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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9

       작은 꼬마아이의 형상을 한 녀석들이 마치 신을 향해 기도 올리듯 두 팔을 뻗는다.

        몇몇은 내 발치로 와서 신발을 질겅질겅 씹기도 했다.

        본래 정령사가 아닌 내 눈으로는 정령들의 이런 세밀한 움직임을 알아챌 수 없어야 한다.

        그러나 부엉이가 둘러준 로브의 효과 덕인지 녀석들의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여왕이 회랑의 침입자를 구속했다!”

        “근데 구속은 아니지 않아?”

        “아니! 목에 건 족쇄가 그 증거야!”

        “그, 그런가? 그럼…… 네 이노옴!”

        “미천한 것! 머리를 조아려라!”

        “조아려라! 조아려라!”

       

        지금껏 정령들의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뿐이지 녀석들의 존재 자체는 모험가 시절부터 익숙했다.

        방치된 던전이나 깊은 숲속에서 마주친 적이 종종 있었으니까. 

        정령문에 의해 계약을 맺지 않은 정령들은 어지간해서는 통제되지 않는다.

        대체로 도움보다 방해가 되는 경우가 많았기에 기감에 살기를 담아 흩뿌리는 식으로 녀석들을 내쫓곤 했다.

       

        “나, 나는 도망갈래.”

        “왜?”

        “피가, 너무 많은 피가 묻어 있어……!”

        “멍청아! 그럼 여왕이 우리한테 화내잖아!”

        “그래그래! 게다가 자기 말이라면 철썩같이 듣는다고 했어! 이미 노예나 다름 없다 했다고!”

       

        영체의 크기가 팔뚝보다도 작은 것을 보면 하급 정령이 대부분.

        하긴, 기껏해야 2~3위계 정도의 마법사들이 들어오는 곳에 그 이상의 자원을 배치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정령들이 나를 둘러싸고 시끄럽게 떠들자 굽이 뾰족한 부엉이의 부츠가 회랑 바닥을 내리쳤다.

        가벼운 충격파가 퍼졌지만 딱히 위엄있게 느껴지진 않았다.

       

        “다들 시끄럿!”

        “여왕이 화났다!”

        “감히 멋대로 자리를 비워? 니들 때문에 나까지 불려온 거잖아!”

        “여왕의 노예가 무서웠다!” 

        “저건 어딘가 이상하다! 이 세상의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마력이라기엔 너무 이질적이다!”

        “핑계 그만대고 각자 맡은 자리로 돌아가! 쯧, 나 없는 동안 왜 이렇게 관리를 개판으로 해 놓은 거야.”

       

        굳이 따지자면 하급 정령들을 모아놓고 자신을 여왕으로 떠받들게 하는 병정놀이 중인 거잖아?

        역시 파딱으로 징집했을 정도로 악질적인 컨셉충 답게 컨셉을 하나만 잡고 있는 게 아니었다.

       

        정령술사가 정령들에게 얕보이면 끝장이라는 걸 알고 있기에 부엉이는 내가 자신의 장단에 맞춰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눈을 흘겼다.

        대충 고개를 조아리라는 뜻.

        이쪽도 당장은 정령들의 경계를 푸는 게 중요했기에 얌전히 머리를 숙였다.

       

        “큼, 역시. 대단. 하십니다. 여왕님.”

        “거봐, 회랑에는 아무 문제 없다고 했잖아.”

        “와아! 청소부가 고개를 숙였다!”

        “이제 그는 부하다! 여왕의 첨병이다!”

        “잠시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곧 돌아올 테니까.”

       

        정령들의 환호가 더욱 커지며 허공에 마치 불꽃놀이와 같은 스파크가 터졌다.

        부엉이도 만족했는지 콧대를 세우며 녀석들을 다시 그림 안으로 들어가도록 명령했다.

        그녀가 정령들과 함께 지나쳐온 장소를 잠시 다시 되돌아가는 사이, 나는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현재 메이버 가문을 이끌고 있다는 7대 가주이자 정령학파의 칠현자.

        린지 스트리블링의 초상화를 감상하던 중, 누군가 내 옷깃을 당겨왔다.

       

        “저기저기.”

        “응?”

        “이건 마법?”

       

        호기심 어린 한 무리의 정령들.

        빛의 정령체의 일종으로 보이는 녀석들은 내가 가진 위치노트에 관심을 보였다.

        자기들끼리 키득대며 처음 보는 사람에게 위해를 끼치지 않는, 순수하고 따뜻하며 온건한 성격의 정령들이었다.

       

        수많은 정령이 배회하는 회랑에서 유독 이런 녀석들이 내 마법에 관심을 갖다니.

        역시 저주에 재능이 있네 분탕이네 하는 세간의 평가 따위 다 헛된 것임이 분명했다.

