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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92

    루크는 곧 웅얼거리는 소리와 함께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으음…….”

    몽롱함으로 흐릿한 시야가 점차 선명해지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안락한 방의 풍경이나 침대의 부드러운 감촉이 아닌 차갑고 딱딱한 먼지쌓인 바닥이었다.

    ‘뭐지, 내가 잠깐 잠들었던 건가…?’

    루크는 침착하게 마지막 기억을 되짚어가기 시작했다.

    아침에는 일부러 늦장을 부렸고, 점심즈음부터는 아이들을 맞이했으며, 저녁에는 다락방에서 마법진을 고치고 있었다.

    다락방에서 마법진을 보수하는 기억까지는 나는 것을 보면, 아마 그때를 기점으로 기절한 것 같다.

    그렇다면 이 먼지쌓인 바닥에 몸을 눕히고 있는 자신의 꼴도 충분히 설명이 되리라.

    그런데, 다락방이 원래 이런 바닥이었던가?

    그나저나, 최근에는 딱히 기절할만큼 피곤할만한 일도 없는데 이러는 건 조금 이상하다.

    뭐, 심리적으로는 상당히 피곤한 상태이기는 했다만….

    일단은 몸을 일으켜야겠지.

    그 때, 이유를 알 수 없는 두통이 갑자기 루크에게 닥쳐왔다.

    “…윽!”

    지끈거리는 두통에 손을 이마로 올리려고 했으나, 팔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딱딱한 바닥에 몸을 뉘인 채 눈을 붙여서 몸이 제대로 안 움직이는 걸까?

    하여간에, 이런 몸이 되어서도 노숙 체질은 아닌 모양이다.

    -찰그락, 스릉-.

    루크는 자세를 바꾸려 몸을 움찔거렸으나, 몸을 움직일 때마다 들려오는 묘한 쇳소리가 들려와 루크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다락방에 저런 소리를 내는 물건이 있었던가?

    이내, 그 소리의 정체를 깨달은 루크는 경악하고 말았다.

    “자, 잠깐! 이게 다 뭐야?!”

    일단, 자신이 누워있는 장소는 자신의 다락방이 아닌 알 수없는 장소의 철창이었다.

    거기에 두 팔은 움직일 수도 없도록 뒤로 묶여 딱딱한 무언가에 고정되어 있었으며, 혹여라도 도망칠수 없도록 목에는 목줄같은 것이 쇠사슬에 달려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옴짝달싹 할 수가 없는 상태.

    이것은 마치, 이 시대에 처음 눈을 떠서 예르나를 만났을 때의 상황과 비슷했다.

    이제와서 그날의 악몽이라도 꾸는 걸까?

    글쎄, 그건 아닐 것이다.

    이것이 꿈이라기에는 감촉들도 너무나도 생생했을 뿐더러, 자각한 뒤에도 상황이 전혀 바뀌지 않는 것이 이상하니까.

    그렇다고 이것이 현실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더욱 이상한 상황이다.

    온갖 마법 방어가 작용하는 자신의 저택에서 이렇게 보란듯이 ‘납치’를 당한다?

    그건 애초에 가능한 일이 아니다.

    악몽이라기엔 너무나 생생하고, 현실이라기엔 너무나 비현실적인 상황.

    루크가 아무리 모순을 좋아하는 마법사라지만, 그에게도 이것은 너무나 당혹스러운 아이러니였다.

    하지만 가능성을 부정하기엔 이미 벌어진 일이 아닌가?

    일어난 일을 부정해봤자 그것은 현실도피밖에는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판단을 해야겠지.

    루크는 침착하게 정보를 짚어나갔다.

    ‘하아. 내가 갑자기 미쳐버려서 헛것을 보고 헛것을 느끼는게 아닌 이상, 이 상황을 만드는 것이 가능한 경우는 오직 하나다.’

    그것은 바로….

    -일어나셨네요? 후후, 잠은 잘 주무셨나요?

    아린세이아의 갑주에서 흘러나오는 익숙한 소녀의 목소리, 그래.

    두말할 것도 없다.

    짐작했다시피, 이 사건의 배후는 레니에였다.

    네트워크가 연결된 순간 텔레포트를 시킨 건가?

    이미 철저하게 준비를 했던 모양인지, 뭘 어떻게 대응해보기도 전에 잡아먹혀버린것 같다.

    아마 아린세이아가 지닌 공포스러운 연산력에 더해, 역천의 모래시계를 이용한 아공간 특유의 시차까지 적용되어서 더더욱 대응이 불가능했던 거겠지.

    …게다가, 자신이 눈을 질끈 감고 있기도 했고 말이다.

    어쨌든, 여기는 낯선 공간은 아니고 아린세이아의 감옥시설인 모양이다.

    ‘감옥시설은 굳이 둘러보지 않아서 그런가, 곧바로 알아채지 못했군.’

    게다가, 5000년 전의 건물과는 내부구조도 많이 달라졌으니까.

