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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9

       드웨인 대주교는 창문을 내다보았다. 보고를 마친 사제가 고개를 숙였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이미 뱀 교단 측의 원로회와 이야기가 끝난 상황입니다. 라의 교단은 그들의 국교화를 지지합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반대 세력과 마찰이…"

       "필요한 희생입니다. 뱀 교단의 원로회가 우리 쪽으로 돌아섰을 때 얻는 이득이 더 큽니다. 추기경과 그녀를 지지하는 한 명의 대주교를 견제하는데 분명 도움이 되겠지요."

         

       여기서 의논할만한 문제가 아니다. 어차피 사전에 이야기되었던 일.

         

       드웨인은 고개를 돌렸다. 사제를 내려다보았다.

         

       "제5 이단심문소 측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디모나 이단심판관 홀로 감당할 수 없는 업무를 떠안긴 상태입니다. 각종 명분을 넘겨 대금 결제 건 또한 명의를 넘겼으며, 쌓인 액수만 하더라도 억이 넘습니다."

       "좋습니다. 에일린 사제님."

         

       드웨인은 과거를 기억했다. 전의 제5 이단심문소의 이단심판관 벨슈타인 또한 이렇게 끌어내렸었다.

         

       하지도 않은 일을 책임지게 하고, 어려운 업무를 모두 떠넘기며, 압박감을 줘 사람을 망가트린다.

         

       결국 모든 책임은 디모나 이단심판관이 떠맡게 되리라. 그녀가 추락하면 그다음에 자하드를 무너트려도 된다.

       어차피 시간문제일 뿐.

         

       "그래도 놀랍군요…디모나 이단심판관. 한 달이 넘도록 그 살인적인 업무량을 버티고 있을 줄이야."

       "10명의 서기가 동시에 일을 처리하는 수준입니다. 라다토크의 도움을 받았다고 해도…인간의 수준이 아닙니다."

       "그녀는 유능합니다. 그렇기에 그녀를 포섭하려 했던 것이지요. 그 일이 물 건너갔지만, 여전히 탐나는 인재인 것은 틀림없군요."

         

       아쉽다면 아쉽다. 하지만 드웨인은 결정을 번복하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았다.

       대놓고 이빨을 드러냈던 이다. 짓밟아도 상관없겠지.

         

       "자하드 이단심문관은 어떻습니까?"

       "어제부로 견습 성기사에서 벗어났다고 들었습니다."

       "그를 지켜줄 울타리마저 사라졌군요. 아무도 해낸 적 없던 임무들을 제게 가져오십시오. 직접 골라 교황청의 이름으로 제5 이단심문소에 넣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드웨인 대주교님. 모든 것에 라의 의지가 깃들…"

         

       똑똑.

         

       누군가 문을 노크했다. 드웨인은 인상을 썼다. 분명 방해하지 말라고 말했을 텐데.

         

       "무슨 일입니까?"

       "드, 드웨인 대주교님. 죄, 죄송합니다. 급히 말씀드릴 부분이 있어서…"

         

       비서로 채택되었던 사제가 서류를 안고 황급히 들어왔다. 그와 함께 있던 사제를 보고 멈춰 섰다.

         

       "어어…"

       "그는 신경 쓰지 말고 보고하십시오."

       "아, 네! 다름이 아니라…"

         

       서류가 우르르 쏟아졌다. 허둥지둥 주워담던 사제가 서류 하나를 들어 올렸다.

         

       "제, 제5 이단심문소 쪽으로 청구했던 대금인 1억 2000만 달란트가 전부 결제되었습니다."

       "…뭐라고 했습니까?"

       "제, 제5 이단심문소 쪽으로 청구했던…"

         

       콰아아아앙!

         

       내리친 책상이 반으로 쪼개졌다. 드웨인이 다시 한 번 물었다.

         

       "정확히…말해주시겠습니까?"

       "1, 1억 2000만 달란트가 전부…"

         

       비서가 눈을 찔끔 감았다.

         

       "한 푼도 남김없이…입금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 익명의 기부자가 있었다고…"

         

       익명의 기부자?

         

       드웨인의 표정이 굳었다. 대체 왜? 누가 무슨 이유로?

         

       제5 이단심문소의 발자취는 전부 확인하고 있다. 그런 그들이 특출나게 눈에 띄는 짓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그런데 그들을 후원한다고? 저물어가는 해를? 다른 이단심문소도 아닌 제5 이단심문소를?

