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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9

       새 무기를 얻었다면 시험해 보고 싶어지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하지만 오늘은 쉬는 날. 리디아가 다른 건 몰라도 이런 컨디션 관리에는 엄격하니, 잠깐 미궁에 다녀오자고 해도 듣지 않겠지.

       

       그런 이유로 레몬과 애플이라도 꼬셔서 1층 초입을 가볍게 돌아보고 올까 생각했지만.

       

       “에이. 그렇게까지 할 이유는 없지.”

       

       진짜 너무너무 궁금해서 미쳐버릴 것 같지만…한동안은 꼭 자기랑 같이 미궁에 들어가야 한다는 리디아와의 약속을 어길 정도는 아니다.

       

       어차피 내일 들어갈 테니 조금만 참으면 되는 거고.

       

       하여, 새 무기 실험만큼이나 흥미로운 일을 하기로 했다. 바로 가챠 말이다…!

       

       대체 어디서 뭐를 착각한 건지는 모르겠으나, 한껏 들뜬 이브에게서 샤샥 거리를 벌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레몬! 애플! 잠깐 저희 같이 일 좀 하죠.”

       

       “에. 미궁에는 안 들어갈 검다?”

       “저희 오늘 이미 다녀왔슴다. 피곤함다.”

       

       “아뇨. 그런 거 아니니까 일단 따라 나오세요. 아, 이브 씨 오늘은 감사했어요. 제가 할 일이 있어서 먼저 일어날게요!”

       

       “예? 어어…그, 그러세요?”

       

       얼떨떨해하는 이브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는 레몬과 애플의 손목을 잡고 가게 바깥으로 나왔다.

       

       쿵!

       

       뒤에서 누군가 이마로 책상을 내리찍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지만, 분명 문 닫히는 소리일 거다.

       

       ***

       

       레몬과 애플은 이브의 눈치를 살짝 보긴 했으나, 별말 없이 순순히 내 뒤를 따랐다.

       

       심지어 가게에서 꽤 멀어진 지금까지도.

       

       “레몬. 애플. 어디 가서 뭐 하려는지 안 물어?”

       

       “그런 건 몰라도 됨다.”

       “중요한 건 요나가 아직도 저희 손목을 잡고 있단 검다.”

       

       손도 아니고 손목만 잡은 건데 뭐가 그리 좋은지 헤실대며 바보처럼 따라오는 둘.

       

       “어휴. 처녀쉑.”

       

       “…그러는 요나도 동정 아님까.”

       “갑자기 딜을 박으면 마음이 아픈 검다.”

       

       “괜찮아. 아파도 유니콘 단검으로 다시 치유하면 되는 거니까. 그리고 동정이랑 처녀의 가치가 같겠냐?” 

       

       “이건 세상이 잘못된 검다!”

       “순결한 몸인 건 똑같은데 왜 처녀만 비웃음당하는 검까!”

       

       전생의 기억이 있는 나로서는 참 공감 갈 수밖에 없는 주제로 씩씩대는 레몬과 애플.

       

       둘의 모습에 낄낄거리며 웃는 것도 잠시. 이제는 주제가 바뀌었는지, 둘의 목소리가 추욱 처졌다.

       

       “아까 치유 받을 때. 기분이 좋으면서도 뭔가 그랬슴다.”

       “치유가 먹힌다는 소리는 처녀라는 증명 아님까. 몸의 상처는 나아도 마음의 상처는 낫지 않는 검다.”

       

       “아니, 그렇게 따지면 나는 뭐가 되는데? 실시간으로 동정이라는 걸 밝히면서 걸어 다니는 꼴이잖아.”

       

       “오.”

       “오 하고 좋아할 때가 아님다. 어느 날 요나의 단검이 까맣게 쪼개지면 어떻게 하려고 그럼까.”

       

       생각 없이 감탄하던 바보의 옆구리를 툭 치는 애플. 이에 순간 멈칫한 레몬이 한참의 고민 끝에 진지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함 대달라고 무릎 꿇고 빌어보겠슴다.”

       “진짜 개미친년임까?”

       

       빠악!

       

       결국 애플에게 풀 스윙으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레몬이 울상을 지었다.

       

       심히 덤앤 더머스러운 둘의 투닥거림에 낄낄거리다 은근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뭐, 지금은 아니고…나중에. 내가 어른이 되고, 목적도 이룬 뒤에. 그때까지 너희 둘 다 처녀면 첫 경험은 내가 받아가도록 할게.”