       

        “오, 그렇습니다! 제가 만든 아주 훌륭하고도 아름다운 마법이랍니다.”

        “뭔데뭔데?”

        “세상의 모든 욕망과 원한을 이루어주는 꿈 같은 버튼이죠.”

        “욕마앙? 워나안? 모르겠어.”

        “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좋은 것들이랍니다. 자, 여기 한 번 보시겠어요?”

       

        나는 따뜻한 미소로 화답하며 위치노트의 관리자 페이지를 펼쳤다.

        그리고 코딩노예와 함께 만든 ‘그 버튼’ 마법을 보여주었다.

        극마법의 대가 답게 내가 봐도 일부분은 이해할 정도로 술식과 작동 원리에 상세한 설명이 기록되어 있었다.

        시련 내부라 갤러리에는 접속이 불가능하지만 아카이브로 따 놓은 유저들의 반응 역시 첨부해 두었다.

       

        현재 마탑을 뒤집어놓고 있는 전무후무한 마법인 만큼 이거라면 반드시 정령들의 까다로운 기준을 충족하겠지.

        예상대로 마법을 접한 정령들은 곧장 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꺄흑! 콜록, 콜록!”

        “왜, 왜 그래?”

        “어두워, 음습해…….”

        “이건 마치 재앙, 아니 종말……!”

        “크하하! 이런 마법이 존재했다니! 이 썩어빠진 세상을 불태워 버리는데 딱 걸맞는군!”

        “꺄악! 치, 친구들이 이상해졌어! 여왕! 여와앙!!”

       

        고통스런 비명과 함께 입에서 반짝이는 가루를 몇 차례 토해내더니, 빛의 정령 무리가 순식간에 어둠으로 물들었다.

        따스한 온기도 장난스런 미소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심연에 너무 가까이 다가간 녀석들은 검은 불꽃에 휩싸인 채 주위에 놓인 도자기나 공예품을 부수기 시작했다.

        주머니에서 또 다른 위치노트를 꺼내 건네주자 전파를 잡기 위해 순식간에 20층을 벗어나 사라져 버렸다.

       

        갤러리 유저가 늘었으니 결과적으론 좋은 건가?

        중간에 다른 형상으로 바뀌긴 했지만 어쨌거나 저놈들도 회랑에 살던 정령이니 시련은 통과겠지?

        여러 생각을 하던 도중 부엉이가 다가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카펫에 불이 붙은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라 진화를 시도했다.

       

        “뭐야 이건? 잠깐 사이에 완전 엉망이 됐잖아!”

        “갑자기 이렇게 돼 버렸어. 아무래도 정령들의 장난인 것 같은데?”

        “싯! 여긴 보는 눈이 많다고! 나갈 때까지 존댓말 써. 뭐 더 확인할 구역이라도 있어?”

        “으음…….”

       

        딱히 없다.

        만약 내가 정령사였다면 정령들이 발에 채일 정도로 넘치는 이곳에서 계약이라도 하나 채결해보려 했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었으니.

       

        “더 이상의 용건은 없습니다.”

        “그, 그럼 20층은 지금까지처럼 우리 정령학파가 정령들의 쉼터로 쓸 거다? 나, 낙장불입! 여기 기록도 다 해놨으니까!”

       

        내가 고개를 젓자 부엉이는 화색이 되어 곧바로 출구로 향하는 길로 안내했다.

        목에 둘렀던 로브도 회수당했다.

       

        출구에 가까워지자 서서히 위치노트가 활성화되며 전파가 잡히기 시작했다.

        나는 갤러리를 잠식한 수많은 버튼들을 보고 통탄을 금치 못했다.

       

        ====

        [버튼 갖고 뇌절치는 거 솔직히 지겹지 않냐]

       

        그렇지 않아요 매 순간 재미있어요

        누를 때마다 새로운 기분이고

       

        (버튼) – 790P

       

        — 응 예상했어~

        — 또또 뇌절한다

        — 근데 이번 건 무슨 버튼임?

         ㄴ 일단 눌러본다

         ㄴ 아 씨발! 이거 아까 그 암컷절정 버튼이잖아!!

         ㄴ ㅋㅋㅋㅋㅋㅋ

        ====

        ====

        꿀벌애호가

        [이 버튼을 누르면 무고한 꿀벌단 100명이 더 이상 날지 못하게 됩니다]

       

        하지만 사악한 말벌단 하나를 처단할 수 있게 됩니다

       

        (버튼) – 5,000P

       

        꿀벌단 집합!!

       

        — 부아아아앙!! 전쟁을 선포하는 거에요!!!

        — 주와아아앙!! 더는 당하고 살지 않는 거에요!!!

