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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92

        

         

       가로등의 불빛도, 달빛도 채 미치지 못한 곳에서 그는 천천히 걸어 나왔다.

       허공에 머무르는 어둠보다도 더더욱 새까만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리며, 한 발짝 한 발짝 천천히 옮기며 그렇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발을 옮길 때마다 입고 있는 청바지에서는 그림자가 뱀처럼 헤엄을 쳤고, 사람의 얼굴이 떴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검은 후드티는 걸어갈 때마다 음영이 드리우고 사라지며 그림자의 형태를 변화시켰는데, 후드티에 그려진 그림 사이로 번졌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기괴한 형태를 그려내었다.

         

       마치 귀신이 손을 뻗고 허우적대며 살려달라고 절규하는 듯한 그림자.

         

       저벅.

         

       발걸음 소리가 퍼질 때마다 옷이 미약하게 흔들리고, 그 흔들림에 맞춰 그림자가 꿈틀댄다. 그림자의 형태는 눈두덩이 같기도, 절규하듯 쫙 벌어진 입 같기도, 물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사람 같아 보이기도, 혹은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의 얼굴 같기도 하였다.

         

       바지에는 사람의 얼굴이 흐른다.

       그림자로 그려진 얼굴은 비통과 절망이 가득한 얼굴로 절규한다.

         

       후드티에는 사람이 허우적대고 있다.

       수많은 사람이 겹치고 겹쳐 제대로 된 형상조차 찾아볼 수 없는 형태로, 허우적허우적 움직인다. 잘린 팔을 휘젓고, 손가락을 길게 뻗어 어떻게든 밖으로 빠져나오기 위해 발악한다. 검은 후드티 바깥으로 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듯한 표정을 짓고, 그러다가 그것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절망한다. 그런데도 희망을 놓을 수가 없어서, 천 한 장만 벗어나면 현세로 나갈 수 있기에 차마 마지막 희망을 버리지 못한 채 탈출을 갈망하고 갈구한다.

         

       그리고 그 위.

       푸른 눈동자가 있다.

         

       어둠을 꿰뚫어 보는 듯 밝게 빛났고, 어둠 속에 살아가는 것을 포착이라도 하는 듯 음울한 기운이 머무르고 있다. 푸른 눈동자는 파사와 퇴마의 기운을 담기 편한 그릇이었지만 그의 눈동자에는 오히려 그 반대되는 성질만이 가득 머무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어깨에는 볼품없는 새 한 마리가 앉아서 쉬고 있으니.

         

       진성의 기억에 저런 모습을 하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흐, 이야기에 관심이 있는가…?”

         

       죽음.

       자신을 죽음이라 칭하고 다니며, 훗날 횔레(Hölle)라고 불리게 될 빙의술사.

         

       그가 진성의 앞에 나타났다.

         

       어둠에 녹아들기 위한 주물을 착용하고.

       사람의 관심에서 벗어나고 시선의 바깥에 위치할 수 있는 문양을 새긴 주물을 입고.

       인기척을 없애고, 발소리를 줄이고, 은밀하게 움직일 수 있는 주물을 가지고.

         

       진성의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푸른 눈동자를 번뜩이며, 일반적으로는 만들어지지 않을 짙은 어둠으로 후드 안의 얼굴을 가린 채 진성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예. 꽤 관심이- 있습니다.”

         

       자신을 죽음이라 칭하는 빙의술사는 호선을 그리며 진성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진성은 그 웃음에 회답하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가면을 움직였다.

         

       뿌드득.

       뿌득.

         

       진성의 가면이 움직인다.

       검은 갑각에 신경이 연결되기라도 한 듯 움직이고, 한껏 벌어졌던 턱이 점점 다물어진다. 벌레가 식사하고 고기를 뜯어 먹기 위해 내밀었던 날카로운 이빨은 안으로 말려들어 가고, 뚝뚝 흐르던 침은 뚝 그쳐서 떨어지는 것을 멈춘다. 그리고 자신이 언제 포식하려 했냐는 듯 가면에 완벽히 수납되고, 가면은 매끈한 형태로 변화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매끈하게 변화한 가면에 얼룩이 생기기 시작한다.

       마치 물이라도 샌 것처럼.

       혹은 출혈이 일어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가면에 얼룩이 생겨난다.

