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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93

        

         

       “지금부터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배회하고 방황하는 빙의술사는 진성의 물음에 답했다.

       당신의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마치 고대 이집트의 사후세계에서 그러하였듯, 정의의 여신이 천칭으로 죄의 무게를 셈하듯 자신 역시 그러해야 한다고.

         

       그리하여 절규하는 귀신들의 얼굴을 품은 채, 빙의술사는 주물을 꺼내어 살아있는 사람들에게로 겨눴다.

       빙의술사의 온몸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손을 뻗고 절규하고 몸부림치는 귀신들이 그러는 것처럼, 무언가를 갈구하듯 팔을 뻗어 진성을 가리켰으며, 다른 한 팔로는 바닥에 쓰러진 이제순을 가리켰다. 그리고….

         

       울컥.

         

       빙의술사의 입에서 반투명한 물이 울컥 튀어 올랐다.

       마치 하수구가 역류라도 하는 것처럼.

       그렇게 역류해서 뿜어져 나오는 액체는 꿀렁꿀렁 바닥에 쏟아졌는데, 바닥에 어느 정도 머무르기가 무섭게 마치 세상의 규칙을 어기기라도 하려는 듯 역행하기 시작했다.

       위에서 아래가 아닌,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흐름.

         

       세상의 법칙을 정면에서 부정하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그렇게 솟구친 액체는 꿀렁꿀렁 징그럽게 움직이며 빙의술사의 어깨 부근으로 움직였고, 뱀이 그러하듯 스르륵 그의 등 쪽으로 넘어가 자취를 감췄다.

         

       파아악.

         

       그리고 그렇게 자취를 감춘 액체는 팔이 되었다.

       빙의술사의 오른팔과 똑 닮은 형태로 만들어진 팔은 태어난 기쁨을 만끽하기라도 하는 듯 허공을 쥐기 위해 손아귀를 쥐었다 피기를 반복하였고, 이윽고 반투명한 액체를 뚝-뚝- 땅바닥에 흘리면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움직인 팔이 가리키는 곳은 차이네가 있는 곳이었다.

         

       쓰아악-

         

       차이네가 있는 곳으로 손이 쫙 펼쳐졌다.

       하얀 손바닥은 바람이 스치고 지나가기라도 한 듯 날카로운 한 줄기의 상처가 생기고, 그 상처에서 피 대신에 엑토플라즘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방울지며 흘러내리는 엑토플라즘은 핏방울을 흉내를 내기라도 하는 듯 점차 붉은색으로 변하고, 붉은색은 땅에 채 떨어지기도 전에 다시 팔에 흡수되어 자국도 남기지 않고 그대로 사라진다.

         

       그리고 상처는.

       일(一)자로 긋고 지나간 상처는 점점 벌어지고, 벌어진다.

       누군가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상처의 양옆을 쫘악 벌리기라도 하듯 천천히 벌어지고, 그렇게 벌어진 눈에는 아까 사라졌던 붉은색이 자리를 잡는다.

         

       붉은색이 하나, 둘.

       실지렁이가 꿈틀대듯 상처의 안이 헤집어진다.

       전기라도 되는 것처럼 한 방향을 향하면서도 옆으로, 옆으로, 옆으로.

       옆으로 번져나가며 실지렁이는 춤을 춘다.

       마치 자신이 실핏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고명한 화가가 붉은색 물감을 묻히고 사람의 눈에 있는 실핏줄을 그리기라도 하는 듯.

         

       그렇게 벌어진 상처는 점차 사람의 눈과 흡사하게 변한다.

         

       그렇게 그려진 실핏줄은 중간에 빈 곳을 남겨둔 채 자리를 잡고, 비어 있는 공간에는 자그마한 점이 생긴다. 달걀을 깨뜨렸을 때 보이는 불그스름한 점이라도 되는 것처럼, 옥에 티라도 되는 것처럼 갑작스럽게 솟아난 점은 점차 크기를 키워가고….

         

       또르륵.

         

       눈알이 된다.

         

       붉은색 눈.

