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저 많은 사람 중에 자네만 추종향이 묻어있더군.”
포두의 시선이 내 눈을 꿰뚫는다. 나는 그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그를 마주 보았다.
이 정도 압박에 쫄을 리가 있나.
내가 전쟁터에서 이보다 더한 압박을 받은 경우도 부지기수인데.
나는 당황하는 티를 내지 않은 채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추종향이 왜 제 몸에 묻어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 말고 다른 사람은 없습니까?”
“없네.”
“추종향이 묻을만한 일을 한 적은 없는데 말입니다.”
도대체 어디서 묻었을까.
기억을 되짚어봐도 도저히 생각이 나질 않았다.
나랑 접촉한 인원이야 굉장히 한정적이라 후보군 자체도 거의 없긴 하지만…해남검문 사람들은 절대 아닐 터. 그렇다고 비녀 팔던 아저씨가 굳이 나한테 추종향을 묻힐 이유는 또 없어 보이고.
도대체 언제 묻혔지?
“정말 기억에 없나?”
거, 그렇게 위협해도 겁 안 먹는다니까. 그런 걸로 위협하려면 목에 칼 정도는 들이밀고 말씀하시던가.
“없습니다.”
“정말로?”
“뭐 저를 범인이라고 생각하는 건 자유지만…저는 절대 범인일 수 없는 이유가 세 가지나 있습니다.”
내 말에 몽 포두가 흥미롭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무슨 소리를 하려는지 궁금하다는 얼굴. 나는 곧바로 내가 범인일 수 없는 이유를 입 밖으로 꺼내기 시작했다.
“첫째로, 저는 흑의인이 지붕에서 기회를 노리고 있을 때 해남검문의 무인과 같이 있었습니다.”
“해남검문이라…위장일 수도 있지 않나?”
“사천당가의 무인도 있지 않습니까? 일행이 해남검문의 무인이 맞다는 건 충분히 증명할 수 있을 겁니다. 구파일방의 일원인 해남검문이 이번 일에 끼어들었다고 생각하진 않으실 거라 믿습니다.”
당장 해남검문의 무공을 보여주면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무공이라는 건 사문 외에는 유출될 일이 없는 법. 애초에 내공심법과 무예의 조화인 만큼 그 무엇보다 확실한 신원보증 수단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꺼낸 첫 이유에 몽 포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권력으로 찍어누를 수야 있겠지만 그래봐야 평판만 나빠질 뿐이니까. 아무리 큰 사건이라고 해도 헛다리를 짚으면 본인에게도 큰 타격이 될 터.
나는 어쩔 수 없이 수긍한 몽 포두에게 두 번째 이유를 내밀었다.
“두 번째로, 저는 외국인이라 이 도시에 보물이 있다는 사실도 몰랐습니다.
무릇 큰일을 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준비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저희는 해남도에서부터 호북까지 거슬러 올라오고 있었으니 물리적으로 이번 일을 준비할 시간이 없습니다.
확실한 증거를 원하신다면 개방에 문의하시면 됩니다. 개방이 저희의 결백을 증명해 줄 겁니다.”
“자네 한어를 정말 잘하는군.”
“열심히 배웠습니다.”
빙의 특전이라고 해도 못 알아먹을 테니, 나는 적당히 얼버무리고 세 번째 이유를 내밀었다.
“저는…경공을 쓰지 못합니다.”
“경공을…쓰지 못한다? 듣기로는 자네는 뛰어난 고수라고 들었네만.”
몽 포두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쳐다봐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라고. 나는 고개를 저으며 그의 의문을 적당히 해결해주었다.
“전 기마병이었기 때문에 따로 경공을 배우지 않았습니다.”
“군인이었군.”
“오래전 일입니다. 그럼 이제 제 혐의는 풀린 겁니까?”
“…끙. 그렇다네. 일이 쉽게 해결되나 했더니…내가 무고한 사람을 겁박해버렸군. 미안하네.
하지만 한 가지는 알아야겠네. 자네, 혹시 짚이는 게 없나?”
나도 짚이는 게 없는데.
나랑 물리적으로 접촉한 사람이 기껏해야 비녀 가게 주인이랑 혜령이 정도인데.
…아니지.
생각해보면 용의자 자체는 생각 이상으로 많을 터.
사람이 더럽게 많으니 그냥 길을 걷는 도중에 내게 추종향을 묻히기만 해도 되는 일이니까.
“어제는 야시장이 열려 사람들이 길거리에 가득 찬 상태였습니다.
제게 추종향을 묻히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야시장에 있던 사람을 전부 조사하면 추종향이 묻은 사람을 더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조금 민망하지만, 혜령이가 달라붙어 있는 통에 다른데 신경 쓸 여유도 없었다.
“흠…골치아프군. 허나, 어째서 자네에게만 추종향이 묻었는지 의문이군.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함이라면 구태여 자네에게만 묻힐 필요는 없지 않은가?”
“시선을 돌리고 싶었던 것 아닙니까? 제 외관이 눈에 띄니, 좀 더 시간을 끌 수 있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그거 말고는 다른 이유를 떠올릴 각이 안 보인다. 상인이 추종향을 뿌린 거라면 혜령이한테도 묻어야 하니까.
“흠…자네, 생각보다 머리가 잘 굴러가는군.”
