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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9

    바란이 생디엄의 목을 잘라내자, 수많은 마물들이 한순간 자신들을 조종하던 실이 끊긴 듯 멈춘다.

     

    침식이 깊이 이루어졌던 마물들은 죽어나갔고, 그리 깊이 침식 당하지 않은 마물들은 제정신을 차리며 도망갔다.

     

     

    우리의 우두머리조는 잠시 한숨을 돌렸다. 아담 형에게 가기 전, 우리의 상태를 파악해야했다.

     

     

    “바란님, 해내셨군요.”

     

    숀과 잭슨이 말을 몰며 달려온다.

     

    하나 둘 생디엄의 시체 근처로 몰려들었다.

     

     

    “바란, 수고했어.”

     

    첫 번째 턱을 넘었다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나는 바란에게 말했다.

     

    바란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이걸로 59마리 째네요. 부단장 덕분입니다.”

     

     

    나는 다시 주위를 살폈다.

     

    신병인 번즈까지도 살아남아 집결했다.

     

    번즈는 어디서 튄 파편에 맞았는지, 이마가 찢어져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그 외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어보였다.

     

    “사상자는?”

     

    내가 우두머리 조에 묻자,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크게 다치거나 죽은 사람은 없는 듯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숨 좀 돌려. 이제 곧장 아담 형한테 갈거니까.”

     

    나는 고개를 돌려 전장을 살폈다.

     

     

    생디엄을 토벌하느라 본대와 꽤나 멀리 떨어져 나왔다.

     

    멀리서부터 격한 전투의 소리는 울려왔지만…아직은 알 수 없는 것들 투성이다.

     

     

    홍염단은 괜찮은 건지.

     

    계획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우리 없이도 토벌은 했는지.

     

    …아담 형은 안전한건지.

     

     

    생디엄은 이어서 잡아야했기에 강한척은 했다지만, 당연히 아담 형이 걱정되고 있었다.

     

    계획이 틀어질때야 말로 목숨이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으니.

     

     

    그렇게 고개를 돌리다, 나는 셀레브리엔 영지를 둘러싼 성벽을 바라보았다.

     

    “…”

     

    그리고 성벽 위에 오른 수많은 엘프들의 모습이 보인다.

     

    다들 우리의 전투 상황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듯 했다.

     

     

    숨을 굴리던 바란도 나와 같은 걸 보았는지 말했다.

     

    “…구경거리가 된 것 같네요.”

     

    “기대하고 있는거겠지.”

     

    나는 짧게 답하고, 말머리를 돌렸다.

     

    “이제 가자.”

     

     

    고삐를 강하게 채니, 내 뒤로 우두머리 조가 따라왔다.

     

    나는 또 다시 가장 위험한 격전지로 향했다.

     

     

    ****

     

     

     

    -부우우우…부우우우…

     

     

    바란이 뿔나팔을 불자, 아담 형의 위치에서 답장이 돌아온다.

     

     

    -부우우우우…! 부우우우우…!

     

     

    물론 아담 형이 안전한건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저쪽에서도 아담 형을 보조하는 사람이 뿔나팔을 분 것일 테니.

     

    하지만 그를 향해가며, 걱정의 마음은 점차 줄어든다.

     

    아담 형이 남기고 간 산더미 같은 시체들이 그 원인이었다.

     

     

    아담 형을 걱정하던 번즈도 뒤에서 헛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이게 대체…”

     

    내게는 그리 놀라운 광경은 아니었다.

     

    형은 홍염단을 위해 안전한 길을 택해왔을 뿐이지, 전투 실력이 없는게 아니었으니까.

     

     

    이내 보이는 다브락의 시체. 갑작스레 튀어나왔던 우두머리마저도 죽어있다.

     

    나는 형이 겪어야만 했던 전투가 눈 앞에 보이는 것 같았다.

     

    다브락의 왼쪽 눈알이 패어있는 모습을 보아하니, 저건 아담 형이 죽인게 분명했다.

     

    형의 흔적이 다브락의 시체에 그려져 있었다.

     

     

    그럴수록 나는 말을 더 빨리 몰았다.

