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9


    ​
    ​
    ​
    푸하악 – !
    ​
    ​
    “..!”
    ​
    ​
    그러다가 우연히 보고 말았다. 날 선 검이 리안의 배를 뚫고, 무자비하게 상체를 갈라버리는 것을. 
    ​
    ​
    아이리스는 이성을 잃고 곧바로 연무장 안으로 뛰어 들어가려 했다.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그랬을 것이다.
    ​
    ​
    “괴물..괴물!”
    ​
    ​
    겁에 질린 노예가 “괴물”이라고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아이리스의 발이 족쇄에 묶이기라도 한 것처럼 멈춰버렸다.
    ​
    ​
    지이잉 -.
    ​
    ​
    귓가에 이명이 들리고 시야가 하얗게 물들었다. 
    ​
    ​
    이렇게 뛰어난 실험체는 처음이야, 괴물이 따로 없군!
    꺼져 너 같은 괴물이랑 같이 있으면 나도 죽게 된다고!
    어,어떻게 살아있는 거야? 저리가! 오지마! 이,이! 괴물!
    괴물!
    괴물!
    괴물!
    ​
    ​
    여자인지 남자인지 아이인지 어른인지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
    ​
    너는 이 세상에서 혼자일 뿐이야.
    너는 그 누구에게도 구원받을 수 없어.
    너는 괴물 -, 괴물이야.
    너는 리안을 이용할 뿐이야, 그렇지?
    너는 그저 죽기 싫은 거잖아.
    너는 검을 들 자격 따위 없어.
   
    너는 너는 너는 -…
    ​
    ​
    아이리스는 어느새 몸을 웅크린 채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삑,삐익 거리는 소음 속에서 아이리스가 정신을 차린 건 조금 전보다 진해진 혈향 때문이었다.
    ​
    ​
    “아…”
    ​
    ​
    아이리스가 멍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시선의 끝에 보인 건 피범벅이 된 채 어딘가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리안의 모습이었다. 아이리스는 덜덜 떨리는 몸에 힘을 줘 겨우 일어났다. 
    ​
    ​
    아이리스는 살기 위해 기척을 죽이는 법을 알고 있었다. 강자들에게 통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겁을 집어먹은 노예들의 시선을 피할 정도는 되었다.
    ​
    ​
    리안이 어느 한 노예의 방에 들어가서 깔끔한 모습으로 빠져나오는 걸 본 아이리스는 충격으로 입을 헤 벌린 채 굳어버렸다.
    ​
    ​
    ‘언제..부터?’
    ​
    ​
    리안의 곁은 항상 안온하고 따스하다. 마치 지금까지 겪었던 잔혹한 경험이 전부 꿈인 것처럼.
    ​
    ​
    기억이라는 걸 가질 때부터 잔혹한 세계에서 장난감처럼 다뤄지기만 했던 아이리스에겐 리안은 처음 가져보는 안식처였다.
    ​
    ​
    여느 아이들이 그러하듯, 아이리스는 너무나 당연하게 리안의 품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멍청한 생각이었다.
    ​
    ​
    항상 다정하게 자신을 안아주던 품은 그녀가 모르는 곳에서 다치고, 그녀가 모르는 사이 다친 흔적을 숨기고 있었다. 그것도 너무나 익숙하게.
    ​
    ​
    아이리스는 멍한 얼굴로 리안을 바라보다가, 리안이 자신 쪽으로 가까워지자 도망치듯 방으로 돌아왔다. 
    ​
    ​
    그리고 현재.
    ​
    ​
    아이리스는 조금 전에 봤던 장면을 계속해서 떠올리고 있었다.
    ​
    ​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
    ​
    나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나는 괴물이니까.
    나는 쓸모없는 존재니까.
    ​
    ​
    누군가가 언제부터 그녀에게 속삭였는지 모를 말을 아이리스는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사실을 부정할 수 있을 정도의 정신력이 아이리스에겐 남아있지 않았다.
    ​
    ​
    “아이리스, 그….비앙카씨네 집에 엄청 무서운 친구가 있거든? 막 이렇게 물고 그래. 근데 그 친구가 입마개를 안 해서 아이리스가 가면 물릴지도 몰라. 그러니까 -..”
    ​
    ​
    아이리스는 리안의 말을 가만히 듣다가 조용히 질문했다.
    ​
    ​
    “어떻게…알아?”
    “응?”
    “무는 거..어떻게 알아?”
    ​
    ​
    비앙카의 집에 무언가를 물어뜯는 존재가 있다는 걸 어떻게 알고 있으며, 물릴지도 모른다는 걸 어떻게 안단 말인가? 물려본 사람이 아니라면 알 수 없는 사실이었다.
    ​
   
