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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9

       사실 내가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죽음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고 해서 내가 무적인 것은 아니다. 내가 처음 몇 번 시간을 돌렸던 순간은 내 자의가 아니었지만, 적어도 죽지는 않았었다. 정확히는 ‘나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 이후에는 모두 내가 스스로 돌린 시간이었고.

        

       사실 처음 몇 번도 나의 강한 염원이 작용했다고 생각하는 쪽이 맞는 말이겠지. 이 능력이 정말로 ‘나의’ 능력인지, 아니면 저 위에서 나를 관찰하는 다른 무언가의 능력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이쪽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신을 만나 설명을 들은 것도 아니고, 시스템이나 상태창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세이브 로드와는 또 다르다. 특정 시점에 세이브를 한 다음 다시 돌리는 것과는 다르게, 내 능력은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시점으로 다시 시간을 돌리는 것이었으니까.

        

       트리거가 ‘강하게 염원’하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그게 굳이 목숨의 위협을 받는 순간일 필요는 없다. 내가 부끄럽거나, 아니면 다른 선택을 원하거나 하는 것만으로 시간은 쉽게 돌아갔다.

        

       하지만 그렇다면, 내가 그런 염원을 할 수 없는 상태일 때는 어떨까.

        

       총에 맞거나. 폭발에 뭔가 하기도 전에 몸이 산산이 찢겨나가거나.

        

       ……아니면 얼음 창이 그대로 머리를 뚫어버리거나.

        

       미아 크로우필드는 나에게 큰 위협이었다. 아직은 나를 죽일 방법이 없지만, 이 마르마로스가 있다면 가능할지 모른다. 특기가 얼음 마법이니까.

        

       주인공 일행이 위험에 처하는 것은 원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내 목숨을 등한시할 수는 없다. 일단은 내가 이걸 가지고 있다가, 미아 크로우필드가 나를 죽일 가능성이 거의 없어졌을 때 줄 생각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1학기가 끝날 때까지는 이 정도 수준의 마르마로스를 쉽게 얻을 수는 없을 것이고, 나는 시간을 벌 수 있다.

        

       문제는, 내가 이 사실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거다.

        

       지금 이 둘이 궁금해하는 것은 내가 이걸 왜 가지러 왔는지보다는 어떻게 알고서 가지러 왔는지일 테니까.

        

       “……아직은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결국 대답이 궁해진 나는 그냥 그렇게 우길 수밖에 없었다.

        

       “…….”

        

       내 앞에 서서 자리를 비키지 않고 나를 가만히 바라보는 앨리스의 시선이 따가웠지만, 나는 표정을 바꾸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다시 말했다.

        

       “언젠가, 때가 되면 말씀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앨리스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내 표정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게 된 앨리스다. 어쩌면 지금 내가 당황했다는 것을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앨리스 본인이 그 표정을 어떻게 해석할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

        

       “…….”

        

       우리 두 사람은 한동안 서로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후우.”

        

       정말 다행스럽게도 먼저 물러난 사람은 앨리스였다.

        

       “……너도 알겠지만.”

        

       앨리스는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나는 기억력이 꽤 좋아. 네가 그런 말을 했다는 걸 앞으로 절대로 잊지 않을 테니까. 언젠가 정말로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온다면 꼭 그렇게 해야 해.”

        

       “알겠습니다.”

        

       뭐, 어차피 그럴 생각이긴 했다.

        

       충분히 친해지고, 모든 일이 끝난 뒤, 내가 다시는 이 능력을 쓸 필요가 없게 되면. 그리고 그때도 주인공 일행과 내 관계가 긍정적이라면, 말하지 못할 것도 없다. 어차피 그때쯤이면 내 컨셉같은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어질 테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본격적으로 스토리가 진행되기 시작한 지 이제 일주일째. 모든 흑막을 드러내기에는 너무 이르고, 그렇게 하면 오히려 주인공 일행이 위험해질지 모른다. 이 정의밖에 모르는 바보들이라면 곧장 황제를 적대하게 될 테니까.

        

       무엇보다, 벨부르 왕국과 아제르나 제국이 무력 충돌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샤를로트도 절대로 가만히 있지만은 않을 테니까.

        

       “그때는, 저도 함께 그 사실을 들을 수 있을까요?”

        

       “……아마 그럴 수 있을 겁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앨리스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실비아가 저렇게 말했다는 건 그만큼 확신하고 있다는 뜻이야. 아마 샬럿 너도 그 자리에서 함께 듣게 되겠지.”

        

       “그런가요?”

        

       앨리스가 그렇게 말하니 일단은 넘어가 주겠다는 태도였지만, 샤를로트는 나를 백 퍼센트 신용하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난 샤를로트의 아버지인 벨부르 국왕을 대놓고 협박한 적이 있으니까.

        

       “……뭐, 그렇다면 어쩔 수 없겠죠. 실비아 당신이 입을 다물면…… 솔직히, 저는 그 입을 열어낼 방법이 보이지 않으니까요.”

