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9

       빛바랜 기억.

         

       그 기억의 편린을 더듬어 올라가다보면, 석박통합을 하던 시절의 내가 모습을 드러낸다.

         

       내가 아직 랩실에 들어간 지 2년이 채 되지 않았던 시기, 이과대학 건물 앞 흡연 부스에서 뻐끔담배를 피우던 선배가 문득 흥미로운 주제를 꺼냈었다.

         

       ─ 후배는 논문 스쿱이라고 아나?

       ─ 네, 알아요.

         

       당시의 나는 연구방법론을 막 깨우친 햇병아리 대학원생에 불과했지만, 스쿠핑이 어떤 개념인지에 대해선 잘 알고 있었다.

         

       ─ 그게 옆 연구실에서 벌어졌대.

       ─ 어쩐지. 밤에 이것저것 던지던 소리가 나던 게 그거 때문이었네요.

         

       논문 스쿱을 당한 연구실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초상집이었다.

         

       그야 그렇겠지. 오랜 기간 머리를 곪아가며 낳은 아이가 사산했는데.

         

       ─ 중국이었나, 대만이었나? 어딘지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거기 연구진도 같은 주제였다고 하나 봐. 이쪽도 나랏돈 받아서 실험 다 끝내고 이제 피지컬 리뷰에 딱 올리려고 했는데, 글쎄 그걸 그쪽 나라에서 먼저 승인받았다고 하더라고.

       ─ 그러면 저쪽 랩실 사람들이 쓴 건 어떻게 되는 거예요?

         

       답이야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만에 하나, 희망의 빛이 그 사람들에게도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물어본 말이었다.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 물거품 된 거지 뭐. 같은 내용으로 게재하려 하면 십중팔구 표절이란 소릴 들어. 잘 쳐줘 봐야 ‘같은 시기에 비슷한 연구 했네’ 정도로 끝난다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나.

         

       적어도 이 바닥은 그랬다. 이곳에서 허우적거리지 않는 이는 없었다. 그 모습을 서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비극이었다.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어 들어왔지만, 정작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질 못하는 자들의 무덤. 학계란 그런 곳이었다.

         

       ─ 안 됐어. 자그마치 5년을 쏟아부었다고 했는데.

         

       그들에게 심심찮은 위로 따윈 통하지 않으리라. 오직 시간만이 상처를 아물게 해 주겠지. 같은 인간으로서는 멀찍이서 지켜보기만 하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 얘기를 나누고서 반년 후. 멘탈이 굳센 줄로만 알았던 그 형조차도 버티지 못하고 교수님과의 협의 하에 석사졸로 나갔을 때, 나는 이 바닥이 마리아나 해구보다도 깊다는 사실을 실감했었다.

         

       그러니 이 바다에서 익사하고 싶지 않으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뭍으로 올라가거나.

         

       수영하는 법을 배우거나.

         

       **

         

       그래서 에테르는 수영하는 법을 배웠다.

         

       남들보다 빨리 일을 처리하고, 자신의 파이를 빼앗기지 않도록 발버둥치는 일을 익혔다. 그중에는 주변 연구자의 연구동태를 살피고 다음 방향을 설정하는 것도 포함됐었다.

         

       하스펠트 교수가 플레어에 미쳐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었지만, 에테르에게는 그 사실을 눈에 직접 담을 수 있는 기회가 지난 3년간 차고 넘쳤다. 

         

       그러니까 알고 있었다.

         

       이거, 조금이라도 늦는다면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걸.

         

       물론 에테르 입장에서 연구 성과를 빼앗기고 말고는 별 상관이 없었다. 이쪽 세계에서 평생 살 것도 아니거니와, 연구 성과보다는 양장본에 적힌 마도 도감을 채우는 게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스펠트에게만큼은 제 ‘성과’를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대부분의 인간은 긍정적인 감정보다는 부정적인 감정을 동력원으로 하여 움직인다. 대학에 붙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해 하는 수험생이 더 공부하는 것처럼 말이다. 무한경쟁사회에서 조금이라도 여유를 부린다는 건 곧 도태를 의미했다.

