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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91

       감언이설(甘言利說).

         

       모든 건 이를 위해서였다.

         

       마땅히 배분 낮은 제자들이 해야 할 일을 직접 하며 그녀를 보러 온 것도.

         

       백우진이 오늘 무얼 했는지 일일이 전해준 것도.

         

       전부 그녀를 꾀어내기 위한 사전 작업에 불과했다.

         

       제법 그럴싸한 말이었다.

         

       그들에게만 적당히 고개 숙이면 외부에 어떤 잡음도 새어 나가지 않게끔 일을 처리해 준다는 말이었으니.

         

       더군다나 그녀는 상인.

         

       합리적인 거래를 무엇보다 중히 여기는 그녀에게 이는 제법 그럴 듯했으나.

         

       “괜찮아요.”

         

       그녀는 탁일우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다.

         

       이유는 별거 없다.

         

       “전 제 가가를 믿어요.”

         

       그를 믿어서다.

         

       백우진.

         

       그의 손에 구원된 그녀였기에 더욱 잘 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지금보다도 더 험난한 상황에서도 그는 자신을, 가문을 구해주지 않았나.

         

       “허허…, 아쉽구먼. 금 소저라면 대화가 잘 통할 줄 알았건만.”

         

       안타깝다는 듯, 혀를 끌끌 차며 돌아서는 탁일우.

         

       그때는 그의 수작질이 끝난 줄 알았으나, 그것은 오히려 시작에 불과했다.

         

       다음날.

         

       “오늘도 백 공자는 장문인의 침소에서 움직이지 않았다더군. 그래서야 언제쯤 흉수를 잡을 수 있을는지….”

         

       그다음 날도.

         

       “백 공자가 애를 먹고 있는 모양일세. 제자들 사이에서는 일찌감치 포기해 놓고 장문인 침소에 틀어박혀 시간을 끌기 위해 수작 부리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그녀를 꾀어내기 위한 숱한 말들이 이어졌다.

         

       그러나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백우진은 의미 없는 행동 따위는 하지 않는다.

         

       며칠 동안 장문인의 침소에만 틀어박혀 있는 건 그곳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일 테지.

         

       그렇게 사흘째 되던 날.

         

       “식사하셔요, 소저.”

         

       탁일우가 아닌 헤진 무복 차림의 앳된 소녀가 오늘치 그녀의 식사를 가지고 들어왔다.

         

       마침내 그가 포기한 모양.

         

       한결 가벼워진 표정으로 앳된 소녀가 건네주는 식사를 받을 즈음.

         

       앳된 소녀의 말이 이어진다.

         

       “며칠 동안 저희 스승님 때문에 많이 힘드셨죠?”

       “엣.”

         

       화들짝 놀라는 금여울.

         

       이 앙증맞게 귀여운 소녀가 탁일우 장로의 제자란 말인가?

         

       “탁 장로님의 제자 분이신가요?”

         

       그러자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소녀.

         

       “네, 맞아요! 스승님의 다섯 제자 중 막내인 홍화(紅花)예요.”

       “아…, 홍 소저시군요.”

         

       어색하게 웃는 금여울의 곁에서 조잘거리는 홍화.

         

       “스승님께서 금 소저를 많이 힘들게 했죠?”

         

       차마 제자 앞에서 스승의 흉을 볼 수 없어 아닌 척 손사래를 치는 금여울.

         

       “아, 아니에요.”

       “에이, 아니긴요. 제가 여기 온 것도 금 소저를 꾀어내라고 명령하신 건데요.”

         

       그녀의 허심탄회한 말에 금여울의 눈살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런 명령을 하셨다고요?”

       “네! 금 소저와 또래인 저라면 조금 더 쉽게 마음을 열지도 모른다고 하시면서 금 소저가 꼭 마음을 돌리게 해달라고 하셨죠.”

         

       의아했다.

         

       스승이 그리 명을 내렸다면 마땅히 따라야 하건만.

         

       “그런데 어째서 제게 그런 말을…?”

         

       그녀가 묻자, 홍화가 웃는 얼굴 그대로 답했다.

         

       “모두가 백우진 대협이 장문인을 살해하려 했다고 떠드는데, 전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아닌 것 같아서요.”

       “정말요…?”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되묻는 금여울.

         

       다른 사람도 아니고 화산파의 장문인이 직접 정신을 잃고 쓰러지기 전에 지목한 흉수가 아닌가.

         

       그런데 화산파의 제자가 그걸 믿지 않는다니.

         

       그건 그것대로 조금 의아하지 않은가.

         

       이에 그녀가 답하길.

         

       “그야 천광검신 대협이니까요! 혈교주와 맞서 중원을 구한 정파의 영웅! 그런 분이 같은 정파의 일원인 장문인을 살해할 리가 없잖아요?”