       반투명한 엑토플라즘을 흰자위로 삼고, 피를 흉내 내는 엑토플라즘을 실핏줄로 삼으며, 손바닥에 눈알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빙의술사의 다른 손바닥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스아악.

         

       바람 속에 숨은 요정이 칼을 들고 사람의 피부를 긋고 지나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손바닥에 기다란 상처가 생겼고, 그 상처는 점차 벌어진다. 가죽과 살을 가지고 있음에도 핏방울 대신에 엑토플라즘이 흘러내리고, 그 엑토플라즘은 피를 흉내 내는 색상으로 변하며 다시 손바닥에 흡수가 된다.

         

       또르륵.

         

       그리고 마찬가지로, 눈알이 튀어나온다.

         

       손바닥 하나에 눈알 하나.

         

       그렇게 총 세 가지의 눈이 손바닥에 나타났다.

         

       세 개의 팔.

       세 개의 눈.

         

       빙의술사는 손바닥에 만들어낸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각각의 사람을 바라보았다.

         

       왼손은 박진성을.

       오른손은 이제순을.

       등 뒤에서 튀어나온 손은 차이네를.

         

       눈알은 나자르 본주(Nazar Boncuğu)라도 되는 것처럼 강렬한 시선으로 차이네를 바라보았다.

       눈알에 비치는 차이네는 옛 저녁에 기절한 상태였으며, 감긴 눈꺼풀 안에는 까뒤집힌 눈알이 자리 잡고 있었다. 게다가 숨소리마저도 기절한 사람 특유의 것이며, 힘이 쫙 풀린 몸 역시 그러한지라.

       본래 머리에 달린 눈으로 보기에도, 손바닥에 새로 생긴 눈으로 보기에도 차이네는 기절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정신을 잃었다고 평을 피해 갈 수는 없는 법이니.

         

       “향기는 있으되 뿌리를 내릴 토양을 잘못 만나 고생하고 있군요. 사람인지라 죄가 없을 수는 없으나, 그것은 악인이라고 하기에는 한참 모자란 것일 것입니다.”

         

       가장 먼저 빙의술사가 평한 것은 차이네였다.

         

       악마의 눈처럼 징그럽게 튀어나온 눈은 차이네에 대한 정보를 읽어내었고, 차이네가 살아가면서 행해왔던 업(業)을 극히 일부나마 알게 해주었다.

         

       이는 주술로 인한 것이며, 주물로 인한 것이라 전능하다고 하기에는 분명히 부족한 것이었다.

         

       사람이 어찌 업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사람의 일생을 읽을 수 있을 것인가.

         

       다만 다른 것을 비교해보고, 견주고, 평하는 것은 어린아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이라.

       멍청한 짐승조차도 할 수 있는 너무나 간단한 것이라.

         

       그래서 빙의술사는 감히 다른 사람의 일생을 평하고 업을 말할 수 있었음이다.

         

       이는 저울에 물건을 올리고 반대편에 추를 올리는 것과 같은 것이요.

       구멍을 뚫어놓고 그것을 통과하는 이와 통과하지 못하는 이를 가리는 것과 같았음이다.

         

       하여 빙의술사는 말했다.

         

       “저 소녀는 지옥에 가지 않습니다.”

         

       차이네는 죄인이 아니다.

       그렇기에 차이네를 수집하지 않겠다고.

         

       그리고 두 번째로 평한 것은 이제순이었다.

       벌레로 뒤덮인 채 기절해 있는 이제순은 앞서 평했던 차이네와 마찬가지로 기절해 있었다.

       하지만 차이네와 다른 점이 있다면, 차이네가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기절을 하였으되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과는 달리 이제순은 몸에 이상이 생겨서 기절을 한 상태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참으로 대단하게도, 생명에는 큰 지장이 없는 상태였다.

       벌레들이 뜯어 먹어 피를 줄줄 흘려야 정상이거늘, 이제순은 지금 피를 단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있었다.

         

       벌레들이 만들어낸 상처의 근육과 혈관이 강하게 수축하고, 수축하지 못한 곳은 벌레가 뿜어낸 산에 의해 지져지고 녹아내렸다.

       강렬한 고통을 동반하는 지혈이었다.

         

       또륵.

