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90

    “아, 루크! 잠깐만!”

    “뭐야 이렇게 갑자기?”

    “다들 잘 들어가고, 다음에 또 놀러 오려무나.”

    무어라 말을 할 틈도 없이, 루크의 손길에 이끌려 속절없이 저택에서 내쫓기고 만 시루드와 헬레나.

    그 후, 곧바로 문이 닫히며 잠금이 걸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쿵! 찰칵.

    그렇게 굳게 닫힌 현관문은 오늘 안에는 다시 열리지 않을 듯 보였으므로, 결국 시루드와 헬레나는 하는 수 없이 돌아간다는 선택지를 고를 수밖에 없었다.

    헬레나는 갑작스런 루크의 반응에 의아함과 당혹스러움으로 혼란스러워하기 시작했다.

    “시루드, 대체 화장실에서 루크하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루크한테 무슨 잘못이라도 했어?”

    갑작스러운 방문에도 불구하고 ‘추우니까 밖에 있지 말고 들어와서 얘기하자’라고 했던 게 방금까지의 루크가 아닌가?

    여전히 추위가 가시지 않은 지금, 이렇게 억지로 집에서 내보낼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시루드’ 밖에 없었다.

    화장실에서 돌아오지 않는 시루드를 데리러 가기 전까지만 해도 루크는 평소랑 다를 바 없었으니까.

    “설마, 우리가 안 볼 때 루크의 세탁물을 가지고 변태처럼 냄새를 맡거나 한 것도 아니고.”

    “…….”

    공연히 헬레나의 시선을 피하고 딴청을 피우는 시루드의 반응에 헬레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가, 이내 싸늘한 표정을 지은 채로 그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잠깐. 너, 설마 진짜로?”

    그러자 시루드는 크게 당황한 듯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 아냐! 그런 건 아니었어!”

    하지만 그 말은 전혀 어떠한 해명이 될 수 없었다.

    “잠깐, 그런 건 아니었다고? 그러면, 하기는 했다는 소리야?”

    “그, 그건…!”

    시루드는 헬레나의 의혹을 명확하게 부정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실제로 그런 행동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니까.

    물론, 헬레나가 생각하는 것 처럼 그런 변태같은 것은 아니었지만.

    하지만 시루드가 당황하여 단호히 부정하지 못한 채 이어진 그 짧은 공백은, 헬레나에게 극심한 실망감을 안겨주기엔 지나치게 충분했다.

    “실망이야, 설마 네가 그런 취향을 지닌 애 인줄은….”

    “아냐, 아냐! 그게, 실은 이게 조금 복잡한 얘기거든…! 믿어줘!”

    헬레나가 굉장히 질색했다는 표정으로 되묻자, 시루드는 그제서야 절대로 그런게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하지만, 헬레나의 의심의 눈초리는 그렇게 간단히 거둬지지 않았다.

    “복잡해? 네가 화장실에서 루크의 옷 냄새를 맡은 데에서 대체 어떤 복잡한 사정이 있는 건데?”

    “그게, 그러니까 말이지…!”

    시루드는 재촉하는 듯한 헬레나의 눈빛에 하는 수 없이 자신의 행동의 동기를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

    그렇게 시루드는 헬레나에게 자신이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처음부터 찬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당시 루크에게 넘겨받은 ‘테러범의 후드 케이프’의 존재와, 그것에서 맡은 향.

    그리고 이번에 루크의 옷에서 맡은 향이 완전히 동일한 것이었다는 것을.

    또, 어쩐 일인지 몰라도 그 참사에서 아무도 죽지 않았다는 이상한 결과와, 테러범과 루크가 함께 있는 장면을 자신을 보지 못했다는 정황.

    그리고, 왠지 그걸 눈치채서 루크가 자신들을 이렇게 급히 내보낸 것 같다는 이야기까지 말이다.

    그렇게 시루드로부터 추측을 전해들은 헬레나는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으음, 그렇네. 확실히, 네가 말하는 정황을 보면 루크가 테러범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수도 있겠어.”

    “역시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확실히, 시루드의 말을 들어보면 그런 의심이 들 수도 있다.

    왜냐하면, 루크라면 충분히 그런 일을 벌일 수 있을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루크가 갑자기 전시장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자신도 어느정도는 이상하다고 느끼고 있던 참이기도 했고.