     

    남아있는 격전지는 하나였고 날뛰는 우두머리도 여기서부터 보였다.

     

    형이 아직도 저곳에서 살아남아 버티고 있기를 바래야했다.

     

     

     

    본대 합류 직전, 명령 없이도 바란이 뿔나팔을 다시 불었다.

     

    그러자 앞서가던 본대는 우리의 존재를 알아차리곤 양 옆으로 갈라서며 길을 냈다.

     

     

    우두머리 조는 벌어진 그 길을 달리며 우두머리로 향했다.

     

     

    나는 네 발로 기어다니는 우두머리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어디선가 줄이 달린 창이 하나 날아와 우두머리의 광대에 박힌다.

     

    -콱!

     

    동시에 줄이 팽팽히 끌어당겨졌고, 우두머리의 고개가 흔들리며 온 신체가 비틀댔다.

     

     

    그 줄 끝에는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평소의 평온한 미소는 사라진채 날카로운 안광만 내뿜는 사람.

     

    온 몸이 붉은 피로 흠뻑 젖어 과거의 그 야수같은 모습을 드러낸다.

     

    단장임에도 그 누구보다 격한 전투를 치렀다는 걸 알수가 있었다.

     

    형은 격하게 줄을 이끌어대며 우두머리와 힘싸움을 벌였다.

     

    형을 도와 줄을 잡아당기는 다른 대원들도 보인다.

     

     

    형이 큰 목소리로 명령했다.

     

    “크리안! 애들 데리고 앞으로 나가! 왼쪽으로 빠지도록 길을 만들어 둬!”

     

    간혹 형의 저런 모습을 그리워했다지만, 막상 실제로 마주하니 마음이 그리 편치만은 않다.

     

    내가 왔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만큼 본능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등자에서 발을 빼냈다.

     

     

    “부단장…!”

     

    바란과 숀이 놀랐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그리고는 안장에 조심스레 두 발을 딛고 오른다.

     

    불안정한 자세로 또 한참을 그렇게 달렸다.

     

     

    고삐를 틀며 말을 우두머리의 몸에 더 가까이 가져다 댔다.

     

    -쿵…! 쿵….!

     

    우두머리가 한발자국만 잘못 밟아도 깔려죽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이런 위험쯤이야 언제나 감수하는 일이었다.

     

    애초에 지금 우두머리의 관심은 형이 오롯이 가져간 채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키며 말의 목을 툭 치곤 신호를 보냈다.

     

    이내 나의 말은 엉덩이를 크게 들어올리며 나를 위로 던진다.

     

     

    나도 그에 맞춰 다리를 펴 뛰었고, 떨어지기 전에 단도를 우두머리의 다리에 박아넣었다.

     

    -콱!

     

     

    피가 터져나오고 우두머리가 울음소리를 터트렸지만, 나는 품에서 두번째 단도를 꺼내 똑같이 행동했다.

     

    그리고는 두 개의 칼을 이용해 우두머리의 몸을 타고 올랐다.

     

     

    우두머리의 몸에 오르고 나서야 아담 형도 그제야 내 존재를 알아차렸는지 내쪽을 바라보았다.

     

    날카로웠던 그의 표정이 풀어지며 익숙한 그 얕은 미소가 흘렀다.

     

     

    “늦었잖아!”

     

    그가 소리친다.

     

    “다 떨어지라 해!”

     

    나도 형을 보며 외쳤다.

     

     

    그러자 형은 이끌던 줄을 놓고 멀어진다.

     

    뿔나팔 소리가 다시금 전장을 맴돈다.

     

     

    우두머리 근처로 몰려있던 홍염단이 순식간에 자리에서 이탈한다.

     

    여기서부터는 내가 끝을 내야했다.

     

    나와 우두머리만이 남았다.

     

     

    나는 들고 왔던 단도를 모두 버리고,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들었다.

     

    홍염단의 포위에서 벗어난 우두머리는 제멋대로 날뛰며 나아가는 방향을 비틀었다.

     

    “읏차..”

