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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9

       수상쩍은 용병 집단의 비공정은 깊고 으슥한 산속에 당도했다. 임시 천막들이 뒤덮인 인공적인 공터가 보였다.

         

       파스텔은 공터의 옅은 모닥불이 시야에 들어올 때쯤 움직였다. 대롱대롱 매달리던 검을 비공정에서 뽑고 지상의 높은 나무를 향해 도약했다.

         

       안전 착지~!

         

       수목이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나무에 발이 닿았다. 큼지막한 나뭇가지들이 출렁였다.

         

       우왁.

         

       균형을 잡으며 버티자 점차 나무가 안정됐다.

         

       파스텔은 몸에서 잔가지와 잎을 털어내고 가지 사이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비공정은 그대로 날아가 공터 한 편에 마련된 비공정용 착지대에 안착했다. 공터 천막에서 역시나 무장한 용병 일원들이 비공정을 마중 나왔다.

         

       “완전 수상쩍죠?”

         

       굳이 눈에 안 띄는 낮은 비행으로 날아가 숨겨진 은거지에 당도하는 소속 불명의 존재들?

         

       뭔가 있지 않으면 섭섭할 정도.

         

       『수상하긴 하다만 상단의 일이니 탈세용 조직일지도 모른다. 상단 조직을 서류상으로만 축소시키고 수확량을 일부 감춰 세금을 덜 내는 방법은 흔해.』

       “아니죠 아니죠.”

         

       파스텔은 고개를 젓고 진중한 표정을 지었다.

         

       “탈세의 왕은 밀무역이잖아요? 왕중왕이라 불릴 자격이 있는 제가 볼 땐 저건 탈세 행위가 아니에요! 돈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아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산속 특유의 맑은 공기가 맡아졌다.

         

       “오히려 이건 사악한 범죄의 향기예요!”

         

       맑은 공기=어쨌든 사악한 향기

         

       으아아, 완전 사악해.

         

       밀무역자 파스텔은 상상도 하지 못할 범죄가 숨겨져 있을 게 뻔해.

         

       악마가 황당해했다.

         

       『뭐라 반응해 줘야 할지 모르겠군. 그보다 밀무역 경력을 자랑스럽게 소개하지 마라. 도대체 언제부터 자칭 왕중왕이 된 거냐.』

         

       파스텔은 잔소리를 흘려듣고 나뭇가지 끄트머리로 향했다. 폴짝 도약해 반대 나무로 이동했다. 여러 차례 반복하며 공터 근처로 향했다.

         

       폴짝폴짝.

         

       토끼 파스텔……!

         

       공터가 가까워지자 이동을 멈추고 나뭇가지를 끌어모았다. 나뭇잎으로 넉넉히 몸을 가리곤 어째 심상찮은 공터를 살펴봤다.

         

       임시숙소인 천막들이 나열된 거 외에도 목줄에 묶이거나 철창에 갇힌 괴조들이 공터 한편을 차지했다.

         

       갇힌 괴조는 사나웠지만 목줄에 묶인 괴조는 큰 소란 없이 몸을 웅크리고 잠잤다.

         

       『호오, 길들였군. 어떻게 한 거지? 대를 이어 하늘고래를 타고 하늘섬의 성지를 방문하던 유서 깊은 마족들만 할 줄 알 텐데.』

       “마족이요?”

         

       파스텔은 고개를 갸웃했다.

         

       “저 수상한 사람들 마족이에요?”

         

       엘리처럼 살짝 뾰족해야 할 귀가 평범한데.

         

       『당장 보이는 인원 자체는 그렇지 않지만 괴조를 길들인 걸 보면 일부가 마족이거나 마족과 협력 관계긴 할 거다. 그만큼 괴조 사육은 희소한 기술이야.』

         

       희소 기술을 보유한 수상쩍은 집단?

         

       으잉, 진짜 완전 수상쩍어.

         

       “탈세의 왕으로서 평가하자면 저 사람들은 절대 탈세를 위해 있는 게 아니에요! 정직한 탈세범은 절대 저러지 않거든요! 제가 알아요!”

       『정말 뭐라 반응해 줘야 할지 모르겠군.』

       “매우 수상한 음모가 있다는 얘기죠! 안 되겠어요! 조심스럽게 잠입해 보죠!”

         

       파스텔은 높은 나무의 가지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중간 부근의 나뭇가지에 떨어지곤 다시 지상으로 폴짝. 분홍 머리카락이 길게 늘어지다가 소녀가 사뿐히 착지했다.

         

       수풀과 그림자에 숨으며 잽싸게 이동했다. 공터와 바로 붙은 나무 뒤에 몸을 숨겼다.

         

       아주 미세하게 소곤거렸다.

         

       “괴조도 가까이 가면 짖겠죠?”

       『흠.』

         

       악마가 담담히 말했다.

         

       『새는 개가 아니다.』

         

       그렇구나.

         

       파스텔은 진지하게 납득하다가 멈칫했다.

         

       잉, 방금 바보 취급당한 건가?

