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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9

     

    “변명하라, 알베리치 주교.”

     

    헤이케가 싸늘하게 명령했다.

     

    알베리치는 집무실 책상에 앉은 헤이케의 아우라에 압도되어 괜히 헛기침을 했다.

     

    “황녀 전하, 내의원에서 저희 파벌은 건재합니다. 최다 치유사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번 비무대회 때 치유한 기사도 가장 많았습니다. 덕분에 폐하께서 우승 칭호도 내려주시지 않았….”

     

    “효율.”

     

    탁, 헤이케가 알베리치 앞에 서류철을 집어 던졌다.

     

    “많이 치유한 만큼 비용도 최다로 사용됐다. 반면 월광궁의 예산을 봐라.”

     

    “…으음.”

     

    “치유비 관련 항목이 마이너스다. 무슨 의미인지 알겠나? 월광궁은 치유술로 돈을 벌고 있단 말이다. 고트베르크 주치의가 마스크를 개발했기 때문이지.”

     

    “그렇… 군요.”

     

    “월광궁에서 실제로 빠지는 예산은 월급이 전부다. 소속 치유사는 단 두 명, 주치의와 그 수제자뿐이고.”

     

    “…예.”

     

    “그 수제자, 클로에라는 치유사가 페니실린이라는 물건을 개발했다. 환자의 추가 발병을 막는 혁신적인 효과가 있다. 증언에 의하면 내의원에서 이미 개발 과정에 있었다더군.”

     

    “전하, 그것은 개발이 아니라 상한 음식으로 환자를 위협하는 위험한 행동이었으며, 내의원의 명예를 실추시킬 가능성이….”

     

    콰앙!!

     

    헤이케가 책상을 내려치자 천둥이 울렸다.

    깜짝 놀란 알베리치가 입을 다물었다.

     

    “현재 1병영과 목휘궁에 도는 전염병으로 소모된 한 달 예산이 금화 천이백 개다.”

     

    “…예.”

     

    “다음 달도 같은 금액이 소모된다. 주교, 자네가 그 치유사를 해고한 덕분에.”

     

    알베리치가 이를 악물었다.

     

    내의원에서 자신의 파벌을 뛰어넘는 치유력을 지닌 치유사 집단은 어디에도 없다.

     

    하물며 자신은 무려 법국의 주교 출신이다. 추기경, 더 나아가 교황이 될지도 모를 몸이었다.

     

    어느 지점부터 실력의 벽을 느끼고 제국으로 넘어오긴 했지만. 그는 자신의 신앙심과 신성력이 최고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약제니, 민간요법이니 하는 것을 쓰는 이들은 외도다. 치유사가 아니라 흑마술사다.

     

    그리 굳게 믿는 알베리치는 헤이케의 비난이 불합리하다 생각했지만, 주군에게 반박할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고트베르크 주치의는 어떤 인물인가?”

     

    “고트베르크 말입니까? 그… 신입이기도 하고 새파랗게 어린 친구라.”

     

    “잘 모른다?”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는 알베리치였다.

     

    반대로 헤이케의 분노는 더욱 매서워진다.

     

    “게오르크에게 들이받았을 땐 조금 머리가 굴러갈 뿐인 혈기왕성한 자라 생각했다.”

     

    헤이케가 턱을 괴고 생각에 빠졌다.

     

    “인재를 알아보고 활용하며 교육할 정도의 실력자. 심지어 비무대회에서 라우가와 게오르크를 공멸시킨 전략도 그가 짰다고 들었다.”

     

    치유와 전략은 별개의 영역이다. 한 분야의 전문가는 전체를 보기 힘들어지는 법이다.

     

    “아셀라에게 유리하도록 판을 짠 걸 보면 국정을 보는 넓은 시야 또한 가졌다.”

     

    헤이케는 어떻게 그가 그만한 역량을 가졌는지 궁금해졌다.

     

    헤이케가 알베리치를 곁눈질로 흘겨보며 덤덤한 감상을 냈다.

     

    “자네보다 낫군.”

     

    “그, 그건…!”

     

    알베리치는 이를 갈았지만 헤이케는 차갑게 명령할 뿐이었다.

     

    “짐이 원하는 건 결과뿐이다. 가져와라.”

     

    알베리치가 예를 표하고 집무실을 나선다.

     

    헤이케는 고개를 끄덕이며 혼잣말을 하듯 비서에게 말했다.

     

    “고트베르크가 우리 파벌에 충성하게 만들 시나리오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빨리 움직이셔야겠습니다.”

     

    “어째서인가?”

     

    “라우가 황녀 전하도 접촉중이시라는 정보가 있습니다.”

     

    “쯧.”

     

    헤이케는 혀를 차고는 일정을 확인했다.

     

     

     

    ***

     

     

     

    “얘, 라스야, 이거도 피부에 좋아?”

     

    “비타민C 앰플 말이군요. 좋고 말고요. 피부색이 밝아지고 탄력도 생기며 노화가 줄어듭니다. 과다 복용해도 괜찮고, 시큼한 맛이 꽤 중독성 있어요.”

