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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90

       성력.

         

       본디 신성력이라 부르는 이 기운은 보호와 치유에 특화된 기운이다.

         

       공격적인 면에서는 마력 즉, 내공에 비해 한참 모자랄지 몰라도 내공은 불가능한 치유가 가능하다는 것만으로도 존재 의의가 명확하다.

         

       그렇기에 이세계에서는 강인한 기사보다도 신성력을 사용하는 사제들의 명성이 드높았다.

         

       그야 당연했다.

         

       그들의 힘은 아프고 병든 자신들의 몸에 평온을 되찾아 주니까.

         

       하여 신을 모시는 사제들은 때때로 그렇게 불린다.

         

       ‘신의 대리인.’

         

       아프고 병든 사람들을 치유하기 위해 신이 직접 내려보낸 대리자들.

         

       영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신이 직접 내려보낸 건 아니지만, 그들은 신의 눈이 미처 닿지 않는 곳까지 구석구석 살피기 위해 스스로 고행을 자처하기도 했으니.

         

       그런데.

         

       “서, 성력으로 치유가 되지 않아요.”

         

       그 성력으로 치유되지 않는 상처가 나타났다.

         

       아예 없는 일은 아니었다.

         

       사제가 보유한 성력의 양보다 상처가 더 깊으면 치유할 수 없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까.

         

       다만, 그 성력을 보유한 사제가 설수연이라는 게 문제였다.

         

       ‘성녀.’

         

       신의 은총을 품에 안고 태어난 축복받은 여인.

         

       그녀가 지니고 태어난 성력의 양은 수십 년을 신께 귀의한 사제보다 높았고, 정순했다.

         

       거기에 후천적으로 신을 모시며 쌓아 올린 성력이 더해진 성녀의 힘은 가히 용사급.

         

       치유에 있어서 만큼은 용사 버금가는 힘을 지닌 존재가 바로 성녀다.

         

       ‘물론 지금의 그녀는 성녀가 아니지.’

         

       새로운 세계에서 환생한 그녀는 성녀의 직위를 잃었다.

         

       애초에 여러 신이 공존하는 이세계와 달리 이곳은 신의 존재가 희미한 곳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겠지.

         

       허나 그렇다고 해서 전생을 떠올린 그녀의 경험이나 지식이 어디로 가는 건 아니다.

         

       그런 그녀의 성력을 무력화할 수 있는 것은 딱 하나뿐.

         

       ‘마력…, 내공을 이용해 상처를 더럽히는 것밖에 없어.’

         

       고수들의 몸에 상흔을 새기는 건 대부분이 내공이다.

         

       그리고 이러한 내공은 상처가 생겨난 직후 자연스럽게 사라지기 마련.

         

       그러나 조금 특수한 방법을 사용하면 오랫동안 환부에 내공이 머물게 할 수 있다.

         

       백우진은 곧장 내공을 머금은 손으로 주운의 환부를 더듬어 보았다.

         

       말끔하게 잘린 상처의 단면을 따라 느껴지는 악의 가득한 내공.

         

       ‘확실해.’

         

       단순히 가슴을 벤 게 아니다.

         

       흉수는 검으로 주운의 가슴을 벨 때 제 내공을 미세한 조각들로 부수어 흩뿌렸다.

         

       설수연의 성력이 그를 쉬이 치유할 수 없게끔.

         

       ‘일석이조를 노리시겠다, 이거지.’

         

       잠시 숨을 붙여놓아 자신을 호명하게 하여 누명을 씌운 뒤, 한 번 칼을 맞댄 주운조차도 결국 죽게 할 심산이었던 거다.

         

       그렇다면 어째서 주운을 죽이려 했을까.

         

       ‘단순히 화산파 장문인이라서?’

         

       구파일방 중 하나인 화산파의 장문인을 제거한다면 분명 그들의 계획에 큰 도움이 될 터.

         

       하지만 그것만이 이유의 전부는 아닌 듯했다.

         

       그가 끝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죽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면.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그가 맨정신으로 자신과 마주하지 않기를 바라서가 아닐까.

         

       ‘마주하면 안 될 이유가 있는 거겠지.’

         

       가령 그가 꾸민 자신의 모습이 일견 훌륭하나, 맹점이 존재했다면.

         

       자신을 오롯이 마주하는 순간 주운이 이를 알아차리고 발언을 철회한다면.

         

       한층 더 들끓게 된 분노가 모두 진짜 흉수와 그의 배경을 향해 쏟아지게 될 터.

