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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93

   공허의 추종자가 자발적으로 말해준 정보를 따라 아카데미 안에 발을 들인 유덴은 문 너머에 가득 차 있는 공허의 권능을 느끼고서 눈빛에 날을 세웠다.

   

   그 녀석이 말한 게 맞긴 한가 보네. 특유의 기운이 저 안에서 강하게 느껴지는 걸 보면 이 곳이 계획의 중점인 건 분명해.

   

   악신이 지닌 기운을 떨치기 위해 유덴이 마력을 몸 위에 두르려던 그 순간 따스한 기운이 그녀를 감싸며 주변에 머물던 공허의 기운을 물러나게 만든다.

   

   “이야. 역시 성녀님이네요. 성직자랑 몇 번인가 일을 해봤지만 이 정도로 깔끔한 건 처음이에요.”

   “이런 것밖에 하지 못하는 사람이니까요. 할 수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해야죠.”

   “이런 것 밖에라.”

   

   다른 성직자가 듣는다면 자괴감에 빠질 말을 무척 태연하게 하시네. 저 말이 진심이라는 게 더 악질적이야.

   

   성녀님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저런 말을 했다면 진심으로 질투하고 비방하는 사람이 여럿 나왔을 걸.

   

   그런 생각을 하며 가볍게 웃음을 흘린 유덴은 살짝 굳은 얼굴을 한 조이에게 말을 걸었다.

   

   “파트란 영애. 계속 진짜랑 가짜를 구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죠.”

   

   조이는 앞으로 나아가면서 지옥의 꿈을 꾸는 이들을 살폈다.

   

   미간을 찌푸린 채 앓는 소리를 내는 이들은 악몽에 빠진 불쌍한 사람처럼 보였지만 눈으로 보이는 것을 너무 신용해선 안 된다. 저 중에 누가 함정일지 모르니까.

   

   조이가 신경을 곤두세우던 그 때 유덴이 갑작스레 자신의 검을 휘둘렀다.

   

   붉은 색의 오러를 휘감은 검이 허공을 가르지만 돌아오는 것은 없다.

   

   “검성님?”

   “뭔가가 공격해왔어.”

   “네?”

   “…음. 젠장. 들리는 것도 없고 보이는 것도 없으니 뭐라 설명하기가 어렵네.”

   

   검성의 말은 정신 나간 사람의 헛소리와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말을 한 당사자가 검성이 아닌 용병 나부랭이였다면 자연스레 흘려들었을 거란 생각이 들 정도로.

   

   허나 이번에 말을 한 사람은 검성이었고 수많은 역경을 뛰어 넘어 온 그녀의 감각은 누구보다도 믿음직스러운 존재였다.

   

   “잠시만요.”

   

   조이가 자신의 시야에 마법을 펼친 순간 공허의 권능이 사라지며 짧게나마 진실된 모습이 드러난다.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화살 촉. 저 멀리에서 활을 들고 있던 공허의 추종자가 다급히 도망치는 모습.

   

   유덴의 직감은 옳았다. 짐승보다 날카로울지 모르는 그녀의 직감이 적의 공격을 막아낸 것이다.

   

   허나 그 진실된 모습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공허의 권능으로 가득 찬 공간에서 그에 대응하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신경을 갉아먹는 일이었다.

   

   “곤란하네. 막무가내로 진행하긴 좀 위험할 것 같은데. 파트란 영애. 계속 마법을 계속 유지할 순 없습니까?”

   “…죄송합니다.”

   “성녀님께선?”

   “일단 공허의 권능을 최대한 물리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발을 멈춘 조이는 신경을 곤두세우고서 루시가 건네 줬던 던전 공략에 관한 책을 떠올렸다.

   

   그 책은 단순히 던전 안을 나아가기 위한 정보가 적혀 있는 책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던전을 만들어 낸 이가 직접 던전을 공략하는 방법을 서술해놓은 책에 가까웠지.

