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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9

       마야는 아카데미에서 전 학년 수석을 했던 몸이었다.

       비록 신비는 깨닫지 못했지만, 마력을 운용하는 데 있어서 학생과 교수를 통틀어 그녀를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

         

       염동력과 방어막.

       신비가 필요 없는 순수한 마력기술.

       충분한 준비가 주어진다면 그녀는 기사와도 정면으로 붙어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에 맞서는 엘라도 평범한 소녀는 아니었다.

       그녀는 몸놀림, 기예, 눈썰미에 관해서라면 또래에서 적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뛰어난 실력자였다.

         

       그녀가 지금 취하고 있는 자세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구부정하게 선 것처럼 보였지만, 거기에는 땅재주의 수법 중 하나인 번개곤두의 묘리가 담겨 있었다. 만약 마야가 마법을 쓰려 든다면 그녀는 바로 앞으로 튀어 나가 그녀의 턱에 공중제비 차기를 먹여줄 생각이었다.

         

       점점 더 흉흉하게 기세를 올리는 두 사람.

       둘을 둘러싼 단원들은 어쩌나 싶으면서도 마땅히 끼어들 타이밍을 잡지 못했다.

         

       “야, 이거 심상치 않은데.”

       “정말 싸우는 거냐.”

       “누가 이길까?”

       “근거리에서 마법사는 약하지. 거기다 상대가 부단장이잖아.”

       “내기할까? 난 엘라.”

       “나도….”

       “나도 부단장에게 한 표.”

       “저도 엘라 누나요.”

       “그럼 내기가 안 되잖아.”

       “누가 하자고 했냐.”

         

       10대 소녀 둘이 주먹다짐을 하려 드는데 어른들은 가만히 둘러앉아 이런 느긋한 소리나 늘어놓고 있다니.

         

       ‘아무도 말릴 생각은 안 하는 건가요.’

         

       유라크네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며칠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됐다.

         

       둘이 싸움을 시작하는 사유는 매번 달랐다.

       하지만 폭발하는 부분은 늘 같았다.

         

       원더스타인.

       그가 언급되는 순간부터 대화는 급물살을 탔다.

       그때부터는 둘 다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그가 이 두 소녀의 마음에 불을 붙이는 방아쇠였다.

         

       웃긴 건 단장 본인이 나타나면 둘은 또 싸움을 멈춘다는 것이다.

       언제 다퉜냐는 듯 얌전해지는 둘을 보면 재밌긴 했다.

         

       그러나 오늘은 싸움이 재미의 선을 넘으려는 것 같았다.

       자칫 잘못하면 둘 중 하나는 크게 다칠 수 있었다.

         

       단장이 없는 지금, 둘을 말릴 사람은 그녀밖에 없었다.

         

       “두 분 다 그만두세요.”

         

       유라크네가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다른 단원들의 말이라면 듣는 척도 안 하는 둘이었지만, 그녀의 말만은 함부로 무시하지 못했다.

         

       엘라에게 유라크네는 서커스단에서 제일 의지가 가는 언니였고, 마야에게 그녀는 존경하는 단장님이랑 제일 친한 단원이었다.

       지금까지 둘은 그녀가 나서면 조용히 물러나곤 했다.

         

       그러나 오늘은 왠지 그러기 싫었다.

       서로에게 한 방 먹일 생각으로 나선 둘이었다.

       여기서 먼저 물러서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유라크네를 사이에 두고 계속되는 대치 상황.

       그녀는 치사하긴 하지만 만능주문을 쓰기로 했다.

         

       “단장님이 두 분이 이러는 걸 알게 되면 뭐라고 생각하실까요?”

         

       단장이라는 단어에 둘 다 움찔 몸을 떨었다.

       그는 둘의 싸움 동기이자 약점이기도 했다.

       그 이유는 서로 달랐다.

         

       마야는 그에게 자신이 철없는 아이로 보일까 걱정했다.

       반면, 엘라는 그 인간이 자기 때문에 그녀가 동요했다는 사실을 아는 게 싫었다.

         

       둘의 눈빛이 마주쳤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서로의 의사는 전달됐다.

         

       그만…

       …둘까?

         

       무언의 합의가 오갔다.

       마야가 마력을 갈무리했고, 엘라도 구부정했던 자세를 바로 폈다.

         

       유라크네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히 별일 없이 끝났다.

         

       둘은 서로를 가만히 노려보다가 고개를 휙 돌렸다.

         

       여기까지라면 여느 때와 같은 마무리였다.

       그러나 오늘은 유라크네도 여기서 그칠 생각이 없었다.