   “아,그게…”
    ​
    ​
    어물거리며 말끝을 흐리는 행동에 아이리스는 다른 이야기를 입에 담았다.
    ​
    ​
    “오늘..왜 늦었,어?”
    ​
    ​
    아이리스의 떨리는 시선이 리안의 얼굴을 향했다. 찰나의 순간 리안의 얼굴에 당황이 스쳐 지나간다. 순식간에 지워진 감정이었지만 아이리스는 놓치지 않았다.
    ​
    ​
    “아 -..그게 올라오는 길에 다른 검투사들이 이웃 사이니까 인사나 하자길래. 그 있잖아, 전에 비앙카씨가 방문하기 전에 찾아온 다른 검투사.”
    ​
    ​
   리안은 자신이 크게 다쳐 피범벅이 되었다던가, 옷이 엉망이 되어 새로 갈아입었다거나 하는 사실은 쏙 빼놓은 채 다른말만 줄줄 늘어놓았다.
    ​
    아이리스는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목 언저리에서 울음이 맴돌았다. 
    ​
    ​
    제 안식처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에 대한 무력감, 그리고 모든 사실을 숨기기만 하는 리안에 대한 서운함. 
    ​
    ​
    온갖 감정이 아이리스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그녀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를 혼란 속에서 결국 도망을 선택했다.
    ​
    ​
    “괜찮..아?”
    “응? 당연히 괜찮지.”
    ​
    ​
    리안의 대답에 아이리스는 맹목적인 아이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판단은 중요하지 않았다. 리안이 괜찮다고 하면 괜찮은 것이다. 그것이 그녀의 도망 방법이었다.
    ​
    ​
    ***
    ​
    ​
    내가 잘 설득한 덕분인지 이후 아이리스의 분위기는 원래대로 돌아왔다. 다만 말수가 예전보다 줄긴 했다. 물론 질문을 하거나 말을 걸면 꼬박꼬박 대답해주고 있지만 먼저 말을 거는 경우는 현저히 적어졌다.
    ​
    ​
    ‘여기 생각보다 살기 편하지 않나?’
    ​
    ​
    나는 어느새 투기장 생활에 익숙해졌다. 워낙 많은 노예가 있어서 그런지 경기가 자주 잡히지 않았다. 남는 시간에 하는 건 뒹굴면서 놀거나 맛있는 걸 먹는 것 정도였다.
    ​
    ​
    보통 검투사 노예들은 뭘 하나 기웃거려봤는데, 다들 수련하느라 바빠 보였다. 나는 굳이 그럴 필요 없었기에 침대에 누워 허벅지에 칼을 꽂아놨다. 
    ​
    ​
    처음에는 배에 꽂았는데…얼마지나지 않아 마검이 질색을 하며 빼달라고 애원했다. 꽂혀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장기들이 한 소리한 듯했다.
    ​
    ​
    중간에 아이리스도 경기를 두 번 정도 뛰었다. 깔끔한 솜씨로 가볍게 상대를 썰어버렸다. 쥐수인을 통해 이야기를 들어보니 몸값을 높이기 위해 압도할 수 있는 마물만 매칭한다는 것 같았다.
    ​
    ​
    그렇게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기를 며칠, 새로운 경기가 잡혔다.
    ​
    ​
    “죽지 않으려면 열심히 해야 할 거다.”
    ​
    ​
    쥐수인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다. 무슨 의미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속으로 가르간도아를 불렀다.
    ​
    ​
    그러자 손등에서 핏물이 뿜어져 나왔다. 마치 마법으로 물을 조종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선을 이루며 흘러나온 핏물은 이내 내 손에 모여들었다.
    ​
    ​
    손안에 검붉은 실루엣이 쥐어진 순간, 마치 물기가 흘러내리는 것처럼 핏물이 아래로 쭉 흘러내리며 마검이 나타났다. 
    ​
    ​
    빚덩이에서 마검으로 뿅하고 변했던 걸 떠올려보면 등장이 꽤 화려해졌다는 걸 알 수 있다. 
    ​
    ​
    [ 크흐, 이거지. 위대한 나를 존경하라! 더 두려움에 찬 시선으로 보라! ]
    ​