   

   그걸 여태까지 수백 번도 넘게 정독하며 머릿속에 새긴 조이는 공허에 침식당한 소울 아카데미에서 필요한 정보들을 어렵잖게 상기했다.

   

   일단 여기는 공허의 악신이 만들어낸 던전이나 마찬가지야.

   

   아직 완벽히 침식된 건 아니라 마물이 튀어나오진 않겠지만 공허의 추종자들이 지닌 힘은 평소보다도 강대할 테고 그들과 싸우는 와중에 쉴 새 없이 진짜와 가짜를 판별해내야 하겠지.

   

   지난 번 숲을 공략할 때는 루시가 모든 일을 해줬어.

   

   그렇기에 가짜를 공격해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없었지. 그렇지만 지금 우리 옆에는 루시가 없어.

   

   그러니까 내가 해야 해.

   

   최선은 항시 마법을 펼치면서 환각을 없애버리는 거겠지만 그럴 순 없어. 내 마력량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이 일이 해결되는 데에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지 모르는 이상 최대한 효율적으로 움직여야 해.

   

   ‘아무것도 아닌 개허접은 다른 걸 흉내내는 것밖에 못해. 자기가 직접 무언가를 만들기엔 너~무 무능하거든.’

   ‘그러니까 그 허접을 상대할 땐 몇 가지 절차만 기억하면 돼.’

   ‘먼저 해야 할 건 무능한 허접 찌질이가 뭘 따라하려고 하는 지 알아내야 해. 무척 쉬울 거야. 찌질이가 멋진 체를 한다고 찌질이가 아니게 되는 건 아니잖아.’

   

   공허의 악신은 무얼 흉내내서 이 곳을 만들었는가. 조이는 주변의 환경을 살피며 머릿 속에 정보를 정리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건 아카데미의 모습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거야.

   

   벽도. 장식도. 잠들어 있는 학생들도. 모두 다 그대로인 걸.

   

   들려오는 소리도 마찬가지야. 이 곳은 이상할 정도로 고요해.

   

   이 안에서 공허의 추종자들이 다급히 돌아다니고 있을 게 분명한데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아.

   

   오감의 교란.

   

   어둠의 악신이 만들어내는 던전.

   

   ‘뭘 흉내냈는지 구분해냈다면 이제 그 허접한테 자기가 얼마나 무능한지 알려줄 시간이 된 거야. 아무것도 아닌 개허접 녀석은 따라하는 것도 제대로 못 하거든.’

   

   공허의 악신이 흉내내는 던전은 본래 있던 던전의 하위호환이다.

   

   어둠의 악신이 만들어낸 던전을 흉내냈을 경우에 생기는 빈틈은 모든 감각이야.

   

   얼핏 보면 감각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집중하고 있으면 모든 감각이 나아있단 걸 알게 되지.

   

   그 중에서 가장 빈틈이 큰 건 후각.

   

   “검성님! 자신의 감각을 믿으셔도 됩니다! 특히 후각!”

   “대충 무슨 소린지 알겠네요!”

   

   조이의 이야기를 들은 유덴은 자신의 직감에 확신을 가지고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흐릿하기만 했던 감각들이 점차 선명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의 오감은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어둠을 흉내낼 뿐인 공허는 검성의 감각을 완벽히 배제하지 못했다.

   

   “페이비! 공허의 권능을 밀어내는 게 아니라 그 결집을 무너트린단 생각으로 신성 마법을 펼쳐주세요!”

   

   유덴이 공허의 추종자들이 펼치는 공격을 막아내는 동안 조이는 페이비에게 어찌 대응해야 하는지 설명하고자 했지만 이 과정은 수월하지 못했다.

   

   문제는 그녀가 성직자가 아닌 마법사라는 사실이었다.

   

   마법의 논리밖에 알지 못하는 조이는 자신의 지식을 성직자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풀어낼 수 없었다.

