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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91

        

       “그대가 야수왕인가?”

         

       “야수왕이라. 우스꽝스러운 칭호인지라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구려.”

         

       구모설은 호천안을 살피며 속으로 신음성을 흘렸다.

         

       호천안의 경지가 도무지 가늠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자신과 동격의 고수라는 사실에 구모설은 살짝 긴장했지만 이내 마음을 다스렸다. 멀리에서 보이는 영물들의 숫자 때문이었다.

         

       일곱을 예상했던 영물의 숫자가 다섯에 불과했다.

         

       ‘실질적으로는 다섯이라기보다는 넷이겠지.’

         

       구모설은 서이령의 손을 잡고 있는 서공을 전력에서 제했다. 혈교의 사정에 정통한 구모설은 적혈서가 오랜 기간 피를 흘리며 쇠약해져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딘가에서 영약을 밥 먹듯이 주워먹지 않는 이상 소실된 힘을 회복할 수는 없었을 터.

         

       상대해야 할 영물은 고작해야 넷. 흑림군도에서 육성한 진법대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뿐일까.

         

       스무 마리의 혈괴 역시 보유하고 있었으니 조금도 겁먹을 이유가 없었다.

         

       “그대가 훔쳐간 영물들을 본디 혈교의 자산. 혈교의 우방이자 후예들의 집합인 혈림군맹이 거두는 것이 마땅하다. 영물들을 어찌 홀렸는지 토설하고 반납한다면 적어도 편한 죽음만큼은 약속하지.”

         

       “허허허.”

         

       호천안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애초부터 혈교는 영물의 주인이 아니었소. 혈교는 그저 영물들을 잠시 속여 옥에 가두었을 뿐이오. 이제 영물들은 혈교가 감옥이고 자신들이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 백날 조잡한 혈술을 부려 봐야 소용없을 것이오.”

         

       “영물을 이곳까지 이끌고 왔으면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는구나.”

         

       구모설이 손을 들어올렸다.

         

       엄포를 놓기는 했지만 구모설 역시 호천안이 제 비법을 털어놓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구모설의 손짓에 혈괴를 다루는 혈인들이 혈어를 속삭이자 혈괴들이 위협적인 울음소리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혈괴의 힘을 한번이라도 목도한 이라면 모골이 송연해질 수밖에 없는 광경. 그 거대한 힘을 손짓 한번으로 다루었다는 사실에 구모설은 흡족한 미소를 흘리며 호천안을 바라보으나 이내 표정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이십여 마리에 달하는 혈괴의 으르렁거림에도 호천안은 단 한줌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호천안의 입이 열렸다.

         

       “내가 왜 흑림군도까지 찾아왔는지 아시오?”

         

       “뭐라?”

         

       “그건 혈괴가 이곳으로 모여들고 있다 들었기 때문이었소. 정확히는 영물의 피와 인간의 탐욕을 뒤집어 쓴 채 인간의 존엄을 잃어버린 자들에게 영면을 주기 위해서 말이오.”

         

       “하, 혈괴를…없애기 위해 이곳까지 찾아왔다고? 그것이 인간의 도리이기 때문에?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말이로군.”

         

       구모설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혈괴가 어떻게 만들어졌다는 것이 무엇이 중요하단 말이냐? 천하는 강자의 것이고 혈괴는 힘 그 자체이거늘! 이미 하늘의 법도가 바닥에 떨어진 난세에서 고작해야 인간의 존엄을 운운하며 이 몸을 설득하려 들었는가?”

         

       “무언가 착각을 한 모양이구려. 나는 그대들을 설득하려는 의도는 조금도 없었소.”

         

       혈림군맹의 무인들과 혈인들이 낮게 웃음을 터트리며 호천안을 비웃었다. 영물도 물린 채 홀로 혈림군도의 앞에 서 혈괴에게 영면을 주어야 한다고 말한 자가 설득할 의도가 없었다니?

         

       그들의 입장에서는 호천안이 제 예상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자 아무 말이나 주워 섬기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대들이 무슨 생각 품고 있던 나는 혈괴들을 모두 영면에 들게 만들 것이니 말이오.”

         

       이어지는 호천안의 말에 웃음소리가 뚝 그쳤다.

         

       “허나 이 대화로 그대들의 생각도 잘 알았소. 협도 인의도 법도 따르지 않고 오로지 힘만 쫓겠다라.”

         

       혈림군맹의 무인들도 혈인들도 모두 제 귀를 의심하며 주변을 바라보았다. 모두가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보아하니 잘못 들은 것은 아닌 모양.

