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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9

       보글의 힘과 함께, 우리는 손쉽게 미아의 조직, ‘검은 달’의 정보들을 알아낼 수 있었다.

        ​

        “사업들을 정리하고 있다고?”

        ​

        “지, 진짜입니다. 믿어주십쇼!”

        ​

        대충 왜 그런지 짐작은 갔다.

        ​

        갑자기 지상에서의 연락이 끊겼다는 건 모종의 이유로 단속을 당했다는 뜻이니, 한동안 활동이 어려우리라 예상하겠지.

        ​

        타격이 좀 있다는 의미였다. 다만, 그게 당장 우리에게 유리하진 않았다.

        ​

        “귀찮아지겠네요.”

        ​

        마리아의 말대로였다. 바깥 사업을 접었다는 건, 다른 말로 하면 거기 투입한 인력이 돌아와 있다는 의미였다. 몰래 잠입해야 하는 입장에서 귀찮아질 수밖에 없었다.

        ​

        물론, 유념해둬야 할 정도지 그것 때문에 될 일이 안 될 정도는 아니었다.

        ​

        호흡으로 2진법을 만들어 ‘보글’을 설치한 탓에 자아가 혼미해진 포로는 잘 묶어 들고 ‘검은 달’의 본부로 향했다. 정면으로 가는 건 당연히 걸리기 쉬운 짓이었으니 뒷문으로 향했다.

        ​

        그들도 아마추어는 아니었기에 이쪽도 경비가 있긴 했지만, 미리 챙겨온 생체인식 잠금 해제 장치를 사용해 쉽게 뚫어낼 수 있었다.

        ​

        “커헉!”

        ​

        “크르륵….”

        ​

        물론 인증키가 올바른 경로로 사용된 게 아니란 걸 깨달은 경비병들이 급히 백도어를 차단하려 했지만, HTML로 단련된 프로그래밍 실력으로 검을 휘둘러 쉽게 제압했다.

        ​

        잘못된 응답을 뱉어내는 경비들은 마리아가 제압했다. 바닥에 얼음을 깔아버리니 알아서 자빠지더라고.

        ​

        따로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움직이는 걸 보니 슬슬 마리아도 자신의 트라우마가 발작하지 않는 선에서 뭘 할 수 있는지 감을 잡아가는 것 같았다.

        ​

        “모두 처리했습니다.”

        ​

        그리고 그렇게 넘어진 이들은 미아가 직접 처리했다. 죽였다는 건 아니고, 빠르게 재갈을 물리고 꽁꽁 묶어 상자에 꼭꼭 욱여넣었다. 저대로 두면 죽지 않을까 싶긴 한데, 미아가 괜찮다니 상관없겠지.

        ​

        물론 보안을 뚫어주며 이미 효용을 다한 포로도 함께 넣어주었다.

        ​

        그대로 우리는 내부로 향했다. 건물이 돌기둥을 깎아 내부를 만든 형식이라 발소리에 유의하면 소리 없이 움직일 수 있었다.

        ​

        천천히 안으로 향하면서 만나는 이들을 하나씩 쓰러뜨리고 치우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말단들이 머무는 곳을 지나 본격적으로 간부급들이 생활하는 곳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

        “뭐…, 별로 다를 게 없네.”

        ​

        “지상과는 달리 건물을 자유롭게 개축할 수가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

        돌기둥 내부라는 한계 탓인지, 내부는 아래층과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그 덕에 내부를 돌아다니는 것도 쉬웠다.

        ​

        “누구-, 컥.”

        ​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누굴 죽여야 할지 죽이지 말아야 할지를 쉽게 판가름할 수 있었다.

        ​

        “이 사람은 청부 살인을 주로 담당하는 사람입니다.”

        ​

        “이 사람은 납치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

        “강도질과 인질극을 맡는 사람입니다.”

        ​

        미아는 간부들과 자주 얼굴을 트고 다녔다는 말이 허언이 아닌지 만나는 사람마다 척척 구분해냈다. 그녀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그들의 반응으로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다.

        ​

        “미아, 네년이 감히 우리를 배신해!”

        ​

        “언제부터 당신들이 충성심이 그렇게 강했다고.”