       누구 하나 다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잔소리는 해야겠다.

         

       “엘라, 마야 양의 마법이 다른 마법이랑 다르다는데 어쩔 수 없잖아. 그래도 환상 마법사가 있는 게 어디야? 1주일 전만 해도 너는 직접 망치와 바늘을 들고 밤잠을 설쳤어. 고마워하지는 못할망정 비난하는 건 아니지 않니?”

       “그렇긴 하지만…….”

         

       항상 거침없던 그녀가 우물쭈물 물러나는 건 보기 드문 일이었다.

         

       이어서 유라크네는 마야를 향해서도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야 양, 당신의 마법이 다른 마법과 다른 것은 알겠어요. 그렇다면 회의가 시작할 때부터 말해줄 수 있지 않았나요? 우리가 기껏 아이디어를 다 정리해놨는데, 거기다가 못한다고 탁 끊는 건 조금 무례했다고 봐요.”

       “……죄송합니다.”

         

       마야가 사과하는 모습 또한 다들 처음 봤다.

         

       둘 다 유라크네의 질책 앞에서 별다른 대꾸를 하지 못했다.

         

       이게 진짜 곡예지!

       세쌍둥이가 와 하고 박수를 치려다 유라크네가 노려보자 찔끔하고 손을 내렸다.

         

       그녀는 엄격한 표정을 유지하며 두 소녀를 바라봤다.

       둘 다 무안한지 땅만 바라보고 있었다.

       항상 당당하게만 굴던 둘이 저러니 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 정도면 됐겠지?

         

       그녀의 입에 따뜻한 미소가 걸렸다.

         

       “좋아요. 앞으로 서로를 좀 배려하자고요. 그것보다 회의를 계속해요. 우리가 당면한 문제가 뭐죠? 마야 양이 특수효과를 구현하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거 아닌가요? 혹시 기간을 줄일 방도가 있나요, 마야 양? 부담 갖지 말고 말해보세요. 저희의 도움이 필요하면 도와줄 수 있으니까.”

         

       유라크네의 조곤조곤한 말투에 마야는 잠시 엘라를 흘끗 바라봤다가 입을 뗐다.

         

       “한 번 보면.”

         

       마야가 손에 쥔 책을 손등이 파리해지도록 꼭 쥐었다.

         

       “한 번 보면, 그 형태를 분석해서 시간을 단축할 수 있어요.”

         

       그녀의 말에 유라크네가 손뼉을 짝 쳤다.

         

       “잘됐네요! 그럼 엘라가 만든 장치로 불꽃을 일으켜 보고…….”

       “아니요.”

         

       엘라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마야를 살짝 노려보고는 말을 이었다.

         

       “그건 임시변통으로 만든 거라 불꽃이 너무 조잡해요.-”그게?“ 우몬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이왕 할 거면 좀 더 큰 걸로 해야죠. 1시간만 기다려 보세요. 제가 제대로 된 불꽃을 보여드릴 테니까요.”

         

       그 말을 끝으로 엘라는 회의를 끝마쳤다.

       유라크네는 모두가 방을 나간 것을 확인하고는 조심스럽게 엘라에게 다가갔다.

         

       “제대로 된 불꽃? 어쩌게?”

       “폭탄 하나 만들어 보게요. 저번에 그 인간에게 받아둔 황이 좀 남았거든요. 거기다 장미 풍차 친구들에게 얻은 폭죽에서 화약 좀 긁어내서 모아두었고, 호텔 화단에서 초석도 찾아냈어요.”

       “폭탄을 만든다고?”

       “소품이에요. ”

       “위험하지 않을까?”

       “옛날에 친구들이랑 이런 거 자주 만들고 놀았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게 만든 폭탄.

       마야에게 자신의 실력을 과시하려는 사심이 들어가서일까.

       위력이 지나치게 강했다.

       상상 이상으로.

         

       거기다 엘라는 자신이 어릴 적에 가지고 놀던 장난감 폭죽의 재료와 연금술 길드에서 구한 재료의 순도 차이를 고려하지 못했다.

       기존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한 폭탄이 나왔다.

         

       “그렇게 된 거였군요.”

         

       유라크네는 오늘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원더스타인에게 전달했다.

       당연히 엘라와 마야의 싸움은 얘기하지 않았다.

       그냥 마야가 불꽃을 구현하는 걸 앞당기는 걸 돕기 위해 엘라가 폭탄을 만들려다가 실수한 것으로 해버렸다.

         

       “다친 사람 없어서 다행이군요.”