“과찬입니다. 그러니, 저는 올라가 봐도 되겠습니까? 범인이 아닌 게 밝혀지지 않았습니까?”
“…자네. 이번 사건 같이 풀어볼 생각 없나?”
“저는 일개 무인에 불과합니다.”
“그런 것치곤 무림인들과는 다르게 머리가 잘 돌아가는군. 무림인들은 무를 너무 숭상해서 문이 모자라는 경우가 많은데 말이야.”
무림인들은 무식하다 이건가.
“어쨌든 전 가보겠습니다.”
“그러지 말고 한번 해보는 게 어떤가. 보수는 두둑하게 쳐줌세.”
흠.
나로서는 나쁘지 않은 제안이긴 한데.
꽌시가 중요한 중국 사회에서 관이랑 연을 맺는다는 건 그 자체로 꽤 강력한 권력이니까. 지금 은혜를 쌓아두면 나중에 일이 터졌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테고.
지금처럼 귀찮은 일이 터지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으니 이참에 관이랑 인맥 좀 쌓아볼까.
“같이 일해봅시다.”
“고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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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문은 전부 끝내셨습니까?”
나는 심문을 끝내고 구석에서 한숨을 쉬고 있던 몽 포두의 맞은 편에 앉아 주전자 손잡이를 잡았다.
아직 따뜻하군. 찻잔을 하나 꺼내 차를 따른 나는 차의 향을 맡으며 몽 포두를 쳐다보았다.
“그렇네. 소득이 없더군. 하지만 추종향의 흔적이 여기서 끊겼네. 어떻게 된 건지…”
“뭐, 뻔하지 않습니까. 도둑은 추종향이 보물에 묻어있다는 사실을 아는 겁니다.”
“그렇겠군.”
조용한 식당 한구석에서 나와 몽 포두가 머리를 맞대고 생각에 잠겼다.
반나절에 걸친 심문의 결과 그럴듯한 용의자를 하나도 잡지 못한 상황. 범인을 잡으려면 발상의 전환을 하든, 새로운 단서를 찾든 해야 했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서 나온 결론은 하나였다.
“몽 포두. 이건 처음부터 짚어봐야 합니다. 애초에 장 대인이 전시한 보물의 정체가 뭡니까?”
“보물 말인가?”
“예. 비밀이 아니라면 저한테도 달려주시죠. 보물이 뭔지 모르는 이상 어떤 추리도 하기 힘듭니다.”
“아, 자네는 몰랐나 보군. 장 대인이 전시한 보물은…무영신투가 남긴 비급일세.”
“무영신투?”
몽 포두는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뒤늦게 깨달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아, 자네가 무영신투를 알 리가 없지. 무영신투는 수십 년 전에 이름을 날리던 도둑일세. 신출귀몰한 경공술과 어떤 물건이라도 능히 빼내는 금나수법으로 악명이 높았지.
세간에서는 그를 의적이라 부르지만, 결국 도둑이었을 뿐일세.”
무영신투라.
원작에서 나왔던가?
솔직히 말해서, 기억이 나지는 않았다.
나도 원작에 모든 걸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애초에 무협지는 죄다 비슷비슷한 면이 있어서 헷갈리기도 하고.
막말로 ‘검왕’이라고 별호만 박으면 그게 무슨 작품인지 모르는 게 무협지니까.
무협지에 나온 검왕 별호 가진 놈만 모아놔도 천 명은 넘을 거다.
“도둑이라…”
“뜬소문으로는 황실의 보물조차 훔쳐내는 전무후무한 실력의 대도라는 소문이 돌지만, 어느 순간 소식이 완전히 끊겨버렸다네. 그리고 장 대인이 우연한 기회에 무영신투의 비급을 얻게 되어 이번에 팔아먹으려 한 게지.”
뭔가 스토리가 좀 그려지는데.
“무영신투에 대해 조사하면 될 것 같습니다.”
“허나 수십 년 전의 인물이라 유의미한 정보가 있을지는 모르겠네…”
하긴.
여기가 21세기 시대도 아니고, 수십 년 전의 자료를 찾기가 쉬울 리 없었다.
애초에 남아있어도 단편적인 조각에 불과할 테니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할 터.
나는 식탁 위에 놓인 차를 한 모금 마시곤 입을 열었다.
“몽 포두.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물읍시다. 장 대인을 심문해 보셨습니까?”
“…장 대인을 말인가?”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는 듯 나를 쳐다보는 몽 포두에게 나는 내 생각을 전했다.
“어쩌면 무영신투의 비급 자체가 이번 사건의 실마리일지도 모릅니다. 장 대인과 접촉해서 장 대인이 어떻게 그 비급을 얻었는지를 알아내야 할 겁니다.”
생각해보면, 단순히 도둑이 훔쳐 갔다고 하기엔 미심쩍은 구석이 많았다.
도둑은 어떻게 추종향의 존재를 알았는가?
왜 내 몸에 추종향이 묻어 있는가?
장 대인은 어떤 경로로 실종됐다던 무영신투의 비급을 얻었는가?
세 가지 의문의 실마리는 장 대인에게 있다.
어디까지나 직감이지만, 여기서는 단서를 얻을 수 없으니 장 대인을 만나야겠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장 대인을 만나러 갑시다.”
죄송합니다.
어제 티원이 우승해서 너무 달렸다가 일어나 보니 오후 1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