        ​

        당연히 간부들은 미아를 볼 때마다 발작했지만, 그녀는 한마디 말로 그들을 깔아뭉개며 망설임 없이 판결을 내렸다.

        ​

        의아한 점은, 그들 중에서 생존을 선고받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

        “그런데, 왜 다들 중죄를 지은 이들밖에 없나요?”

        ​

        그런 의문은 마리아 역시 느낀 모양이었다. 애초에 제국은 법치를 표방하는 국가기도 했으니 마리아의 입장에선 이런 즉결처분도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을 테니, 이 정도면 꽤 오래 참았다고 볼 수 있었다.

        ​

        물론 성국도 교리와 율법에 의거한 법치를 표방했으니 그녀의 의문은 굉장히 합당했다. 실제로 지금 우리는, 합법과 불법을 따지면 불법에 가까운 일을 하고 있기도 했고.

        ​

        하지만, 그게 미아의 개인적 복수를 위해 사람을 죽이는 일을 도와야 한다는 건 아니었다. 나도 한 마디를 얹었다.

        ​

        “굳이 이렇게 하지 않아도, 어차피 이번 일이 끝나면 네 죄에 대한 응분의 대가를 치른 걸로 처리될 거야. 그런데 만약 네 사익을 위해 계속 사람을 죽이라고 하는 거면, 우리도 심사청에 이걸 알릴 수밖에 없어.”

        ​

        미아는 우리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그리고는 능숙하게 입을 틀어막힌 채 제압당한 간부를 넘어가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는 서류를 꺼내 마리아에게 건네주었다.

        ​

        마리아는 그걸 한장 한장 빠르게 넘겨가며 살폈다. 서류를 확인하는 데 있어서는 이미 통달한 그녀였기에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

        “…확실히, 미아의 말대로긴 하네요.”

        ​

        미아는 고개를 한 번 더 끄덕이고는 말했다.

        ​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불법적인 일이 큰돈이 오간다 알지만, 그건 애초에 정상적인 방식으로는 물량을 쳐낼 수 없기에 가격이 오른 거지 이런 장사를 통해서는 벌 수 있는 돈에 한계가 있습니다. 일종의 파이 뺏기 싸움이라고나 할까요.”

        ​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위층을 가리켰다.

        ​

        “결국, 조직 입장에서 돈이 되는 일은 지상에서 벌이는 사업입니다. 이쪽은 물량을 댈 수만 있다면 거래량 자체가 차원이 다르기에 얼마든지 비용이 올라가지요.”

        ​

        “그건 나도 알지.”

        ​

        애초에 장사라는 건 기본적으로 더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할수록 더 많은 돈을 벌기 마련이었다. 명품도 상품 각각은 비싸 보이지만, 결국 그걸 소비해줄 사람이 한정된 탓에 전체 매출에선 통상 브랜드를 이기지 못하기 마련이었다.

        ​

        “그런데, 이런 조직에서 돈이 되는 사업이 주로 누구 손에 들어가겠습니까?”

        ​

        “아.”

        ​

        “아.”

        ​

        마리아도 나도 탄성을 터트렸다.

        ​

        생각해보니 그랬다. 그야 돈이 되는 일은 보스나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가져가겠지. 그리고 그런 이들이 실적을 이유로 더 높은 자리로 승진할 거고. 결국 라인을 타지 못한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이런 일을 맡아야만 한다는 뜻이다.

        ​

        어찌 보면 지독하다고 할 수 있었다.

        ​

        이들이라고 출세욕이 없진 않을 테니, 그럼 다시 보스의 눈에 들기 위해 더 악랄하게, 더 지독하게 그들의 임무를 수행할 테고, 그럴수록 피해자는 늘어나고, 그럼 다시 남겨진 이들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이런 조직에 가입하겠지.

        ​

        악순환의 사이클이 돌아가는 것이다.

        ​

        “씁, 영 개운치가 않은데.”

        ​

        결국, 그 말인즉 보스와 그 측근들이 있는 곳까지 가기 전에는 거의 대부분의 간부가 죽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였다.

