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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9

       에밀리아가 새롭게 건네준 흉부 갑옷으로 장비를 갈아입고 난 후.

         

        내 현재 옷차림이 어떤 상태인지 확인하기 위해 전신거울 앞으로 몸을 움직이니, 그 안에는 누가 봐도 기사로밖에 보이지 않는 여성 한 명이 당당하게 서 있는 모습이었다.

         

        특히 쓸데없이 크고 무거운 가슴을 갑옷으로 가려 놓으니 둔해 보이는 인상도 상당히 줄어들었고.

         

        몸 전체를 감싼 전신 갑옷이 여전히 어색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움직이는 것 자체는 그럭저럭 할만했다.

         

        아마 5레벨까지 성장하면서 공격력과 방어력이 늘어난 만큼 근력에도 어느 정도 보조 작용이 되어있는 것 때문이겠지.

         

         

        원래 게임에서라면 이런 풀 플레이트 계열의 전신 갑옷은 릴리스가 입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장비였기에 조금 걱정했었는데, 적어도 옷이 무거워서 제대로 몸을 못 움직일 일은 없을 것 같네.

         

        처음에 생각했던 옷차림은 이런 전신 갑주가 아니라 그냥 메이드복만 훈련복으로 갈아입는 정도를 상상했으나.

         

        도저히 이 완전 무장을 몸에 두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에밀리아에 의해 이런 옷차림으로 변해버린 상황이었다.

         

        그래도 가슴은 꽉 고정되어서 안 흔들리는 게 장점이긴 하네. …입을 때 고생한 만큼 벗을 때도 한세월 씨름을 해야 하겠지만.

         

         

        이럴 때만큼은 정말 옆에 있는 에밀리아의 체형이 부러웠다.

         

        가슴도 작고, 군살 없이 적당히 균형 있게 잡힌 건강미 있는 몸매.

         

        전생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체형이 건강미 있는 여성이었던 만큼 그녀의 몸은 정말이지 부럽기 그지없는 체형이었으니까.

         

        반면에 릴리스는 가슴만 쓸데없이 커서 둔해 보이는 그야말로 매력 원툴의 외모였다.

         

        …물론 그 매력으로 이런저런 이득을 봤던 내가 할 말은 당연히 아니겠지만.

         

         

        그렇게 에밀리아의 안내를 받으며 조금 큰 치수의 갑주를 어떻게든 맞춰 입고 난 이후.

         

        마지막으로 대련에 사용할 ‘무기’를 고르는 과정에서 나는 또다시 적지 않은 시간을 소모해야만 했다.

         

         

        “…아직도 결정하지 못하셨습니까?”

         

        “자, 잠시만요. 몇 개만 더 휘둘러보고요.”

         

        “…….”

         

         

        옆에서 에밀리아가 나에게 묘한 시선을 보내며 빨리 결정해달라는 느낌을 풍겨오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모처럼의 대련에 임하는 만큼 내가 이길 가능성을 최대한 높일 필요가 있었으니까.

         

        육성 시설의 경험치가 오르는 수치 추산 방법에 관해서는…솔직히 말해 정확히는 모른다.

         

        애초에 그딴 걸 제대로 알 리가 없잖아. 당장 필요 없는 캐릭터들 맡겨놓고 맵 이동할 때 회수하는 거로 이용하는 시설이었는데.

         

        그래도 어떻게 하면 경험치가 많이 오르고 조금 오르는지 정도는 파악하고 있긴 했다.

         

         

        기간, 레벨, 그리고 훈련 동안 캐릭터가 확보한 이수율.

         

         

        기간은 당연히 육성 시설에 맡겨놓는 기간을 의미한다. 오래 맡길수록 경험치를 많이 얻는다는 원리야 뭐 당연히 이해할 수 있을 테고.

         

        레벨은 육성 시설에 맡겼을 당시 캐릭터의 레벨을 의미하면, 당연히 캐릭터의 레벨이 높을수록 성장이 더뎌질 수밖에 없다. 배울 만큼 배우고 강한 캐릭터가 육성 시설에서 어떻게 경험치를 얻겠어.

         

        그리고 이수율은 육성 시설에 맡겨놓은 캐릭터가 학습한 만큼의 수치를 의미하는데, 솔직히 이 부분은 플레이어의 개입이 아예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루미노르 아카데미』에서 육성 시설이라는 건 그냥 캐릭터를 맡겨놓고 되찾아오는 것 정도만 가능한 장소일 뿐, 딱히 맡겨놓은 캐릭터를 직접 조종하면서 경험치를 얻는 미니게임 같은 요소가 아니었으니까.

         

        한 번 던져넣고 나면 그냥 캐릭터가 알아서 잘해서 이수율이 높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었으나.