         

       구모설이 기가 막혀 입을 열려 할 때였다.

         

       쿠르르릉!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몇몇 무인과 혈인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날이거늘 어디서 뇌성이 들려온단 말인가.

         

       우르르르릉!

         

       다시 한 번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그들은 소리의 진원지가 호천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깨닫게 되었다.

         

       호천안의 몸으로부터 발산된 거대한 기파가 그들의 몸을 묵직하게 때렸기 때문이었다.

         

       구모설의 몸이 떨려왔다.

         

       현경의 고수인 구모설에게는 호천안에게서 발산되는 힘이 얼마나 거대한 것인지 똑똑히 느껴졌다. 이것이 어찌 한 사람의 몸에 깃들어 있는 힘이란 말인가? 어찌 한 사람이 수십 명이 모여 만들어내는 흐름보다도 더 큰 힘을 홀로 다룰 수 있단 말인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의 존재해 경악한 구모설이었지만 아직 놀라기에는 일렀다.

         

       구모설이 경악했던 그 힘조차 호천안의 전력이 아니었으니까.

         

       꽈르르르릉!!!

         

       하늘이 찢어지는 듯한 뇌명과 함께 본격적으로 호천안의 힘이 폭발했고.

         

       그 여파로 세상의 이치가 흔들린다.

         

       모래사장의 모래알갱이들이 허공으로 떠오르고 잔잔하게 해안선으로 몰려들던 파도의 방향이 바뀌었다.

         

       물체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떨어지고 바닷물이 바다에서 해안으로 들이치는 자연의 이치조차도 비틀어버린 거대한 힘!

         

       “그대들이 힘을 추구하겠다면 그대들은 이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오.”

         

       호천안의 머리에 씌워져 있던 흑립이 그 거대한 힘을 버티지 못하고 둥실 하늘로 떠오르며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순수한 뇌기가 가득한 금안이 세상에 드러났다.

         

       “이 천하에 내가 존재하고 있음을.”

         

       “쳐! 처라!”

         

       공포에 질린 구모설의 발악과 같은 외침에 혈괴들이 일제히 호천안을 향해 달려들었다.

         

       호천안은 달려드는 혈괴들을 바라보며 분노나 살의보다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혈괴들이 생명체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본능적인 두려움조차 거세당한 채 명령에만 따르는 살인병기라는 사실이 새삼스렇게 와 닿았기 때문이었다.

         

       자신감 가득한 혈림군맹의 고수들은 물론이고 현경의 구모설조차 겁을 집어먹고 발을 떼지 못하고 있음에도 오직 혈괴만이 망설임없이 달려들고 있었으니까.

         

       “편히 쉬시게.”

         

       그리 중얼거린 호천안의 쌍장에 뇌광이 몰려들었다. 범인은 물론이고 안법을 수련한 무인들조차도 그 눈부심을 견딜 수 없어 고개를 돌릴 정도로 엄청난 빛이었다.

         

       “아….”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서이령은 멍하니 입을 벌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흔히들 강기를 별무리에 비유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실제로 강기가 빛을 발하기 때문이었다.

         

       기의 종류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대저 강기라는 것은 더욱더 순수하고, 더욱더 밀도 있게 압축되었을 때 더 찬란하게 빛난다.

         

       그러나 기가 뭉쳐 만들어지는 그 반짝임은 파괴의 총아이자 무학의 이치의 정수인 강기 속에서조차 극히 작은 알갱이로밖에 발견되지 않으니 무인의 강기는 별무리에 비유되는 것이다.

         

       고작해야 빛의 편린에 불과한 반짝임을 품은 검강조차 바위를 자르고 쇠를 끊어낸다.

         

       그렇다면.

         

       천 리 바깥에서도 목도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찬란한 빛을 품은 강기는 과연 어떠한 위력을 품고 있을까.

         

       서이령은 이내 그 해답을 알 수 있었다.

         

       최선두의 혈괴를 향해 호천안의 쌍장이 앞으로 내밀어지고.

         

       번-쩍!

         

       광명과 함께 세상에서 소리가 사라졌다.

         

       본능적으로 눈을 가린 서이령의 전신으로 거센 후폭풍의 바람과 함께 모래들이 쏟아져 내렸다.

         

       그 뒤에 펼쳐진 광경에 서이령은 말을 잊었다.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졌다고 해도 믿을 거대한 구덩이가 모래사장에 생겨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충격에 휘말린 혈괴들은 대부분 모래사장에 널브러져 있었고 쓰러지지 않은 혈괴들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긴 마찬가지인지 제대로 몸을 겨누는 녀석이 없었다.