    ​
    가르간도아는…아무래도 관종인 듯했다. 진중하던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
    ​
    ‘시끄럽긴 하지만 이쪽이 더 낫긴하지.’
    ​
    ​
    피의 축제를 열자는 헛소리보단 어떻게 해야 더 멋지게 등장할지에 대해 의논하는 게 더 재미있었다. 
    ​
    ​
    스릉.
    ​
    ​
    마검은 화려한 게임 아이템같은 외형으로 변한 상태였다. 살짝씩 움직일 때마다 검붉은 빛이 도는 검신은 감탄이 나올 정도로 아름다웠다. 
    ​
    ​
    [ 흠, 좀 더 힘을 기르면 파트너의 옷도 만들어야겠군. ]
    ​
    ​
    어떻게 해야 더 멋지게 등장할 것인가에 대해 의논하다가 신이 난 마검은 어느 순간부터 나를 파트너라고 불렀다. 계약자나 파트너나 그게 그거처럼 들리지만, 마검에겐 파트너 쪽이 더 친숙한 의미인 듯했다.
    ​
    ​
    “옷은 왜?”
   [ 멋지지 않잖아! ]
    ​
    ​
    확실히 마검에 비해 내가 입고 있는 옷은 밋밋한 편이었다. 
    ​
    ​
    “이상한 디자인으로 만들면 저녁에 밥 안 줄 거야.”
    [ 흐흥, 이 가르간도아님의 미적 능력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최강”이다. ]
    ​
    ​
    도대체 저런 말은 어디서 배운 걸까? 라는 생각을 하는 사이 촤르륵 소리를 내며 올라가는 철창을 바라보았다.
    ​
    ​
    “이번 경기는 무려! 검투사간의 싸움입니다!”
    “…?”
    ​
    ​
    평소처럼 마물이랑 싸울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았다. 투기장 가운데로 걸어가다 말고 진행자를 올려다보았다. 진행자는 쓸데없는 말을 쭉 늘어놓더니 내가 상대해야 하는 사람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
    ​
    “ -…무수히 많은 업적을 남겼던 천재 중의 천재! 비앙카! ”
    “크아아악!”
   “끼야아아악!”
   “휘이익 -.”
    “우오오오오오!”
    ​
    ​
    땅이 울릴 정도의 환호 소리가 투기장 안에 울려 퍼졌다. 나는 마검을 든 채 볼을 긁적거렸다.
    ​
    ​
    ‘끙, 아는 사람이라 불편한데…’
    ​
    ​
    그리 생각하며 막 철창이 열린 곳을 바라보았다. 비앙카가 제 몸매를 강조하듯 엉덩이를 살랑거리며 투기장으로 나오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랑 비교하면 확실히 상태가 좋아 보였다.
    ​
    ​
    ‘다행히 괜찮아지셨나 보네.’
    ​
    ​
    그리 생각하며 반가움에 비앙카에게 웃어 보였다. 당당한 얼굴로 투기장 안으로 걸어들어오던 비앙카가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발걸음을 뚝 하고 멈췄다.
    ​
    ​
    ‘어? 비앙카씨도 몰랐던 건가?’
    ​
    ​
    나처럼 상대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로 경기에 나온 거라면 당황할 만했다. 동질감에 손이라도 흔들어주려는 순간, 비앙카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는 게 보였다.
    ​
    ​
    ***
    ​
    ​
    “미,미친 저….저 괴물이 왜 여기 있어?”
    ​
    ​
    비앙카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몸을 작게 떨기 시작했다.
    ​
    ​
    ‘간단한 시합이라며!’
    ​
    ​
    ​
    ​
    ​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익명님 후원감사합니다! 연재 열심히 하겠습니다 ‘ㅂ’9
Ilham Senjaya님! 오늘도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3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푸하악 – !