        ​

        그렇다고 소란스럽게 바닥을 뚫으면서 올라갈 수도 없었다. 이 일은 비밀스럽게 진행되어야 했다. 못 해도 네 군데 이상의 통로를 확보하기 전에는 소란을 피워서는 안 됐다.

        ​

        아니, 끝까지 그럴 수 없었다. 성국의 기사단이 이곳을 급습하기 위해서는 들켰다는 신호를 줘서는 안 됐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몇 개의 조직을 박살 내고 침묵시키는 게 고작이었다.

        ​

        너무 많은 곳을 이렇게 들쑤실수록 들킬 확률이 올라갔고, 그럴수록 작전이 시작되기 전에 일이 어그러질 확률도 높아졌으니까.

        ​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피해자가 더 늘기 전에 빠르게 의뢰를 달성하는 것밖에 없었다.

        ​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

        마리아가 내 심기를 알아차리곤 격려해주었다. 나는 혀를 한 번 차고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알고는 있는데, 알면서도 당하는 꼴이라 기분이 나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란 말이지.

        ​

        “보스라는 놈을 잡아다 문책하는 수밖에.”

        ​

        다시 방을 나섰다. 일부러 속도를 좀 높였다. 마리아와 미아는 잠자코 날 따라와 주었다. 최대한 빠르게 간부들을 제거해나가며 상층으로 올라갔다.

        ​

        마리아의 말대로, 정말로 위로 올라갈수록 죽일만한 죄목은 없는 이들이 많아졌다. 보스가 묵는다는 층의 바로 아래에서는 처음으로 한 명도 죽지 않는 상황이 벌어졌을 정도였다.

        ​

        그리고, 드디어 보스의 방에 도착했다.

        ​

        우리는 최대한 소리를 죽여 움직였다. 천천히, 한 발짝 한 발짝 주의하며 움직였다.

        ​

        그리고, 마침내 보스의 방 앞에 도착했다. 한 층 전체를 자신의 방으로 사용하는 사람답게, 방의 구조가 아래층과는 달랐다.

        ​

        “다들 준비해.”

        ​

        내 말에 마리아는 배리어 마법을 펼쳤다. 물론, 이번 마법은 마리아만을 보호했다. 아직 미아는 완전히 믿기엔 미심쩍어 마리아와 둘만 같이 둘 순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같이 들어가기엔, 이번엔 굳이 기다릴 것 없이 바로 돌입해 싸울 작정이었다.

        ​

        “작전은 숙지했지?”

        ​

        “물론이에요.”

        ​

        마리아는 두 가지의 마법을 준비했다. 라이트와 윈드였다. 지난번 라이트를 활용한 섬광탄 효과가 굉장히 인상적이었기에 이번에도 써먹기로 했다.

        ​

        “내가 셋 세면, 바로 윈드로 문을 부수고 라이트를 터트려.”

        ​

        마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

        “셋, 둘, 하나!”

        ​

        “윈드!”

        ​

        우지끈!

        ​

        바람이 밀어닥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부서져 나갔다.

        ​

        “라이트!”

        ​

        그와 동시에 빛이 터져나갔다. 눈을 감고 있던 나는, 눈꺼풀 너머로 하얀빛이 비친 순간 달려 나갔다. 검을 뽑아 들고 방으로 돌입해 보스의 위치를 눈으로 살폈다.

        ​

        “뭐야…?”

        ​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

        그 순간,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나를 찾나?”

        ​

        곧장 뒤를 돌아선 내 눈에 보인 것은, 미아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는 얼굴을 가린 남자였다.

        ​

        마리아는 경악 서린 눈동자로 내게 소리쳤다.

        ​

        “빌…! 이 사람, 마법사야!”

        ​

        내게는 그것이 계획이 단단히 틀어졌다는 말로 들렸다.

       

    등록된 마지막 회차입니다


           


I Wished for Romance, but it Turned Out to be a Romance Fantasy

I Wished for Romance, but it Turned Out to be a Romance Fantasy

낭만 판타지를 꿈꿨는데 로맨스 판타지였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dreamed of a life filled with romance¹ and romanticism, but I didn’t dream of a romance fantasy… —- ¹ The “Romance” here means a feeling or atmosphere of something new, special and exciting, e.g., a hero’s adven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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