         

       하지만 그 얼룩은 새빨간 색이 아닌 노란색.

       그것도 빛에 비치면 광택을 발하는 황금의 색상이었다.

         

       황금의 색상은 점차 번지고 퍼져나가며 가면의 색을 물들였고, 가면을 번쩍번쩍 빛나는 황금의 색상으로 코팅했다.

         

       그렇게 코팅이 된 가면은 벌레와 사람을 반반 섞어놓은 듯한 형태.

         

       고대 종교에서 사용했을 법한 신비로운 형상의 가면이었다.

         

       “관심이, 있다. 그래, 좋은 일이지….”

         

       신비로운 형상의 가면.

       금 특유의 사람을 현혹하는 빛을 발하는 가면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목소리는 소가 우는 소리 같기도 했고, 벌레떼가 울리는 듯한 소리가 섞여 있는 것이기도 했다.

         

       파리떼와 함께 걸어오는 소가 길게 울음을 내뱉는다면 이런 소리가 나지 않을까?

         

       뒤바뀐 가면 내부, 굴곡진 형태는 목소리를 반사하며 울리는 듯한 소리를 만들었고, 관악기처럼 꼬인 부분들은 소가 우는 듯한 소리와 벌레떼가 우는 듯한 소리를 같이 나게 했다.

         

       그렇게 진성의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귀에 거슬리면서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라.

       저절로 신경을 집중시키고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는 것이라.

         

       빙의술사 역시 그 의도에 따라 얼굴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더란다.

         

       다만 그 얼굴을 바라보는 것은 빙의술사 혼자가 아니었으니.

         

       이는 빙의술사가 하나의 몸을 갖고 있으되 혼자 온 것이 아닌 까닭이었다.

         

       “그렇습니까?”

         

       빙의술사의 피부에서 액체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점성이 있는 투명한 액체는 마치 살아있기라도 하듯 중력을 거스르고 빙의술사의 목덜미와 얼굴을 반대로 타고 올라갔고, 그렇게 타고 올라간 액체는 점차 반투명하게 변해가며 빙의술사의 얼굴에 달라붙었다.

       그렇게 달라붙은 액체는 다시 투명하게 변해갔고, 상온에서 기화되며 수증기처럼 변해 빙의술사의 얼굴에 안개처럼 자리 잡았다.

       안개처럼 넓게 퍼져나간 수증기는 다시 반투명하게, 그리고 다시 투명하게 변하기를 반복하면서 형태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 형태는 사람의 얼굴과 똑 닮아있었다.

         

       ‘엑토플라즘(Ectoplasm).’

         

       영력(靈力)을 쉽게 다루기 위한 매개.

         

       영력(靈力)을 물질적 매개를 통해 구체화를 이루는, 귀신을 다루는 주술사들의 수법이다.

       엑토플라즘을 사용하면 악귀를 부리지 않고도 영력을 물리적 에너지로 치환할 수도 있었고, 단련되지 않은 몸으로도 악귀가 행할 수 있는 강력한 물리력을 발휘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편리함에는 반드시 대가가 존재하는 법.

         

       저 엑토플라즘은 그냥 귀신을 부리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위험성을 갖고 있었다.

         

       영력을 매개로 사용하는 만큼 귀신들이 간섭하기 쉬워지고, 그에 따라 귀신에게 홀리거나 몸을 빼앗기게 되는 위험성이 대폭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그 때문에 한때 서양에서 유행처럼 사용되었다가 사용하는 이가 뚝 끊겨버리게 된 주술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빙의술사는 그 엑토플라즘을 망설임 없이 사용하고 있었다.

       마치 자기 몸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사람의 몸에 있는 구멍에서 엑토플라즘을 쏟아내서 사용하는 방법 대신에 모공을 통해 엑토플라즘을 뽑아내 사용했고, 그 액체를 자신의 수족처럼 부려 얼굴로 움직이게 했으며, 엑토플라즘의 농도를 자유자재로 조절하였고, 액체에서 기체로 자유자재로 형태를 바꾸었다.

       거기에 더해 영력의 매개로 사용하는 것을 넘어 그 안에 귀신을 깃들게까지 하였으니.