         

       그리고 지금, 금안족 소녀는 자신이 플레어 연구 개발 경쟁에서 승리했음을 깨달았다.

         

       승전보는 툭, 하고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로부터 비롯되었다.

         

       하스펠트 교수가 들고 있던 논문 서류가 중력의 영향을 받아 떨어졌다. 그 소리는 워낙 맥이 없어서, 하스펠트는 저도 모르게 허탈한 한숨을 토해냈다.

         

       떠는 목소리가 공기를 타고 새어나왔다.

         

       “방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잘못 들었겠지. 잘못 들었을 것이다.

         

       잘못 들었어야만 한다. 하스펠트는 그런 생각을 되뇌고 있는 게 아닐까.

         

       “아, 하스펠트 교수님이시군요. 안 그래도 만나면 한 가지 여쭤보려고 했습니다. 그…. 저번에 화계마도사들이 소집되었을 때 왜 참석하지 않으셨습니까?”

       “…소집이 있었다고요?”

       “네. 여기 있는 이 학생이 말이죠, 글쎄 플레어를 완성했지 뭡니까?”

         

       로베스피에르 이사장은 허허, 하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제가 석학에 계신 분들을 모두 초대해서 긴급 심사를 진행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물론 바쁘시다고 하신 분들은 제외하고 말이죠.”

       “그…….”

         

       에테르의 논문 심사는 일주일이 조금 더 되는 시간 동안에 일사천리로 진행됐었다. 절멸급을 상대할 수 있는 최상급 마도라는 점에서 한시라도 빠른 검증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에테르의 논문뿐만이 아니다. 필리우트 제국은 새 마도가 나올 때마다 날치기와도 같은 심사를 통해 해당 마도를 즉시 전선에 투입하곤 했었다.

         

       그런 심사가 있을 때마다 그 분야에 속한 전문가들이 일제히 소집되고는 했는데, 학회에서 온 사람이 참석 여부를 물어봤을 땐 하스펠트 교수만이 그 제안을 거절했었다.

         

       “안타깝네요. 하스펠트 교수님도 그때 참석하셨더라면 플레어가 학계에 발표되는 역사적인 과정을 생생히 보실 수 있으셨을 텐데 말이죠.”

       “플…레어…. 제가, 연구하던… 그 플레어 말인가요……?”

       “네. 교수님이 계신 가문에서 계속 연구하시던 그 플레어 말입니다.”

         

       확인사살.

         

       그녀의 안색은 화계마도사답지 않게 새파래졌다가, 이내 분칠을 한 것처럼 하얗게 변했다.

         

       “아, 그리고 에테르 학생에게는 조금 전 질문에 대해 대답을 해드리겠어요. 플레어를 구성하는 스크롤에 대한 특허는 주저자뿐만이 아니라 공저자에게도 주어지기 때문에 저자들끼리 내부적인 논의를 잘 해주셔야 합니다.”

       “거기까진 상관없어요. 어차피 수익을 내는 게 주 목적도 아니었고요.”

       “그러면 기술특허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혹시 오늘내일 중으로 연구한 내용을 프레젠테이션할 수 있겠나요?”

         

       금안족 소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능하다고 답했다.

         

       클라이스의 머릿속이 순간 백지처럼 변했다.

         

       마치 머릿속에서 플레어가 터졌다가, 그 섬광이 서서히 사라져가는 듯했다. 현존하는 언어체계로는 형용할 수 없는 허무함이 뉴런과 시냅스를 가닥가닥 끊어놓았다.

         

       하스펠트는 두 사람을 뿌리치고 데스크가 있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로브 끝자락에 발이 걸려서 속도를 내기 힘들었지만, 논문 심사를 받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 불편함은 감수할 수 있었다.

         

       복도는 한산했다. 클라이스를 막을 만한 장애물은 없었고, 있어서도 안 됐다.

