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91

    그렇게 목욕을 마치고 뽀송뽀송해진 루크는, 곧바로 다락방으로 향했다.

    평소에는 창고처럼 사용하는 먼지 쌓인 다락방.

    여러모로 방금 목욕을 마친 사람이 갈 만한 곳이라고는 평범하게 생각하기 어려운 장소이지만 루크가 굳이 이 장소로 향한 이유는 바로, 자신의 손으로 끊어둔 텔레파시 네트워크 마력식이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아린세이아와 연결된 상태였다면 듣게 될 레니에의 잔소리가 신경쓰여 스스로 끊어둔 그 마력식을 말이다.

    루크는 수심이 깊은 표정으로 한 손으로는 마력식 수정용 깃털펜을, 다른 한 손으로는 이마를 문질거리고 있었다.

    “흐음……. 분명 이걸 하기는 해야 하는데.”

    루크는 마법진에 쉬이 손을 가져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 따지고보면 아이들이 지금처럼 갑작스럽게 집을 찾아오게 된 이유는 자신에게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레니에의 잔소리가 걱정된 자신이 저택 내의 모든 통신을 끊어둔 것이 아니었다면, 미리 아이들의 연락을 받을 수 있었을 테니까.

    전화로 먼저 연락을 했을 때에 적당히 거절을 해 두었다면, 애초에 그 아이들이 이렇게 집까지 자신을 찾아 올 이유 자체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럼에도 루크가 곧바로 그것을 연결하는 것이 꺼려지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그녀와의 마지막 기억…….

    아니, 자신의 마지막 기억 때문이었다.

    —–

    찢어진 하늘과 핏빛 대지, 끓어오르는 듯한 공기로 퍼져나가는 자욱한 혈향.

    종말이라도 도래한 것 같은 끔찍한 풍경 속, 단 한명의 인물만이 두 다리를 빌어 제 몸을 세워두고 있었다.

    바로, 이 모든 풍경을 그려낸 장본인이었다.

    허나, 그 역시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었다.

    평소 그의 모습을 아는 이들이라면, 그 누구도 그를 연상시킬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모습.

    본디 총명함이 깃들어 있었을 그의 눈동자는 진작에 초점을 잃고 있었으며,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훌륭히 단련되어있었을 근육들은 마치 말라비틀어진 고목처럼 변해 파들거리고 있었고, 나이가 들어도 찬란한 광택을 자랑하던 은빛의 머리칼 역시 어린아이가 날붙이를 들고 아무렇게나 잘라댄 것처럼 보기 흉했다.

    어디 그 뿐인가.

    그의 몸은 이미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색으로 범벅이 되어 사람인지, 그림자인지 분간도 잘 가지 않을 지경이었다.

    -툭, 투둑.

    그의 몸 어디에서 시작된 지 모를 검은 액체 몇방울이 몸의 선을 타고 흘러내려 콧날과 턱, 손가락 끝을 비롯한 첨단에서 떨어진다.

    그렇게 떨어진 액체들은 발을 반쯤 덮은 붉은 강에의해 주변의 색에 물들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이는 틀림없이, 죽음이 다가왔음이라.

    보이는 것도, 느껴지는 것도,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는 막연히 자신의 발치를 향해 시선을 보내며 중얼거렸다.

    “이걸로, 된 건가…?”

    그것은 누군가 바로 곁에 있었을지라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갈라지고 힘없는 목소리였지만, 그 목소리를 낸 당사자의 입가는 ‘웃음’에 가까운 형태로 미세하게 경련하고 있었다.

    평소라면 그런 불확실한 추측에 가까운 문장만으로 미소를 짓는 일 따위는 결코 없을 그였겠지만, 이 경우는 조금 달랐다.

    왜냐하면, 자신이 아직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증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사실은 청력 역시 손상되어 제 목소리조차 제대로 들려오지 않는 상태이긴 하지만, 목 언저리에서 느껴지는 울림같은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만은 여전히 알 수 있었다.

    이 미약한 감각조차 언제 사라질 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 하하…….”

    그는 그 성공의 증거에 힘없이, 그러나 진심으로 웃었다.

    신성모독은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과격한 처벌이 예정된 죄악이라고 하던가?

    그렇다면, 신의 격을 끌어내려 ‘신성’을 바닥에 처박아버린 자신은 대체 얼마나 끔찍한 죗값을 치르게 되는 걸까?

    ‘참으로 궁금한 일이군.’

    그는 평소 ‘광기가 있다’라고 할 정도로 궁금한 것이 있다면 어떤 대가를 치르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알아내고야 마는 성정의 인물이었다.

    그러니까 이번 일로 그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게 된다면, 이 또한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뭐, 사실 이런 식으로 알게 되기를 바란 건 아니었겠지만 말이다.

    그 순간이었다.

    “……!”

    살풍경한 대지의 어디선가, 메아리처럼 울려오는 목소리.

