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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9

       

       나는 지금 산에 있는 명당에 치성을 드리러 왔다.

       

       운디네가 만든 맑은 물에 세수를 했다.

       

       마찬가지로 운디네가 만든 물을 받아 조촐하게 상을 차렸다.

       

       정령이 만든 물이니 이보다 더 좋은 정수가 없을 것이다.

       

       “반찬이 부족하기는 한데…”

       

       치성을 드릴 때는 정성이 중요하다.

       

       올리는 상도 잘 차려야 한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지.”

       

       솔직히 말해서 날 이리로 인도한 게 누구인가.

       

       바로 신령님이 아닌가.

       

       준비도 없이 산속에 박아 놓고 예쁜 제삿상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신령님은 그런 신이 아니다.

       

       “….”

       

       원래 신내림을 받자마자 치성을 드려야 했지만···.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느라 솔직히 시간이 없었다.

       

       “세레나, 피리 좀 불어 줄 수 있어?”

       

       “…그럼요.”

       

       세레나가 주변을 뒤지며 마음에 드는 풀을 찾기 시작했다.

       

       들어 보니 저 풀이 상당히 중요했다.

       

       제대로 고르지 않으면 예쁜소리를 만들어 낼 수가 없다나.

       

       “이번엔 평소랑 조금 다르게 불어야 해.”

       

       “…다르게요?”

       

       “굿거리라고 하는데…아홉박으로 딱딱 끊는 느낌으로.”

       

       나는 대충 멜로디를 흉내 내며 알려 줬다.

       

       아마 세레나에게는 생소한 음일 것이다.

       

       이쪽과는 거리가 상당히 먼 장단이니까.

       

       “이걸 잘 불어 줘야 내가 흥이 올라.”

       

       “기도를 드리는 건데 그래도 되나요…?”

       

       세레나는 무언가 신성하고 경건한 기도를 생각한 모양이다.

       

       물론 그것도 해야 했지만, 조금 경우가 다르다.

       

       “원래는 조용히 하는 게 맞는데… 이번엔 시간이 없다고 하시네.”

       

       굉장히 촉박한 느낌이다.

       

       애초에 나는 벌써 애동을 벗을 수가 없다.

       

       보통 3년정도는 공부를 해야 벗어나는 것이 애동제자이다.

       

       그러니까 지금의 나는.

       

       “일종의 조기 진급이랄까?”

       

       “….?”

       

       어쨌든 빠르게 해치워야 한다.

       

       지긋하게 기도를 올릴 시간 조차 부족했다.

       

       “최대한 간단하게 할 거야.”

       

       무언가 불경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이 정도는 신령님도 이해를 해 주실 거다.

       

       곧 있으면 사람이 죽어 나가기 시작 할 테니까.

       

       무당인생 뭐가 대단하다고 생명보다 앞에 두겠는가.

       

       사람부터 살려야지.

       

       “아이고…내 팔자야. 일단, 내가 말하기 전까지는 피리 안 불어도 괜찮아.”

       

       “…네.”

       

       “아, 그리고 조금 힘들 수도 있어.”

       

       솔직히 세레나가 잘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꽤 오랫동안 신을 느껴야 할 텐데···.

       

       내 말에 세레나가 보기 드물게 옅은 미소를 지었다.

       

       “저는 끔찍한 시간들을 견뎌왔어요…어떻게든 버텨 볼게요.”

       

       “아…응.”

       

       괜히 안 좋은 기억을 떠올리게 한 것 같아서 조금 미안 했다.

       

       “이번엔…저도 도와 드릴게요.”

       

       새삼 든든함이 느껴졌다.

       

       지금까지 모든 굿을 혼자 했는데 말이다.

       

       조용히 고개를 돌린 나는 주변을 한번 훑었다.

       

       다시 봐도 좋은 명당이었다.

       

       산의 지기가 이곳으로 모여 들었다가 다시 퍼져나갔다.

       

       아마 계룡산이었다면 욕심을 낼 무속인들이 많았을 것이다.

       

       “시작해볼까…”

       

       그럴싸한 상 조차 없었다.

       

       겨우 구해 온 과일 같은 것들로 구색을 맞추었을 뿐.

       

       심지어 적당한 돌 위에 놓여 그것은 조촐하기만 했다.

       

       “무당이 조촐하게 살아야지.”

       

       양옆에 세워둔 초에 조심스럽게 불을 붙였다.

