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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9

        

       “일단 먼저 확인부터 하겠습니다. 성실하게 답해주셨으면 합니다.”

         

       진성은 공손하게 원로에게 말했다. 그러자 원로는 귀찮다는 듯, 하지만 ‘축복’의 효과를 위해서는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는 듯 진성에게 해보라는 듯 몸짓을 보였다.

         

       “일단 말씀하신 축복이 정력과 쾌락이 증가하는 축복 맞습니까?”

       “그렇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축복을 걸기 위해서는 머리카락이 필요한데, 한 올 뽑아서 주실 수 있겠습니까?”

       “어려울 것도 없지.”

         

       그는 나이에 맞지 않게 검은 윤기가 흐르는 머리카락 하나를 뽑아서 진성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는 무언가 웃긴 농담이 생각났는지 피식 웃었다.

         

       “그러고 보니 그 ‘축복’은 머리카락으로 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대머리는 축복도 받지 못하겠구먼! 하하하! 아니, 대머리는 정력이 강하다고 했으니 자네의 축복을 받지 않아도 문제가 없겠어!”

       “대머리가 정력이 강하다고 한들 타고난 정력가만 하겠습니까. 특히 정력은 그렇다 쳐도 크기는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것이니, 원로께서 가진 물건이야말로 진짜배기 축복이겠지요.”

       “그래. 이 물건이야말로 내 진짜배기 축복이지. 뭘 좀 아는군!”

         

       진성은 원로의 자화자찬에 적당히 아부하며 받은 머리카락을 재로 만들었다. 그리곤 그렇게 만든 재를 원로의 아랫배에 콕 찍어 발랐다.

         

       “호. 특이한 방식이로구나. 어디, 네가 모시는 신의 힘이냐?”

       “아, 그렇진 않습니다. 이건…. 비밀입니다만.”

         

       진성은 슬쩍 웃더니 조용히 말했다.

         

       “신사에서 보관 중이던 서적이 하나가 있더군요. 거기서 나온 방법입니다.”

       “흐흐, 그래? 그런 것들이 종종 나오곤 하지.”

       “그렇습니까?”

         

       진성은 종종 그런 것이 나온다는 말에 원로를 슬쩍 쳐다보았다.

       하지만 원로는 더는 말할 생각이 없다는 듯 입을 닫고 아랫배를 보았다.

       진성이 찍었던 재는 살 속으로 파고들기라도 한 듯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고, 그 때문에 원로는 진성이 손가락을 댔던 곳을 슬쩍 어루만졌다.

         

       “오?”

         

       ‘축복’의 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원로는 자신의 몸에 감도는 넘치는 정력과 근육 곳곳에 퍼지는 활력, 그리고 평소보다 훨씬 단단해진 듯한 자신의 물건을 확인하곤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만족스럽다는 듯 진성에게 말했다.

         

       “훌륭해! 말 그대로 ‘축복’이로군!”

         

       원로는 축복을 걸어준 진성을 대충 치하해주고는 건물 이야기가 나왔을 때부터 온 힘을 다해 자신을 유혹하려 했던 여자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살로 만들어진 침대에 몸을 파묻듯 그들 사이로 들어가 한껏 사랑을 나누기 시작했다.

         

       진성은 가만히 그 장면을 지켜보다가 정치인과 함께 조용히 방을 나갔다. 그는 공손하게 문을 닫는 척하면서 문고리에 수작을 부려 제대로 닫히지 않도록 만들었고, 자연스럽게 정치인과 함께 아래층으로 향했다.

         

       “대단한 호걸이구나. 게다가 생각보다 훨씬 젊어 보이느니.”

       “하하하. 일본 정치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나 다름없는 분이시죠. 외모는 저보다 훨씬 젊어 보이시는 분이지만, 무려 제국 시절부터 나랏일을 하시던 분이었습니다. 대단하신 분이지요.”

       “나랏일이라?”

       “그렇습니다. 대동아전쟁 당시 전쟁영웅으로 이름을 떨치셨지요. 자랑스러운 사츠마 번의 사나이답게 바다를 누비며 온갖 공을 세우셨습니다.”

       “바다 사나이라? 그렇다면 원로께서는 수공(水功)을 익히셨는가?”

       “아닙니다. 듣기로는 어떤 검술을 익히셨다고 들었습니다. 듣기로는 이천일류(二天一流)로 유명한 미야모토 무사시께서도 극찬했던 검술이라고 하는데, 이름까진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

         

       진성은 정치인을 쳐다보았다.

       정치인은 원로를 자랑하기에 여념이 없는지 약간 상기된 얼굴을 하고 있었고, 덕질을 포교하는 팬처럼 진성에게 계속해서 원로에 대해 정보를 늘어놓았다.

       그러다가 진성이 대꾸가 없자 이상함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렸고.

         

       “수공을 익히지 않았다 이 말이지?”

         

       환하게 웃고 있는 진성을 볼 수 있었다.

         

       진성은 웃음을 지으며 정치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정치인의 눈은 썩어있었다.

       그 눈은 먹이에 길든 들짐승이 보이는 눈빛과 같았고, 미래를 향해 어려운 발걸음을 걷기보다는 눈앞에 쾌락에 매몰된 채 허우적대는 사람이 가지는 눈빛이었다.

       약쟁이였기에 쾌락에 대한 내성이 일반 사람보다 현저히 적었던 그가 가지기에는 참으로 알맞은 눈빛.

         

       “이보게. 이런 생각을 해본 적 있는가?”

       “어떤 생각 말씀입니까?”

       “흠. 그래. 자네 역시 켄지를 본 적이 있지. 켄지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치인은 잠시 생각하다 답했다.