     

    “세상에, 완전 만능치료제 아니야? 부작용도 없어? 이거도 팔아주라.”

     

    “두 개에 금화 한 개입니다, 황녀님. 아침에 한 개씩 드세요.”

     

    “응! 후후, 기대되네.”

     

    라우가는 종종 사무실에 찾아와 나를 귀찮게 한다.

     

    그래도 돈을 펑펑 뿌려주시는 고객님이다.

    작업도 클로에에게 맡겨 놨겠다, 환한 미소와 함께 접객 중이었다.

     

    “얘, 그런데 페니실린은 안 팔 거야?”

     

    “어휴, 안 돼요. 저희 황녀님께서 지난번에 마스크 건도 노발대발하셨다고요. 저 진짜 목 떨어집니다.”

     

    “잉, 알았어. 어쩔 수 없지. 나도 요즘 아셀라는 좀 무섭거든.”

     

    “드디어요? 그동안 행복한 삶을 살아오셨군요.”

     

    “너 말 하는 거 진짜 웃긴다.”

     

    라우가가 깔깔대며 내 어깨를 치고는 책상에 걸터앉아 자기 팔 부분 레이스를 슥 위로 들어 올렸다.

     

    “내 피부 좀 봐. 비무대회장이 조금 건조했니? 퍼석퍼석해져서 난리도 아니야. 그런 델 3일이나 있었으니.”

     

    “저희처럼 먼저 돌아오시지 그랬어요. 목숨이 위험하긴 했지만요.”

     

    “현자 할아버지한테 다 들었어. 아셀라랑 좋은 시간 보냈다며.”

     

    “좋은? 항상 생각하는데 전하의 단어 선택은 지나치게 고급지십니다. 저 같은 범인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군요.”

     

    “아닌 척하기는. 너 그러다 나중에 아셀라한테 혼난다?”

     

    “이미 많이 혼나봤습니다. 마스크나 골라보세요.”

     

    오늘은 마스크를 더 사겠다며 찾아와서는 이뻐지는 약이 없냐고 닦달하던 중이었다.

     

    라우가는 눈웃음이 고양이 같은 요염한 느낌의 아셀라랄까. 나이대는 나와 같다.

     

    길거리만 걸어도 모든 남자의 이목을 끌 외모이건만, 여자의 욕심은 끝이 없다.

     

    “다음 주에 중요한 사교 파티가 있거든. 그때까지 피부를 최대한 탱탱하게 해야 해.”

     

    “서부 공작을 치하하는 자리 말이죠. 저도 황녀님의 외부 활동이니 파티장에서 대기해야겠습니다.”

     

    아셀라가 시녀장 누님을 통해 전한 소식이 그것이었다. 조만간 큰 파티에 참석해야 하니 나도 준비하라는 내용이었다.

     

    “어? 고트베르크 너도 간다고?”

     

    “아셀라 황녀님이 가시니까요.”

     

    “아셀라가 가?! 대박.”

     

    라우가가 눈을 번뜩이며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뭐야, 비공개 정보였나?

     

    “아셀라가 드디어 사교계에 데뷔하는구나! 평생 그럴 일은 없을 줄 알았어. 왜, 너도 알지? 아셀라는 마법을 워낙 좋아하잖아.”

     

    마도병기에게 파티는 불필요하긴 하지.

     

    “내가 몇 번이나 가자고 해도 그렇게 질색을 하더니 무슨 심경의 변화래. 흐흥, 어디 자랑하고 싶은 일이라도 생겼나 봐?”

     

    “신상 마스크가 잘 나오긴 했죠.”

     

    “모른 척하기는. 나 같으면 잘생기고 유능한 후작가의 혼약자가 생기면 당장에라도 파티를 열 거야.”

     

    역시나 라우가는 머릿속이 꽃밭이다.

     

    “저는 어디까지나 주치의로 일하러 가는 거예요.”

     

    “딱딱하게 굴기는. 너는 혼약자 자격으로 자리에 나와야지.”

     

    “아이고, 설마요.”

     

    사교계에서 고트베르크의 장남이라고 하면 악명이 자자하다.

     

    제국에서 힘 좀 쓰는 귀족들이 다 보는 자리에서 황녀의 혼약자라고 자랑하고 다녀서야 큰일 난다.

     

    나 때문에 아셀라의 평판이 깎여나갈 테고, 그녀의 분노를 살 게 뻔하다.

     

    “비무대회 소문 귀족가에 다 난 거 알지? 기사들 녹화본이 쫙 돌았어. 다들 고트베르크가 누구냐고 난리야. 이번 파티에 너 보면 놀랄 사람 많을걸?”

     

    하여간 과장은. 첫날로 치면 주인공은 타냐였다.

    실제로 소드마스터가 될 때까지 여기저기서 스카우트 받으실 몸이기도 하고.

     

    내 이름이야 타냐가 몇 번 언급해준 게 전부다.

     

    라우가는 매일같이 파티만 쫓아다녀서 그런가, 사람을 치켜올려주는 화술이 능숙하다.

     

    “대공녀도 오는 자리라 우리 또래 귀족은 거의 다 온다고 보면 돼. 글쎄 순진한 아가씨인 줄 알았더니 저번에 바다 남자랑….”