         

       "익명의 기부자는…누구입니까?"

       "그, 그건 저희도 알아낼 수가 없는…"

       "추적하세요. 당장."

         

       누구란 말인가.

       자신이 설계했던 판에 재를 뿌린 건?

         

         

         

         

       . . .

         

         

         

         

       디모나가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라다토크를 바라보았다.

       라다토크가 디모나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척하고 싼 맛에 결제한 선글라스를 썼다. 눈앞에 있는 건 이 세계의 백화점이나 다름없는 '블랙 마켓(market)'.

         

       "자. 그럼 어디…"

         

       디모나가 히죽 웃었다.

         

       "쇼핑해볼까요!"

       "저, 그런데 뱀 교단 측은…"

       "에이! 심문관! 그건 신경 꺼요! 교황청이 알아서 하겠죠! 우리는 지금 돈 쓰러 나온 거라고요! 다른 걸 생각하면 진짜 사치! 안 그래요? 자하드?"

       "돈이란 쓸 수 있기에 가치가 있는 법."

         

       나는 디모나와 미소를 교환했다.

         

       "대금 결제도 끝났겠다! 싹 털어버리죠! 심판관님!"

       "아주 마음에 들어요!"

         

       우리는 블랙 마켓으로 돌진했다. 디모나는 거침없었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다!"

       "예, 예? 소, 손님? 장난이 아니라 진담…"

       "제 말이 장난 같아요?"

         

       지폐로 뺨을 가볍게 맞은 점원이 고개를 깊이 숙였다.

         

       "감사합니다! 손님!"

       "짜, 짜릿해!"

         

       디모나가 헉헉거렸다. 훈련용 허수아비부터 시작해, 복지 시설을 싹 다 갈아치울 것처럼 물건들을 사들였다.

         

       "으으으으으!! 이 맛에 다들 돈, 돈 하는 거구나! 자, 자하드! 저 약속했던 대로 술 하나만 사도 돼요?"

       "마음대로 사도 된다니까요?"

       "저, 정말이죠? 그, 그러면 저 진짜 비싼 거 살 거예요?"

         

       디모나가 십만 달란트 짜리 술병 하나를 안고 돌아왔다.

         

       "명주…십만 달란트 짜리…헤헤헤…"

         

       불쌍해서 백만 달란트 짜리 하나 사줬다.

       디모나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눈을 깜빡이다가 백만 달란트 짜리 술병을 끌어안고 울었다.

         

       "흐아아아앙…저 여기서 죽어도 될 거 같아요…"

       "뚜껑도 안 땄는데요?"

       "뚜껑 따고 죽을래요…흐아아아앙…."

         

       라다토크가 헛기침했다.

         

       "형제님…실례가 안 된다면 혹시…"

       "곤약 젤리 말이죠?"

         

       커다란 걸로 세 통을 안겨주었다. 라다토크가 필사적으로 올라가는 입꼬리를 내렸다.

         

       "형제님. 감사합니다."

         

       디모나가 마차 세 대 분량의 짐을 실었다. 물건들의 수량을 싹 다 체크했다.

         

       "이 정도 양이면 식단도 다시 바꿀 수 있을 거 같아요."

       "드디어 반찬에 고기가 추가되는 건가요?"

       "원래도 있었잖아요. 질 낮은 고기라서 그렇지. 하지만 이제는 영양가가 풍만한 음식들로 가득 차겠죠!"

         

       좋은 소식과는 달리, 디모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아쉽네요. 일단 급한 불은 죄다 껐지만, 고질적인 문제가 있어요. 앞으로 드웨인이 이쪽으로 청구할 금액들은 어떻게 처리하는 게 좋을까요?"

       "그게 무슨 소리에요?"

       "네? 아, 부담 주려는 건 아니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자하드. 당신에게는 이미 받을 만큼 받았으니, 당신은 앞으로 받을 건만 생각하면 돼요. 절 믿으세요."

       "아니, 그 소리가 아니라."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달마다 2억씩 줄 예정이었는데?"

       "…에?"

         

       디모나가 굳었다. 나는 계산을 다시 했다.

         

       달에 벌어들이는 양은 총 대략 5억. 그 중 2억을 매달 이단심문소에 투자할 계획이었다. 나머지 2억은 내 계좌로 들어가고, 나머지 1억은 따로 쓸 곳이 있었으니.

         

       "다다다다다달에 2억이요…?"

       "앞으로 대금 걱정은 하지 마세요."