       

       화륵.

       

       촛불이 나를 반기듯 평소보다 힘차게 타올랐다. 

       

       딸랑 –

       

       

       ***

       

       

       제국의 북방에 위치한 바코스 남작령.

       

       그곳은 지금 난리가 나 있었다.

       

       “빠르게 움직여라! 시간이 없다!”

       

       병사들이 각기 무장한 채로 성벽 위에 도열했다.

       

       화살을 옮기고, 뜨거운 기름을 끓이는 곳도 있었다.

       

       그리고 그중앙에 바코스 남작이 손을 떨며 서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갑자기 네크로맨서라니.’

       

       소문은 들었다.

       

       네크로맨서가 다시 출몰했다고.

       

       하지만 변방의 남작인 그에게는 먼 이야기였다.

       

       도대체 볼 것이 뭐가 있다고 이곳부터 침략을 한단 말인가.

       

       바코스 남작이 갑자기 나타나 전쟁을 알렸던 기사들을 바라봤다.

       

       “파라몬님! 병력 편제를 가지고 왔습니다.”

       

       “형편없군.”

       

       “병사들을 성벽에 배치하고 있지만 수가 너무 적습니다.”

       

       “….”

       

       파라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사라진 남작령의 규모를 생각해 보면 언데드의 규모가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고작 이 정도의 병력으로 저들을 막아야 한다니···.

       

       “이곳이 저들이 가장 먼저 지나갈 곳이네. 반드시 막아야 하네.”

       

       성벽 위를 훑어본 파라몬의 주먹이 굳게 쥐어졌다.

       

       제국은 평화로웠다.

       

       감히 침략을 해 올 왕국도 없었으니.

       

       오랜 평화를 겪은 저들의 전투 경험이 어떨지는 안 봐도 뻔했다.

       

       고작해야 몬스터들과 몇 번 싸워 본 것이 전부일 터.

       

       “….영지의 기사들은 얼마나 되느냐?”

       

       “서른 명 남짓입니다.”

       

       “마법사는?”

       

       “네 명 입니다.”

       

       클로셀이 손을 휘저었다.

       

       “마법은 걱정하지 말게. 같이 온 이들의 실력이 뛰어나네.”

       

       “….”

       

       그렇다 하여도 한참이나 부족했다.

       

       부족한 와중에도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전투가 시작되면 저들 중 반 이상이 전투 불능의 상태에 빠질 것이다.”

       

       “…예?”

       

       파라몬의 지시를 받던 기사가 의아한 듯 물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멀쩡한 병사가 왜 그렇게 된다는 말인가?

       

       “일반인들은 언데드의 앞에 서면 몸이 굳어 버리네. 심지가 약한 자는 기절을 하기도 하지.”

       

       “….”

       

       “남작령에 있는 용병들도 모두 모으게.”

       

       “예…!”

       

       “다들 명심하라. 지키기 위한 싸움이다! 최대한 영지민들을 보호 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파라몬이 클로셀을 바라봤다.

       

       “지원군은 어찌 되었다던가?”

       

       

       ***

       

       

       영지민들도 바코스 남작처럼 혼란의 상태였다.

       

       “전쟁이야…전쟁이 벌어졌어!”

       

       혼란스러운 와중에 소년이 노인들을 막아섰다.

       

       “할아버지! 성벽 위에는 병사님들이 올라가는 거라니까요?”

       

       “예끼! 이놈아! 저 어린 것들이 언데드에 대해 무얼 안다고 저놈들만 보내라는 게냐?”

       

       “나는 딱 네 나이 때 언데드를 잡았다. 너는 그리하지 않아도 되니 피하거라.”

       

       남작령의 노인들이 각기 병장기를 챙겨 거리로 모여 들었다.

       

       대장간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아예 문을 활짝 열고 무기들을 밖으로 던지고 있었다.

       

       “언데드가 어디 고블린인 줄 아나 보군…”

       

       “그러게 말일세. 언데드 앞에 서면 오줌이나 지릴 것들이…쯧쯧.”

       

       노인들이 말하는 대상은 어린아이들이 아니었다.

       

       성벽 위에 올라 있는 병사들이었지.

       

       “할아버지, 알겠으니까 얼른 짐 챙겨 나오세요! 빨리 피해야 한다니까요?”

       

       “먼저간 친구 놈의 원수는 갚아야지 이놈아!”

       

       “난 내 동생이 나보다 먼저 갔다네.”