         

       눈알이 굴러가며 이제순을 바라보았다.

       악마처럼 사납게 이제순을 바라보던 눈동자는 이내 좌우로 흔들렸고, 갈망하던 것을 찾기라도 했다는 듯 반개하며 호선을 그렸다.

         

       손바닥에 그려진 눈웃음은 말하고 있었다.

       저것이 바로 네가 이곳에 온 이유다.

       죄인의 냄새를 맡아 발걸음을 옮긴 것이, 바로 저자를 수거하기 위해서다.

         

       “죄인입니다.”

         

       눈이 말했다.

       저자는 죄인이다.

       저자를 안에 품어야 한다.

       닭이 품에 알을 품듯이.

       저 죄인 역시 몸 안에 품어야만 한다.

         

       또륵.

         

       사람 둘을 보았다.

       하나는 죄인이 아니었다.

       하나는 죄인이었다.

         

       그렇다면 남은 하나는 어떠한가?

         

       죄인을 쓰러뜨린 주술사.

       죄가 없는 소녀를 구한 남자.

         

       저 사람은 과연 죄인인가, 죄인이 아닌가?

         

       왼손의 눈알이 움직였고, 박진성을 직시하였다.

       사람을 현혹하듯 찬란한 빛을 뿌리는 황금 가면을 쓴 채, 몸에 갑각을 두른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남성을 바라보았다.

         

       “흠?”

         

       바라보았는데….

       뭔가 이상했다.

         

       빙의술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진성을 바라보았다.

       왼손의 눈알로, 머리에 달린 두 눈으로.

       그리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오른손과 자신이 만들어낸 3의 손에 달린 눈동자까지 동원해서.

       총 5개의 눈으로 진성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시선을 보내었고, 진성의 존재를 저울에 올리고, 저울의 무게를 재려 하였으나….

         

       “하하.”

         

       빙의술사는 우측으로 살짝 기울어진 황금 가면을 바라보았다.

       아니,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를 보았다.

         

       남자의 눈동자에 피어오르는 불꽃.

       불꽃 옆에서 방황하는 자그마한 불나방들.

         

       남자는.

       저 남자는.

         

       “당신은 누구십니까?”

         

       빙의술사는 허탈한 듯,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진성을 바라보았다.

         

       “당신은 저울에 올라갔습니다.”

         

       죄를 재는 천칭.

       죄를 판결하는 재판.

       지엄한 재판관의 시선.

         

       진성은 그 대상이 될 수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존재하고 살아있었으니까.

       그렇기에 그는 빙의술사가 평할 수 있는 대상이었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볼 수 있지만 가늠할 수가 없다.

       존재하는 것은 알지만 확신을 가질 수가 없다.

         

       가까이하려 해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신기루가 저런 느낌일까?

       뒤로 가더라도, 앞으로 가더라도 똑같은 모습, 똑같은 거리를 유지하는 신기루가 저런 형태이지 않을까?

         

       신기루는 실존하는 것을 비추는 거울이자 허상이기에 존재함을 알 수는 있으나….

       그렇지만.

         

       저것은 분명히 존재하는 것임에도 신기루처럼 느껴지는 까닭은 무엇인가?

         

       “당신에게는 업이 존재합니다.”

         

       업이라는 것은 살아있는 모든 것이 가지는 것이다.

       치열한 생(生) 자체가 업(業)이니까.

         

       하지만 어째서일까.

         

       업이 있음에도 가늠할 수가 없다.

       저것 역시 신기루처럼 존재함을 알 수 있을 뿐, 제대로 알 수가 없다.

       터무니없이 작게 보이기도, 아예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째서일까?

       허상을 본다 한들 이런 느낌은 들지 않을 터인데.

         

       어찌 사람의 업이 이런 느낌일 수 있단 말인가?

         

       “당신, 사람은 맞습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안녕하세요 Ilham Senjaya 님!
    해피 메리 크리스마스 잘 보내셨나요!
    산타의 축복이 가득한 밤입니다!

    Ilham Senjaya 님께 연말의 끝자락이 다가오고 있다는 아쉬움을 메울 정도의 커다란 선물이 왔기를, 혹은 오기를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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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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