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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90

   악신의 추종자들을 이끌고서 연구실의 숨겨진 장소에 돌입한 루카는 안의 풍경을 보고서 눈썹을 찌푸렸다.

   

   이전에 내가 왔을 때는 무척이나 살풍경한 곳이었는데 왜 지금은 귀족 저택에서나 볼 법한 복도로 변해 있는 거지?

   

   알른 영애가 준비한 거라고 생각하기에도 이상해.

   

   과거의 그녀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최근의 영애는 허영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야.

   

   아카데미의 휴일에도 비싼 옷을 걸치긴커녕 여느 때처럼 교복만 걸치고. 자신의 방을 꾸미는 일도 귀찮아하는 그녀가 개인적인 취미 때문에 이런 걸 준비했을 리는 없어.

   

   그렇다면 지금의 풍경은 뭐냐. 알른 영애는 왜 직접 이런 것을 만들어냈을까.

   

   그 분께서 자신의 귀찮음을 무릅쓰고 굳이 공을 들일 일이라면 하나뿐이지.

   

   “던전.”

   

   작년 기말고사 당시 루시 알른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던전에 진심인지 느꼈던 루카는 자신의 직감이 옳다고 확신했다.

   

   던전이 아니고서야 루시 알른이라는 사람이 이토록 공을 들일 리가 없었다.

   

   이건 좀 일이 곤란하게 됐군. 알른 영애가 직접 손을 댄 던전이라면 무척이나 까다로운 곳일 터.

   

   섣불리 걸어 들어갔다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이라면 아무리 영애라 한들 아카데미의 지원 없이 던전을 만드는 데엔 한계가 있을 거란 것이다.

   

   아카데미 던전을 만들 때 그랬던 것처럼 강제성을 띌 수는 없을 거다. 어찌 보면 잘 된 일이다.

   

   알른 영애께서 공을 들여 만든 작품을 박살내며 그 분에게로 향한다면 알른 영애께서도 위기감을 느끼실 터.

   

   좋군. 그 분을 몰아붙일 수 있다면 기꺼이 그래야지.

   

   “갑시다.”

   

   *

   

   사령의 시야를 아드리의 흑마법을 통해 공유하던 나는 이런 저런 함정을 가뿐히 박살내는 루카를 보면서 당혹을 느꼈다.

   

   시간과 자원의 한계가 있어서 어느 정도 타협을 한 건 사실이지만 저렇게 쉽게 부술 것들은 아닌데?

   

   예를 들어 지금 기습을 위해 대기하고 있는 저 해골들은 어디까지나 시선끌기 용이다.

   

   기습에 대처하느라 시선이 끌린 틈을 타 미리 준비해 둔 함정을 발동시켜 혼란을 잇고 그 사이에 사령들을 통해 기습을 걸어 개판을 만들 생각이었지.

   

   헌데 루카는 기습을 위해 대기하고 있던 사령들을 먼저 눈치 채 제거하고 함정도 미리 제거했다.

   

   그 틈을 노려 해골들로 공격을 하게 만들었지만 그 공격도 유의미한 성과를 만들어내진 못했어.

   

   지금 루카가 부수고 있는 가짜 벽도 마찬가지야.

   

   앞에 몇 가지 수작을 더해둬서 가짜벽이란 걸 알아도 쉽게 부수지 못하도록 설계를 해뒀는데 루카는 당연하다는 듯 가짜 벽을 부수고 나아가버렸어.

   

   이외에 다른 부분들도 하나 같이 너무 쉽게 박살나고 있다.

   

   뭐지? 진짜 이상하네?

   

   루카가 게임 속에 나왔던 것보다 더 유능해졌어.

   

   원래도 정신이 나간 걸 빼면 실력 있는 녀석이었지만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

   

   루카 저 새끼도 나랑 얽히면서 무슨 변수가 생겨난.

   

   ‘기이하군. 영애께서 공을 들여 만든 던전이 이 따위일 리가 없는데?’

   

   루카의 혼잣말을 들은 나는 이성의 끈이 툭하고 끊어지는 것을 느끼며 아드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멍청한 할망구. 저 변태 교수가 한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 …어. 그게. 그.

   “바닥을 쳐 기면서 꿀꿀 대야 할 돼지 새끼가 사람 말을 하는 거. 참 이상하지?”

   

   하하하핳.

   

   이 따위라고?

   

   내가 설계한 곳이 이 따위라고?

   

   저 씹새끼가 진짜.

   

   “내가 줬던 거 내놔. 당장.”

   – 여, 여기! 여기 있어!

   

   아드리에게서 종이를 거둔 나는 방금 전 루카와 공허의 추종자들이 보여 준 모습을 기반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일단 당장 아드리가 준비할 수 있는 물리력으로 저들을 위협하는 건 힘들어.