    그러니, 헬레나의 입장에서도 시루드의 의심은 충분히 타당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루크가 테러를 일으켰다는 보장은 없잖아.”

    할 수 있다고 해서, 반드시 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었다.

    정황상 의심은 들지만, 그동안 자신들이 봐 온 루크는 그런 짓을 아무런 이유도 없이 벌일 만한 애가 아니었으니까.

    “만약 실제로 그 범인이 루크가 맞다고 해도, 뭔가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겠지.”

    “응. 그건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헬레나의 말에 시루드 역시 맞장구쳤다.

    루크가 아무런 이유 없이 건물을 무너트릴 인물은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아니었으니까.

    아마 지금은 말해주고 싶지 않거나, 뭔가 사정이 있는 게 아닐까?

    그렇게 시루드의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되새기던 헬레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냄새는 좀 심했잖아. 여자애한테 냄새가 뭐니? 냄새가.”

    아무리 의심이 되었다지만, 하필이면 냄새가 난다니.

    여자애와 대화중에 하필이면 더러운 느낌을 들게 만드는 단어인 ‘냄새’라는 단어를 꺼낸 것은 정말이지, 이건 시루드가 배려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그러자 시루드는 도무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치만 냄새를 냄새라고 부르지, 그럼 뭐라고 불러?”

    그 물음에 헬레나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이마를 짚으며 대답했다.

    “하아. 그럴 땐, 냄새가 아니라 ‘향기’라고 하면 되는 거야.”

    “아, 그렇구나. 생각해보니까, 향기라는 표현이 있었어. 깜빡 잊어버렸다.”

    “…….”

    깜빡 잊어버렸다니, 이건 상식 아닌가?

    ‘하아, 나는 어쩌다 이런 바보를 좋아하게 되어버린 걸까.’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마법 좀 잘 쓰고, 집안 좀 살고, 성격 좀 괜찮고, 얼굴 좀 귀여우면 다인가?

    참 나.

    “…….”

    …뭐, 사실 그게 다긴 하지.

    —–

    루크는 욕조에 들어가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후우, 어떻게든 넘기긴 했나.”

    솔직히 조금 억지를 부린 것 같은 감이 있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적어도 지금은 그것을 자신의 입으로 인정할 수 없었으니까.

    ‘아이들이 알게되면 일이 꼬일 수도 있으니 말이지….’

    자신이 벌인 짓은 그만큼 큰 영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섣불리 인정했다간 아이들이 잘못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물론, 아이들의 가벼운 입 때문에 자신의 계획이 잘못 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고.

    언젠가는 이야기를 해 줄수도 있겠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었다.

    “…목욕 준비나 할까.”

    목욕을 할 거라는 핑계로 아이들을 내보냈으니, 일단은 어쨌든 목욕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또, 할 때가 되기도 했고 말이다.

    그렇게 루크는 욕조에 물을 받고, 입욕제를 풀었다.

    이제 그에 적당히 꽃잎과 풀을 채워넣자, 평소와는 다르지만 훌륭한 탕이 만들어졌다.

    그렇게 목욕물이 어느정도 준비가 되자, 루크는 옷을 벗고 머리를 틀어올린 후, 알맞게 데워진 욕조에 몸을 담구었다.

    따듯한 목욕물이 기분좋은 향과 함께 몸 전체를 감싸는 감각에 루크는 그간의 피로가 금세 풀어지는 듯 했다.

    루크는 천장에 맺히기 시작한 작은 이슬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하아, 이왕이면 아무도 모른 채로 그냥 넘어갔으면 최상이었을 것을.”

    그래도 시루드가 어쩌다 자신을 의심하게 된 것인지는 알겠다.

    자신이 생각해도 솔직히, 그 아이를 만나게 된 정황은 헛점 투성이였으니까.

    그러나 굳이 차분히 완벽한 해명을 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은, 당시에는 마땅히 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인 점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시루드의 추리력을 얕보고 있었던 것도 있었다.

    설마하니 그 정도 단서로 자신을 테러범과 연관지을 정도로 대범한 논리적 비약이 가능했을 줄이야.

    가면 너머의 얼굴을 본 거라면 모를까, 현재 자신의 키와 몸에 익숙한 이들이라면 그 누구도 그 테러범이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할 수 없었을 텐데 말이다.