        — 진짜 개판이네 ㅋㅋㅋㅋ

        — 말벌단 수장 파딱한테 모가지 따였다더니 결국 전쟁 시작인가

        ====

        ====

        천문대묘지기

        [이버튼을누르면주딱이누구인지알수있어]

       

        밑에건1일데이트권으로도쓸수있어

       

        (버튼) – 4,243,626,132P

        (버튼) – 51,526,877P

       

        나저거만드느라포인트랑마력다써서정작누르질못해

       

        참고로밑에건내가남은포인트쥐어짜내서눌러봤는데아무일도안생겼어

        시간장소날짜가특정안돼서그런가봐근데어쩔수없었어더이상은포인트가없었어

        그래도언젠가할수있어희망이생겼어위에꺼아무나대신누르고죽어줘

       

        — 씹 ㅋㅋㅋㅋ 42억 ㅋㅋㅋㅋ

        — 대체 주딱한테 얼마나 진심인 거냐

        — 누르고 죽으라는 건 뭐임

         ㄴ 천문대묘지기 : 죽어서나한테말해줘

         ㄴ 님 흑마법사임? ㄷㄷ

        — 포인트 저만큼 갖고 있는 새끼 있으면 나와보라 해 ㅋㅋㅋ

        — 밑에 건 인생 갈아넣으면 해볼만 할듯?

         ㄴ 저번에 포인트 상점에 올라온 예측이 1억이었는데 겨우 반값이네

         ㄴ 저게 겨우임?

         ㄴ 일단 내가 주딱이면 갤포 5천만 모아서 데이트 신청한 새끼랑 사귈 생각은 1도 없음

        — 주작이지 저거 누른 순간 마탑 통째로 폭파될듯

         ㄴ 당사자가 구라친 경우도 많아서 누르기 전까진 뭐 나올 지 모르긴 해

        ====

       

        낚시글, 분탕, 게시판 유저 끼리의 전쟁, 게다가 나를 저격하는 듯한 게시글까지.

        별의 별 버튼이 난무하는 갤러리의 상황은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허리춤에 있던 살살이가 열심히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지만 여러 버튼에 의해 견제받는 파딱들과 힘을 합쳐도 이 상황을 해쳐나가기엔 역부족이었다.

       

        견제받는 것은 갤러리의 주딱인 나도 마찬가지여서 출구 앞에는 벌써부터 불길한 기운이 맴돌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정령들의 영역에 있어 안전했지만 저 결계 밖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 맹렬한 불행이 닥쳐올 것이 분명했다.

       

        “안 되겠다 이거 슬슬 그만해야지. 포인트 얼마나 남았어?”

        “나, 나?”

        “버튼을 하나 만들 건데 기왕이면 네가 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

        “어, 그게에…….”

       

        말끝을 흐리는 모습이 수상쩍어 그녀의 계정을 확인해 보았다.

        파딱 중 유일하게 약관에 동의가 안 되어 있었다.

       

        “말했잖아! 정령사한테는 상하관계가 중요하다고! 호, 혹시 약관에 내가 노예가 된다거나 하는 이상한 조항이 끼어 있으면 안 되니까 꼼꼼이확인 하느라…….”

        “부엉아, 실망이다. 어떻게 네가 날 의심할 수가 있어.”

       

        그리고 너 노예 맞아.

        내가 손을 머리 위로 가져다대려 하자 그녀가 흠칫 놀라 고개를 좌우로 막 흔들었다.

        불안한 듯 뒤를 보며 흔들리는 시선은 아직 정령들이 근처에 남아 있음을 말해 주었다.

       

        “내, 내가 안 하려고 안 한 게 아니라 오류! 그래, 오류가 나서…….”

        “내가 만든 시스템이 그렇게 허접했다고? 이리 가까이 와 봐.”

        “아냐! 씨이파알……! 아, 안 돼는데! 그거 또 닿으면 나 진짜로 좆……!”

       

        턱!

       

        내 손이 머리에 닿은 순간 부엉이의 정령문이 환한 빛을 내며 작은 폭풍이 휘몰아쳤다.

        나풀거리는 로브 자락이 손끝에 닿자 아주 잠깐, 정령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 여왕이 굴복했어!”

        “우릴 속인 거야?”

        “여왕이 거짓말했다! 노예에게 무릎을 꿇었다!”

        “정령들이 도망간다! 역시 우리랑 똑같았잖아!”

        “아, 안 돼…….”

       

        그녀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굉장한 충격을 받은 기색이었다.

       

        허나 다시 말하듯, 왕관과 마찬가지로 가면에도 무게가 있다.

       

        ====

        관리자

        [다들 그만]

       

        이 전쟁을 끝내러 왔다

        ====

       

        나는 실의에 빠진 부엉이를 뒤로하고 우선 갤러리에 글을 하나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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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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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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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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