         

       나, 바보 파스텔이 된 거야……?!

         

       으아아?!

         

       『다만 소란스러워지긴 하겠지. 잠들지 않은 괴조에게 너무 가깝게 접근하진 않도록 주의하며 접근해라.』

         

       전혀 바보 취급하지 않았다는 양 평소 같은 목소리에 파스텔은 굉장히 의심쩍어졌지만 굳이 캐묻진 않았다.

         

       마검을 슬쩍 묘용~하게 바라보곤 공터로 잠입했다.

         

       괴조 철창들을 사각지대 삼아 조심스럽게 또는 잽싸게 움직였다. 괴조 감시 인원으로 보이는 두 명의 대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이 갈 생각이었다. 대화를 엿듣다 보면 뭐 하는 집단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잠든 괴조들 옆에서 나누는 대화라 그런지 작은 목소리라 어지간히 접근해선 대화가 들려오지 않았다.

         

       파스텔은 들키지 않을 정도로 최대한 근처의 철창에 접근해 괴조를 사각지대 삼아 숨은 다음 귀를 기울여봤다.

         

       안 들리는데…….

         

       이러면 정말 나쁜 집단인지 아닌지를 판명하기가 곤란하다.

         

       호르몬 친구가 히잉~거리며 실망하는 모습이 상상되고 있어.

         

       상상 속에서 단호히 외쳤다.

         

       실망해도 안 돼!

         

       그러다 괜한 사람을 죽이면 어쩌려구!

         

       떼치야, 떼치!

         

       히잉~.

         

       그래도 안 돼!

         

       세상은 차갑고 냉혹한 법이야!

         

       떼쓴다고 뭐든 들어줄 수 없어!

         

       에헴.

         

       호르몬 친구를 단단히 제압하곤 마검을 톡톡 건드렸다.

         

       악마님, 악마님은 뭔가 안 들려요?

         

       호르몬 친구가 크아앙-! 할 만큼 사악한 증거라던가?

         

       악마도 모른다면 비공정에 잠입하거나 천막으로 눈에 띄게 접근해 봐야 한다.

         

       『착각일지 모르겠다만, 저 어린 새들은 며칠 전에 보지 않았나? 물려갔던 둥지 말이다.』

         

       그걸 물은 게 아닌데요오.

         

       텔레파시가 전혀 안 통했잖아.

         

       파스텔은 살짝 뚱하게 고개를 돌렸다. 악마가 말한 곳을 향해서였다.

         

       두 철창 정도 떨어진 곳의 철창에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사슬이 엮인 가죽 입마개로 부리가 잠긴 아기새 세 마리였다. 파스텔만 한 키를 가진 아기새들이 올망졸망한 시선을 보냈다. 거대 병아리들 같았다.

         

       오잉.

         

       파스텔은 눈이 동그랗게 됐다. 아기새처럼 덩달아 입을 세모나게 벌리고 시선을 마주쳤다.

         

       정적이 흘렀다.

         

       감시 인원을 슬쩍 살피곤 철창을 건넜다. 아기새의 철창 앞에 당도하자 아기새들이 애처롭게 바라봤다.

         

       너희들 왜 여기 있는 거야?

         

       둥지는? 어미새는?

         

       아기새가 대답하듯 부리를 벌리려 했지만 사슬이 엮인 가죽 입마개는 단단했다.

         

       억눌린 울음소리만이 났다.

         

       ―삐이…….

         

       애처로운 눈빛이 왔다.

         

       파스텔은 가슴이 찌르르했다.

         

       너희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

         

       분명 며칠 전만 해도 포근한 둥지에서 지냈잖아!

         

       조난된 나와 좋은 추억도 보내고……!

         

       아련한 추억들이 떠올랐다.

         

       비공정 갑판에서 어미새에게 대뜸 우아앙~! 물려간 일.

         

       둥지에 떨어지고 보니 아기새 세 마리에게 둘러싸여 부리로 쪼인 일.

         

       오해를 풀고 친구가 됐지만 배웅은커녕 뜯겨나간 분홍 머리카락을 둥지에 장식된 일.

         

       재규어 무리가 찾아오자 도움 요청을 받고 퇴치해 주자 바로 찬밥 신세가 된 일.

         

       으잉?

         

       모두 안 좋은 추억뿐이네?!

         

       파스텔은 경악하곤 표정이 순식간에 미묘해졌다.

         

       우리 친구 아니지 않아?

         

       인기인 파스텔도 엄연히 화낼 줄 아는 사람이라구.

         

       파파라치와 스토커에겐 단호한 연예인 같이 말이야.

         

       돌변한 기색이 느껴지는지 아기새들이 억눌린 부리로 삐요삐요하고 울었다. 그리곤 주눅 들듯이 시선을 피하더니 그대로 쭈그러들었다.

         

       파스텔은 팔짱을 끼고 한숨을 폭 쉬었다.

         

       위기에 처한 악동을 보는 기분이란 이런 걸까?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는군.』

         

       네?