         

         

        …그 캐릭터 당사자가 된 지금의 나에게는 상황이 완전히 반대로 바뀌어 있었다.

         

         

        대련할 기회는 많아야 세 차례, 어쩌면 한 차례만으로 끝나버릴지도 모르는 기회. 차마 기간이라고조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짧은 찰나의 순간.

         

        그리고 레벨이야 애초에 내가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고.

         

        그렇다면 오직 ‘이수율’에 해당하는 부분인 대련에서의 능력치만이 내가 조절할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이었으니.

         

        단시간에 최대한 많은 경험치를 뽑아먹기 위해서는 이 ‘이수율’을 최대한 높일 필요가 있었다.

         

         

        무조건 승리. 설령 패배하더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몸을 발악하며 대결하는 식으로.

         

        적어도 6레벨을 찍을 수 있게 되기 전까지는 사력을 다해 대련에 임해야만 했다.

         

        그러니 승리의 조건 중 하나인 좋은 무기 고르기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소모할 수밖에 없었고.

         

        겉보기에 비슷비슷하게 생긴 검들을 하나둘 들었다가 내려놓으며 마음속으로도 비슷한 감상을 떠올렸다.

         

         

        ‘이것도 조금…너무 무거운데.’

         

         

        물론 아무리 5레벨이라고 해도 이미 전신 철판 갑옷까지 입은 상황에서 철로 된 장검까지 휘두르는 것은 영 부담이었지만.

         

        이런 몸에 맞지 않는 무기를 들고 대련에 나서는 순간 제대로 된 공격도 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패배하게 된다.

         

        마법만 쓸 수 있다면 아무리 신입 병사라고 해도 대련 자체는 무난하게 승리할 수 있겠지만, 지금 내가 마법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들켰다가는 일이 소란 수준에서 끝나지 않을 테니까.

         

        결국, 포기하고 그나마 가장 가벼운 무기를 들고 대련에 임해야 하는 방향의 생각을 떠올리는 순간.

         

         

        “……어?”

         

         

        준비실 구석에 놓인 어느 검 한 자루가 문득 내 시야에 들어왔다.

         

         

        “이걸로 할게요.”

         

        “……네?”

         

        “이거면 될 것 같네요.”

         

        “…아니요, 릴리스 씨. 농담하지 마시고 제대로 된 무기를 들어주십시오. 상대방은 장검을 들고 대련에 임하실 텐데 그런 무기로 어떻게 상대하실 생각입니까.”

         

        “익숙하지도 않은 장검보다는 그래도 제 몸에 맞는 무기를 사용하는 편이 나으니까요.”

         

        “아니, 릴리스 씨….”

         

         

        에밀리아가 내 뒤에서 몇 차례나 내 손에 들린 무기를 다른 것으로 바꾸려고 시도했지만, 이미 내 결심은 완전히 이쪽으로 기울어 있었으니.

         

        이 무기만 있다면 릴리스의 몸으로도 신입 병사를 상대하기에 충분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내 오른손에 들린 이 ‘단검’만 있다면 말이지.

         

         

         

       ⁎ ⁎ ⁎

         

         

         

        에밀리아는, 이 상황이 부디 나쁜 꿈이기를 바랬다.

         

        신입 병사를 상대로 호기롭게 훈련 참여를 요청한 이 철없는 메이드가 다치지 않기를 기도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절망적인 상황이었는데.

         

        마치 장난이라도 치는 것처럼 여러 종류의 검을 들었다 놓는 릴리스를 보며 스트레스는 조금씩 쌓였고.

         

        마지막 순간에 제대로 된 무기는 전부 내려놓은 후 겨우 단검 한 자루만 들고 대련에 임하는 릴리스의 모습을 보자마자 에밀리아는 그만 머리가 어질어질해지는 기분이었다.

         

         

        ‘무조건 다칠 거야…. 어쩌면 중상을 입을 수도 있어….’

         

         

        물론 모의 대련장의 취지에 맞게 날을 무디게 만들어 놓은 검을 사용하는 만큼 중상을 입는다는 것 자체가 희귀한 사례였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이 비슷한 무기를 들고 싸울 때나 해당하는 이야기였다.

         

         

        성인 남성과 성인 여성.

         

        신입 병사와 메이드.

         

        장검과 단검.

         

         

        아무리 생각해도 압도적인 전력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대진에 에밀리아는 머릿속이 새하얘졌고.

         

        조금 전, 에단 공자가 자신의 귀에 대고 했던 협박이 다시금 아른거렸다.

         

         

        ‘메이드가 어느 한 곳에 작은 상처라도 입는 순간, 네 몸의 똑같은 곳에 다시는 아물지 않는 흉터를 새겨주도록 하지.’

