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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9

       ​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

        “저 많은 사람 중에 자네만 추종향이 묻어있더군.”

        ​

        ​

        포두의 시선이 내 눈을 꿰뚫는다. 나는 그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그를 마주 보았다.

        ​

        이 정도 압박에 쫄을 리가 있나.

        ​

        내가 전쟁터에서 이보다 더한 압박을 받은 경우도 부지기수인데. 

        ​

        나는 당황하는 티를 내지 않은 채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

        ​

        “추종향이 왜 제 몸에 묻어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 말고 다른 사람은 없습니까?”

        ​

        “없네.”

        ​

        “추종향이 묻을만한 일을 한 적은 없는데 말입니다.”

        ​

        ​

        도대체 어디서 묻었을까.

        ​

        기억을 되짚어봐도 도저히 생각이 나질 않았다.

        ​

        나랑 접촉한 인원이야 굉장히 한정적이라 후보군 자체도 거의 없긴 하지만…해남검문 사람들은 절대 아닐 터. 그렇다고 비녀 팔던 아저씨가 굳이 나한테 추종향을 묻힐 이유는 또 없어 보이고.

        ​

        도대체 언제 묻혔지?

        ​

        ​

        “정말 기억에 없나?”

        ​

        ​

        거, 그렇게 위협해도 겁 안 먹는다니까. 그런 걸로 위협하려면 목에 칼 정도는 들이밀고 말씀하시던가. 

        ​

        ​

        “없습니다.”

        ​

        “정말로?”

        ​

        “뭐 저를 범인이라고 생각하는 건 자유지만…저는 절대 범인일 수 없는 이유가 세 가지나 있습니다.”

        ​

        ​

        내 말에 몽 포두가 흥미롭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무슨 소리를 하려는지 궁금하다는 얼굴. 나는 곧바로 내가 범인일 수 없는 이유를 입 밖으로 꺼내기 시작했다.

        ​

        ​

        “첫째로, 저는 흑의인이 지붕에서 기회를 노리고 있을 때 해남검문의 무인과 같이 있었습니다.”

        ​

        “해남검문이라…위장일 수도 있지 않나?”

        ​

        “사천당가의 무인도 있지 않습니까? 일행이 해남검문의 무인이 맞다는 건 충분히 증명할 수 있을 겁니다. 구파일방의 일원인 해남검문이 이번 일에 끼어들었다고 생각하진 않으실 거라 믿습니다.”

        ​

        ​

        당장 해남검문의 무공을 보여주면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

        무공이라는 건 사문 외에는 유출될 일이 없는 법. 애초에 내공심법과 무예의 조화인 만큼 그 무엇보다 확실한 신원보증 수단이 되는 것이다.

        ​

        그렇기에 내가 꺼낸 첫 이유에 몽 포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권력으로 찍어누를 수야 있겠지만 그래봐야 평판만 나빠질 뿐이니까. 아무리 큰 사건이라고 해도 헛다리를 짚으면 본인에게도 큰 타격이 될 터.

        ​

        나는 어쩔 수 없이 수긍한 몽 포두에게 두 번째 이유를 내밀었다.

        ​

        ​

        “두 번째로, 저는 외국인이라 이 도시에 보물이 있다는 사실도 몰랐습니다.

        ​

        ​

        무릇 큰일을 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준비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저희는 해남도에서부터 호북까지 거슬러 올라오고 있었으니 물리적으로 이번 일을 준비할 시간이 없습니다.

        ​

        확실한 증거를 원하신다면 개방에 문의하시면 됩니다. 개방이 저희의 결백을 증명해 줄 겁니다.”

        ​

        ​

        “자네 한어를 정말 잘하는군.”

        ​

        “열심히 배웠습니다.”

        ​

        ​

        빙의 특전이라고 해도 못 알아먹을 테니, 나는 적당히 얼버무리고 세 번째 이유를 내밀었다.

        ​

        ​

        “저는…경공을 쓰지 못합니다.”

        ​

        “경공을…쓰지 못한다? 듣기로는 자네는 뛰어난 고수라고 들었네만.”

        ​

        ​

        몽 포두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쳐다봐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라고. 나는 고개를 저으며 그의 의문을 적당히 해결해주었다.