         

       그야말로 정론이었다.

         

       다만, 다른 제자들은 화산파의 대들보인 장문인이 중상을 입고 쓰러져 그러한 사실을 망각하고 있을 뿐.

         

       그러나 그녀만큼은 본질을 잊지 않고 있는 모양.

         

       그것은 아무래도….

         

       “저…, 사실 천광검신 대협을 존경하고 있거든요.”

         

       수줍은 목소리로 고백하는 저 말 때문일 테지.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잘생긴 외모에, 훤칠한 키에, 삼존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무공 실력까지…!”

       “아…, 네에.”

       “그뿐만이 아니에요! 대협이 걸어온 발자취를 자세히 살펴보면….”

         

       줄줄이 쏟아지는 그의 행적들.

         

       실로 영웅이라 부르기에 손색없는 활동들.

         

       “특히 그때가 가장 멋있었어요! 초원에서 천마와 맞닥뜨렸을 때, 대협이 그러셨죠. 당신의 뜻이 따를 테니, 내 동료들은 놓아주시오! 하면서 천마의 손에 이끌렸던 건 정말…!”

         

       그렇게 한참을 떠들어대던 홍화가 뒤늦게 제 불찰을 알아차리고 손으로 입을 가렸다.

         

       “아…! 죄, 죄송해요. 제가 너무 들떠있었나 봐요.”

         

       이에 손사래 치는 금여울.

         

       “아, 아니에요! 저도 오랜만에 가가를 믿는 분과 만나서 좋은걸요.”

       “헤헤…, 저도 그래요. 본파에는 저만큼 천광검신 대협을 존경하는 분이 안 계시거든요. 다들 매화검수만 좋아하지.”

       “호호…, 보통 화산파 제자라면 매화검수가 되는 게 꿈일 테니까요.”

       “네, 맞아요. 하지만 저는 더 멀리 뻗어나가고 싶어요! 천광검신 대협처럼 중원 전역을 누비는 그런 협객이요!”

       “호호…, 홍 소저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거예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네, 그럼요.”

         

       신나게 웃고 떠드는 두 사람.

         

       지하 뇌옥에 있으면서 쌓여만 가던 긴장과 불안이 조금이나마 해소되는 순간이었다.

         

         

       * * *

         

         

       하루가 조금 나아졌다.

         

       지하 뇌옥에 갇혀 있는 순간이 마냥 외롭지만은 않게 되었다.

         

       그것은 모두 홍화 덕분이었다.

         

       “호호, 귀여운 아이.”

         

       자신이 사랑하는 사내를 열렬히 존경하는 아이.

         

       스승인 탁일우를 대신하여 식사를 가지고 오기 시작한 소녀가 그의 존경심을 드러내는 데에 맞장구를 쳐주는 것이 썩 즐거웠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안녕하십니까, 아가씨.”

         

       저녁이 되면 짙게 내려앉은 그림자를 타고 제게 나타나는 송희연의 존재 또한 그녀에게 큰 힘이 되어주고 있었다.

         

       “아, 송 소저…!”

         

       그녀는 백우진이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 알려주곤 했다.

         

       자신을 감언이설로 꾀어내기 위해 무의미한 순간만을 일러주는 탁일우와 달리, 그가 장문인의 침소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를 상세히 알려주었다.

         

       그래서 알게 되었다.

         

       백우진이 지금 장문인을 치료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것을.

         

       “오늘도 가가는 장문인 치료에 하루를 다 썼겠죠?”

       “네, 그렇습니다.”

       “차도는…, 조금 있던가요?”

       “네. 아마 하루에서 이틀 사이면 끝날 듯합니다.”

         

       그녀의 물음에 성실히 답한 송희연이 이번에는 자기 차례라는 듯, 물음을 던졌다.

         

       “아가씨께선 별일 없으십니까?”

         

       그러자 새초롬한 시선으로 송희연을 타박하는 금여울.

         

       “에이, 정말. 그냥 언니라고 부르래도요.”

       “…그건 아직.”

         

       얼굴을 붉히며 대답을 얼버무리는 송희연.

         

       아직 백우진의 여인이라기엔 부족한 감이 있어 필요 이상의 호칭을 삼가는 중일 테지.

         

       그의 곁에 여인이 늘어나는 건 더 이상 원치 않는다.

         

       하지만 송희연은 상관없었다.

         

       애초에 자신보다 더 오래 전부터 백우진의 곁을 지켜온 여인 아닌가.

         

       그렇기에 그저 바랄 뿐이었다.

         

       ‘빨리 받아주면 좋을 텐데.’

         

       그녀가 제 동생이 되는 날이 오기를.

         

       비록 그녀가 먼저 백우진의 곁에 있었다지만, 자신이 먼저 여인으로 인정받았으니 분명 자신이 언니일 터다.