         

        -꼴깍.

         

         

        …만약 저 아가씨가 대련에서 입는 부상이 ‘작은 상처’ 수준이 아니라면 어떻게 되는 걸까.

         

         

        날아드는 검을 팔로 막아내려다가 뼈에 금이 가기라도 한다면?

         

        혹은 어설프게 손을 휘젓다가 실수로 손가락이 잘리기라도 한다면?

         

        잘못해서 투구를 맞고 뇌진탕 증세를 보이며 그대로 쓰러진다면?

         

         

        온갖 불길한 상상이 에밀리아의 머릿속을 휘감으며 그녀의 마음을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만약에라도 에단 공자의 애첩인 릴리스가 중상 이상의 상처를 입기라도 한다면, 자신이 목숨을 건질 수 있을 만한 방법은 아예 없을 것 같았기에.

         

        대장님에게 공적 기록을 항의했던 일주일 전의 자신을 쥐어 패버리고 싶을 정도로 에밀리아는 가슴 깊이 후회하고 있었고.

         

        이 상황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서는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역시 안 돼. 무조건 말려야 해.’

         

         

        이후 에단에게 ‘네 멋대로 내 명령을 어겼다’라며 한 소리를 들을지언정 지금의 이 대련을 성사시키는 것 자체가 더욱 말이 안 되는 행위였다.

         

        자신의 생존확률을 조금이라도 더 올리기 위해서는 이 대련은 절대로 성사되어서는 안 되었으니까.

         

        애초에 에단 공자도 이 훈련을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눈치였으니, 이 훈련 참여를 막아내기만 한다면 처벌까지는 내려오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그렇게 완전히 마음을 먹은 에밀리아의 입은 이미 앞서 나가는 릴리스의 훈련 참여를 만류하였으나.

         

         

        그녀의 그 말은, 머지않아 메이드 아가씨에 의해 자연스레 끊어지게 되었다.

         

         

        “릴리스 씨, 역시 그만두시는 게 좋겠습니다. 굳이 릴리스 씨의 몸으로 신입 병사분들의 실력을 가늠하실 필요는….”

         

        -팡!

         

        “……?!”

         

         

        대련 준비실에서 모의 대련장으로 움직이다 말고 느닷없이 제자리에서 한 차례 손뼉을 치는 릴리스.

         

        그 상태 그대로 손을 모은 채 허공을 바라보는 릴리스의 행동에 놀라 에밀리아의 말은 순간 갈 곳을 잃고 끊어졌다.

         

         

        ‘갑자기 기도라도 하는 건가…?’

         

         

        대련하기에 앞서 가만히 선 채 손을 모으는 릴리스는 누가 보더라도 기도하는 소녀의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으니.

         

        진중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는 릴리스를 그녀는 잠시 넋을 잃고 쳐다보았고.

         

        십수 초 정도의 짧은 기도 후에 손을 내린 릴리스는 곧바로 에밀리아를 돌아보며 옅은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말 끊어서 죄송해요, 잠시 준비할 게 있었거든요.”

         

        “…아, 아닙니다.”

         

        “방금 하신 말씀에 대한 대답이라면 저는 물러설 생각 없어요. 그러니까 아무리 설득하신다고 해도 저는 대련에 임할 거에요.”

         

        “…….”

         

        “어차피, 제가 이길 거기도 하고요.”

         

         

        자신만만한 말투와 표정으로 대련장을 향해 걸어 나가는 릴리스와 그 뒤를 홀린 듯이 따라가는 에밀리아.

         

        이렇게 되어버린 그녀가 할 수 있는 대처라고는 오직 한 가지밖에 없었다.

         

         

        ‘이렇게 된 거, 차라리 제발 이겼으면….’

         

         

        저 릴리스라는 메이드가 정말로 갈고리엄니를 스스로 토벌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였다는 것.

         

        그리고 단검 한 자루로 신입 병사와의 대련에서 상처 하나 없이 능숙하게 승리할 수 있는 능력 또한 갖추고 있는 것.

         

        그 희박한 가능성에 자신의 신세를 거는 것만이 에밀리아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생존 방법이었으니.

         

        저 여자가 갈고리엄니를 토벌했을 리 없다고 주장했던 자신의 발언이, 제발 주제도 모르는 헛소리였기를 누구보다 간절히 바라게 된 순간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슉. 슈슉. 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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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id of the Lout Prince

I Became the Maid of the Lout Prince

망나니 공자의 메이드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transmigrated into a character from my favorite game in my previous life. Moreover, as the character I despise second most in the game. (Not a wasteman) The cover was designed by Deep Dark Wolf, and the typography was done by 유일유화 (Yu Ilyuh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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