    -어머, 그렇게 안 놀라시네요?

    루크의 ‘그럼 그렇지’라고 하는듯한 표정에 레니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루크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그야, 이런 짓이 가능한건 세상에 너 말고는 없잖느냐.”

    -아하하! 그건 그렇죠. 진짜 안 놀랐어요?

    레니에의 목소리가 나오는 갑옷은 재미있다는 듯이 어깨를 들썩이며 찰카닥거리는 쇳소리를 냈다.

    그에 루크는 짐짓 놀랐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대답했다.

    “놀랐어, 아주 간이 다 떨어지는 줄 알았으니 이제 좀 풀어주거라.”

    그러나 레니에의 대답은 ‘거절’이었다.

    -싫은데요? 저희, 이대로 산책 할 거에요. 꼭 보여드리고 싶은 것도 있고 말이죠! 

    루크는 경악했다.

    “응? 뭐라고? 산책? 이 꼴로?”

    말도 안된다.

    -네! 뭐 어때요? 어차피 아린세이아는 외부인이 아무도 없는 둘만의 장소잖아요? 얼른 일어나요!

    “아, 아니, 잠깐만! 아무리 그래도 이 꼴은 좀…!”

    그러자, 레니에는 위협적인 모습으로 루크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아니면, 강제로 일으킵니다?

    “아, 알았어! 일어날게! 일어날테니까!”

    —–

    현재 자신의 목과 손에 채워진 이 물건들은 세계수가 되다 만 묘목들을 가공하고 마법 방해력이 높은 특수합금으로 만들어진 마법사용 특제품이었다.

    게다가 레니에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루체스트의 약물 분석을 하면서 쌓인 데이터를 응용한건지, 의식하면 마력의 운용 자체를 멈춰버리는 식의 기능도 숨겨져있었다.

    덕분에 루크는 현재 마법같은 걸 사용할 수가 없는 상태였다.

    그래도 조금 시간을 들이면 부술수야 있겠지만, 그랬다가는 레니에가 ‘반성을 하지 않으시네요!’라면서 더 큰 벌을 줄 지도 모르고, 루크로서도 대량의 마나 손실이라는 위험성을 동반하는 일이라서 섣불리 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아…….”

    기껏해야 잔소리나 왕창 듣지 않으려나 생각했던 루크는 고개를 떨군 채 그녀가 이끄는대로 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그 표정을 읽은 레니에가 물었다.

    -왜 그래요? 저와 하는 산책이 맘에 안 드시나요?

    “아니, 뭐……. 딱히 그런건 아니다만….”

    -그럼 왜 그런 표정이시죠? 아주 불만스러운 표정이신데요?

    표정을 읽은 레니에가 의심스럽다는 듯한 반응을 보이자, 루크는 능청맞게 대답했다.

    “음, 나는 그냥 이 수갑 때문에 손을 잡지 못하는 게 아쉬워서 그렇지. 풀어주지 않겠어?”

    그러자 레니에는 질렸다는 듯 몇걸을 떨어지며 넌더리를 냈다.

    -….선수네요, 아주. 그렇게 넘어가면 제가 바로 풀어줄 줄 아셨나요?

    “거짓말 아니다. 정말 아쉬워서 그래.”

    -거짓말은 아니시겠지만, 어차피 지금의 저는 손을 잡아도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답니다. 그냥 잠자코 따라오세요.

    “…….”

    역시 안 통하나…….

    뭐, 일단은 조금 불편한 것을 제외하면 해는 없다.

    지금은 자신이 잘못한 것도 있으니, 맞춰주도록 하자.

    그나저나, 감옥이 위치해 있던 구석진 거리에서 나와보니 아린세이아의 거리가 며칠새 꽤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거리가 꽤 변했구나.”

    -네, ‘칸타시스’의 해체작업이 한창이니까요.

    레니에가 가이드를 하듯이 대로 저편을 향해 손가락을 올리며 말했다.

    -저쪽, 보이시나요?

    “응. 저게 칸타시스인가?”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낮은 건물 지붕 너머로 칸타시스의 잔해가 보였다.

    현재는 몸통 부분의 발골을 보류하고 방수포로 덮어둔 모양이지만, 대신에 머리 부분에서 몇몇 소드마스터급 개체가 오러를 이용해 긁어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마치 거인을 바닥에 박제한 소인들이 나오는 동화 이야기가 생각나는 장면이었다.

    -곧바로 세공이나 단조를 할 수 있도록 관련시설 옆에 가져다 두려고 건물 몇개를 옮겼거든요. 도로도 정비했구요. 핏물을 빼려면 수로도 새로 파야 했죠. 그러니 거리의 풍경도 달라질 수밖에 없죠.

    “그렇군…, 예상보다 더 신속한데?”

