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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9

       “으읏…….”

       

        양하나는 지끈거리는 두통에 눈을 떴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정신이 멍- 하다. 마치 온몸을 두들겨 맞은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깨어났느냐?”

        “아?”

       

        이제는 익숙해진 ‘고통’을 이겨내며 상체를 일으켰다. 그러자 곧장 익숙한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를 울렸다.

       

        “할아버지!”

       

        놀라운 사람이 그녀가 누워있던 침대 옆, 평범한 병실 의자에 앉아있었다.

       

        “어쩌다 돌아오신 거에요? 이번에 가는 특별한 조사는 엄청 오래 걸린다고 하셨잖아요!”

        “떼잉, 그럴 이유가 있었다. 다 늙은 노친네가 바깥 공기를 오래 맞는 것도 영 청승떠는 것 같고.”

       

        익살스러운 할아버지의 말투에 양하나는 배시시 미소지었다.

       

        그녀가 잘 알던 할아버지다. 먼 여행이 될 것이라 말했던 것이 무색하게 고작 일 년만에 돌아오신 이유는 그녀도 잘 모르겠지만.

       

        “고얀 녀석. 괴수 토벌 도중에 사선을 넘었어.”

       

        텁.

       

        안타까운 시선으로 양하나를 바라보던 노인이 몸을 일으켰다. 그러더니, 어린 아이를 대하듯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게 제가 걷는 길인걸요? 할아버지가 어릴적부터 누누이 말씀하셨잖아요.”

        “그래, 그랬지.”

       

        쓰게 웃은 노인은 풀썩 그녀가 누운 침대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그에 양하나가 환하게 웃자, 아직 안타까움을 지우지 못한 노인이 슬쩍 그녀에게 물었다.

       

        “정신을 잃기 전. 기억이 나는게 있느냐?”

        “기억… 이요?”

       

        뜬금 없는 할아버지의 질문에 양하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연히 기억이 난다. 할아버지가 양하나에게 맡긴 카페. 그 카페에서 우연히 한 사람을 만났다. 나름 담백한 대화 도중, 그녀는 게이트 출현 연락을 받고 괴수를 토벌하러 떠났다.

       

        그리고.

       

        거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생각보다 강력한 괴수가 원인이었다. 그녀의 짧은 삶이라 할지라도, ‘초능력’을 사용하는 괴수는 들어본 적이 없던 것이니까.

       

        아무튼.

       

        양하나는 큰 부상을 입었다. 사람들이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공간을 격리한 역장 내로 진입했다. 그들을 지키기 위해서 무리하다 좌측 복부가 꿰뚫린 것이다.

       

        “다행히 저를 도운 사람이 있었어요.”

        “그래, 이 할애비도 들었다.”

       

        비틀거리는 양하나를 도운 건 바로 그 남자였다.

       

        처음 그를 만난 것은 승천전의 본선 첫 경기. 대한민국… 아니, 전세계 제일 가는 검가, 고양양가의 장녀 양하나는 D등급인 그에게 처참히 패배했다.

       

        슬프지는 않았다. 그저 조금 아쉬울 뿐이었다.

       

        그를 꺾지 못한 건, 오롯이 그녀의 노력이 부족했다는 걸 증명했으니까.

       

        “그 아이에겐 따로 감사인사를 해야겠구나. 둘도 없는 손녀딸을 구해준 놈이니.”

        “에에? 할아버지가 직접이요?”

        “당연한 소리를? 누가 은인에게 사람을 보내 감사인사를 대신 전하겠느냐.”

       

        노인이 방긋 웃었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평범한 노인의 웃음처럼 보였지만, 어릴 때부터 양하나는 할아버지의 저 미소가 참 좋았다.

       

        “맞아요.”

       

        오랜만에 할아버지를 만나 잠시 잊고 있었다. 원래 그녀의 할아버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명예와, 힘이 있음에도 자신의 정의를 관철하며 나아가는 초인이 바로 그녀의 할아버지다.

       

        “다행히 네 몸 상태는 괜찮다고 하더구나. 참 신기하단 말이지? 고작 반나절 지났을 뿐인데 이렇게 회복되는 것이.”

        “학교에서 배웠는데, 인류 문명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빠지며 가장 먼저 발현한 것이 방어계와 회복계 능력이래요.”

        “허허! 말은 잘하는구나. 하나야, 네 애비한테 이 사실을 전해도 괜찮겠어?”

        “……윽!”

       

        갑작스러운 노인의 질문에 양하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녀의 아버지는 팔불출이다. 전세계 검사들의 모든 존경을 한몸에 받는 ‘검의 제왕’이라는 이명이 우스울 정도다.