   

   “그러니까. 이게. 상대의 마법에 개입하는 것처럼.”

   “무슨 말씀을 하시는 지 이해했습니다.”

   

   성직자의 입장에서 다소 괴악하다 싶은 설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페이비는 부드러운 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요한 주교의 아래에서 배움을 얻으며 완숙해진 그녀는 단순한 성직자가 아니라 신성 마법을 마법으로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이런 형식을 말씀하시는 거죠?”

   

   신성을 다룬다는 부분에 있어서는 주신의 사도인 루시마저도 경탄을 내비칠 만큼 경이로운 능력을 지닌 페이비는 조이가 이야기한 것을 순식간에 실현시켜 보였다.

   

   그러자 주변의 어둠이 흐려지며 그 아래에 깔려 있던 진짜 모습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걸 계속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 공허의 권능이 점차 강해지고 있어요.”

   “성녀님!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대략 10분 정도는.”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두 분. 뒤에 바짝 따라 붙으세요! 다 박살내면서 지나갈 테니까!”

   *

   

   꼬마아이의 손에 이끌려 정체 모를 장소로 이동한 아서가 도착한 곳은 루시와 함께 돌아다니던 복도와 닮은 어딘가였다.

   

   “여기는?”

   “자격을 검증하기 위한 시련의 장소. 이 끝에 도착하면 마법진을 제어하기 위한 권한을 얻을 수 있다.”

   “어떻게 하면 되지?”

   “그건 네가 알아서 할 일이다. 시련이 괜히 시련인가?”

   

   꼬마아이가 팔짱을 낀 채 당당하게 이야기하자 아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상황이 이토록 다급한데 그런 고집을 부려야겠나?”

   “이건 고집이 아니라 절차다. 절차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권한을 얻을 수 없어.”

   “그렇다면 어찌 공략해야 되는 지라도 말해봐라. 한 시 빨리 이를 넘어서야 할 것 아닌가.”

   “생각을 해라. 멍청한 것아. 그게 됐으면 내가 널 바로 이 너머까지 보내줬겠지.”

   

   꼬마아이가 혀를 차는 걸 보던 아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이해했다.

   

   저 녀석의 표정이 무척이나 심각한 걸 보면 농담 삼아서 하는 이야기는 아닐 테지.

   

   하아. 시련이라.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벌써부터 막막하군.

   

   가만히 서 있어봐야 아무것도 되지 않을 테니 일단 저 문 너머로 가볼까.

   

   아서가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가기 무섭게 저 알아서 문이 닫히고 바깥으로 나가는 길이 자취를 감춘다.

   

   이 안으로 들어왔다면 돌아갈 수 없단 건가. 어차피 뒤로 물러 설 생각은 없었으니 상관은 없다만서도.

   

   그렇게 앞으로 발을 내딛은 아서는 길의 모습을 확인하고서 잠시 발을 멈췄다.

   

   “설마. 그 시련이라는 것이 던전을 공략하는 일인가?”

   

   …아니겠지? 마법진을 다룰 자격을 검증하는 데에 던전을 공략하는 실력이 왜 필요하단 말인가.

   

   설마하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젓던 아서였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의 의심은 현실이 되어갔다.

   

   길을 찾는 방식.

   

   사이사이에 존재하는 함정.

   

   그의 앞을 가로 막는 여러 마물들.

   

   그 모든 것이 던전의 구성과 닮아있었던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확신을 품게 된 아서는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과연. 이래서 루시 알른이 내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던 건가.”

   

   이제는 이해가 되는 구나. 마법진을 다루기 위한 시련이라는 것이 던전을 공략하는 일이라면 굳이 마음의 준비를 할 필요도 없지.

   

   그 녀석에게 지겹도록 배운 것이 던전을 공략하는 일인데 무얼 준비를 하겠는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 평소에 허리 건강에 주의하세요.
앉아도 서도 누워도 아프니까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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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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