         

       ‘옳거니.’

         

       그렇게 생각하면 그들로서는 주운이 반드시 죽어야만 했다.

         

       그리고 자신은 주운을 반드시 살려야만 하고.

         

       ‘문제는 이대로는 살리기가 어렵다는 건데….’

         

       좋은 약재를 아낌없이 사용한 고약 덕분에 상처의 악화를 가까스로 막고 있기는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이틀에서 사흘만 지나도 아물지 않은 환부는 그대로 곪기 시작하여 빠르게 악화될 터.

         

       그렇게 되면 제아무리 설수연이라도 무리다.

         

       다친 사람을 살릴 순 있어도 죽음에 가까이 다가간 이를 살리기엔 그녀의 성력이 부족하다.

         

       ‘이를 어쩐다.’

         

       문제는 환부에 흩뿌려진 내공의 파편이다.

         

       이를 제거할 방법은 아주 단순하다.

         

       환부에 흩뿌려진 내공의 파편들을 하나둘씩 일일이 뽑아 제거하면 된다.

         

       문제가 있다면 거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하루, 이틀로는 불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이 상태로는 나흘을 넘기기 힘들어.’

         

       그의 숨을 붙잡아 두려 노력해도 사흘에서 나흘이 한계.

         

       그 사이에 마력의 파편을 전부 뽑아내는 것도 쉽지 않거니와, 뽑는 과정도 문제였다.

         

       세심하게 내공을 운용해야 하는 탓에 사흘 밤낮을 오직 환부에 집중하고 있어야만 한다.

         

       그런데 만약 그것이 상대가 노리는 거라면?

         

       ‘무방비한 틈을 찔리면 아무리 나라도 죽어.’

         

       물론 혈수마녀나 다른 조원들을 호위로 두면 그럴 가능성은 한없이 낮아지겠만.

         

       ‘완벽한 건 아니니까.’

         

       그녀들의 능력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상대의 경지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는 게 문제였다.

         

       만약 흉수가 현경에 다다른 고수라면 제아무리 혈수마녀라고 해도 완벽한 방어는 불가하다.

         

       오로지 죽이려는 쪽과 지키는 쪽은 아무래도 후자가 더 불리할 수밖에 없기에.

         

       ‘어쩐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상황.

         

       그러나 무언가 하나를 반드시 선택해야만 했다.

         

       이대로 있다간 제 혐의점을 벗을 길은 요원해질 테니.

         

       고심하던 백우진은 이내 제법 괜찮은 한 수를 떠올렸다.

         

       잠시 침소 밖으로 나온 그가 짙게 내려앉은 그늘 밑에서 나지막이 읊조렸다.

         

       “송 소저.”

         

       그러자 백우진의 발밑으로 드리운 그림자 속에서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예, 주…, 아니, 도련님.”

       “…….”

         

       평소에도 계속 주인님이라고 생각하는 게 분명하다.

         

       시간이 이토록 흘렀음에도 도련님이라는 단어를 읊는 게 저토록 어려운 걸 보면 확실하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상황에서 아주 좋은 당근이 될 수도 있을 터다.

         

       “송 소저가 도와줘야 할 일이 있어.”

       “하명하십시오.”

       “음…, 이번 일을 잘 해내면 도련님이 아니라 주인님이라고 불러도 좋아.”

         

       무뚝뚝한 그녀의 표정에 반색 어린 기운이 서린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그래.”

         

       말하고도 우스웠다.

         

       고작 보상으로 내준다는 게 주인님이라는 파렴치한 단어를 허락하는 거라니.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반드시.”

         

       어마어마한 의지를 드러내는 그녀를 보며 백우진은 생각했다.

         

       저것 외에 따로 그녀가 기뻐할 만한 보상을 준비해 두어야겠다고.

         

       쓰게 웃으며 그녀의 귀에 입을 가져간 그가 속삭였다.

         

       “어떻게 하냐면 말이야….”

         

       소곤소곤.

         

       백우진의 말이 이어질 때마다 그녀의 눈동자가 커졌다, 작아지기를 반복했다.

         

         

       * * *

         

         

       불안.

         

       이 조마조마한 감정은 인간이 정복하기 참으로 쉽지 않은 감정 중 하나다.

         

       그것은 뇌옥에 홀로 잡혀 있는 그녀, 금여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백우진이라면 해낼 거야.’

         

       그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라면 분명히 진짜 흉수를 붙잡고, 누명을 벗어 자신을 이곳에서 꺼내줄 것이다.