     

    나는 우두머리의 등 위에서 균형을 잡으며 그의 머리를 향해 갔다.

     

    내가 위에 올라탄건 인지했는지, 고개를 흔들고 몸을 털었지만…나는 집요하게 우두머리에 올라타 있었다.

     

     

    저 멀리서 네르와 아스칼, 그리고 아르윈이 보인다.

     

    우두머리는 그들을 향해 곧장 달려가고 있었다.

     

     

    나는 검을 양손으로 쥐고 우두머리의 목을 내려다보았다.

     

    늦기 전에 자세가 잡히자마자 강하게 검을 찔러넣었다.

     

    두꺼운 피부와 그 아래있는 근육, 또 질긴 무언가가 검에 의해 찢어지고 베이는게 느껴진다.

     

    우두머리가 기이한 단말마를 내뱉었다.

     

    나는 깊이 찔러넣은 검을 그대로 옆으로 당겼다.

     

    “크읍…!”

     

    이를 악물고 힘을 준다.

     

    팔목에 핏대가 선다.

     

    처음에는 멈춰있던 검도 점차 옆으로 이동했다.

     

    -투둑…투두둑…!

     

    “흡!”

     

    마지막으로 힘을 주자, 검이 거대한 반원을 그리며 우두머리의 목 옆으로 빠져나온다.

     

    -촤악!

     

    피가 흩뿌려지고, 우두머리는 힘을 잃는다.

     

    토벌이 끝났다.

     

    거대한 거체가 쓰러지기 시작한다.

     

    나는 우두머리가 쓰러지는 방향 그대로 뛰어내렸다.

     

    -쿵!

     

    먼지바람이 일고, 침묵이 내려앉는다.

     

     

    이런 내 주위로 나의 애마가 먼저 달려온다.

     

    그 뒤로는 우두머리 조가, 그 뒤로는 아담 형이 다가왔다.

     

     

    “부단장!”

     

    “베르그.”

     

    거센 숨을 내쉬는 아담 형이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몸은 괜찮고?”

     

     

    그가 묻는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

     

    “우두머리 조는?”

     

    “다 안전해. 형은?”

     

    “난 괜찮아. 근데…”

     

    아담 형이 입을 다물다…씁쓸히 입을 다셨다.

     

    “…내 분대만 해도 3명을 잃었어.”

     

    “…”

     

    “사상자가 좀 있을 것 같아.”

     

     

    나는 형의 말에 잠시 멈춰있다…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돌발상황에 감수해야하는 피해였다.

     

    이조차도 아담 형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것이다.

     

     

    -두두두…두두두…

     

    수 많은 말들이 우리의 근처로 몰려든다.

     

    한차례 형과의 대화가 끝나자 모두가 일을 완수했다는 안도의 숨을 내쉰다.

     

    누구는 분위기를 끌어올리며 축하를 하기도, 누구는 잃은 동료들에 굳은 표정을 유지하기도 했다.

     

     

    그때 몰려있던 홍염단에 길이 하나 만들어졌다.

     

    아스칼과 그 엘프 호위대가 다가온다.

     

    아스칼은 빠르게 말에서 뛰어내리며 아담 형에게 다가갔다.

     

    “무사한가, 단장…!”

     

    “네, 일은 끝났습니다.”

     

    “하아…정말 수고했네. 피를 이렇게 많이 흘리고 있는데 정말-”

     

    아스칼이 아담 형의 어깨에 손을 얹으려 했다.

     

     

    “-제 피가 아닙니다.”

     

    하지만 형은 자연스레 어깨를 빼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

     

    “…”

     

    잠시 어색한 침묵이 돌았고, 형이 말했다.

     

    “아, 그리고 피 때문에 더럽습니다. 만지지 마시죠.”

     

     

    아스칼은 무언가를 떠올렸다는 듯 말한다.

     

    “…그랬지. 내가 잠시 잊었군.”

     

     

    아스칼은 이내 나를 돌아본다.

     

    “부단장. 수고했네. 정말 그런 건 처음 봤어. 우두머리를 기어오를줄 누가 알았겠나. 실력이 좋다 들었는데…빈말이 아니었나보군.”