         

       그런 대파괴의 현장을 만들어 낸 호천안은 자신의 앞에 쓰러진 혈괴의 머리를 짚었다. 고통 속에서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던 혈괴의 움직임이 조용히 멎었다.

         

       그런 혈괴의 눈을 감겨준 호천안이 다음 혈괴를 향해 움직였다. 구모설은 그러한 호천안의 행동에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는 악을 썼다.

         

       “혈괴를 쓰러트리게 두어서는 안 된다! 전 군도의 인원들이 일제히 달려든다! 일곱 도주(島主)들은 협공을 준비해라!!”

         

       혈림군맹 소속 무인들과 혈인들은 대파괴를 일으킨 호천안과 맞서 싸우고 싶지 않았지만 이내 어쩔 수 없음을 깨달았다.

         

       뒤를 돌아보니 보이는 것은 군도와 바다뿐이었다. 혈괴를 버리고 바다를 건너 도망칠 곳 하나 없는 섬으로 돌아간들 대체 무엇이 달라진단 말인가? 보다 확실한 패배와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야수왕이 분명 대단한 신공의 보유자인 것은 사실이나 저만한 위력을 보였으니 남은 힘은 한 줌에 불과하다! 혈괴가 회복할 시간을 벌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

       

       혈림군맹 소속 무인들과 혈인들이 전의를 다잡았다. 산보하듯 느릿느릿 움직이며 하나하나 혈괴의 목숨을 끊는 호천안은 확실히 방금 전의 위용을 보여준 모습과는 달랐기 때문이었다.

         

       “쳐라!”

         

       와아아아아아!!!

         

       수많은 무인들과 혈인들이 호천안을 향해 달려들었다. 네 번째 혈괴의 눈을 감겨준 호천안은 달려드는 무인들을 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우선은 고통받는 혈괴를 우선하여 처리하려 했거늘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달려들다니.

         

       게다가 누가 지쳤다는 것인지.

         

       우르르릉!!

         

       다시 울리는 뇌명에 기세 좋게 달려오던 이들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떠오르는 모래알갱이와 하늘을 향해 펄럭이는 호천안의 옷깃 그리고 다시 한번 검은색에서 금빛으로 물드는 눈동자까지. 흑립이 날아간 것을 제하면 방금 전 쌍장을 쏘아내기 이전과 완전히 동일한 모습에 혈림군맹의 무인들은 자신들의 기대와는 달리 호천안이 조금도 지치지 않 았다는 것을 깨달았으나 뒤늦은 깨달음에 불과했다.

         

       이미 호천안의 발은 앞으로 뻗어진 뒤였으니까.

         

       그리고 그 다음 순간. 호천안은 군도 무인들의 중간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십여 장은 떨어져 있었던 호천안이 순식간에 자신의 뒤를 점한 모습을 확인한 무인이 경악하며 소리를 내뱉으려 했지만 그 무인에게는 그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음속을 돌파한 호천안의 움직임에 뒤늦게 충격파가 몰아쳤기 때문이었다.

         

       그 충격파에 군도 무인들의 일각이 휩쓸리는 순간 호천안의 신형이 순식간에 일곱 개로 갈라지고 일곱 개의 신형이 다시 한번 일곱 번의 움직임을 보인다.

         

       칠뢰방위보 최종오의.

         

       칠극칠뢰영변환휘.

         

       콰과과과과과광!!

         

       마흔아홉번의 움직임. 그리고 마흔아홉번의 충격파. 충격파의 힘에 암기처럼 사방으로 비산하는 모래알갱이들까지.

         

       “크아아악!”

         

       “아아악!!”

         

       구모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야말로. 그야말로 눈 깜빡할 사이였다. 방금전까지 의지를 다잡으며 함성을 내지르던 혈림군맹의 인원들이 고작해야 눈 깜빡할 시간만에 충격파에 휩쓸려 비산하고 암기처럼 쏘아진 모래가 전신에 박힌 채 쓰러지는 처지가 되었다.

         

       그들이 흘리는 피와 신음 그리고 공포에 질린 울음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지만 구모설에게는 어쩐지 그 생생한 광경과 소리가 그저 멀게만 느껴졌다.

         

       서 있는 자는 고작해야 수십.

         

       그리고 그 수십 명의 무인들 중에서 싸우고 싶은 의사가 남아있는 자는 하나도 없었다.

         

       “히이익! 살려! 살려줘!”

         

       공포에 질려 이성을 잃은 무인 한 사람이 무작정 도망쳤다. 호천안은 그런 무인을 보며 담담하게 손을 들어올렸다.