       

        그런 아버지가 양하나의 소식을 듣는다면? 아마 가문의 타격대를 이끌고 전용기를 탈 수도 있었다. 그는 딸, 양하나를 끔찍하게 생각하니까.

       

        “흐흐.”

        “……?”

       

        노인의 비열한 웃음에 양하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애당초 아버지 얘기를 왜 꺼냈나 모르겠지만, 확실한 사실은 노인의 저 웃음이 흘러나올 때면 항상 불안한 일이 터지곤 했었다.

       

        “그렇다면 할애비의 질문에 솔직히 답하렸다.”

        “무슨 질문인데요? 제가 할아버지 질문에 솔직히 답하지 않을 리가 없잖아요?”

        “그래. 나도 잘 알지. 하나가 아직 어리지만 검사의 긍지를 아는 녀석이란 걸.”

        “…….”

       

        양하나의 불안감은 노인의 혀가 길어질 수록 더더욱 깊어져갔다.

       

        그녀가 아는 할아버지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망나니에 가까운 성격을 가진 그인데, 어째서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걸까?

       

        “자. 묻겠다. 우리 손녀딸.”

        “네! 얼마든지 물으세요. 아시잖아요? 제가 거짓말을 하는 걸 싫어하는 것.”

        “그래그래. 바로 어제, 할애비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느냐?”

        “맞아요. 음…… 할아버지가 가게를 맡기면서 당부했잖아요? 가게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곧장 전화하라고.”

        “그래! 그거다!”

       

        양하나의 말을 들은 노인이 손뼉을 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사람. 도대체 그 빌어처먹을 놈이 도대체 누구냐?”

        “…….”

       

        태어나서 처음 보는 할아버지의 반응에 양하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 남자는 조금 특이한 사람이다. D등급인데도 S등급, 그중 최상위 레벨인 그녀를 압도하고, 주변에 쟁쟁한 실력자가 가득한 의문의 남자.

       

        <현상거절> 임혜성. 그가 할아버지가 맡긴 카페에 들어온 주인공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을 할아버지가 왜 궁금해하시는 거지?

       

        “왜, 왜요? 갑자기?”

       

        결국, 양하나가 한 답변은 위와 같았다.

       

        ‘할아버지가 갑자기 왜 저러시지?’

       

        그녀는 할아버지를 사랑한다. 어릴적부터 끔찍하게 그녀를 아낀 검의 황제가 그의 친조부. 검과 가족 외에는 세상 어느것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그인데 어찌 사랑하지 않을까.

       

        하지만…….

       

        양하나는 모종의 불안을 느꼈다.

       

        할아버지를 비롯한 가족들을 사랑하는 만큼 그들이 가진 괴이한 성격을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예로, 그녀가 처음 아카데미에 편입하던 때를 떠올리면 된다.

       

        양하나가 편입한 중등부는 의외로 약육강식의 사회였다. 

       

        뻔한 일이다. 중2병 말기 환자들이, 실제로 물리 법칙을 벗어난 ‘초능력’을 뻥뻥 써댈 수 있었으니까.

       

        거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같은 클래스 남자 아이 하나가, 어느날 양하나에게 선물이라고 초콜릿을 건넸던 것이다!

       

        진정한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해당 남학생은 이튿날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듣기로는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단다.

       

        우직한 검도를 걷는 양하나라고 할지라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녀를 비호하는 고양양가가 압력을 가해 학생 하나를 전학시킨 거겠지.

       

        “왜요? 지금 왜요라고……?”

        “아, 아니. 갑자기 물으셔서 당황했어요.”

       

        아무튼.

       

        노인은 양하나의 반응에 깜짝 놀란듯 턱이 쩍 벌어졌다. 일평생 그녀의 손녀가 그에게 반문한 적은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허! 허허! 허허허허!”

       

        세상을 잃은 표정이 된 노인, 양하나의 할아버지가 미친 사람처럼 헛웃음을 터뜨렸다.

       

        히어로 계의 살아있는 전설, <검황>의 그런 웃음은 분명 정상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래. 결국 그리 된 게야…….”

       

        울적한 얼굴의 노인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이상할 정도로 말이 통하지 않는 기분이 든 양하나는 가슴이 답답했다.

       

        그녀도 모르는 사실을 할아버지는 아는 것 같았는데, 지금 상태를 보니 대화를 나눌 때가 아닌 것처럼 보였다.

       

        “몸조리 잘 하거라. 듣자하니 약한 후유증이 있을 뿐, 몸에는 이상이 없다고 하더구나.”

        “할아버지?”

        “퇴원 수속을 밟기 전에 TV나 보거라. 너를 구했다는 녀석의 승천전 경기가 있는 모양이니까.”

