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90

    <490 – 교수님 안 돼요 그러지 마요>

     

    오르데 타코.

    그는 회장을 벗어난 지금도 납득할 수 없었다.

     

    “하비. 그게 뭐하는 인간인진 몰라도 그 녀석의 욕망이라는 건 알았다. 그걸 이겨냈다는 사실도. 하지만 내게는 이겨낼 기회조차도 주어지지 않았어. 기회만 주어졌다면 달랐을 거야. 절박함도 의지도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다고. 이건 불공평해!”

     

    어째서 내게는 욕망의 파편이 보이지 않았는가.

    불만을 드러내는 그에게 박스캣이 말했다.

     

    “놀러 와놓고 무슨 헛소리다냐? 상금을 벌면 좋긴 했지만 결국은 논 거 맞다냐.”

    “…!”

    “그 이전에 실력에서도 발렸다냐. 암흑마나를 써야만 이길 수 있다면 정체를 드러낼 수 없는 지금은 진 게 맞다냐.”

     

    무심한 구박이 뜻하지 않은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암흑마나를 쓰지 않고 진 것은 개의치 않았다.

    그의 진정한 강함은 암흑마나를 사용함에 있으니.

    문제는 다른 쪽에 있다.

    박스캣의 말대로였다.

    그는 복수를 주장했지만 순간의 유희에 마음이 흔들렸다.

    우승상금 금화 1만매.

    그걸 면죄부로 삼아서 순간의 유희에 몸을 맡겼다.

    잠깐이지만 복수가 그의 가슴에서 흐릿해지거나 멀어졌을지도 모른다.

    그에 반면, 우승자였던 남자는 어땠던가.

    하비라는 이름의 제 옛 연인조차 과감히 끊어내는 결단력을 실제로 드러냈다.

    그에게는 시험의 기회조차 찾아오지 않았지만 그 남자에게는 기회가 찾아왔다.

    같은 자리에 왔을지언정, 진정성의 크기와 마음의 깊이는 달랐던 결과일지도 모른다.

     

    ‘내가 부족했던 건가.’

     

    그 남자의 욕망보다 내 욕망이 부족했는가.

    가문의 부흥이, 그 의지에 미흡함이 있었단 말인가!

     

    “웃기지 마라. 작전은 강행한다.”

    “강자가 엄청나게 많았다냐. 그래도 저지른다냐?”

    “오히려 지금이 기회다. 불꽃쇼의 여운이 남아있는 이틈에 함정지대를 돌파한다. 어차피 허술해진 보안술식 따위론 우릴 막지 못할 거다.”

    “우리?”

    “널 혼자 둬봤자 멋대로 놀러 다닐 뿐이라는 교훈은 충분히 얻었다. 화산폭발까지 함께 다닌다.”

    “들켰다냐.”

     

    농땡이를 부릴 수 없게 된 박스캣이 투덜거렸다.

     

    “재미도 없고 시시한 침투는 지겹다냐.”

    “일단은 바닥에 깔린 검은색 흙을 따라가라. 바위를 밟지 않고 흙을 밟는 것. 이것이 적색마탑의 작렬학파에 섞인 협력자와 사전에 약속된 진입루트다.”

     

    불꽃쇼는 짜릿했다.

    반복해도 같지 않은 쇼의 전개.

    기량이 부족해도 운과 경험으로 대체가능한 진도.

    마치 누군가에게 목을 졸린 채로 사경을 헤매다시피 보이는 매 순간 절박하며 간절한 영역전개까지.

    모든 것이 박스캣의 파괴본능과 종족적호기심을 충족시켰다.

    함정루트에 진입하는 것은 달랐다.

    짜고 치는 사기에 위기다운 위기도 없다.

     

    “비주류 학파가 새로운 함정을 설치했군.”

    “냐냐! 몸으로 뚫어주겠다냐!”

    “어림없지. 디스펠.”

     

    폭음을 일으켜 적을 잔뜩 부르고 신나는 살육전을 벌이자는 박스캣의 야심은 시작부터 무산됐다.

    발을 한 번 구르며 즉각적으로 발동한 오르데 타코의 마법이 발구름의 진동이 닿는 범위 내의 모든 마법적 함정장치를 해제했다.

     

    “냐…”

     

    불꽃쇼가 그립다.

    마음 같아선 오르데 타코를 죽이고 불꽃쇼를 열 번은 더 놀러가고 싶을 지경이지만…

     

    -박스캣. 다시 한 번 제 지시를 어기거든 당신에게 저주를 내릴 겁니다. 언제 어디서든 청량한 바람과 시원한 온도를 누릴 수 없는 고온다습의 저주를.