         

       “미친놈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저한테 차기 신관님을 소개해주었으니 악감정은 없습니다.”

       “그래, 미친놈. 하하하. 그래. 그 작자는 미쳤지. 약쟁이들을 닥치는 대로 납치해놓고, 울부짖는 것을 보면서 환희를 느끼는 놈이 미친놈이 아니고 무엇일까!”

         

       진성은 한바탕 웃고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남을 끌어내리고 자기와 똑같은 존재로 만드는 것이 어떤 기분인가 하는, 그런 궁금증이 생기진 않았는가? 켄지가 그렇게 기뻐하는 것을 보고 혹하는 마음이 들지 않았느냐는 말이야.”

       “그건….”

       “그래. 옳지 못한 일이지.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게 무슨 문제란 말인가. 자네도 옳은 일이기 때문에 약을 하진 않았을 것 아닌가. 그냥 약을 하면 기분이 좋으니까 했고, 기분이 좋으니까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그렇지요.”

       “그런 의미에서 하는 말인데, 내가 지금부터 자네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줄 것이네. 이건 이 방에 있는 그 누구도 갖지 못하는 특권이며, 다 자네가 원로에게 안내를 잘 해줬기에 내리는 선물이자 특권일세.”

         

       진성은 자신이 챙겨온 가방의 지퍼를 천천히 열었다.

         

       “자. 하나는 말일세. 자네가 지금까지 겪었던 쾌락의 연장선이네. 성관계로 얻는 쾌락 말일세. 이걸 선택한다면 자네는 다른 사람이랑 똑같은 취급을 당하게 되겠지만 적어도 쾌락 하나만은 보장할 수 있다네. 이건 내 장담할 수 있어.”

       “쾌락….”

         

       정치인은 쾌락이란 단어에 혹한 듯 진성을 멍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내가 방금 말한 ‘저열한 쾌락’을 느껴보는 것이네. 자네는 이 방에서 여자를 제외하고는 서열이 가장 낮을 것이야. 돈이면 돈, 권력이면 권력. 여기서 자네보다 모자란 이는 단 하나도 없을 테니까. 그렇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만약 자네가 두 번째 선택지를 고른다면 그 대단한 자들이 전부 바닥으로 처박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야. 약에 취해있는 것보다도 더 저열하게 변하고, 쾌락에 취한 것보다도 더 꼴불견의 모습을 보이며 눈깔이 돌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겠지. 그 순간만큼은 자네가 이곳에 있는 대단한 사람들보다 한 단계 위에 있는 존재가 될 것이야.”

         

       쾌락.

       우월감.

         

       정치인에게 두 가지 선택지는 두 개의 단어로 다가왔다.

         

       그는 고민했다.

         

       쾌락.

       그는 필로폰으로 얻었던 쾌락을 기억한다. 주사를 놓고 신나게 성행위를 했을 때의 그 몰입도와 증폭된 쾌락은 그의 해마 가장 깊숙한 곳에 저장되어 있었고, 약의 부작용 때문에 고생하면서 끊을까 고민을 하다가도 그 쾌락을 이기지 못해 약에 취하며 살아왔다.

       그런 과거 때문에 그는 ‘쾌락’이라는 단어에 너무나 약해져 있었다.

       진성에게서 축복을 받고 약을 끊게 된 지금도 그 대신 주어진 정력과 쾌락의 증폭에 의존해서 여자를 신나게 안으며 매일을 보낼 정도로 말이다. 필로폰에 중독되었던 만큼 여자에 중독되는 것 역시 커져서 늘어난 정력으로도 다 커버가 되지 않을 정도로 종일 여자를 끼고 살았고, 요즘에는 아연이나 정력에 좋다는 건강식품마저 챙겨 먹고 있을 정도였다.

       그렇다면 저열한 쾌락은?

       남을 짓밟고 그 위에 올라서기 위한 욕망에서 비롯된 쾌락은 어떤가?

         

       ‘나는 무엇 때문에 정치인이 되었지?’

         

       일본에서 정치인이라는 것은 시민들의 투표로 당선되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와는 달리, ‘세습’이 가능한 권력이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있어서 정치인이라는 것은 자연스럽게 물려받을 수 있는 권력이었고, 앞길이 보장된 찬란한 직업을 말하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일반인들의 위에 자연스럽게 서서 그들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계급이기도 했다.

       다른 사람을 깔보고 무시하면서 주어지는 비틀린 쾌락은 그에게 익숙한 것이었고, 거기서 주어지는 우월감은 그를 이루는 요소였다.

         

       그렇다.

       쾌락이 그가 중독된 것이라면.

       우월감은 그를 이루는 것이었다.

         

       정치인이라는 자리를 물려받았다는 우월감.

       제 맘대로 권력을 휘두르며 우민들을 다룰 수 있다는 우월감.

       태어날 때부터 일반 사람들과는 계급 자체가 다르다는 우월감.

       남을 손가락 하나로 부리고, 행패를 부려도 무마할 수 있는 막강한 힘!

         

       “두 번째를 선택하겠습니다.”

         

       정치인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그 대답을 하는 순간만큼은,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고 우월감에 취해있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의 눈은 약쟁이 같은 썩어빠진 눈이 아닌 총기가 돌아온 눈빛을 품고 있었다.

         

       “좋구나 좋아.”

         

       진성은 그 총기 가득한 눈빛에 웃었다.

         

       딱히 기특해서 웃은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남을 괴롭힐 때 가장 즐거워하는 인간의 본성이 웃겨서.

       해마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쾌락의 집착조차 이길 정도로 그것이 대단한가 싶어서.

         

       그래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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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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