        ​

        ​

        “전 기마병이었기 때문에 따로 경공을 배우지 않았습니다.”

        ​

        “군인이었군.”

        ​

        “오래전 일입니다. 그럼 이제 제 혐의는 풀린 겁니까?”

        ​

        “…끙. 그렇다네. 일이 쉽게 해결되나 했더니…내가 무고한 사람을 겁박해버렸군. 미안하네.

       

       하지만 한 가지는 알아야겠네. 자네, 혹시 짚이는 게 없나?”

        ​

        ​

        나도 짚이는 게 없는데.

        ​

        나랑 물리적으로 접촉한 사람이 기껏해야 비녀 가게 주인이랑 혜령이 정도인데.

        ​

        …아니지.

        ​

        생각해보면 용의자 자체는 생각 이상으로 많을 터.

        ​

        사람이 더럽게 많으니 그냥 길을 걷는 도중에 내게 추종향을 묻히기만 해도 되는 일이니까. 

        ​

        ​

        “어제는 야시장이 열려 사람들이 길거리에 가득 찬 상태였습니다.

        ​

        ​

        제게 추종향을 묻히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야시장에 있던 사람을 전부 조사하면 추종향이 묻은 사람을 더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

        조금 민망하지만, 혜령이가 달라붙어 있는 통에 다른데 신경 쓸 여유도 없었다. 

        ​

        ​

        “흠…골치아프군. 허나, 어째서 자네에게만 추종향이 묻었는지 의문이군.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함이라면 구태여 자네에게만 묻힐 필요는 없지 않은가?”

        ​

        “시선을 돌리고 싶었던 것 아닙니까? 제 외관이 눈에 띄니, 좀 더 시간을 끌 수 있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릅니다.”

        ​

        ​

        사실 그거 말고는 다른 이유를 떠올릴 각이 안 보인다. 상인이 추종향을 뿌린 거라면 혜령이한테도 묻어야 하니까.

        ​

        ​

        “흠…자네, 생각보다 머리가 잘 굴러가는군.”

        ​

        “과찬입니다. 그러니, 저는 올라가 봐도 되겠습니까? 범인이 아닌 게 밝혀지지 않았습니까?”

        ​

        “…자네. 이번 사건 같이 풀어볼 생각 없나?”

        ​

        “저는 일개 무인에 불과합니다.”

        ​

        “그런 것치곤 무림인들과는 다르게 머리가 잘 돌아가는군. 무림인들은 무를 너무 숭상해서 문이 모자라는 경우가 많은데 말이야.”

        ​

        ​

        무림인들은 무식하다 이건가.

        ​

        ​

        “어쨌든 전 가보겠습니다.”

        ​

        “그러지 말고 한번 해보는 게 어떤가. 보수는 두둑하게 쳐줌세.”

        ​

        ​

        흠.

        ​

        나로서는 나쁘지 않은 제안이긴 한데.

        ​

        꽌시가 중요한 중국 사회에서 관이랑 연을 맺는다는 건 그 자체로 꽤 강력한 권력이니까. 지금 은혜를 쌓아두면 나중에 일이 터졌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테고.

        ​

        지금처럼 귀찮은 일이 터지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으니 이참에 관이랑 인맥 좀 쌓아볼까.

        ​

        ​

        “같이 일해봅시다.”

        ​

        “고맙네.”

        ​

        ​

        ————————————

        ​

        “심문은 전부 끝내셨습니까?”

        ​

        ​

        나는 심문을 끝내고 구석에서 한숨을 쉬고 있던 몽 포두의 맞은 편에 앉아 주전자 손잡이를 잡았다.

        ​

        아직 따뜻하군. 찻잔을 하나 꺼내 차를 따른 나는 차의 향을 맡으며 몽 포두를 쳐다보았다.

        ​

        ​

        “그렇네. 소득이 없더군. 하지만 추종향의 흔적이 여기서 끊겼네. 어떻게 된 건지…”

        ​

        “뭐, 뻔하지 않습니까. 도둑은 추종향이 보물에 묻어있다는 사실을 아는 겁니다.”

        ​

        “그렇겠군.”

        ​

        ​

        조용한 식당 한구석에서 나와 몽 포두가 머리를 맞대고 생각에 잠겼다.