   

   결계 전체가 공허의 손에 들어가서 추종자들의 힘이 강해진 것도 강해진 건데 루카의 전력이 내 예상보다 더 강해졌거든.

   

   이럴 때는 다른 쪽으로 가야지. 마침 내 옆에 있는 아드리는 흑마법에 능한 사령술사이니 충분히 가능할 거야.

   

   앞서 만들어 둔 여러 함정이 쉽게 파훼되었다는 걸 이용해 심리전을 걸고. 루카가 저들을 도구 취급한다는 걸 고려해서 한 번 더 심리를 꼬아 넣으면.

   

   “할망구. 할 수 있지?”

   – …가능하긴 할 것 같지만 이건 너무.

   “외톨이 할망구. 너무 오래 혼자 살아서 분위기 파악이 잘 안 되나 봐? 내가 바라는 대답은 하나고. 할망구는 그걸 하기만 하면 돼. 사교능력이 떨어지는 할망구라도 이 정도는 알아들었겠지? 응?”

   

   내가 아는 아드리라면 분명 투덜투덜댈거라고 생각했지만 이상하게도 아드리는 알겠다고 고갤 끄덕거리더니 자신이 조종하는 사령들에게 다급히 명령을 전했다.

   

   뭐지? 쟤 갑자기 왜 저래? 뭔가 위기감이라도 느꼈나?

   

   그를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으려니 옆에 있던 프레이가 날 쿡쿡 건드렸다.

   

   “왜. 바보 검사.”

   “방금 루시 진짜 무서웠어.”

   “…응?”

   “진짜. 진짜. 진짜. 무서웠어.”

   “으으응?”

   

   *

   

   복도에 준비되어 있던 자잘한 함정들을 뛰어 넘은 루카는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의아하단 생각에 고갤 갸웃거렸다.

   

   기이하군. 영애께서 공을 들여 준비한 것처럼 보이는 장소거늘 왜 이리 쉬운 거지?

   

   그 분께서 준비한 던전이 이 따위 일 리가 없는데?

   

   그럭저럭 까다롭긴 하다마는 그 분이 만든 것 치고는 너무 평범해.

   

   내가 아는 알른 영애라면 이런 던전을 만들 리가 없어.

   

   이상하군.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건가? 자신이 무슨 함정에 빠진 것 아닐까 의심하던 루카는 뒤 편에서 느껴지는 섬찟함에 즉시 단검을 뽑아 휘둘렀다.

   

   벽 너머에서 튀어나온 사령이 휘두른 검이 그의 단검에 막힌다.

   

   

   – 히히히.

   

   귓가에 웃음소리가 스며들기 무섭게 벽 너머에서 하나 둘 사령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시녀의 복장을 한 이가. 시종의 복장을 한 이가. 귀족의 옷을 입은 이가. 기사의 갑옷을 걸친 이가.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했을 때의 원망을 그대로 간직한 채 모습을 드러냈다가 자취를 감추질 반복한다.

   

   – 사람이다.

   – 여긴 무슨 일로 왔을까?

   – 퀘퀘한 냄새가 나.

   – 역겨운 냄새야. 생전에 못했던 말이 많았던 것일까.

   

   죽은 자들은 쉴 새 없이 재잘재잘대며 복도를 자신들의 목소리로 가득 채웠다.

   

   또 사령인가. 주신의 사랑을 받는 사람에겐 어울리지 않는 이들이군.

   

   …아냐. 이전에 나왔던 것들과는 다르다.

   

   이들은 이전에 우리를 습격했던 사령들과 달리 제대로 된 형상을 갖추고 있어.

   

   “사라져야 할 것들 주제에.”

   “공허의 축복을 나누어주마.”

   

   루카가 고민을 하는 동안 공허의 추종자 중 하나가 무기를 휘둘렀다.

   

   공허의 권능이 담긴 공격이 사령의 존재를 반으로 찢어발기고 그들의 존재를 공으로 돌린다.

   

   그 광경을 본 루카는 속으로 혀를 찼다.

   

   성급하군.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 건가?

   

   흑마법과 관계되어 있는 곳이라면 이런 거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관찰해야지. 무슨 함정이 기다리고 있을 줄 알고.

   

   뭐. 아무래도 좋다. 자신이 자진해서 실험대가 되겠다는 데 말릴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약해빠졌군!”

   

   자신들의 동료라 불러야 할 이가 눈앞에서 찢어발겨 졌음에도 사령들은 겁을 먹기는커녕 더 짙은 웃음소리를 냈다.

   

   – 겁을 먹었네?

   – 죽는 게 두려운 걸까?

   – 우후후.

   – 공허를 모시면서 공허에 가는 게 무서워?