     

    또 궁금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재잘재잘 늘어놓는 라우가였다.

     

    클로에는 제조실에서 일 잘 하고 있나 생각하니 다행히 한 귀로 목소리가 흘러나갔다.

     

     

    그러던 도중.

     

    ―똑똑.

     

    노크와 함께 치유사 몇 명이 내 사무실로 들어왔다.

     

    “고트베르크 선생님.”

     

    꽤나 엄숙한 표정이다.

    휘장을 보니 제1 황녀 파벌이었다.

     

    그들 중 대표가 내게 전했다.

     

    “청문회가 개최됨을 알려드리려 왔습니다.”

     

     

     

    ***

     

     

     

    ‘이거 원, 전염병으로 바쁜 시기에 주치의 청문회라니.’

     

    게오르크의 주치의, 팔켄하인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했다.

     

    내의원 회장에는 열 명이 넘는 주치의들이 모여있었다.

    전원이 치유사 한 파벌의 우두머리다.

     

    천왕이나 공주, 그 자식의 주치의들은 비교적 약소 세력이지만. 주치의들은 높은 직급을 가졌고 실력도 뛰어남은 틀림없다.

     

    황제의 주치의들까지는 바빠서 자리하지 않았다. 임의 참석이기에 팔켄하인도 오지 않아도 되긴 했다.

     

    ‘하지만 고트베르크 선생이 관련됐다면 넘어갈 수야 없지.’

     

    심지어 개최한 주체가 그 알베리치였다.

     

    팔켄하인과 함께 내의원 양강 세력이다.

    라이벌의 동태는 살필 필요가 있었다.

     

    ‘허나 게오르크 황자 전하께서 3황녀님 파벌을 적대하시는 스탠스가 되셨지.’

     

    이전에는 카밀라 황비와의 친분 때문에 월광궁을 지원하였으나 카밀라와 아셀라가 분리된 후로 적대세력이 되었다.

     

    때문에 전과 달리, 오늘 안건이 어찌 되더라도 팔켄하인은 고트베르크를 변호하기 힘든 입장이었다.

     

    ‘개인적으로야 고트베르크 선생이 위기를 잘 돌파했으면 좋겠지만.’

     

    주치의 시험부터 그와는 연도 있고, 막대한 신앙심을 목격했던 팔켄하인은 고트베르크를 응원하고 싶었다.

     

    “고트베르크 주치의!”

     

    알베리치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회장에 울려 퍼졌다.

     

    라스가 입에 사탕을 문 채 설렁설렁 문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예, 접니다.”

     

    반원형으로 놓인 테이블이 라스를 둘러싸는 형태.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곳에 서는 것만으로도 없던 죄도 생겨날 압박감이다.

     

    하지만 그는 젊은 신입 치유사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온몸에 여유가 넘쳤다.

     

    “그대는 외도의 잡기를 이용해 내의원을 어지럽혔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알고 있나?”

     

    알베리치가 다짜고짜 라스를 쏘아붙였다.

     

    라스는 물고 있던 사탕을 빼서 흔들더니 적당히 대답했다.

     

    “흠, 내의원을 어지럽혔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습니다만. 잡기라 하면?”

     

    “썩은 빵 따위를 환자에게 먹이는 비상식적인 행위 말이다.”

     

    “하하, 약제 말이군요. 약은 여러 질병에 대응해 치료하는 물건입니다.”

     

    “신앙심과 신성력이 사용되지 않은 물건이 어찌 사람을 치유하겠는가. 그대의 행위는 흑마술이나 다름없다!”

     

    강력하게 공격하는 알베리치.

     

    이 청문회는 알베리치가 고트베르크를 기죽이기 위해 연 것이 틀림없었다.

     

    ‘최근 선생이 다방면으로 활약하긴 했지.’

     

    내의원에서 떠오르는 신예를 미리 밟아놓아야 입지를 단단히 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과연 고트베르크가 이 위기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팔켄하인이 기대하며 그에게 집중하니 라스와 눈이 맞았다.

     

    지원 요청인가.

     

    그의 판단은 옳았다.

     

    라스의 아군이 없는 이 자리에서, 알베리치의 적대자이며 그만큼 발언권이 있는 자는 팔켄하인뿐이다.

     

    팔켄하인이 라스를 변호한다면 분위기는 반전될 터.

     

    하지만 팔켄하인은 게오르크 때문에 움직일 수 없다.

     

    라스가 자신을 보며 무어라고 중얼거렸다. ‘진단’이라고 한 듯하다.

     

    “의학은 방향성이 다를 뿐 흑마술이 아닙니다. 약제는 치유술로 불가능한 치료도 가능케 하지요. 이를테면.”

     

    라스가 팔켄하인의 휑해진 정수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빠져가는 머리털을 다시 나게 한다든가.”

     

    “그게 정말이오?”

     

    팔켄하인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태그를 조금 정리했습니다. 요즘 태그를 간략화하는 게 유행 같아서 정리했을 뿐, 독자님들이 기대하시는 전개는 진행될 예정입니드아! :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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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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