         

       그 행사 하나하나가 앞에 대(大)라는 칭호를 붙이기에 모자람이 없을 주술사임을 짐작하게 했다.

         

       “제가 관심을 두는 것이 좋은 일이라니, 그것은 기쁜 소식이로군요.”

         

       얼굴이 변화한다.

       남자에서 여자로.

       소년에서 노인으로.

       주름이 자글자글 맺힌 얼굴로 변화하고, 코가 높아졌다가 낮아진다. 눈매가 치솟았다가 쳐지고, 입매가 뒤틀렸다가 조그맣게 변하고, 쩍 벌어졌다가 턱 아래까지 쭈욱 늘어지기도 한다. 얼굴 가죽이 경련하듯 움직이기도 하고, 환영처럼 여러 얼굴이 덧씌워졌다가 허무하게 사라져버리기도 한다.

         

       담배 연기가 만들어내는 환상처럼.

       빛이 산란하며 잠깐 만들어낸 공연이라도 되는 것처럼.

         

       빙의술사의 얼굴을 도화지 삼아 수많은 얼굴이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수면 위로 올라갔다가 아래에서 잡아채는 손길에 의해 다시 심해로 가라앉고, 또 다른 얼굴이 떠올랐다가 다시 발을 붙잡혀 끌어내려진다.

         

       지옥.

         

       빙의술사의 얼굴에는 지옥이 있었다.

         

       수많은 영혼이 허우적대며 빠져나오기를 갈망하지만, 빠져나올 수 없어 한 모금의 공기만을 머금고 가라앉았다가 떠오르기를 갈망한다.

         

       그 한 모금의 공기가 너무나 달콤해서.

       언젠가 빠져나갈 수 있으리라는 헛된 희망처럼 자리를 잡고 있어서.

         

       그래서 영혼들은 포기조차 하지 못한 채, 마모되어가는 정신을 붙잡고 오직 소망에 의지한 채 풍화되어 사라져버릴 그 날까지 고통을 받아야 하는 지옥이 바로 그곳에 있었다.

         

       “저는 죽음입니다.”

         

       그리고 그 지옥은 말한다.

         

       나는 죽음이다.

       나는 피할 수 없는 필멸(必滅)이다.

       나는 기계적인 운명이고, 예외 없이 찾아오는 존재이다.

         

       “저는 지옥에 죄인을 수집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빙의술사는 하나의 문장을 여러 목소리로 말했다.

         

       “죄지은 자는 지옥에서 영원한 고통을 받아야 합니다.”

         

       성대가 불타오르고 있는 사람의 목소리로, 물에 잠겨가는 사람의 목소리로, 찢어지는 여자의 목소리로, 노쇠해 버린 노인의 목소리로, 절절한 소년의 목소리로.

         

       “악인은 마땅한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하고, 그것은 죽은 후에라도 이루어지는 것이 마땅합니다.”

         

       푸른 눈동자가 진성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푸른 눈동자의 반대편, 또 다른 눈동자가 번뜩인다.

         

       그 눈동자는 푸르름은 없었지만 붉은 광채가 있었다.

         

       불티가 눈동자 안에서 맴돌고 있다.

       눈동자 깊숙한 곳에서 불꽃이 타오르고, 그 불꽃은 타올랐다가 사그라들기를 반복하며 일렁인다. 일렁이는 불꽃은 눈동자 속의 광채를 일그러뜨리고, 신기루라도 만드는 듯 자신의 빛을 사방으로 흩뿌린다. 불꽃 일부를 조각내고, 그 불꽃은 불티가 되어 하늘하늘 움직이며 허공에 배회한다.

       배회하는 불티는 한때만을 빛내고 사라지고, 사그라들고, 존재를 감춘다.

       그렇게 흩날리는 잿더미가 되어버린 불티는 움직이며 다른 재와 뭉쳐져 형상을 이루고, 다른 불티로 다가가 조형된다.

         

       그 형상은 불꽃에 달려드는 벌레의 떼와 같았음이라.

         

       “죄인, 죄인이라.”

         

       빛을 갈구하고 번성하기를 갈구하는 벌레를 담은 눈은 죽음을 바라보았다.

         

       “그 죄인은 누구인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여러분.
    좋은 메리 크리스마스 이브입니다…!
    성 니콜라오와 엘프들의 축복이 함께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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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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