“..!”

그러다가 우연히 보고 말았다. 날 선 검이 리안의 배를 뚫고, 무자비하게 상체를 갈라버리는 것을.

아이리스는 이성을 잃고 곧바로 연무장 안으로 뛰어 들어가려 했다.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그랬을 것이다.

“괴물..괴물!”

겁에 질린 노예가 “괴물”이라고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아이리스의 발이 족쇄에 묶이기라도 한 것처럼 멈춰버렸다.

지이잉 -.

귓가에 이명이 들리고 시야가 하얗게 물들었다.

이렇게 뛰어난 실험체는 처음이야, 괴물이 따로 없군!

꺼져 너 같은 괴물이랑 같이 있으면 나도 죽게 된다고!

어,어떻게 살아있는 거야? 저리가! 오지마! 이,이! 괴물!

괴물!
괴물!

괴물!
괴물!

괴물!
괴물!


여자인지 남자인지 아이인지 어른인지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너는 이 세상에서 혼자일 뿐이야.

너는 그 누구에게도 구원받을 수 없어.

너는 괴물 -, 괴물이야.

너는 리안을 이용할 뿐이야, 그렇지?

너는 그저 죽기 싫은 거잖아.

너는 검을 들 자격 따위 없어.

너는 너는 너는 -…
너는 너는 너는 -…

아이리스는 어느새 몸을 웅크린 채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삑,삐익 거리는 소음 속에서 아이리스가 정신을 차린 건 조금 전보다 진해진 혈향 때문이었다.

“아…”

아이리스가 멍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시선의 끝에 보인 건 피범벅이 된 채 어딘가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리안의 모습이었다. 아이리스는 덜덜 떨리는 몸에 힘을 줘 겨우 일어났다.

아이리스는 살기 위해 기척을 죽이는 법을 알고 있었다. 강자들에게 통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겁을 집어먹은 노예들의 시선을 피할 정도는 되었다.

리안이 어느 한 노예의 방에 들어가서 깔끔한 모습으로 빠져나오는 걸 본 아이리스는 충격으로 입을 헤 벌린 채 굳어버렸다.

‘언제..부터?’

리안의 곁은 항상 안온하고 따스하다. 마치 지금까지 겪었던 잔혹한 경험이 전부 꿈인 것처럼.

기억이라는 걸 가질 때부터 잔혹한 세계에서 장난감처럼 다뤄지기만 했던 아이리스에겐 리안은 처음 가져보는 안식처였다.

여느 아이들이 그러하듯, 아이리스는 너무나 당연하게 리안의 품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멍청한 생각이었다.

항상 다정하게 자신을 안아주던 품은 그녀가 모르는 곳에서 다치고, 그녀가 모르는 사이 다친 흔적을 숨기고 있었다. 그것도 너무나 익숙하게.

아이리스는 멍한 얼굴로 리안을 바라보다가, 리안이 자신 쪽으로 가까워지자 도망치듯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현재.

아이리스는 조금 전에 봤던 장면을 계속해서 떠올리고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나는 괴물이니까.

나는 쓸모없는 존재니까.

누군가가 언제부터 그녀에게 속삭였는지 모를 말을 아이리스는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사실을 부정할 수 있을 정도의 정신력이 아이리스에겐 남아있지 않았다.

“아이리스, 그….비앙카씨네 집에 엄청 무서운 친구가 있거든? 막 이렇게 물고 그래. 근데 그 친구가 입마개를 안 해서 아이리스가 가면 물릴지도 몰라. 그러니까 -..”

아이리스는 리안의 말을 가만히 듣다가 조용히 질문했다.

“어떻게…알아?”

“응?”

“무는 거..어떻게 알아?”

비앙카의 집에 무언가를 물어뜯는 존재가 있다는 걸 어떻게 알고 있으며, 물릴지도 모른다는 걸 어떻게 안단 말인가? 물려본 사람이 아니라면 알 수 없는 사실이었다.

“아,그게…”

어물거리며 말끝을 흐리는 행동에 아이리스는 다른 이야기를 입에 담았다.

“오늘..왜 늦었,어?”

아이리스의 떨리는 시선이 리안의 얼굴을 향했다. 찰나의 순간 리안의 얼굴에 당황이 스쳐 지나간다. 순식간에 지워진 감정이었지만 아이리스는 놓치지 않았다.

“아 -..그게 올라오는 길에 다른 검투사들이 이웃 사이니까 인사나 하자길래. 그 있잖아, 전에 비앙카씨가 방문하기 전에 찾아온 다른 검투사.”

리안은 자신이 크게 다쳐 피범벅이 되었다던가, 옷이 엉망이 되어 새로 갈아입었다거나 하는 사실은 쏙 빼놓은 채 다른말만 줄줄 늘어놓았다.

아이리스는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목 언저리에서 울음이 맴돌았다.

제 안식처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에 대한 무력감, 그리고 모든 사실을 숨기기만 하는 리안에 대한 서운함.

온갖 감정이 아이리스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그녀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를 혼란 속에서 결국 도망을 선택했다.

“괜찮..아?”

“응? 당연히 괜찮지.”

리안의 대답에 아이리스는 맹목적인 아이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판단은 중요하지 않았다. 리안이 괜찮다고 하면 괜찮은 것이다. 그것이 그녀의 도망 방법이었다.

***

내가 잘 설득한 덕분인지 이후 아이리스의 분위기는 원래대로 돌아왔다. 다만 말수가 예전보다 줄긴 했다. 물론 질문을 하거나 말을 걸면 꼬박꼬박 대답해주고 있지만 먼저 말을 거는 경우는 현저히 적어졌다.

‘여기 생각보다 살기 편하지 않나?’

나는 어느새 투기장 생활에 익숙해졌다. 워낙 많은 노예가 있어서 그런지 경기가 자주 잡히지 않았다. 남는 시간에 하는 건 뒹굴면서 놀거나 맛있는 걸 먹는 것 정도였다.