         

       발출된 뇌룡지가 아무렇지도 않게 무인의 몸을 꿰뚫었다.

         

       “아아아악! 안돼!!”

         

       이내 비통한 울음소리와 함께 고꾸라지는 무인의 전신에서 풀려나오는 기운. 그 모습을 보며 안 그래도 창백했던 무인들의 얼굴이 더욱더 희게 질렸다.

         

       방금 전 호천안이 무인의 단전을 정확히 노려 파괴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너, 너는…너는 도대체 뭐냐! 도대체 정체가 뭐냔 말이냐!”

         

       “나 말이오?”

       

       구모설의 악다구니에 호천안은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기로 몸을 보호했다고는 하나 맨몸으로 음속의 영역을 뚫어냈으니 어찌 그 여파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렇기에 호천안의 몸은 마찰로 인해 발생한 수백 도의 열로 달구어져 있었다. 다만 도검불침과 수화불침 금강불괴를 이룬 몸뚱아리가 그 온도를 거뜬히 버틸 뿐이었고 호천안의 걸친 의복은 하나같이 천잠사나 그에 비견될 만한 보물로 만들어진 것이었기에 타오르지 않을 뿐.

       

       호천안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기가 막힌 몸뚱아리었으니 그저 쓴웃음이 나왔다.

         

       “너, 너같은 괴물이 어디서 튀어나왔단 말이냐!”

         

       “…괴물이라.”

         

       호천안은 구모설의 말을 되뇌었다.

         

       후회와 미련 그리고 절망에 사로잡혀 발악하듯이 단련한 무공과 몸이었으니 괴물이라는 말이 틀리지는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호천안의 마음속에는 스스로를 칭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나는 그저….재기를 꿈꾸는 늙은이일 뿐이오.”

         

       구모설과 혈림군맹의 무인들은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지만 호천안은 스스로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른 세계의 자신이 건넨 재기라는 단어에 등을 떠밀려 천하로 나온 호천안의 머릿속에는 늘 한 가지 고민이 깃들어 있었다.

         

       다시 일어나 무엇을 해야 하는가.

         

       사천낭인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고 사천과 운남은 전쟁으로 엉망이 되어버렸고 소중한 동료들 역시 모두 눈을 감았으니 나는 무엇을 위해 움직여야 하는가.

         

       그저 재기라는 단어에 등을 떠밀려 천하로 나온 호천안은 천하를 누비며 어느 순간 재기의 답을 깨달았다.

         

       인연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등에 매달리고 품에 안기길 좋아하는 서공과 쓰다듬어 주길 조르는 영물들. 슬그머니 나타나 복스럽게 먹어대던 서이령. 능구렁이 같은 남궁빈과 암울한 무림의 현실에 팍삭 주저앉은 조용상.

         

       모두 새로이 생긴 인연이었고 그런 인연들은 재만 남아있었던 호천안의 마음에 새로운 싹을 티웠다.

         

       그 싹의 이름은 바람이었다.

         

       서공과 영물들이 안심하고 살아가길 바랐고, 서이령과 조용상 같은 협객들이 사람들을 도우며 기뻐하기를 바랐다.

         

       그저 막연하게 서공으로 이어진 영물들과의 인연과 혈괴에 대한 연민으로 천하를 누비며 혈교의 잔당을 쓰러트리고만 있었던 호천안에게 비로소 목표가 생겼다.

         

       이 혼란스러운 천하를 바로잡겠다는 명확한 목표가.

         

       “그러니 혈교의 잔재를 그러모아 다시 한번 천하를 어지럽히려는 혈림군맹은…퇴장해주어야겠소.”

         

       “으아아아악!!”

         

       구모설이 발작하듯이 달려들었고 본인들이 살 길이 오직 호천안을 쓰러트리는 길뿐임을 깨달은 수십이 무인들이 강기를 피워올리며 달려들었지만.

         

       호천안이 그들의 강기 어린 무기를 모두 부러뜨리고 그 단전을 취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직 구모설만이 그 경지를 증명하듯 최후까지 버티고 있을 뿐이었으나 수십의 고수들과 함께 호천안을 공격했을 때도 꺾지 못한 호천안을 혼자 꺾을 수는 없었으니 종국에는 각법을 뚫고 들어온 손에 단전을 내어 줄 수밖에 없었다.

         

       “흐흐.,! 참으로 악마같은 놈이로다. 단전을 깨트리는 치욕을 주느니 차라리 목숨을 거둘 것이지!”

         

       구모설의 울부짖음에 호천안은 그저 싸늘한 눈동자로 답했을 뿐이었다.