       

       “…지금 그 말 진심임까?”

       “저희 엘프에게 10년 20년은 아무것도 아님다. 신중하게 말해야 함다.”

       

       “당연히 진짜지. 아, 근데 순서라는 게 있어서 좀 기다리긴 해야 할지도 몰라.”

       

       “이브 두목이 먼저인 건 인정함다.”

       “솔직히 천…아니, 오랜 시간 외로우셨으니 이해함다.”

       

       “……?”

       

       난 엘리랑 리디아 이야기한 건데 여기서 왜 이브가 나오는 걸까. 이브는 따로 꼬신 것도 없는데?

       

       유니콘 단검의 설명을 들을 때, 슬쩍 몸을 붙인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단 말이지.

       

       …그냥 내가 취향인 건가.

       

       요즘 맛이 간 뇌내 번역기도 있고 하니, 마음속에서 이브의 평가를 한 단계 낮추기로 했다.

       

       음험해 보이지만 ‘아직’ 착한 사람(X)

       

       위험해 보이지만 ‘아직’ 착한 사람(O)

       

       “음음.”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니, 레몬과 애플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이제 물어봐도 되는 검까?”

       “슬슬 궁금해지기 시작한 검다.”

       

       “뭐를?”

       

       “저희를 어디로 데려가는 검까?”

       “이 방향은 조금 그런 동네 아님까.”

       

       “아, 사창가나 그 옆의 저렴한 여관촌으로 데려가려는 거 아니니까 안심해.”

       

       “까비아깝송임다….”

       “기대해서 손해 본 검다….”

       

       이런 욕망에 솔직한 년들.

       

       한숨을 푸욱 내쉬고는 아직도 잡고 있는 손목을 한층 더 강하게 쥐었다. 도망치게 두지 않겠다는 마음을 담아서.

       

       “거기까지 가기 전에 있는 길목 있잖아. 공업지구 쪽.”

       

       “…요나와 처음 만났던 곳 아님까?”

       “설마 지난 악연을 정리하기 위해 저희를 묻어버리려는 건….”

       

       오들오들 떨기 시작하는 레몬과 애플. 그러고 보니 공업지구 쪽이 막 빙의한 내가 눈 뜬 장소긴 하지.

       

       레몬과 애플에게 헬렐레 거리다 삥뜯긴 곳이기도 하고.

       

       “날 뭘로 보는 거야? 그건 저번에 목숨값 받은 걸로 퉁치기로 했잖아. 이제와서 그런 짓 안 하거든?”

       

       “혹시나 해서 묻는데 만약 원한이 그대로였다면 어떻게 되는 검까?”

       “저희도 삥만 뜯고 끝나는 검까?”

       

       조심스레 묻는 레몬과 애플. 둘을 돌아보며 히죽 웃어주었다.

       

       “엘프는 참 써먹을 곳이 많은 종족이지.”

       

       “장기 밀매…!”

       “인신매매…!”

       

       오들오들 떠는 둘의 모습에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만족감이 피어오른다.

       

       레몬과 애플은 왜 이렇게 괴롭히면 재밌는 걸까. 엘리랑은 다른 의미로 반응이 좋아서 그런가?

       

       살짝 팔을 내려 손목이 아닌 손을 잡으며 한마디 덧붙였다.

       

       “농담이야. 기껏해야 내가 당했던 것처럼 잔뜩 겁준 다음에 빵셔틀로 부려 먹었겠지.”

       

       삥뜯겼다고는 하지만, 막 처맞고 그랬던 건 아니다. 그냥 조금 무서운 분위기 좀 잡고, 내 주머니를 마구 더듬거려 그날 치 구걸 받은 돈을 빼앗겼을 뿐. 그러니까 돈으로 용서할 수 있었던 거다.

       

       “아무튼 이번에 가는 이유는 너네 묻어버리려고 가는 게 아니야. 저번에 했던 일을 한 번 더 해보려고 그러는 거지.”

       

       “저번에 했던 일이라면…?”

       “뒷골목 천하통일 말임까?”

       

       “비슷한데 조금 달라. 저번에는 신고당해서 강제로 해산해야 했잖아?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애초에 통일을 하면 안 되는 거였어. 그렇게 덩치를 키우면 오히려 경비대한테 더 집중적으로 처맞을 테니까.”