    -히야악!

     

    마왕군 사천왕 엘니뇨님은 무섭다.

    세상의 모든 정체된 기류, 무풍지대를 수집하여 구사할 수 있는 그녀의 심기를 거슬렀다간 평생 쪄죽을 것 같은 온도에 시달리다가 죽겠지.

    고양이수인의 파괴본능도 냥냥펀치가 닿지 않는 대자연을 상대로는 무의미하니, 상성에서 처참할 정도로 불리하다.

     

    “얌전히 있겠다냐…”

     

    이 시시한 시간이 한시라도 빨리 지나가기를.

    지금은 그저 그렇게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적색마탑의 순찰자가 있군. 저걸 해치우고 단숨에 정상으로 돌입한다. 너는 뒤를 지키다가 입구로 몰려드는 적들을 유린하다가 이탈해라.”

    “알았다냐…”

     

    그렇게 생각했는데……

    오르데 타코의 빙계마법이 적색마탑의 로브를 꿰뚫는 순간, 희미해져가던 기대에 불이 붙었다.

     

    ‘죽지 않았다냐?’

     

    아니다.

    처음부터 사람이 들어있지 않았다.

    로브를 뒤집어씌운 골렘이다.

     

    “역시 내 감각은 잘못되지 않았군.”

    “너는… 불꽃쇼의 우승자?”

     

    로브를 씌운 골렘들의 너머, 불꽃쇼 회장에서 본 한 무리의 도적들이 능선 너머로 모습을 드러냈다.

    도적들의 선두에는 직전까지 그에게 패배를 안겨주었던 남자가 서있었다.

     

    잠복자, 디스트로이어 교수.

    침입자, 오르데 타코.

    두 사람의 영역이 동시에 충돌했다.

     

    울컥.

     

    오르데 타코의 입가에서 피가 흘렀다.

     

    “불꽃쇼 회장에서는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고 추한 모습을 보였지. 그런 네게 돌아온 기회다. 여기서 나를 꺾으면 금화 1만매를 얻을 수 있겠지.”

    “애먼 사람을 겁박하는 이유가 뭐냐. 우승자는 멋대로 사람을 패죽이고 다녀도 되는가?”

    “사람이 아니다. 마인이지.”

     

    디스트로이어의 영역전개 출력이 상승했다.

    오르데 타코의 눈에 핏발이 섰다.

    눈뿐만이 아니라 전신의 모든 혈관이 검게 돋아났다.

    암흑마나.

    그 불길한 힘의 운용을 시작했다는 증거였다.

    일방적으로 짓눌리던 오르데 타코의 영역이 삽시간에 평행과 대치를 이루었다.

    그러고도 미세하게 우위를 점하며 조금씩 디스트로이어의 영역을 밀어내는 오르데 타코.

     

    “어떻게 알아냈지? 네 재주를 뽐내 자랑해보아라. 유언 대신 들어주마.”

    “마나를 지닌 존재는 그를 죽음으로 인도한 살육자에게 소량의 마나를 빼앗긴다. 마물, 마인, 마족. 그들조차도 예외는 아니지.”

     

    디스트로이어의 눈에 어둠이 차올랐다.

     

    “그렇다면 은퇴한 전대용사의 몸에는 어느 정도의 암흑마나가 존재하는가. 자네는 그 사실을 고민해본 적이 있는가?”

    “…!!”

    “대답해보아라. 유언 대신 들어주지.”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어둠이 솟구치는 순간, 오르데 타코는 인지했다.

    암흑의 마나석을 복용한 자신조차도 눈앞의 전대용사 앞에서는 <절대복종>을 강제할 수 있는 <절대우위>에 잡아먹히기 직전이라고.

    전대용사.

    그의 암흑마나 보유량은 마인클래스를 넘어서 마왕군 사천왕에 비견될만한 수준의 기운이 그를 압박했다.

     

     

    * * *

     

     

    오잉.

    순간 헛것을 봤나 눈을 의심했다.

    실패의 아이콘 디스트로이어 교수님이 일방적으로 적을 압도하고 있다니!

    심지어 늦지도 않았고.

    제때에 맞춰서 등장했다.

    마인의 정체는 어떻게 간파했을까?

    로지니와 매스각키 황녀와 함께 셋이 나란히 철조망 뒤에 쪼그려 앉아서 논의했다.

     

    “전직용사의 눈썰미겠지.”