         

       나는 보란 듯이 생색냈다.

         

       "디모나 이단심판관님에게는…제가 있잖아요?"

       "……"

         

       디모나가 승천했다. 영혼이 떠나간 것처럼 픽 쓰러졌다.

         

       "심판관님?! 심판관님?!!"

       "내버려둬요. 라다토크. 웃고 있잖아요. 호상이네."

         

       그건 그렇고 이제 견습 딱지도 뗐으니, 바로 드웨인에게 견제가 들어오려나.

         

       …아닌가. 일단 급한 불은 먼저 끄겠지.

         

       뱀 교단의 국교화. 그건 크나큰 문제였다. 자잘한 일보다는 일단 그곳에 치중하겠지.

       어떻게 되려나. 그러고 보니 이자벨라는 어떻게 되었을까. 사도를 따라갔다고는 들었는데…

         

       잘 지내고 있겠지?

         

         

         

         

       . . .

         

         

         

         

       뱀 교단의 성화가 피어올랐다. 검은 불을 뒤덮은 옅은 초록빛에 다섯 개의 가면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이 끝나가는군."

       "이제는 뱀 교단 또한 13 교단의 일좌를 맡게 되었다."

       "모두 수고했네. 어려운 일이었어."

       "나가의 뜻을 퍼트리는데 이제 아무런 장애물이 없다."

       "하지만 일을 마무리하기는 해야겠지."

         

       원로회.

         

       뱀 교단을 받히는 다섯 개의 늙은 기둥.

         

       그들의 시선이 모였다. 원형의 원탁 가운데에는 나가의 선택을 받은 사도가 서 있었다.

       어린 몸. 검은 머리. 자주색을 띠는 위험해 보이는 눈동자.

         

       "에스텔. 나가의 부름을 받으라."

       "제국 북부를 돌며, 나가의 가르침이 빛 아래 기어나왔음을 알려라."

       "사절단을 꾸려주마. 에스텔."

       "정예를 붙여주마. 원하는 이들 또한 내주겠다."

       "필요하다면 성물 또한 약속하겠다."

         

       에스텔이 입을 열었다.

         

       "필요 없어요. 제가 원하는 건 하나뿐."

         

       기어오르는 뱀처럼 에스텔이 원로회를 올려다보았다. 입을 열었다.

         

       "사절단에 검은 비늘을 내어주세요."

         

       원로회가 술렁거렸다.

         

       "검은 비늘을?"

       "이자벨라를 내어달라는 소리인가?"

       "하필이면 그 쓸모없는 것들을?"

       "멍청한 녀석들이다. 감싸줄 필요도 없는 것들이지."

       "에스텔. 말했을 텐데. 쓸모없는 것들과 엮이지 말라고."

       "누구와 어울리든, 그건 제가 알아서 할 문제에요."

         

       에스텔이 단언했다.

         

       "이자벨라는 제가 데리고 갈게요. 가장 먼저 들릴 곳은 라의 교단. 이의는 받지 않겠습니다."

         

       한동안 논쟁이 오갔다. 결국 원로회는 수긍했다.

         

       "위험한 여정이 될 것이다."

       "다른 교단의 반발 또한 사게 되겠지."

       "우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들이 넘쳐날 터."

       "라의 교단은 우리에게 긍정적이다. 허나 이스칸달과 이시스를 조심하도록."

       "에스텔. 살아 돌아와라. 우리는 너를 언제까지나 기다리고 있겠다."

       "저는 죽지 않아요."

         

       에스텔이 어둠 속으로 잠겨 들었다.

         

       "저는 나가의 비늘이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개인적으로 이자벨라 좋아합니다
    사실 뱀 교단을 좋아해요 이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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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ladin Monopolizes the Sacred Relics

The Paladin Monopolizes the Sacred Relics

성기사가 성물을 독차지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 world where magic reigns supreme and the influence of gods wanes, a young boy finds himself unexpectedly thrust into the role of an acolyte in the declining Sun God’s Temple. Blessed with the divine stigma of the Sun God, he must navigate the temple’s internal politics, the hostility of his fellow acolytes, and the challenges that come with his newfound powers.

As he delves deeper into the mysteries of the temple, he discovers hidden secrets and powerful artifacts that could change the course of his destiny. With the guidance of an enigmatic senior acolyte and the unwavering faith in his own abilities, he sets out to prove his worth and carve his own path in a world that has all but forgotten the true power of the div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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