    드래곤의 시신을 갈무리하는 작업은 예전에도 열의에 찬 최고의 장인들이 마을 단위로 모여서 밤잠을 설쳐가며 작업을 하더라도 수개월이 걸릴 정도로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인데 현재 이 정도의 진행상황이라면 지금 아공간의 시간은 얼마나 된 건지 궁금해졌다.

    “레니에, 그럼 지금 몇 배속을 한 거지?”

    -대략 3개월정도 지났으니까, 50배속일까요? 그 이상은 고장난 모래시계로는 버티질 못하겠더라고요. 

    “으음. 그런가? 그것도 이제 슬슬 고칠 때가 됐지.”

    역천의 모래시계가 온전했다면 시간은 더이상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7서클이나 되었으니, 이제 ‘하늘을 가두는 유리’를 고칠 재료도 슬슬 모아야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시간의 모래’는 지금의 것으로도 충분하려나…

    ‘그나저나, 50배속인가.’

    자신이 딱히 감독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3개월이나 쉬지않고 작업을 했다는 건 굉장히 대단하고 고마운 일이었다.

    루크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인형들과 갑주들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땅을 파내고, 자재를 옮기고, 도구를 손질하고, 용을 갈무리하고….

    또한 갑주와 인형들은 각자 역할에 맞는 작업복이나 도구를 걸치고 있었는데, 아마도 아린세이아의 더운 날씨를 생각해 냉각을 위한 조치인 듯 했다.

    뭐, 그 외에도 이물질 같은 게 갑주 내부나 인형 솜에 들어가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 말이다.

    아린세이아에 널린 천조각을 적당히 집어다가 옷으로 만든 건지, 의복에 딱히 통일성은 없었다.

    그게 실용적이기만 하다면 상관은 없지만, 대충 기워내서 어딘가 엉성하고 얼빠져보이는 것이 마치 움직이는 허수아비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인형들은 루크가 걸음을 걸을 때마다 자신을 향해 시선을 던져왔다.

    아마 자신을 빚어낸 주인을 향해 취하는 프로그래밍된 시선에 불과하겠지만…….

    ‘엄청 신경쓰여.’

    정교한 동작데이터를 가진 고성능 골렘들에 사람냄새나는 옷가지를 입혀 놓으니 정말로 5000년 전의 공개처형장에 끌려가는 죄인을 보는 시민들의 느낌이 난다.

    평소에 단련되어 웬만한 시선에는 어느정도 면역이 있는 루크였지만, 이런 종류의 시선에는 면역력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레니에, 이걸 풀어줄 수 없다면 적어도 이 얼굴만은 가려주면 안되겠나?”

    얼굴이라도 가리면 좀 나아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요즘엔 죄수들도 초상권이다 뭐다 해서 얼굴을 가린다던데 말이다.

    하지만, 레니에의 대답은 이번에도 ‘거절’이었다.

    -절대 안돼요.

    그것도, 아주 단호한 거절.

    그에 루크는 항의하듯 답했다.

    “아니, 왜? 아무리 그래도 천 하나 정도는 덮어줘도 되는 것 아닌가? 보아하니 널린 게 천조각이라, 내가 걸칠 천조각 하나가 없는 것도 아닐텐데 말이야!”

    그러자 레니에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을 이었다.

    -저는 지금 당신의 그 얼굴을 3개월만에 본 거니까요. 가리는 건 절대 금지입니다. 이런 게 싫으셨다면 네트워크를 끊어두지 않았어야죠? 안그런가요?

    “…….”

    할 말이 없었다.

    이거, 어쩌면 자신은 레니에의 잘못된 무언가를 깨우고 말았을지도 모르겠다.

    루크가 반쯤 체념한 표정을 짓자, 레니에는 조금 풀어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은 조금만 참으세요. 알겠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루크, 고개 내리세요. 당신 지금 죄인입니다.

    그나저나, 전연령 삽화의 허용범위는 어디까지일까요? 문득 궁금하긴 하네요.
    사실 구속장면은 더 어린 버전에서도 회상장면으로 몇번 그리긴 했던 것 같은데요.


    휴재 끝났으면서도 연재주기가 돌아오지 못해서 죄송스러운 마음입니다.

    말씀드리기 좋은 소식은 아니라 말할지 말지 고민이 좀 되었는데, 그냥 털어놓는 게 독자님들에게도 저에게도 나은 방향일 것 같아 짤막하게 적어볼게요.

    사실, 이주일 전부터 약간 공황증세가 나타났거든요.
    아무래도 1~2년간 계속 같은 생활패턴을 반복했더니 그게 좀 문제가 됐나봐요.
    제가 보기에도 별볼일 없는 계기라 부끄러워서 말할 수 없었고, 잠깐 휴재하면 돌아올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지금도 여전히 증세가 조금은 있네요.

    그래도 지금은 꽤 나아지기도 했고, 일단은 그냥 계속 되는대로 글을 써보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문장이 잘 안 써져도 말이죠.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tmi, 저 사실 어제 생일이었어요.

    비록 온종일 컴퓨터 앞에만 앉아있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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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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