        

       평소에 이미지를 그렇게 쌓아두길 잘했다. 앨리스는 그래도 내 표정을 읽긴 했지만, 그 외의 사람들에게 나는 불가사의한 존재였다. 저쪽에서 미리 포기해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볼일 끝난 거지? 그럼 일단 밖으로 나가자. 솔직히 들어오는 순간부터 냄새가 끔찍했어. 지금은 거의 코가 마비된 기분이야.”

        

       “……우선은 옷부터 갈아입도록 하죠. 어쩌면 지금 입고 있는 이 옷은 다시 입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확실히, 내 코트의 털 부분에 냄새가 밸 것 같기는 했다. 빨아서 지워질까?

        

       “그리고, 기왕 이렇게 된 거 그냥 다 같이 모여서 파르페나 먹으러 갈까? 옷 갈아입은 다음에.”

        

       그렇게 말한 앨리스가 다시 나를 돌아보며 얼굴에 씩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좋아하잖아? 파르페.”

        

       ……그렇게 표정 관리를 했는데도, 앨리스한테는 숨길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때 그 표정이 좋아하던 표정이었나요?”

        

       “쟤는 표정에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 보이거든.”

        

       앨리스가 그렇게 말한 뒤 다시 뒤돌아 앞장서 걷기 시작하자, 샤를로트가 뭔가 기이한 것을 보는 시선으로 앨리스를 보았다.

        

       적어도 이 순간에는 나도 샤를로트에게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어떻게 알아보는 건지 모르겠네.

        

       *

        

       아침 일찍 일어나 가도에서 의뢰를 수행하고, 하수도를 탐험하고, 몸을 한 번 씻고 옷까지 갈아입은 뒤 카페에서 가볍게 끼니를 때우고 파르페까지 먹었는데도 오후 세 시가 채 되지 않았다.

        

       아침이 빠르면 이렇게까지 시간이 많을 수가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또 할 일이야?”

        

       파르페를 먹은 뒤 내가 할 일이 있다고 말하자, 앨리스가 조금 질린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뭐, 좋아. 사실 네 할 일이라는 게 뭔지 궁금하긴 하지만…… 솔직히, 이제 와서 더 살펴본다고 해서 내가 뭔가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으니까.”

        

       그렇게 생각해주니 정말 다행이었다.

        

       그리고 앨리스의 판단은 정확했다.

        

       나는 지금부터라도 방으로 가서 침대에서 뒹굴거릴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황금 같은 일요일의 절반 이상, 심지어 나는 시간까지 돌려가면서 몇 시간을 쉬지 않고 일했으니 슬슬 조금 쉬어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레오와 클레어는 지금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이런저런 의뢰를 해결하고 있을 거고, 아마 미아 크로우필드는 방에 틀어박혀 있겠지.

        

       “샬럿, 우리 같이 공부하러 가지 않을래?”

        

       “그럼, 그럴까요? 실비아, 오늘은 꽤 즐거웠어요. 아직 당신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겠지만…….”

        

       “맞아. 제도 하수도에 들어가 볼 일이 우리한테 얼마나 있겠어?”

        

       고개를 끄덕이는 앨리스에게 앞으로 그것보다 훨씬 깊은 곳에 가서 무지막지하게 징그럽게 생긴 괴물을 상대해야 한다고 하면 어떤 표정을 지어 보일까.

        

       음, 다시 생각해보니 지금 말한다고 해도 그런 상황을 상상하며 얼굴을 찡그리는 것 보다는 나보고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있냐’고 물어볼 것 같으니 그냥 말해주지 않기로 했다.

        

       가끔은 굳이 시간을 돌려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도 있는 법이니까.

        

       “그럼, 조금 있다가 저녁 때 보자.”

        

       “알겠습니다.”

        

       내 앞을 떠나가는 두 사람에게 허리를 살짝 숙여 보였다.

        

       “…….”

        

       그리고 어깨에서 힘을 살짝 풀었다.

        

       휴.

        

       혼자서 다녀온 뒤에도 힘이 쭉 빠졌을 텐데, 이렇게 두 사람까지 함께 데리고 다녀오니 힘이 두 배로 드는 기분이었다.

        

       ……좋아. 지금부터는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말도록 하자.

        

       방으로 돌아가 침대 위에서 전력으로 뒹구는 거다. 그리고 저녁 시간이 되면 다시 시간을 돌려 또 뒹굴고, 그다음에 한 번 더 시간을 돌려 또 뒹굴 거다. 그 정도는 되어야 나의 정신적인 피로가 풀릴 것 같았다.

        

       “오, 황녀님.”

        

       그리고 나의 그런 기대감은 어떤 금발 태닝 양아치에 의해 무참하게 깨지고 말았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금발 태닝 양아치였다.

        

       그것도 양쪽에 여자들을 끼고 있는.

