌격하는 거 보면 소 같긴 하잖아.

       

       “이렇게 보면 해병대님이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네요.”

       

       – 마스터 수문장이 물로 보여?

       – 엔리. 님이 저 사람 만나면 붙잡혀서 아무것도 못함.

       

       “저도 제 주제는 알거든요.”

       

       상대가 나쁠 뿐이지 해병대도 항상 마스터에 머무르는 실력자 중 한 명이다. 다른 일반인들보다는 아득하게 잘하는 사람이란 소리다.

       

       특히 마스터 권에서 머무르는 스트리머들에게 해병대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엔리는 해병대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안다.

       

       붙잡히지만 않으면 이길 수 있지만 붙잡히는 순간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하다 져야 하는 상대.

       

       판타지UFC인 아피스에서 진짜 UFC를 벌이는 괴인.

       

       이기든 지든 만나고 싶지 않는 사람.

       

       그게 해병대일 터인데.

       

       “따흐흑!”

       “다시. 한 번 더 해 보거라. 여전히 어설프잖느냐.”

       

       왜 아라 씨 앞에서는 장난감이 되어 버리는 걸까.

       

       “화령 씨도 걱정이 많네요. 이런 게 재미없을 리 없잖아요.

       

       – ㄹㅇㅋㅋㅋㅋ

       – 해병대 리벤지 받을 거 같음?

       – 역돌격하겠지. 쟤 자기보다 강한 사람 상대로는 항상 빤스런 쳐.

       – 거기까지 컨셉인거야?

       

       “그러고 보면 이 둘은 컨셉러끼리의 대결이네요.”

       

       최근에 이름을 떨치는 천마 컨셉의 유저와 수년 간 꿋꿋이 컨셉을 유지해 온 해병대의 싸움.

       

       사실 대결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한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신기한 풍경임은 분명했다.

       

       대전 시간의 반이 흐르는 동안 해병대를 농락하던 아라는 달라진 거 하나 없이 돌진을 반복하는 해병대를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 녀석아. 왜 잡을 생각밖에 하지 않는 것이냐.”

       

       그 어투에서는 진한 답답함이 느껴졌다.

       

       “네 목 위에 달린 것은 장식이더냐? 상대가 잡는 것만을 의식한다면 타격을 섞어야지.”

       

       냅다 다그치는 듯한 어투에 또 다시 돌격을 시도하려던 해병대의 움직임이 멈췄다.

       

       “하아. 어차피 이쯤 왔으면 이기는 게 불가능하단 것은 알았을 것이다.”

       “해병은 포기하지 않!…”

       “시끄럽다. 약한 놈에게 선택할 권리는 없다.”

       

       아라가 말을 끊으며 기세로 찍어 누르자 해병대가 뒤로 주춤하며 입을 다물었다.

       

       – 해병대가 컨셉에서 밀리네.

       – 컨셉러 대결. 천마 승.

       – 해병보다는 천마가 더 쌔잖아. 당연한 거지.

       – 와. 근데 해병대가 쩔쩔매는 거 처음 본다.

       

       해병대는 해병 컨셉에 맞게 그 어떤 상황에서도 기죽지 않고 달려드는 유저다.

       

       프로나 상위권 유저를 만나 참패하면 그 후 도주를 선택하기는 하지만 일단 게임 안에서는 공세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어째서인지 화령의 앞에 선 해병대는 제대로 된 반박도 하지 못하고 쭈구리가 되어선 얌전히 화령의 말을 듣는 중이었다.

       

       “물어나 보자. 왜 잡는 것에 집착하는가?”

       “그것은 6.9명의 해병이 7.4초의 마라톤 회의를…”

       “사람 말을 해라. 사람 말을.”

       “타격에 서툴러서입니다.”

       

       – ???

       – 해병대가 문학체를 포기했어?!

       – 와. 씨. 이런 날이 오는구나.

       

       너무도 진귀한 풍경에 시청자들이 놀라거나 말거나 아라는 해병대를 붙잡고 진지하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죄송하지만 제가 질문하는 것을 허락받는 것을 여쭤보는 것을…”

       “다시 한 번 말해주랴? 사람답게 말하거라.”

       “어설퍼도 타격을 섞어야 하는 겁니까?”