         

       “…….”

         

       갑자기 자신들이 걸어온 방향으로 뛰어간 하스펠트를 보며, 에테르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

         

       데스크 앞에는 각 종류별로 논문을 제출하는 칸이 있었다. 왼쪽부터 차례대로 화계마도, 수계마도… 아니, 이런 걸 일일이 감상하고 있을 시간 따윈 죽어도 없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논문 제출하실 건가요?”

         

       사무직의 인사를 묵례로 받아냈다. 직원의 눈동자는 석산을 달여 놓은 듯한 빛깔이었다.

         

       붉은 색 눈동자. 분명 자신과 같은 눈동자 색인데, 어째서인지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생각해보면 오늘 로베스피에르 이사장의 눈빛도 이와 같았다. 마치 하스펠트 자신을 동정하는 듯한, 그런 눈동자.

         

       “…이거, 부탁드려요.”

         

       하스펠트 교수는 논문이 담긴 봉투를 앞으로 내밀었다.

         

       모든 논문은 본격적인 심사를 거치기 전에 데스크에서 양식에 문제가 있나 없나를 판별하는 작업을 거친다. 그 작업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불과 5분. 하스펠트 교수야 학계에서 몇 년씩 몸담고 있었으니 논문 양식이 미비하다는 지적을 받을 가능성은 0에 수렴했다.

         

       여태까지 냈던 논문은 전부 통과됐었고, 앞으로 낼 논문도 모두 그러할 것이다. 이번 논문 또한 안정적으로 통과되리라고, 하스펠트 확신했다.

         

       그녀가 수행했던 플레어 연구는 학계를 놀라게 할 것이고,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을 것이다. 겸사겸사 화계마도의 위력에 의구심을 품고 등을 돌린 겁쟁이들에게도 화끈한 한 방을 먹여주기에 충분하리라.

         

       그래야만 한다. 반드시, 반드시. 그래야만 하고, 또한 그래야만 한다.

         

       그래야만 하는데.

         

       “…죄송하지만 이건 본심사로 올려드릴 수가 없겠는데요.”

       “네…?”

         

       논문을 훑어보던 데스크 직원이 한껏 침음을 흘리고는 그리 말했다.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양식에 문제라도 있어요? 제대로 검사한 거 맞아요?”

       “그게…. 이거 잘못하면 표절로 걸리거든요.”

         

       표절이라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이 플레어 연구는 저 혼자 한 거예요. 제국에서 화계마도를 전공했으면 당신도 알잖아요. 이거 연구하는 가문은 우리밖에 없다는 거…!”

        “아, 아직 전해듣지 못하셨구나…….”

         

       하스펠트의 언성이 높아졌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데스크 직원의 눈동자에는 아련함만이 깃들었다.

         

       “얼마 전에 교수님과 같은 주제로 논문을 낸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이 플레어를 출력하고 사용하는 방법을 먼저 개발해서 이걸 내시더라도 리젝당할 확률이 높아요.”

         

       데스크 직원은 클라이스의 얼굴을 차마 정면으로 보질 못했다. 계속 곁눈질로 흘끔거리기만 하는 직원을 두고, 분에 못 이긴 클라이스가 덜컥 고개를 돌렸다.

         

       아까의 두 사람이 여기까지 와 있었다.

         

       이사장은 조금 거리를 벌린 채 이 상황을 관조하는 듯했고, 그보다 앞에는 한 금안족 소녀가 옆머리를 쓸어내리며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 아아….”

         

       하스펠트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단순 환청일 뿐이라고 믿었던 아주 잠깐의 꿈마저 좀먹혀버리고 난 자리에는 현실만이 존재했다.

         

       “아, 아아, 아, 아아아…….”

         

       그 누가 말했던가.

         

       “안 돼요…….”

         

       사람이 절망을 받아들이는 다섯 단계 중, 그 첫 번째는.

         

       “말도 안 돼요─!!!”

         

       부인(否認)이라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학교가기 싫어요
    다음화 보기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