        

       “……무슨 일이시죠?”

        

       너 나 아냐?

        

       간신히 그 말을 꾹 참은 채 나는 물었다.

        

       적어도 지금 우리는 처음 마주쳤으니까.

        

       이 옆을 지나가다가 우연히 말을 건 것인지, 아니면 어느 정도 일부러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글쎄, 상대를 보면 후자처럼 보이긴 했다.

        

       “아, 죄송합니다.”

        

       금발 태닝 양아치는 얼른 내 쪽으로 허리를 살짝 숙여 보였다. 다소 껄렁한 분위기의 얼굴에 비해서 저 인사하는 태도는 내가 봐도 감탄이 나올 정도로 부드럽고 정중했다.

        

       그도 그럴 게, 제국에서 꽤 이름있는 공작가의 장남이었으니까.

        

       참고로 피부가 갈색인 이유는 ‘정말로’ 태닝했기 때문이다. 원래부터 어두운색을 타고난 것이 아니라.

        

       다만 옆에 있는 검은 머리 여자애의 경우에는 정말로 피부가 어두운 거고.

        

       양옆을 따르고 있는 여자애 중에서 유독 표정이 무표정에 가까운 얘는…… 식민지인이다. 일러스트에서는 인종 구분이 어렵지만, 이렇게 보니 현실에서는 ‘인도계’라고 생각해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다만 순혈 식민지인은 아니고 반은 제국인이긴 했지만.

        

       나에게 말을 건 금태양을 따라 옆에 있던 애들도 인사했다.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아무래도 내 표정을 보면 웃음이 나오지는 않는 모양이다.

        

       “지나가다가 우연히 황녀님을 보게 되어서 인사를 드렸을 뿐입니다. 혹시 방해되었다면 죄송합니다.”

        

       “…….”

        

       더 돌려 말해서 뭐 하겠는가.

        

       얘도 주인공 일행 중 한 명이다.

        

       흔히 금태양이라고 하면 동인지에서 히로인 뺏는 역할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건 성인용 만화나 야겜에서나 나오는 설정이다. 정작 실제로 이런 매체에서 나오는 금태양은 그냥 열혈 바보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얘가 무작정 열혈 바보인 것도 아니기는 하지만…… 뭐,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는 점에서 열혈 바보라고 하면 딱히 틀린 말은 아닐 거다.

        

       잘 놀고, 잘 생기고, 여자한테 인기도 많지만 정작 본인은 딱 한 여자만 바라본다. 바로 옆에 있는 식민지 혼혈. 촌수로 따지면 먼 친척이라고 하던가. 공작가의 피가 섞이긴 했지만 그래도 결국 식민지인이라 저 금태양의 ‘하녀’로 붙어있는 애였다.

        

       그래도 아카데미에는 사용인 신분이 아니라 학생 신분으로 들어올 수 있었지만, 아무래도 취급은 평민이다 보니 반은 갈라졌다.

        

       “제이크 린드버러입니다.”

        

       원작에서는 음모에 능통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귀족적인 감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말보다 손이 먼저 나가는 스타일이다.

        

       여자한테 상냥하지만, 남자한테는 가차 없다고 해야 할까. 어느 정도 ‘개그 캐릭터’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도 했다. 하렘물에 흔히 나오는 주인공 친구형 캐릭터다.

        

       제작사에서 이 캐릭터 옆에 붙여준 이유는 아마 하렘물의 방해꾼 이미지를 만들지 않기 위한 것인 것 같다.

        

       그래도 덕분에 지고지순한 순정남 기믹이 추가되어서 나름대로 입지는 확보할 수 있었지만.

        

       “실비아 팬그리폰입니다.”

        

       내가 그렇게 대답하자 제이크 린드버러는 살짝 숙였던 허리를 다시 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

        

       뭔가 할 말이라도 있냐?

        

       그런 생각을 시선에 담아 던져보았지만, 사실 나의 표정을 알아보는 사람은 내 주변에서도 앨리스뿐이었으니 이 바보가 내 생각을 알아보지 못할 가능성이 훨씬 더 컸다. 실제로도 제이크 린드버러는 싱글거리는 인싸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나한테 말을 건 이유가 있다면.

        

       나는 시선을 살짝 돌려, 린드버러 옆에 서 있는 식민지 혼혈을 보았다.

        

       원작에서는…… 사실 이쪽도 제이크 린드버러한테 이런저런 관심이 많지만, 그저 옆에서 그를 보좌해주는 역할로 나왔다. 파티에서 둘 중 하나를 제외하는 것은 가능하고, 나름대로 인연 퀘스트도 있긴 하지만 주인공과 이어지는 역할은 아니다.

        

       아마 나한테 말을 걸라고 말해준 쪽은 이쪽이겠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당연하지만 원작에서의 캐릭터성은 여기서도 이어지므로, 저 금태양이 흔히 NTR작품에 존재하는 그 금태양이 되는 일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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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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