         

       분명 악마님의 그 소리를 듣고 새에게 물려갔었는데?

         

       파스텔은 흠칫 놀라며 하늘을 봤지만 당연히 새는 아니었다. 사람 발걸음 소리와 대화가 들렸다.

         

       “이걸 해뜨기 전에 언제 다 옮기냐.”

       “오늘 하루 잠은 못 자는 거지.”

         

       으아아?

         

       온다, 온다아.

         

       파스텔은 허둥지둥 숨을 곳을 찾아봤다. 괴조를 가뒀을 뿐인 철창들이 모인 곳에 그럴싸한 곳은 없었다.

         

       우와앗!

         

       초위기!

         

       대위기!

         

       초대위기!

         

       아기새가 바라봤다.

         

       ―삐이!

         

       아기새들이 뒤뚱뒤뚱 움직이더니 철창 내부에 공간을 만들었다. 복슬복슬한 아기새들에 둘러싸인 사각지대였다.

         

       오이잉.

         

       파스텔은 눈이 동그랗게 됐다.

         

       너희 설마?

         

       ―삐이!

         

       아기새가 눈망울을 빛냈다.

         

       아기새 친구들……!

         

       감도옹!

         

       파스텔은 철창 속으로 뛰어들었다. 괴조용 쇠창살은 소녀가 들어가기 넉넉했다.

         

       아기새 세 마리의 틈을 비집고 안착하자 새들이 뒤뚱뒤뚱 움직여 완전히 둘러쌌다. 깃털이 되다만 털들이 푹신푹신하고 복슬복슬하게 소녀를 감쌌다.

         

       다만 조금 과해 파스텔은 거의 끼듯이 뭉개졌다.

         

       우와악!

         

       압착 파스텔……!

         

       발걸음 소리가 철창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으아아.

         

       덜덜덜.

         

       “얘네 방금 울지 않았나? 부리 풀린 거 아니야?”

       “부리 풀렸으면 지금 우리 귀가 멀쩡하겠냐.”

         

       오잉.

         

       둘러싸인 소녀를 전혀 눈치 못 챈 기색이었다.

         

       이것이 삼각 포지션?!

         

       우정의 트라이앵글이야……!

         

       파스텔은 우정의 힘으로 상황을 극복했다.

         

       오예.

         

       완벽한 결과였지만 사태가 완전히 호전되진 않았다.

         

       두 인원은 철창 앞에서 그대로 멈춰선 채 대화를 나눴다. 옮겨야 할 철창 개수나 이걸 밤중에 처리해야 하는 과중한 업무량이 너무하다는 등의 시시콜콜한 잡담이었다.

         

       밤중 이동?

         

       누가 봐도 수상하다.

         

       근데 정작 뭐 하는 집단인진 모르겠엉.

         

       잠시 뒤 두 명의 대화가 끝났지만 그래도 사태는 전혀 호전되지 않았다.

         

       옮긴다는 말이 사실이었는지 사람들이 우르르 철창 주변으로 서성이고 작업을 시작했다. 철창들이 하나씩 옮겨지며 소음을 냈다.

         

       아기새의 철창도 마찬가지였다. 철창 아래의 바퀴로 밀어내더니 끈이 묶이고 거중기 같은 무언가로 들어 올려졌다.

         

       으에?

         

       파스텔은 부유감을 느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슨 일?

         

       철창이 둔탁한 소음을 내며 비공정 갑판에 내려졌다. 사람들이 다가왔다.

         

       ―삐이! 삐이!

         

       아기새가 애처롭게 울었다.

         

       “입 다물어!”

         

       철창이 걷어차였다. 아기새의 철창이 흔들리고 소란스러워졌다.

         

       우아악.

         

       “새끼들은 혹시 울면 어미새가 날아오니 선창으로!”

         

       철창이 밀어졌다. 철창 바퀴가 소음을 길게 내며 갑판을 지나 비공정 내부로 이동했다.

         

       오잉.

         

       창고에 들어서자 어둠이 찾아왔다. 소란스럽게 창고가 열리고 닫히길 반복하다가 몇 시간쯤 지났을까 잠잠해졌다.

         

       비공정이 뜨듯이 부유감이 찾아오다가 진정됐다. 항행 시작의 징조였다.

         

       파스텔은 분위기를 살피다가 슬쩍 아기새 틈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어두운 창고가 보였다. 아무도 없었다.

         

       오이잉.

         

       철창을 완전히 나와 두리번거렸다.

         

       정말 아무도 없네?

         

       양팔을 번쩍 들었다.

         

       파스텔, 잠입 성공!

         

       상상 속에서 트럼펫이 울렸다.

         

       빠바밤~!

         

       파스텔은 뚬치뚬치 춤추다가 한차례 빙그르르 돌았다. 그리곤 입을 가리고 혼자 경악했다.

         

       이렇게나 손쉽다니!

         

       혹시 나, 잠입 천재?

         

       허억.

         

       난 잠입 천재였어……!

         

       놀라운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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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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