    “불꽃쇼에서 영역을 마주하면서 뭔가 느낀 거 아니야~? 다른 영역구사자들의 허접영역이랑은 다른 마인만의 뭔가가 있었겠지♡”

    “둘 다 맞을 거라고 생각해요. 교수님은 암흑마나도 있고 눈썰미도 있으니까요!”

     

    로지니는 좀처럼 납득이 가지 않는 얼굴로 반문했다.

     

    “애초에 용사인데 암흑마나가 왜 저렇게 많아? 파티에 성녀가 있으면 정화를 받았을 거 아니야. 마인토벌 후에 사악한 기운을 성스러운 신의 기운으로 정화해서 정순한 기운으로 취하는 정화과정은 용사행의 필수적인 과정이잖아.”

    “그 말도 맞네♡ 설마 성녀도 못 구한 허접파티라서 정화를 못했을 리도 없고♡”

    “응? 그거 맞는데요?”

     

    로지니랑 매스각키가 뭘 좀 모르나보다.

     

    “그럴 리가 없잖아.”

    “성녀가 없는 용사파티가 말이 돼~? 허접♡ 상식이 부족해♡”

    “그래도 정말로 성녀는 없었는걸요! 디스트로이어 교수님의 모험기담에서 ‘용사 니알라토텝’과 ‘전사 알파’, ‘도적 디스트로이어’가 나온 적은 있어도 성녀가 언급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요?”

     

    꼭 이번 회차에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다.

    전대용사의 과거는 매번 랜덤한 모험담이 되지만 몇 안 되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전대용사는 반드시 <니알라토텝>이며 동료는 <알파>와 <디스트로이어>였다.

    그리고 이 3인 외의 동료는 용사파티 정규파티원에 존재하지 않았다.

     

    “어…? 생각해보니 용사파티의 전대성녀는 누구였지? 들어본 기억이 없어.”

    “어느교단의 비밀병기가 들어가서 신분보호를 위해 비밀로 했던 거 아니었어~?”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정규파티원은 세 명뿐이었어요. 그 말은 모험의 끝까지 함께 한 다른 파티원은 없다는 뜻이에요. 도중에 합류하더라도 중간에 이탈했거나, 후방으로 이송되었거나, 아니면…”

    “죽었거나.”

     

    로지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디스트로이어 교수님이 실시간으로 다루고 있는 엄청난 양의 암흑마나.

    저것은 사실상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체내에 누적된 <방사능 피폭>이나 다름없는 결과물이다.

    심지어 마인보다 더 많은 암흑마나를 다룬다.

    매스각키 황녀가 망연히 중얼거렸다.

     

    “그게 마인이랑 다른 게 머야…?”

    “정신력이죠!”

     

    그것만큼은 암흑마나 빌드를 사용하고 있는 입장에서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암흑마나가 골수에 치밀어서 마인화가 일어나면 머리에 뿔이 자라거나 신체에 변이가 일어나기도 하고, 심성이 뒤틀려 사악한 존재가 되거든요! 디스트로이어 교수님은 신체도 정신도 뒤틀리지 않은 멀쩡한 분인걸요?”

    “그거 확실해~?”

     

    매스각키 황녀가 반문했다.

     

    “너만 해도 재단의 수석장학생이잖아?”

    “근데요?”

    “…당사자는 모를 수도 있지♡ 그래서 더 우려스러운걸. 저 교수님, 하비라 불리던 그림자를 자신의 손으로 해치웠잖아~?”

     

    그런 정신상태를 정말로 뒤틀리지 않은 멀쩡한 상태라고 부를 수 있는 걸까.

    그렇게 묻는 매스각키 황녀의 물음을 듣고 나니 나도 덜컥 겁이 들었다.

    교수님이 암흑마나에 헤까닥 해버려서 미치광이가 되고 하비노디를 죽인 김에 하비를 연기한 오크노디도 혼쭐을 내준다고 달려오면 어떡하지?

     

    “안돼요!”

     

    억까다.

    엄청나게 위험한 억까의 냄새가 느껴졌다.

    이건 막아야해.

    무슨 일이 있어도.

    디스트로이어 교수님의 타락도가 이 이상 올라가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교수님, 그 힘은 더 이상 사용하지 말아요!”

     

    그래서 철조망을 뛰어넘어 난입했다.

    디스트로이어 교수님과 마인 오르데 타코의 영역이 충돌하는 격전지에.

     

    “이 바보가…!”

    “기회로군.”

     

    교수님과 마인이 동시에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