         

       원더스타인이 박살난 후원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가 퀘스트를 받고 서둘러 달려오지 않았다면, 많은 단원이 다쳤을 것이다.

       그가 갑자기 후원으로 뛰어들자 폭탄 근처에 있던 단원들이 그를 보고 으악 하고 뒤로 물러났기 때문이다.

         

       그때, 후원의 한쪽 구석에서 마야가 풀과 흙으로 더러워진 원피스를 털고 나왔다.

       아무래도 폭발이 일어난 순간 수풀 뒤로 넘어가 모양이었다.

       원더스타인은 그녀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다친 데는 없습니까?”

       “네. 괜찮아요.”

         

       원더스타인은 그녀의 손에 쥔 스케치북을 보며 미소지었다.

       그녀는 뒤로 넘어가는 순간까지 그것을 손에서 놓친 않은 모양이었다.

         

       “후후, 폭발은 잘 담았습니까?”

         

       마야는 서커스단에 입단한 순간부터 호감도가 15를 넘었다.

       그래서 단원 목록에 오르자마자 첫 번째 보상이 주어졌다.

         

         

       이름: 마야의 스케치북

       적용 대상: 마야가 눈에 담은 것.

       효과: 손에 쥐고 있으면 대상의 삼차원 형태를 스케치북에 저장합니다.

       요구 자원: 마야의 호감도 15, 마력

         

         

       게임에서 마야의 능력을 보조하는 시스템이었던 ‘도면’이 이곳 세상에 아이템의 형태로 제공된 것이다.

       이걸로 마야는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거나 복잡한 형상의 물체도 형태를 저장해뒀다가 필요할 때 써먹을 수 있었다.

         

       폭발 역시 담는 게 가능했다.

       스케치북의 장수의 제한 한도 안이라면 동작 중인 물체의 형태조차 담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그녀의 스케치북은 폭발의 과정이 중간에 끊겨 있었다.

       마야의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이 떠올랐다.

         

       “이 정도로 큰 폭발일 줄은 몰라서 눈을 감고 말았어요.”

         

       그녀의 말에 원더스타인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거 아쉽군요. 어쩔 수 없죠. 천천히 가는 방향으로 잡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어쨌든 중요한 건 무엇보다 안전이니까.”

       “천천히는 무슨. 곧 있으면 경연인데.”

         

       엘라가 옷에 묻은 검은 가루를 털며 다가왔다.

         

       “한 번 더 해야지! 재료 좀 더 구해줘. 내가 모은 건 이번에 다 써버렸어.”

         

       엘라가 씩씩한 목소리로 그를 향해 말했다.

         

       ‘이 사달을 내고도 겁이 나지 않는 건가, 얘는.’

         

       원더스타인은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순 없어요.”

       “아, 왜!”

       “위험하니까요. 다들 다칠 뻔했잖아요?”

       “이번에는 실수 좀 한 거라니까.”

       “안 되는 건 안 되는 겁니다. 엘라 양은 심지어 죽을 뻔했잖아요.”

       “폭발의 순간 뒤로 낙법을 펼치려 했어.”

       “어쨌든 안 됩니다.”

         

       보기 드물게 강하게 나가는 원더스타인.

       입에는 여전히 미소가 걸려 있지만, 말투는 단호했다.

       엘라는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흘겨봤다.

         

       그가 진심으로 자신들을 걱정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저 미소도 저 말투도 저 행동도 모두 악마가 인간을 연기하기 위해 쓴 껍질에 불과했다.

       그의 장단에 맞춰주고는 있지만, 가끔 이렇게 핀트가 엇나간 곳에서 부딪히면 방법이 없었다.

         

       ”알았어. 그러지 뭐. 당신 서커스단이니까. 기존의 방법을 그대로 써야겠네.-우몬과 밴딕이 절망한 표정을 지었다.-그건 그렇고 카바레에 갔던 건 어떻게 됐어?“

         

       내일 있을 서커스 그랑프리 개막식.

       각 서커스단은 개막식에 참여할 단원들의 목록을 오늘까지 극장에 제출해야 했다.

         

       어차피 볼거리는 극장 바깥 광장에 더 많았다.

       극장 안에서는 비싼 정장 입은 노인네들의 인사 시간이 일정의 대부분이었다. 단장 외 단원이 굳이 참가할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엘라와 마야가 참가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어차피 할 일도 없는 원더스타인이라 그가 직접 목록을 제출하기 위해 극장을 방문했고, 지금 막 거기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엘라의 질문에 원더스타인은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

         

       “그거 말인데요.”

         

       원더스타인은 두 소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엘라 양과 마야 양은 못 가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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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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