       “당연한 소리를. 어설프더라도 상대에게 가능성 정도는 보여줘야지.”

       

       그리 긴 대화는 아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해병대는 무언가를 느낀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항상 위압적인 모습으로 상대에게 달려들던 해병대가 신병마냥 순수히 배움을 받는 모습을 보곤 많은 시청자들은 물론이고 엔리마저 말을 잇지 못했다.

       

       “감사합니다.”

       “그래. 당분간은 어색하겠지만 포기하지 말거라.”

       “네. 가르쳐 주신 대로 하겠습니다.”

       

       게임이 끝난 후 공손히 인사를 건네는 해병대를 뒤로 한 채 아라가 돌아왔지만 엔리는 아직까지도 방금 전 풍경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였다.

       

       “왜 그러고 있는 것이야?”

       “화령 씨. 해병대님이랑 어떻게 대화를 한 거에요?”

       “어떻게라니. 언어가 통하는 데 대화가 안 될 리 없잖느냐.”

       “원래 그게 안 되는 사람이라고요!”

       

       해병대는 아피스 장인 유저 중에서도 컨셉에 잡아 먹힌 사람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유명 스트리머를 만나건, 프로를 만나건, 누구를 만나건 간에 그가 컨셉을 포기하는 일은 없다.

       

       해병대와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해병문학이라 불리는 그 문체를 사용해야만 할 텐데 아라는 평범하게 저 사람과 대화를 끝마친 것이다.

       

       “조금 특이하긴 해도 근본이 나쁜 아이는 아니었다만?”

       

       방금 전까지 잘만 대화를 나누고 온 아라는 엔리와 시청자들의 호들갑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다.

       

       좀 이상한 구석이 있기는 했지만 내기를 가지고 찍어 눌러 주니 저 알아서 기어 주지 않더냐.

       

       어찌하야 대화가 불가능하다 그러는 것인지 본인은 알 수가 없구나.

       

       결국 아라는 다른 이들과의 간격을 좁히지 못하고 다시 랭크게임을 돌리러 가버렸다.

       

       그 후로도 아라는 수많은 유저들을 적으로 만났다.

       

       개 중에는 천마 유저로써 아라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이도 있었고.

       

       “녀석. 그런 실력으로 내게 인정을 받으려면 천 년은 걸릴 것이야.”

       

       무작정 도망을 치며 어떻게든 이겨보려 발버둥을 치던 이도 있었고.

       

       “좀 져주시면 안 돼요?! 저 이거 지면 강등이란 말이에요!”

       “그리 이기고 싶다면 날 실력으로 누르면 되잖느냐.”

       “그게 되겠냐고!”

       

       해병대에게 해준 것이 인상 깊었는지 보자마자 가르침을 청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대의 부족한 부분이 어딘지 알겠느냐?”

       “네. 정말 감사합니다.”

       

       아라를 만나자마자 패배를 체념하고 목을 내미는 이도 있었다.

       

       “그냥 죽여 주세요. 빨리 다른 게임 하러 가게.”

       

       이런 과정 속에서 공통점은 하나 뿐이었다.

       

       아라는 단 한 번의 패배는커녕, 단 한번의 피해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너무나도 압도적인 모습이었고, 보기만 해도 눈이 즐거워지는 광경이었다.

       

       아라가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아라라는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 사람을 매혹시키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렇게 19번의 승리를 연승에 더했을 무렵 아라의 눈앞에 창이 하나 떠올랐다.

       

       “다음 게임을 이기면 마스터로 승급을 한다는 구나.”

       “마스터요?! 벌써요?!”

       

       아라가 게임을 시작하고서 채 한 달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벌써 마스터라니.

       

       그녀가 인생을 아피스에 바친 것도 아니다. 잠시 게임을 열심히하다 그만두기를 반복하던 그녀인데 한 달만에 마스터를 달성한다는 게 가능한 일인 건가?

       

       – 삼악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화령님이 여태 전승이라 그럼. MMR이 미쳐 날뛰는 중일 걸.]

       

       “전승이라고요?”

       

       엔리는 도네이션으로 날아든 말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서 아라의 상태창을 확인해 보았다.

       

       사실이었다.

       

       아라의 랭크게임 전적은 162승 0패.

       

       162번의 싸움을 하는 동안 아라는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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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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