         

       “그대가 부렸던 혈괴들도 괴물이기보다는 한 사람의 무인으로서 그 삶이 끝을 고하길 바랬을 거요.”

         

       지긋한 노인이었던 구모설은 단전이 깨어지며 기운이 흩어진 충격을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기절했다.

         

       무림의 거성이라 할 수 있는 현경 무인의 끝이었으나 호천안은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다시 걸음을 옮겼다.

         

       여전히 숨이 붙어있는 혈괴들에게 영면을 선사해 주기 위해서였다.

         

       서이령은 비명과 신음 그리고 울음소리가 난무하는 전장을 돌아다니며 혈괴의 눈을 감겨주는 호천안을 향해 다가갔다.

         

       “어르신…”

         

       “허허. 잠시만 기다리게나.”

         

       이윽고 스무 마리의 혈괴들이 모두 영면에 들었다. 호천안은 이제야 모든 할 일이 끝났다는 양 개운하게 허리를 폈다.

         

       찍찍.

         

       서공이 모래사장 한구석에 처박혀 있던 흑립을 물어와 호천안에게 건냈다. 호천안은 흑립에 묻은 모래를 대충 털어내고는 흑립을 눌러썼다.

         

       서이령은 그런 호천안을 바라보기만 했다.

         

       대체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으니까.

         

       그 신위는 무엇인지. 어째서 무림맹 대신에 홀로 나섰는지. 어떻게 조용상에게 깨달음을 주었는지. 그 외에도 묻고 싶은 말은 한가득이었는데 어째서인지 아무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이제는 작별해야 할 시간이 온 것 같구려.”

         

       “…어르신.”

         

       서이령은 차마 부정하지 못했다. 혈림군맹의 핵심 세력이 완전히 박살났다고는 하나 누군가는 뒷수습을 해야 한다. 조용상을 대신하여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은 이곳에서 서이령뿐이었다.

         

       뿐일까.

         

       혈림군도라는 세력이 소멸했다는 사실이 천하에 가져올 변화를 생각하면 더이상 호천안과 함께 여행할 여유는 없었다.

         

       “잘 지내시게나.”

         

       여행 중 어느 때와 다름 없는 평안한 목소리에 서이령은 이미 호천안의 결심이 굳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전히 서이령의 머리는 혼란스러웠고 묻고 싶은 말 역시 하늘의 별처럼 많았지만 서이령은 그 모든 의문을 억누르고는 포권을 해 보였다.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 은혜는 물론이거니와 어르신과 함께 보낸 시간 역시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내가 할 말이오. 이령 소저. 영물들에게 사람을 믿어도 괜찮다는 사실을 알려 주어서 고마웠소.”

         

       작별을 직감한 것일까.

         

       서공이 꼬리로 이령의 손을 잡았고 미호 역시 낮게 울며 서이령에게 얼굴을 비볐다. 서이령은 서공의 꼬리를 쥐고 한 손으로는 미호를 안아 주며 눈으로는 묵금을 쫓았다.

         

       언제나와 같이 침묵으로 일관하는 묵금을 바라보며 서이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반응이 없는 것은 아쉬웠으나 묵금다운 작별이라면 작별이었으니 서이령은 섭섭하지는 않았다.

         

       꾸어엉.

         

       찌릭!

         

       석웅과 황단 역시 작별을 표했다. 모두가 작별 인사를 마친 것을 확인한 호천안이 등을 돌렸다. 영물들이 하나 둘 그 뒤를 따르고 마지막으로 서이령을 한번 핥아 준 미호가 마지막으로 그 뒤를 따랐다.

         

       서이령은 그 등을 향해 포권을 올렸다. 호천안은 물론이고 커다란 덩치를 자랑하는 석웅까지도 그 시선에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서이령은 계속해서 그 자세를 유지했다.

         

       뇌명존자(雷鳴存者).

         

       야수왕을 대체할 호천안의 새로운 별호가 탄생한 어느 날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슬슬 미래호천안의 이야기도 분기점을 넘겨가는군요.

    힘을 내서 쭉쭉 쓰고 현실호천안의 우당탕탕 모험기도 쓰고 싶지만…손이…너무…느려…!

    다음화 보기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무협게임 속 고수들이 집착하는 낭인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Ho Cheon-an, a second-rate warrior in the martial arts game [Murim Cheonha].

To survive, I had no choice but to give enlightenment.

Martial arts masters began to obsess over me.

In Murim Cheonha, where fame means difficulty, getting attention meant death.

Please, just go away.

Please, let me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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