     

    나는 그의 칭찬에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그의 뒤에 있던, 아직 말에서 내리지 않은 아르윈과 눈이 맞았다.

     

    “…”

     

    여전히 차가운 눈빛. 그녀는 이번에도 내게서 눈을 돌렸다.

     

    조금의 환희도 담겨 있지 않은 그녀의 눈이 특이하다면 특이했다.

     

    나와의 혼인은 그렇다치더라도 우두머리가 죽었는데 말이다.

     

     

    다음으로는 네르였다.

     

    네르는 말에서 어렵게 내려 어느새 내 앞까지 잰걸음으로 달려왔다.

     

    그녀의 눈이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다…다친곳은…?”

     

    두려운 표정.

     

    꼬리는 말려있고, 귀는 뒤로 접혀있다.

     

     

    이 익숙한 표정의 의미가 달라졌다는게 기뻤다.

     

    예전에는 내 존재에 이 표정을 보였지만, 이제는 내가 다쳤을까 이 표정을 보여준다.

     

     

    “…”

     

    문득 의아해졌다.

     

    이렇게 걱정을 해주는건 내가 걱정되서일까, 아니면 이렇게 연기를 해달라 부탁했기 때문일까?

     

    그래도 친분을 쌓아가는 만큼 나를 걱정한거라 생각하는게 낫지 않을까?

     

    “걱정해준 거야?”

     

    내가 미소를 지으며 묻자, 대원들이 가볍게 휘파람을 불며 나를 놀린다.

     

     

    아스칼과 엘프들은 이런 대원들의 휘파람이 선을 넘는다 느꼈는지 당황스레 나와 그들을 번갈아 바라본다.

     

    우리의 분위기가 너무도 가볍게 느껴질지 모르는 일이다.

     

     

    네르도 주위를 살폈다.

     

    그 농담들에 불쾌했다기보단, 마치 그들의 존재를 그제야 의식하는 듯 했다.

     

    원래라면 이런 내 질문에 답하지 않았을 그녀였지만 네르는 입술을 악물다 답했다.

     

    “…걱정했지…!”

     

    나는 저항없이 그 말에 웃었다.

     

    이유가 무엇이었든 이런 말들은 듣는게 좋았다.

     

    전투 끝에 걱정했다는 말을 들은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처음일지도.

     

     

    “네 덕분이야.”

     

    내가 말했다.

     

    “주술 때문에 확실히 힘이 나더라고.”

     

    네르는 또 불안히 눈을 깜빡이며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속삭이듯, 나만 들릴 목소리로 말했다.

     

    “…앞으로도 해줄게.”

     

    “…”

     

    사이좋은 부부였다면 여기서 포옹을 했을까.

     

    전투로 인해 흥분한 몸이 가라앉지 않았는지 충동적인 생각들이 머리에 들어찼다.

     

    단 둘이 있었다면 분명 안았을 것이다.

     

    거부하고 싶다면 그녀도 날 거부할 수 있었을테니.

     

     

    하지만 지금은 용병단원들 앞이었고, 지금 그녀를 끌어안으면 그녀는 나를 밀어내지 못할거다.

     

    단원들 앞에서만큼은 연기해달라 말한 나였으니까.

     

     

    나는 네르의 호의를 이용하고픈 마음은 없었다.

     

     

    또한 아르윈까지 있다.

     

    곧 혼인할 우리인만큼, 네르와의 친분과시는 잠시 줄일 필요가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니 이 감정들을 억누른다.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핏물만 닦아내며 주변을 둘러본다.

     

     

    “일단 돌아가지.”

     

    아스칼이 제안했다.

     

    저 멀리서 셀레브리엔의 성문이 열리고 있었다.

     

    그들의 영지로 들어설 시간이었다.

     

     

    세계수도 가까이서 볼 기회였고.

     

     

    엘프 장로는 아르윈을 바라보며 말했다.

     

    “…혼인 일정도 잡아보자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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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넵! 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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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IW 섞일 수 없는 이종족 아내들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Polygamy is abolished.

We don’t have to force ourselves to live together any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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