         

       아마도.

         

       속으로 히죽 웃은 그녀가 조금 전 송희연의 물음에 답해주었다.

         

       “오늘도 별일 없었어요. 늘 그렇듯이 홍화하고 이야기 나눈 게 다예요.”

       “아…, 그, 주…, 아니, 도련님을 존경한다는….”

       “네, 맞아요! 걔가 얼마나 가가를 존경하는지 몰라요. 우리 가가의 행적 중에 가장 존경하는 부분이 뭐였다더라…?”

         

       그녀가 했던, 그리고 나누었던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털어놓는 금여울.

         

       자신들을 대신해 지하 뇌옥에 갇혀 있는 동안 사람과 대화 나누는 게 그리웠던 모양.

         

       송희연은 그런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고 밤이 깊어질 때까지 묵묵히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리고 또…, 또…, 하아암….”

         

       이야기 도중에 하품하는 횟수가 두 번 이상 늘어날 때까지.

         

       속 시원하게 이야기하고 가슴에 쌓여 있던 외로움을 해소하고 맞이한 다음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제 식사를 들고 찾아온 홍화와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홍화가 울적한 목소리로 걱정을 쏟아냈다.

         

       “언니…, 백 대협께서 조만간 흉수를 잡아 무죄를 증명하시겠죠?”

       “물론이지! 왜, 갑자기 의심되기 시작하니?”

         

       장난스러운 물음에 화들짝 놀라 손사래 치는 홍화.

         

       “아, 아니에요! 다만…, 장문인의 상태가 점점 악화되고 있단 얘기가 들려서요. 이대로 장문인께서 돌아가시면 대협이 죄를 뒤집어쓰는 건 아닐까 염려돼서요….”

         

       그녀는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제 사문의 장문인과 존경하는 사람인 백우진 양쪽 모두를.

         

       어린 나이에 깊게 시름하는 그녀의 모습이 안타까웠던 그녀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홍화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송희연에게 들었던 이야기 중 일부를 털어놓았다.

         

       “걱정 마, 홍화야. 곧 가가께서 장문인을 치료해주실 거야.”

       “치료라뇨…?”

       “사실은…, 지금까지 가가께서 장문인을 치료하기 위해 힘쓰고 계셨거든.”

       “정말요?”

       “그럼!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앞으로 하루에서 이틀 정도는 거기에 온전히 집중해야 한다고 하긴 했는데, 주변의 방해 없이 무사히 끝나기만 하면 수월히 치료할 수 있을 거래.”

       “아…! 정말 다행이에요!”

         

       그녀의 말에 힘을 되찾은 듯, 싱그럽게 웃는 홍화.

         

       금여울은 그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잘대는 소녀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었다.

         

         

       * * *

         

         

       깊게 내려앉은 밤.

         

       아직 불이 꺼지지 않은 탁일우의 집무실에 그의 막내 제자인 홍화가 찾아왔다.

         

       “스승님, 드디어 알아냈어요! 백우진이 장문인의 침소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요.”

       “…그것이 참말이더냐?”

       “네! 장문인의 치료를 하고 있다고 해요.”

         

       이에 탄식하는 탁일우.

         

       “허어…, 그것이 가능할 리가 없다. 장문인의 상처는 즉사는 면할 정도였기는 하나, 절대 회생할 수 없는 수준이거늘.”

       “정확한 건 모르겠지만…, 확실해요. 그 때문에 앞으로 하루에서 이틀은 온전히 거기에 정신을 쏟아야 한다고 했어요.”

         

       금여울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부 쏟아내던 그녀가 히죽 웃으며 말을 잇는다.

         

       “외부에서 방해가 들어오면 손쓸 도리없이 당해야 할 정도로요.”

         

       이를 들은 탁일우가 제 자랑거리인 수염을 가벼이 쓸어내리며 탄식했다.

         

       “허어…, 그것참 큰일이로구나. 그때 갑자기 습격이라도 받으면 참으로 난리가 나겠어.”

         

       이내 은근슬쩍 미소 짓는 탁일우.

         

       이에 홍화도 천진난만하게 따라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겠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추석 연휴에 자꾸 친척들이 타이밍 다르게 찾아오는 바람에 매일 맞이하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네요.

    더군다나 최근에 새벽에 자꾸만 작업하고 있는데 거기에 술을 좀 마셨더니 그대로 쓰러지듯 잠들어서 거의 저녁 즈음에나 깼네요;

    추석 연휴도 이제 끝나고, 모레부터는 다시 지인의 공간을 빌린 작업실에서 글을 쓸 수 있으니 좀 더 부지런히 연재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때까지만 연재 시간이 불안정해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저는 다음 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_ _)

    다음화 보기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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