       

       양아치 패거리와 양아치 조직은 전혀 느낌이 다르잖은가.

       

       “그러니까 삥만 뜯고 그냥 놔주자. 안 그래도 이 동네에는 쌓인 게 많았어.”

       

       “저번처럼 떨어뜨려도 쫓아오면 어떻게 함까?”

       “그때도 딱히 통일할 생각은 없었다고 하지 않았슴까.”

       

       “뭘 그렇게 어렵게 생각해. 싹 다 기절시키면 되는데.”

       

       레몬, 애플과 달리 이 동네 양아치들에겐 아직 합의금을 받지 못했다. 내가 거지 생활하며 얼마나 거지 같았는지 그년들은 모르겠지.

       

       “딱 10배로 받아낸다.”

       

       겸사겸사 유니콘 단검의 위력도 테스트해 보자.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찌르면 안 되겠지만…사람만 아니면 다른 건 얼마든 괜찮지 않겠는가.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

       

       촤르륵-!

       

       요정과 은화로 돌아와 오늘의 수익을 책상 위에 쏟았다.

       

       “어디 보자…총 얼마려나.”

       

       그동안 제대로 준비하고 아이언 울프의 가죽만 파밍해서 번 돈. 이번에 그리운 얼굴들을 다시 마주하며 뜯어낸 돈을 전부 합쳐보았다.

       

       “1골드 26실버 92쿠퍼인가.”

       

       이 중 1골드 넘는 금액을 아이언 울프의 가죽으로 벌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는 순간 깨달았다. 왜 좀 강한 모험가들이 양아치 짓을 안 하는지.

       

       “그냥 미궁 한두 번 다녀오는 게 한 동네 양아치들의 재산을 탈탈 털어온 것보다 더 많다고…?”

       

       돈도 안 되는데 과하면 경비대에 찍히기까지 안 하는 게 당연하지.

       

       나처럼 원한이 있는 경우만 아니라면 말이다.

       

       “이제 2배인가. 4번만 더 가면 되겠구만.”

       

       아, 처음 사용해 본 유니콘 단검의 성능은 깜짝 놀랄 정도로 좋았다.

       

       당연히 사람을 베진 않았으니 비처녀 특공의 효과 같은 건 모르겠지만…무기나 두꺼운 누비옷 정도는 베어봤으니까.

       

       두꺼운 나무 몽둥이를 힘들이지 않고 자를 수 있는 것은 물론, 갬비슨이라고 불리며 저렴한 갑옷처럼 쓰이는 누비옷마저 종잇장처럼 베어내더라.

       

       아직 확인해 보진 않았지만, 이거라면 아이언 울프의 가죽도 문제없이 베어낼 수 있겠지.

       

       직접 데미지를 줄 수 있다면 전투 양상이 크게 바뀔 것이다.

       

       마침 내일 예전에 의뢰 맡긴 아이언 울프 가죽으로 만든 갑옷이 완성되니, 전체적인 장비 수준이 극단적으로 업그레이드되는 셈.

       

       이거라면 아이언 울프를 넘어 자이언트 멘티스…어쩌면 홉 고블린 부락까지 상대해 볼 만하다.

       

       물론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

       

       “운이 좋아진다고 했었지…?”

       

       일전에 카렌에게 받은 사랑의 여신 신전의 심볼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 그 앞에 유니콘 단검을 올려두었다.

       

       절대 여신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 라거나, 누가 칼 들고 협박함? 메타를 타려는 건 아니다.

       

       그냥 손재주가 없어 신상 대신 심볼을, 운이 좋아지는 효과가 있다니 단검을 그 앞에 내려놨을 뿐.

       

       마지막으로 항상 목에 걸고 다니는 럭키스트라이크를 양손으로 꼬옥 쥐며 가챠 시스템을 열었다.

       

       띠링!

       

       “120연챠 간다앗…!”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저 블아 응원복 코토리 현질 없이 30연챠만에 뽑음.

    이히히히히히히히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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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cha Addict in a Matriarchal World

Gacha Addict in a Matriarchal World

남녀역전 세계의 가챠 중독자
Score 8.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Gacha – Civilization’s Ultimate Game. Spin now for a shot at fortune. Spending that doesn’t disrupt your lifestyle? That’s virtually free-to-play. Keep spinning until you strike gold – success is guaranteed. … … Today, yet again, I’m at the gacha wheel. “Did I get a 5-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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