        ​

        반나절에 걸친 심문의 결과 그럴듯한 용의자를 하나도 잡지 못한 상황. 범인을 잡으려면 발상의 전환을 하든, 새로운 단서를 찾든 해야 했다.

        ​

        그리고 내 머릿속에서 나온 결론은 하나였다.

        ​

        ​

        “몽 포두. 이건 처음부터 짚어봐야 합니다. 애초에 장 대인이 전시한 보물의 정체가 뭡니까?”

        ​

        “보물 말인가?”

        ​

        “예. 비밀이 아니라면 저한테도 달려주시죠. 보물이 뭔지 모르는 이상 어떤 추리도 하기 힘듭니다.”

        ​

        “아, 자네는 몰랐나 보군. 장 대인이 전시한 보물은…무영신투가 남긴 비급일세.”

        ​

        “무영신투?”

        ​

        ​

        몽 포두는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뒤늦게 깨달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

        ​

        “아, 자네가 무영신투를 알 리가 없지. 무영신투는 수십 년 전에 이름을 날리던 도둑일세. 신출귀몰한 경공술과 어떤 물건이라도 능히 빼내는 금나수법으로 악명이 높았지.

        ​

        세간에서는 그를 의적이라 부르지만, 결국 도둑이었을 뿐일세.” 

        ​

        ​

        무영신투라.

        ​

        원작에서 나왔던가?

        ​

        솔직히 말해서, 기억이 나지는 않았다. 

        ​

        나도 원작에 모든 걸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애초에 무협지는 죄다 비슷비슷한 면이 있어서 헷갈리기도 하고. 

        ​

        막말로 ‘검왕’이라고 별호만 박으면 그게 무슨 작품인지 모르는 게 무협지니까.

        ​

        무협지에 나온 검왕 별호 가진 놈만 모아놔도 천 명은 넘을 거다. 

        ​

        ​

        “도둑이라…”

        ​

        “뜬소문으로는 황실의 보물조차 훔쳐내는 전무후무한 실력의 대도라는 소문이 돌지만, 어느 순간 소식이 완전히 끊겨버렸다네. 그리고 장 대인이 우연한 기회에 무영신투의 비급을 얻게 되어 이번에 팔아먹으려 한 게지.”

        ​

        ​

        뭔가 스토리가 좀 그려지는데.

        ​

        ​

        “무영신투에 대해 조사하면 될 것 같습니다.”

        ​

        “허나 수십 년 전의 인물이라 유의미한 정보가 있을지는 모르겠네…”

        ​

        ​

        하긴. 

        ​

        여기가 21세기 시대도 아니고, 수십 년 전의 자료를 찾기가 쉬울 리 없었다.

        ​

        애초에 남아있어도 단편적인 조각에 불과할 테니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할 터. 

        ​

        나는 식탁 위에 놓인 차를 한 모금 마시곤 입을 열었다.

        ​

        ​

        “몽 포두.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물읍시다. 장 대인을 심문해 보셨습니까?”

        ​

        “…장 대인을 말인가?”

        ​

        ​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는 듯 나를 쳐다보는 몽 포두에게 나는 내 생각을 전했다.

        ​

        ​

        “어쩌면 무영신투의 비급 자체가 이번 사건의 실마리일지도 모릅니다. 장 대인과 접촉해서 장 대인이 어떻게 그 비급을 얻었는지를 알아내야 할 겁니다.”

        ​

        ​

        생각해보면, 단순히 도둑이 훔쳐 갔다고 하기엔 미심쩍은 구석이 많았다.

        ​

        도둑은 어떻게 추종향의 존재를 알았는가?

        ​

        왜 내 몸에 추종향이 묻어 있는가?

        ​

        장 대인은 어떤 경로로 실종됐다던 무영신투의 비급을 얻었는가?

        ​

        세 가지 의문의 실마리는 장 대인에게 있다.

        ​

        어디까지나 직감이지만, 여기서는 단서를 얻을 수 없으니 장 대인을 만나야겠지.

        ​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

        ​

        “장 대인을 만나러 갑시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죄송합니다.

    어제 티원이 우승해서 너무 달렸다가 일어나 보니 오후 1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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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소설 속 중세기사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fter two years of being reincarnated as a medieval knight, he finally realizes that he's been reincarnated into a martial arts no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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