보통 검투사 노예들은 뭘 하나 기웃거려봤는데, 다들 수련하느라 바빠 보였다. 나는 굳이 그럴 필요 없었기에 침대에 누워 허벅지에 칼을 꽂아놨다.

처음에는 배에 꽂았는데…얼마지나지 않아 마검이 질색을 하며 빼달라고 애원했다. 꽂혀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장기들이 한 소리한 듯했다.

중간에 아이리스도 경기를 두 번 정도 뛰었다. 깔끔한 솜씨로 가볍게 상대를 썰어버렸다. 쥐수인을 통해 이야기를 들어보니 몸값을 높이기 위해 압도할 수 있는 마물만 매칭한다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기를 며칠, 새로운 경기가 잡혔다.

“죽지 않으려면 열심히 해야 할 거다.”

쥐수인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다. 무슨 의미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속으로 가르간도아를 불렀다.

그러자 손등에서 핏물이 뿜어져 나왔다. 마치 마법으로 물을 조종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선을 이루며 흘러나온 핏물은 이내 내 손에 모여들었다.

손안에 검붉은 실루엣이 쥐어진 순간, 마치 물기가 흘러내리는 것처럼 핏물이 아래로 쭉 흘러내리며 마검이 나타났다.

빚덩이에서 마검으로 뿅하고 변했던 걸 떠올려보면 등장이 꽤 화려해졌다는 걸 알 수 있다.

[ 크흐, 이거지. 위대한 나를 존경하라! 더 두려움에 찬 시선으로 보라! ]

가르간도아는…아무래도 관종인 듯했다. 진중하던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시끄럽긴 하지만 이쪽이 더 낫긴하지.’

피의 축제를 열자는 헛소리보단 어떻게 해야 더 멋지게 등장할지에 대해 의논하는 게 더 재미있었다.

스릉.

마검은 화려한 게임 아이템같은 외형으로 변한 상태였다. 살짝씩 움직일 때마다 검붉은 빛이 도는 검신은 감탄이 나올 정도로 아름다웠다.

[ 흠, 좀 더 힘을 기르면 파트너의 옷도 만들어야겠군. ]

어떻게 해야 더 멋지게 등장할 것인가에 대해 의논하다가 신이 난 마검은 어느 순간부터 나를 파트너라고 불렀다. 계약자나 파트너나 그게 그거처럼 들리지만, 마검에겐 파트너 쪽이 더 친숙한 의미인 듯했다.

“옷은 왜?”

[ 멋지지 않잖아! ]

확실히 마검에 비해 내가 입고 있는 옷은 밋밋한 편이었다.

“이상한 디자인으로 만들면 저녁에 밥 안 줄 거야.”

[ 흐흥, 이 가르간도아님의 미적 능력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최강”이다. ]

도대체 저런 말은 어디서 배운 걸까? 라는 생각을 하는 사이 촤르륵 소리를 내며 올라가는 철창을 바라보았다.

“이번 경기는 무려! 검투사간의 싸움입니다!”

“…?”

평소처럼 마물이랑 싸울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았다. 투기장 가운데로 걸어가다 말고 진행자를 올려다보았다. 진행자는 쓸데없는 말을 쭉 늘어놓더니 내가 상대해야 하는 사람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 -…무수히 많은 업적을 남겼던 천재 중의 천재! 비앙카! ”

“크아아악!”

“끼야아아악!”

“휘이익 -.”

“우오오오오오!”

땅이 울릴 정도의 환호 소리가 투기장 안에 울려 퍼졌다. 나는 마검을 든 채 볼을 긁적거렸다.

‘끙, 아는 사람이라 불편한데…’

그리 생각하며 막 철창이 열린 곳을 바라보았다. 비앙카가 제 몸매를 강조하듯 엉덩이를 살랑거리며 투기장으로 나오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랑 비교하면 확실히 상태가 좋아 보였다.

‘다행히 괜찮아지셨나 보네.’

그리 생각하며 반가움에 비앙카에게 웃어 보였다. 당당한 얼굴로 투기장 안으로 걸어들어오던 비앙카가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발걸음을 뚝 하고 멈췄다.

‘어? 비앙카씨도 몰랐던 건가?’

나처럼 상대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로 경기에 나온 거라면 당황할 만했다. 동질감에 손이라도 흔들어주려는 순간, 비앙카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는 게 보였다.

***

“미,미친 저….저 괴물이 왜 여기 있어?”

비앙카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몸을 작게 떨기 시작했다.

‘간단한 시합이라며!’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