    그것을 그가 알게 된 것은 결국 자신의 몸에 무언가가 부딪히게 된 바로 그 순간이었지만.

    -기우뚱.

    온 힘을 다해 서있는 것이 고작이던 그는 그 갑작스러운 충격에 중심을 잃었다.

    하지만 그는 넘어짐의 충격이 다가오기 전에, 누군가가 자신의 몸을 받아내는 것을 느꼈다.

    “……!”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을 받아낸 이가 누구인지 머릿속에 그려지는 듯 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에게 꽤 익숙한 이의 감촉이었으니까.

    그리고 잠시 후, 몸에 묘한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녀가 자신의 몸을 회복시키고 있는 것이리라.

    ‘…쓸데 없는 짓을.’

    그래봤자 어차피 죽음이 확정된 몸이라 의미없는 행동이었지만, 그래도 아주 싫지만은 않은 느낌이다.

    적어도, 죽기 전에 그녀의 얼굴을 볼 수는 있을 테니까.

    “…아.”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는 지 시험삼아 성대를 울려보자, 곧바로 굉장히 놀란듯 격양된 목소리가 그의 귀를 향해 꽂혀들어왔다.

    “루크…! ,… 이제 정신이 들어요….? 제발 대답해요!”

    -쏴아아…!

    서서히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하자, 그동안 그의 피부를 간지럽히던 감각의 정체가 실은 하늘에서 내리는 빗방울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아, 비가 오고 있었던 건가.

    그게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군.

    신을 끌어내린 다음부터인가? 아니면, 그 이전이려나.

    과연 신성을 끌어내린 것이 현재의 기상상황에 영향을 끼친 것인지, 아니면 그저 단순한 우연의 일치에 불과할지는 조금 조사해보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지금의 그에게 여러모로 여력이 없었다.

    그는 그런 호기심을 억누르며 천천히 입을 움직여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레니…에.”

    그러자 그녀는 굉장히 기쁘다는 듯 벅차오른 목소리로 대답해왔다.

    “네! 저예요, 레니에! 루크, 이제 뭐가 보이시나요?”

    무언가 따듯한 감각이 눈을 감싸는 느낌이 들자, 흐릿한 시야의 중심점이 잡히기 시작했다.

    흰색 성복이 하늘에서 내린 비와, 자신의 몸에서 튄 검은색과 바닥에서 튄 붉은 색으로 온통 더럽혀진 그녀의 꼴은 빈말로라도 좋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를 놀라게 한 것은, 그녀의 눈에서 흐르는 것이 분명한 투명한 액체였다.

    그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움직였다.

    “…우는…게냐? 날… 위해…?”

    그는 문득, 언젠가 떠올렸던 생각 하나를 기억해냈다.

    ‘그녀는 과연 자신의 죽음에도 케일의 때 만큼이라도 진심으로 슬퍼해줄까?’

    그는 자신의 오랜 친우를 떠나보내던 그 날, 그녀가 보인 눈물을 기억하고 있었다.

    사실 그녀의 눈물은 결코 값진 것이라고는 보기 어려울 정도로 흔한 편이었지만, 그럼에도 그 때는 그것이 못내 부러웠다.

    어쩌면, 타인을 위해 그토록 진심으로 눈물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이 부러웠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자신은 아무리 슬퍼도 눈물을 흘릴 수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녀가 자신의 죽음을 위해 울어준다면, 정말로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녀는 그의 그런 기대를 빠르게 배신했다.

    “우, 울긴 누가 울었다고요! 빗방울이겠죠!”

    그녀는 빠르게 소매를 이용해 눈가를 훔치며 대답했다.

    하지만 그도 안다.

    액체의 시작점이 하늘이 아닌 눈물샘이라는 것과, 그녀의 목소리가 울음에 젖어 불안정하게 떨리고 있다는 것 쯤은.

    거짓말쟁이에다 부끄럼쟁이인 그녀는, 자신이 울고 있다는 걸 인정하기 싫어할 뿐이다.

    평소에는 항상 그 부분을 지적하고 있었지만, 오늘만큼은 적당히 속아주어도 괜찮겠지.

    “…훗, 그런가. 미안하군….”

    참으로 미안했다.

    “그래요! 바보같은 사람한테 줄 눈물 따위는 어디에도 없거든요!? 대체 누가 이런 걸 원한다고 말이나 했냐고요! 이제 이런 바보같은 짓, 그만 두었다고 생각 했는데…!”

    “……미안.”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동안 그녀가 건네준 따듯함에 중독되어, 그릇이 진작에 완성이 된 뒤에도 계속 미뤄왔으니까.

    단 한 걸음만 더 내딛으면 되는 상황에서, 자신은 계속해서 다른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다.

    분명, 다른 방법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은 채로 말이다.

    ….뭐, 결국 모두가 전부 행복해지는 경우의 수는 없다는 것만 깨닫고 말았지만.

    그래도 후회는 없다.