         

       그러한 굳은 믿음과 달리 그녀를 둘러싼 환경이 문제였다.

         

       가장 먼저 어둡고 캄캄하고, 습하기까지 한 지하 뇌옥.

         

       ‘불편해….’

         

       최근 상단을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험지에서 잠드는 게 제법 익숙해진 그녀였지만, 그래도 지하 뇌옥에서 잠드는 건 쉽지 않았다.

         

       지붕이라도 있으니 다른 곳보다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이곳에 짙게 깔린 좋지 않은 기운이 시시각각 그녀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좋은 아침일세.”

         

       끼니마다 제 식사를 들고 찾아오는 존재 또한 부담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녀는 속내를 숨기기 위해 더없이 환한 미소를 그리며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장로님.”

         

       그렇다.

         

       금여울이 끼니로 때울 식사를 가지고 찾아오는 이는 다름 아닌 탁일우였다.

         

       장문인의 뒤를 잇는 화산파의 이 인자가 고작 끼니를 가지고 나르다니.

         

       부담도 부담이지만, 무언가 노리는 게 있다는 생각이 팍팍 들지 않나.

         

       “이런 곳에 가둬두어 미안하네.”

       “아니에요. 제가 선택한 일인데요.”

       “허허…, 여장부로구먼.”

         

       너털웃음을 흘리며 끼니를 내어준 탁일우가 물었다.

         

       “어디 불편한 건 없나?”

       “네, 괜찮아요.”

         

       불편한 거야 많다.

         

       그러나 거처를 옮기지 못하는 이상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라 문제일 뿐.

         

       제 할 일이 끝났음에도 그는 떠나지 않고 이런저런 말들을 쏟아냈다.

         

       “백 공자는 여전히 장문인의 처소에만 머물러 있다더군. 장문인을 치료하여 흉수가 자기가 맞는지 확인할 거라고 하던데…, 이틀이나 지났음에도 차도를 보이지 않는다는데, 혹여 시간을 끌기 위해 그러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 지경일세.”

         

       백우진을 의심하는 듯한 발언에 그녀가 날 선 어조로 쏘아붙였다.

         

       “제 가가께서는 그럴 분이 아니세요.”

       “흐음…, 나도 그랬으면 좋겠네. 허나, 최악의 경우 또한 상정해야지 않겠나?”

       “…최악의 경우라니요?”

         

       은근슬쩍 되묻는 그녀의 모습에 탁일우가 사람 좋은 미소를 내비치며 말을 이었다.

         

       “백 공자는 분명 현 무림의 기둥 중 한 사람일세. 이를 부정할 수는 없음이야.”

       “그렇죠.”

       “한데, 그런 이와 정파 무림을 지탱하는 본파의 사이가 나빠져서야 되겠냔 말일세.”

       “그건….”

         

       분명 좋지 않은 일이었다.

         

       마교라는 적과의 싸움이 점점 더 다가오고 있는 지금이라면 더더욱.

         

       “하루하루가 지나갈 때마다 본파의 제자들은 백 공자를 향한 적의를 높이고 있네. 이대로 며칠만 더 있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노부조차도 짐작하기 어려운 상황이야.”

       “…….”

         

       그녀도 안다.

         

       화산파 제자들 사이에서 백우진의 인식이 점점 더 나빠지고 있음을.

         

       이따금 지나가는 제자들이 하나 같이 그를 욕하고 있다.

         

       그러한 욕의 수위는 하루가 멀다고 거세지고 있는 상황.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기 전에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해야 하네. 백 공자가 진짜 흉수를 잡든…, 아니면 자신의 범행을 스스로 인정하고 죄를 뉘우치든 말일세.”

         

       탁일우의 눈이 번뜩인다.

         

       금여울의 눈동자에 약간의 혼란이 깃든 것을 확인한 그가 이때를 놓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네. 백 공자가 범행을 인정하고 죄를 뉘우치는 자세만 보인다면…, 그 뒤는 노부가 전부 알아서 하겠네.”

       “알아서 하신다는 말씀은…?”

         

       그녀의 물음에 탁일우가 사람 좋은 미소로 제 얼굴을 가리며 대답했다.

         

       “그의 명성이 떨어지지 않게끔 본파 내에서 일을 마무리할 수 있게 힘 써보겠단 얘길세.”

         

       어떤가?

         

       그의 제안에 금여울의 눈동자가 거세게 떨리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럼 저는 다음 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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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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