       

        끼이익!

       

        비척비척 병실을 나서는 노인의 모습. 그 물흐르듯 자연스러운 퇴장에 양하나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검황> 양충일.

       

        그도 양하나의 다른 가족들처럼…… 괴인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 * *

       

        팟!

       

        “야 이 돌팔이 새끼야!”

        “크허허허!”

       

        병실을 나선 검황이 돌연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허공에 삿대질을 했다.

       

        놀라운 것은 그 허공에서 이내 큰 웃음이 울렸다는 사실이다.

       

        스르륵!

       

        어둠에서 모습을 드러낸 웃음의 주인공은 검황과 비슷한 연배의 노인이었다.

       

        <검황> 양충일이 조금은 꼬장꼬장한 인상의 노인이라면, 이쪽은 푸근하고 성격 좋아 보이는 인상이었다.

       

        “말하지 않았나! 책임은 안 진다고!”

        “이, 이이, 이 벼락맞아 뒈질 놈이?”

       

        친우의 너스레에 검황의 코가 뜨거운 김을 뿜었다.

       

        그들이 이런 대화를 나누는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 검황의 손녀 양하나가 아직 중등부에 재학 중일 때 했던 내기가 원인이었다.

       

       

       

        ‘자네는 운명을 믿는가?’

       

        그 옛날, 검황의 오랜 친구인 <점성술사>의 질문이었다. 당연히 검황은 그런 친구의 질문에 코웃음을 쳤다.

       

        ‘개소리. 돌팔이 사이비야. 나는 그따위 것을 믿지 않는다.’

        ‘인연이란 것은 강제로 막아지지 않아. 학우 하나를 전학시킨 이유가 뭔가?’

        ‘이유? 뭔 이유가 있나? 실력있는 놈을 상위 클래스에 보낸 것 뿐이야.’

       

        양하나의 동급생 하나를 전학시킨 검황은 빠져나갈 구석을 마련해두었다.

       

        상위 클래스로 전입. 그게 눈엣가시인 놈에게 제시한 조건이니까.

       

        ‘허허! 이거 귀여운 조카손주가 평생 독수공방하게 생겼구먼.’

       

        점성술사는 검황의 행동을 비웃었다. 말투는 평소 그가 그렇듯 참 점잖았지만, 그의 오십년지기 친구인 검황은 그의 의도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이 빌어먹을 놈아, 내 손녀는 내가 지킬테니 헛소리는 집어치워라.’

        ‘그렇다면, 우리 내기를 하는 건 어떤가?’

        ‘내기? 네놈은 그런 것 싫어하지 않나?’

        ‘기세등등한 자네를 보니 코를 납작하게 해주고 싶어서 그렇지.’

       

        점성술사가 제안한 것은 간단했다.

       

        최근 연구 중인, ‘운명’의 상대를 만나게 해주는 공간을 만들겠다. 그 공간에 양하나를 데려다 두는 거다. 마치 생쥐를 잡기위한 덫처럼.

       

        ‘미친놈.’

       

        검황은 친우를 안타깝게 생각했다.

       

        제아무리 초능력의 힘과 그 응용하는 힘이 무한에 가까워도 그따위 것이 말이나 되는가.

       

        ‘조건은?’

        ‘조건은 없네. 그저 자네가 정신을 차리길 바라는 것이니.’

        ‘허허! 벌써 노망이 난 모양이군!’

       

       

       

       

        그리하여 성립된 내기다. 물론, 수년간 진행된 내기의 결과는 검황의 패배였다. 바로 어제, 양하나가 노인에게 전화를 했으니까.

       

        “나는 네녀석에게 진 것이 아니야.”

        “허허! 늙으니 혓바닥이 길어져. 내가 알던 <검황>은 이런 한심한 사내가 아니었는데!”

        “허! 네놈이 말하지 않았나! 그 운명의 상대가 ‘사랑’의 대상일지, ‘스승’일지, ‘군신’일지 모른다고!”

       

        씩씩거리던 검황은 큰소리와 함께 저만치 먼저 걸어갔다.

       

        그런 정실머리 고약한 노인의 등을 바라보며, <점성술사>는 크게 웃었다.

       

        “나는 세가지 중 하나라는 소리는 안 했는데? 모르지. 그 세가지가 다 해당할 수도. 허허!”

       

        사랑스런 자식손주, 싸고 도는게 정답은 아니다. 그의 친우는 그 사실을 아직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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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Hiding My Power at Hero 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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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Hero. Everyone admires them as they wield supernatural powers that defy the laws of physics. The ability I possess is to 'reject' those p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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