    계획이 성공한 이상, 미련이 남을 리 없으니까.

    이걸로, 그녀는 그녀 자신이 꿈꾸는 ‘공평한 세계’를 만들 수 있을 터다.

    -씨익.

    그가 입가에 드리운 미소를 보았기 때문일까?

    그녀는 조금은 안심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다시는 이런 희생하는 짓 하지 마요! 당신은 이기적인 마법사 아니냐고요! 그냥 평소 성격대로 사시란 말이에요!”

    “…응, 그러지.”

    평소와 같은 능글맞은 목소리의 대답에 그녀는 짐짓 화난 듯한 표정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이건 그냥 부탁이 아니라 여왕의 명령이에요! 앞으로는 희생같은 건 절대 하지 않는 거예요? 어기면, 반드시 찾아내서 극형을 내릴 거라고요!”

    그녀의 반응에 루크는 여전히 즐겁다는 듯 풀어진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그래, 명심하겠네. 그러니 부디….”

    그러나 ‘화를 거둬주게나’ 라는 뒷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예상보다 일찍 찾아온 죽음으로 인해, 겨우 초점을 맞추고 있던 시야가 다시 검게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더 얼굴을 눈에 담고 싶었건만.

    -툭.

    조금씩 레니에의 얼굴을 향해 가져가던 그의 손 역시 뚝 떨어졌다.

    결국, 눈물을 닦아주지는 못했나.

    그 모습에 레니에는 모든 것을 부정하듯 고개를 저으며 외치기 시작했다.

    “루크? 루크…? 루크, 장난하는 거죠? 제가 하는 잔소리 듣기 싫어서…? 진짜 하나도 재미 없어요! 그만 하라고요! 제발…….”

    -툭.., 투둑….

    그렇게, 얼굴 위로 떨어지던 따듯한 빗방울의 감각이 사라졌다.

    아아.

    그래도 역시, 마지막은 웃는 얼굴이 보고 싶었는데.

    참 아쉬운 일이었다.

    —–

    그렇게 과거를 떠올린 루크는 창백해진 얼굴로 침을 꼴깍 삼켰다.

    그 이전에도 항상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것도 좋지만, 결국 제일 중요한 건 본인의 몸이라고요!’라며 무모하게 사람들을 구하려고하던 자신을 혼냈을 만큼 그녀는 타인의 ‘희생’을 극도로 싫어하는 인물이었다.

    어쩌다 작은 생채기하나라도 나면 어찌나 노발대발 하던지, 자신의 몸은 아무리 험하게 찢겨지더라도 별 말 없이 웃으며 넘기던 그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였지.

    ‘그 때는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곤 하지만…….’

    그 때는 레니에를 위해서 무리한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어떻게 변명한다고 쳐도, 지금은 경우가 조금 다르다.

    그냥 자신의 멍청한 선택과 예측실패로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을 뿐이니까.

    또 굳이 레니에를 건네주지 않고도 조금 무리를 했다면 아이를 밖으로 내보내는 것 쯤은 어떻게든 가능했을 거고, 조금만 더 일찍 관찰력을 발휘했더라면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드래곤따위 텔레포트 외에도 안전하게 요리하는 방법 쯤은 얼마든지 있었다.

    전에는 곧 죽을 목숨이라고 다시는 희생하지 않겠다고 공수표까지 막 던져버렸는데…….

    그녀가 그때의 약속까지 기억하고 있다면, 상황은 극도로 나쁘다.

    그건 엄밀히 말해도, 서클인 자신이 건넨 약속이었으니까.

    게다가 윽박지르는 모양새로 상황을 만들어내기까지 했으니, 분명 아주 화가 머리 끝까지 났을 게 분명하다.

    ‘지, 지금이라도 얼른 빌어야하나?’

    식은땀이 목줄기를 타고 흐르는 감각이 느껴졌다.

    여기서 더 늦었다가는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한 루크는 이내 결심을 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 그래, 언제까지고 미뤄둘 수도 없는 법이 아닌가.”

    어차피 언젠가는 반드시 연결을 해야 했다.

    지금같은 시기에 언제까지고 레니에와 말을 섞지 않고 있을 수는 없었으니까.

    이건 스스로 할 수 있는 행동의 선택지를 줄이는 짓이 아닌가?

    이런 사소한 감정적인 일로, 현대의 모든 통신망에 강제로 접속할 수 있는 수단을 잃어버리기에는 너무나도 아깝다.

    또, 네트워크 없는 생활은 이제 자신이 답답하기도 하고.

    그렇게 다짐한 루크는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분리해 두었던 마력식의 부분을 이었다.

    “흡!”

    -찰칵.

    그리고 그 순간, 강렬한 빛이 다락방을 감쌌다.

    맹세컨대, 그것은 본래의 마법진에는 없는 기능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사람이 곧 죽는다고해도 공수표는 막 던지는 게 아닙니다.
    다음화 보기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