   

   “잡령들이 선을 넘는 군!”

   

   공허의 추종자들이 씩씩대며 벽을 향해 무기를 휘두르는 동안 루카는 적당히 공격하는 체만 하면서 사령들이 지닌 힘을 계산했다.

   

   저들은 단순한 잡령들이 아니다. 원한만을 지닌 무언가였다면 이미 이성을 잃고 우리에게 달려들었어야 해.

   

   그러지 않고 우리를 툭툭 건드리고만 있는 건 저들이 통제를 받을 만한 힘을 지녔다는 것.

   

   아무리 생각해도 사령을 건드려서 좋을 건 없을 듯 하군.

   

   적당히 대처하는 체만 하면서 분위기를 지켜봐야겠어.

   

   “젠장! 쥐새끼 같은 것들이 자꾸. 큭!”

   

   자잘한 다툼이 계속 되던 와중 한 추종자가 사령에 의해 상처를 입었다. 그 상처는 겉으로 보기에는 별 것 아닌 흉에 불과했다.

   

   시간이 지나 아물면 어떤 흔적조차 남지 않을 자그마한 상처 말이다.

   

   허나 그 추종자는 자신의 상처를 대가로 사령 하나를 지워버렸기에 피를 흘리면서도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다 있어야 할 곳으로 돌려보내 주지!”

   

   전투가 끝나는 데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절반 이상의 사령이 사라진 시점에서 사령들이 발을 물린 것이다.

   

   “이전과 달리 조금 귀찮았지만 별 것 아니군요.”

   “힘을 써도 이 따위라니. 정말 한심한 일입니다.”

   “썩어빠진 주신을 모시는 자에게 무얼 기대하겠습니까.”

   

   위선을 주장해야 할 년이 사령술사와 손을 잡은 것도 정신나간 일인데 사령술사 따위와 손을 잡았음에도 준비한 전력은 쓰레기 같은 수준이라니.

   

   루시 알른이란 인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공허의 추종자들은 그녀가 궁지에 몰렸다고 여겼다.

   

   “루카 교수! 빨리 길을 안내하십시오! 우리의 손으로 방해물을 없애고 공허께 제물을 바칠 것이오!”

   

   자신들이 공을 세울 수 있단 사실에 신이 난 추종자들에게 재촉을 당한 루카는 경고를 해둘까 생각을 하다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사령들의 습격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세상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할 이들은 중간중간에 갑작스레 튀어나와 공격을 했고 얼마 정도의 피해를 입고 도망치기를 반복했지.

   

   공허의 추종자들의 몸엔 여러 자잘한 상처들이 쌓였지만 공허의 추종자들은 그런 걸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들이 모시는 신을 위해 일을 하며 죽을 위기를 수도 없이 넘겼던 이들이다. 이까짓 잔상처가 어찌 그들의 발길을 막을 수 있겠는가.

   

   그 과정 속에서 루카는 점차 찝찝함이 커져가는 것을 느꼈다.

   

   내가 너무 많은 걱정을 품고 있는 걸까?

   

   아니. 그렇지만 상대는 알른 영애다.

   

   그녀라면 분명 무언가를.

   

   “테라? 너 갑자기 왜 그래?”

   

   뒤편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갤 돌린 루카는 허여멀건한 눈을 한 채 멈춰 선 공허의 추종자를 시야에 담았다.

   

   테라라고 불린 공허의 추종자는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무어라 중얼거리다 자신의 동료를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야! 너!”

   

   그 광경을 본 루카는 당혹스러워하기는커녕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길가에 준비한 여러 함정은 눈 돌리기.

   

   그 과정에서 우릴 습격 해 온 해골도 마찬가지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기게 만들어서 안심을 시킨다. 그럼으로써 사령들이 낸 잔 상처도 아무것도 아니라 여기게 한다.

   

   하지만 노림수는 그것. 아무것도 아닌 상처를 통해 무언가가 흘러들어온 거야.

   

   그게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다만 굳이 알고 싶진 않군.

   

   알아야 할 필요도 없을 듯 하고.

   

   당혹스러워 하는 이들을 지나쳐 이성을 잃은 이 앞에 선 루카는 단검을 휘둘러 그 목을 날려버린 후 몸을 뒤로 돌렸다.

   

   “계속 가죠. 상처 입지 않게 주의하시고요.”

   “다. 당신.”

   “무슨 문제 있습니까?”

   

   허나 이것도 함정치고는 너무 심심하군요. 알른 영애.

   

   제가 아는 당신의 재능은 이 정도가 아니었습니다만.

   

   어찌하면 당신이 더 간절해질까요.

   

   역시.

   당신과 관계된 자들을 위협하는 게 제일인 걸까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루 휴재를 하고 지각까지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내일은 제 시간에 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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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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