       

       그들의 기세는 사뭇 비장했다.

       

       눈빛마저 강렬한 것이 잘 단련된 병사를 연상케 하기도 했다.

       

       굽은 허리와 들고있는 창이 무거워서 떨리는 팔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늙은 몸이 버텨줄지가 걱정이군. 한 십 년만 젊었어도…”

       

       “허리만 펴져 있었으면 세놈은 데리고 갔을 텐데.”

       

       “할어버지이!”

       

       어린 여자아이가 노인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울었다.

       

       흉흉한 기세에 할아버지가 다칠까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노인은 인자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어려서 모르겠지만. 다 너희를 지키기 위함이란다.”

       

       노인이 고개를 들어 주변을 바라보았다.

       

       이런 광경이 얼마만이었던가.

       

       수십년 만에 든 창이었지만 농기구 보다 익숙했다.

       

       노인이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크게 소리를 내뱉었다.

       

       “정렬!”

       

       쿵 –

       

       소리를 들은 노인들이 열을 맞추며 발을 굴렀다.

       

       “아들 놈들이 죽게 둘 수는 없다! 다들 성벽을 오르세나.”

       

       척 –

       

       척 –

       

       오랫동안 합을 맞춘 듯 가지런한 발소리가 울렸다.

       

       지금 성벽을 향해 가고 있는 병사들 보다 훨씬 더 정돈 된 소리였다.

       

       성벽 위에서 다급하게 움직이는 병사들을 본 노인들의 입에서 욕이 터져 나왔다.

       

       “저…저…병신 같은 놈.”

       

       “언데드를 상대하는데 기름을 끓여?”

       

       “어릴때부터 그렇게 일러줬는데도…”

       

       앞서가던 노인이 병사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야 이놈아!”

       

       “아…아버지? 여기에는 왜…? 여기는 위험합니다!”

       

       “뼈에다 기름을 부으면 저놈들이 뭐 고통스러워하는 줄 알아?”

       

       순간, 기름을 준비하던 병사들이 멍하게 멈춰 섰다.

       

       맞는 말이었다.

       

       언데드한테 끓는 기름을 붓는다고 무슨 효과가 있다는 말인가?

       

       “저놈은 또 왜 칼을 들고 있어?”

       

       “사…삼촌?”

       

       “여리여리한 팔로 잘도 뼈를 부숴 놓겠다. 도끼없냐? 칼은 뼈에 잘 안 들어.”

       

       곳곳에서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평소에 인자하던 노인들이 험악한 말을 내뱉으며 그들의 자식을 나무라고 있었다.

       

       “칼로 찌른다고 죽는 게 아니라니까?”

       

       “할아버지…?”

       

       “창으로 스켈레톤을 밀어서 떨어뜨려야 한다고 몇 번이나 말했느냐? 멍청한 놈.”

       

       노인들의 참전으로 혼란스럽던 분위기가 금세 정렬되고 있었다.

       

       거친 욕설이 어색한 듯했지만 노인들은 계속해서 욕을 내뱉었다.

       

       전쟁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군기라는 것을 그들은 알았기 때문이다.

       

       성벽에 오르는 것 초자 힘에 겨워 숨을 헐떡이는 상황에도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이렇게 해야 그들의 자식들이 살 수 있을 것이기에.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아버지, 얼른 여기서 내려가세요…!”

       

       “머리를 부수지 않는 이상 놈들은 계속 움직인다. 명심하거라.”

       

       노인들이 보기에도 상황은 좋지 않았다.

       

       오랜 옛날 전, 그들은 이보다 잘 훈련된 군대와 함께 싸웠음에도 패배가 일상이었다.

       

       창을 든 노인이 떨리는 팔을 억지로 움직였다.

       

       “끄응…밀러 이놈은 왜 창을 이렇게 무겁게 만들어 놓아선….”

       

       괜히 대장간을 운영하는 밀러를 탓하며 노인이 걸음을 옮겼다.

       

       경험 없는 젊은이들을 살리기 위해.

       

       “스누크의 아들이지?”

       

       “아버지를 아십니까?”

       

       몇 가지의 주의사항을 일러 주던 노인의 눈이 번뜩였다.

       

       병사 한 명이 또 기름을 짊어지고 올라왔기 때문이다.

       

       “이보게.”

       

       “…예?”

       

       “그건 식당에나 다시 가져다 놓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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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판타지 세계의 무당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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