    루크는 욕조에 담긴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역시, 내 몸이 너무 자라서 그런건가.”

    만약 처음 이 시대에 눈을 떴을 당시의 몸 그대로였다면, 아무리 정황이 그렇다고 해도 시루드는 절대로 자신이 테러범과 같은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조차 없었을 텐데.

    다이튼의 체형에 맞춰져 처음에는 자신이 어떻게 누워도 도무지 발 끝이 닿지 않을 것처럼 넓직하던 욕조도, 이제는 발을 쭉 뻗으면 가볍게 발바닥을 가져다 댈 수 있었다.

    별다른 굴곡도 없어 마땅한 속옷도 필요 없던 가슴도, 이제는 어느정도 존재를 주장하며 귀찮게 굴고 있었으며, 마치 단풍잎처럼 오동통하던 손가락도, 이제는 나름 길게 뻗어나오고 있다.

    이 모든 변화가 고작 1년만에 일어난 거라고 생각하면, 확실히 이상하기는 하다.

    아무리 수인의 성장력은 빠른 편이라고는 해도, 이 몸으로 10살이라는 건 너무 이질적인 느낌이 드니까.

    사실 서클의 성장에 비례해 육체 또한 성장하는 특성을 따지자면 현재 자신의 육체는 17세 정도.

    그렇게 보면 딱히 이상할 것은 없지만, 문제는 행정적으로는 아직 10살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서클의 성장을 늦출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니었던가.

    물론, 폴리모프를 이용해 성장하지 않은 척 연기를 할 수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건 너무나도 피곤하고 비효율적인 일이다.

    단순히 그것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것 외에도, 폴리모프로 마나를 묶어두면 혹시나 있을 상황에 대응하는 것도 늦어질 뿐더러 너무 과도한 폴리모프는 마력흔이 남아서 곤란을 겪을 가능성도 있으니까.

    언제 시가르마타를 비롯한 외부의 위협이 이빨을 드러낼 지 모르는 현 상황에, 루크는 그런 태평한 짓을 하고 있을 수 없었다.

    차라리 조금 눈초리를 받더라도, 지금으로서는 이게 최선이다.

    뭐, 어차피 그런 걸 신경 쓸 필요조차 없을 지 모르니.

    루크는 어느새 손에 담고 있던 꽃잎을 놓으며 중얼거렸다.

    “모든 것이 끝나면, 무로 돌아가게 될 테니까….”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최후의 마법.

    그것을 사용하면 루크라고 불리는 ‘자신’은 아마 죽을 수밖에 없으니까.

    그 존재적인 소멸은 ‘불사’조차 큰 의미를 갖지 못하겠지.

    ‘불사’는 어디까지나 육신에 국한된 개념이니 말이다.

    되도록이면 그런 일이 없었으면 한다만, ‘그’에 대해 알아보면 알아볼 수록 그건 단순한 희망사항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몇번이고 되살아나는 고위 네크로맨서를 수족으로 부리고, 시가르마타의 파편, 또는 그녀 본인과 얽혀있으며, 나아가 멸종한 용조차 살려내 운용할 수 있는 흑마법사를, 기존의 어중간한 방식으로 상대할 수 있을 리 없으니.

    그는 아무리 못해도 자신보다 상위의 존재다.

    지식과 사회적인 위치조차 자신과 비교하기 어려운.

    루크는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중얼거렸다.

    “…죽음인가.”

    사실, 이미 한번 겪은 것에 대한 두려움은 별로 없다.

    미지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법사이기에 죽음은 더욱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래도, 조금 미련은 생기나.

    지금도 눈을 감으면 즐거운 일상의 장면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으니까.

    그러다 루크는 문득 손등을 들어 자신의 몸에서 나는 향을 맡으며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내게서 정말 냄새가 나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시루드가 그것을 굳이 ‘향’이라는 말을 놔두고, ‘냄새’라고 표현한 것은 여전히 루크의 신경을 쓰이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설마하니 정말로 그럴 거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말이라는 게 원래 ‘아’ 다르고 ‘어’가 다른 법이다 보니, 아무래도 걱정이 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복귀가 늦어 죄송합니다.
    다음화 보기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