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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94

    <494 – 선물 받는 아이>

     

    오크노디가 금지기술 <호문쿨루스 배양기술>로부터 탄생했을지도 모른다는 가설.

    이 비밀이 교장의 귀에 들어가면 그녀는 틀림없이 죽는다.

    세계평화를 위해서라면 귀문을 몸에 품은 불길한 아이는 죽어 마땅한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오나 소승은 저 아이를 보아왔습니다.’

     

    때로는 착한아이.

    때로는 나쁜아이.

    때로는 무서운아이.

    때로는 친절한아이.

    타인을 위태롭게 만들기도 하지만 스스로도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는 그녀.

    양면성을 지닌 그녀를 명호스님은 죽어도 좋은, 언젠가 사상 최대의 타락을 벌일 대참사의 주범이라고만 단정 지을 수 없었다.

     

    -와, 나비다!

    -와, 데미그라고스 풍뎅이다!

    -와, 슈슉슥삭벌레다!

     

    주말마다 잠자리채와 채집함을 들고 곤충채집을 다니는 천진난만한 아이.

     

    -모브, 길로틴의 날을 갑옷으로 막아내는 훈련 정도는 하지 않으면 나중에 어디 가서 교수형에 당할지도 몰라요. 기를 갑옷에 씌우고 경도를 올려요!

    -티토, 조명대의 빛을 꼭 조명을 통해서만 발휘할 필요가 있을까? 눈에서도 번쩍하고 빛 뿜으면 엄청나게 강해 보일 거야!

    -싱, 잎사귀가 바닥에 떨어지기 전까지 여덟 번을 베는 것도 좋지만 베지 않고 검압으로 하늘에 띄우는 훈련도 재밌어요. 이거 하면 민첩경험점 오름!

     

    자신보다 약한 친구나 동기들의 훈련을 봐주는 일을 적극적으로 즐기는 아이.

     

    -오크노디. 잡채고르케를 만들려고 하는데 속재료가 부족해. 같이 선배들의 경작지를 야습하지 않을래?

    -오크노디. 너는 좋아하는 사람 없어? 있으면 행동강제의 계약서라도 하나 빌려줄까?

    -오크노디, 들었어? 3학년 선배들이 공중결투를 벌인 자리를 지나다니면 선배들이 공중에서 떨어뜨린 아이템을 찾을 수 있대. 가서 줍자!

     

    친구들도 그런 오크노디를 좋아하고 순수한 마음에 호의를 베푼다.

    이런 인덕을 잠재적인 폭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세상에서 지워 없애는 것을 그는 인정할 수 없었다.

     

    “당신과 오크노디에게 제 비술을 전수해드리겠습니다. 이 조건으로 만족하십니까?”

    “네 비술이라면… 설마 <명경지수> 말인가.”

    “본래라면 4학년 학생들 사이에서도 특별한 자질을 지닌 학생들에게만 큰 시간을 들여 습득할 수 있도록 공을 들이는 비술이지만 두 분에게는 지금 즉시 제 수행의 일부를 포기해서라도 도와드리겠습니다.”

     

    커다란 양보임에도 디스트로이어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널 믿어야 할 이유가 되지는 못해.”

    “과연 용사파티의 도적을 만족시키기는 까다롭군요. 비술의 지식과 쌓아온 공력으로도 만족할 수 없다면 그 이상의 무엇을 제게서 가져가실 수 있습니까?”

    “신성.”

    “…!”

    “모든 신은 뜻을 대행할 사도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서방과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격의 소멸을 겪은 원시천존과 석가, 동방의 대신격들은 명호, 오직 당신에 의해서만 그 이름을 유지하고 있지.”

     

    명호스님은 그 자체로는 대단한 힘을 지닌 교수는 아니었다.

    오히려 재단의 크루즈선에서 살해당했다던 젊은 교수 레이브보다도 못한 전투력을 지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짊어진 사명과 역할은 여느 교수 못지않게 막중하고 심각했다.

     

    “서방의 주류 24신격은 동방의 대신격을 갈가리 찢어발기고 해체하여 그들이 관장하던 영역을 자신들의 것으로 나누어 가졌지. 그러나 그 이름이 허물어지지 않도록 굳은 신앙을 바치는 최후의 사도가 지상에 남아있다. 그게 바로 당신이 아닌가?”

    “빈승의 입으로는 단 한 번도 드러낸 적이 없는 비밀이 참으로 쉽게도 누설되는군요. 교장입니까?”

    “그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묻더라도 분명 답하지 않겠지. ‘모르는 편이 더 재밌다’라고 품평이나 할 작자이니.”

    “동감입니다. 교장은 그런 인물이니. 독자적인 정보력 하나만으로 이만한 비밀을 파헤쳤다면 오히려 존경심마저 듭니다.”

     

    명호스님은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제 믿음을 어찌 이용하려 하십니까.”

    “이 그릇을 채워라.”

     

    디스트로이어의 품에서 나와 명호스님의 앞에 놓인 물건의 정체는 한 권의 서적.

    표지부터 내용까지 모조리 백지로 가득한 무명백서無名白書였다.

    정체를 모르는 이의 눈에는 지식의 전달이라는 목적을 조금도 완수하지 못하는 백서가 괴이쩍게 느껴지고 기이하게 보이는 선에 그칠 일.

    그러나 명호스님은 이 책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이 책은… 설마 스킬북?”

    “이 세상 모든 지식과 경험을 담을 수 있는 <공백의 신>의 권능으로 제작된 공백서. 읽는 이에게 깨달음을 전수할 확률이 극단적으로 상승하는 책이다.”

    “무엇을 채우길 바라십니까.”

    “천존과 석가. 둘 중 하나의 인연을 담아라.”

    “미친 짓이오!”

     

    억지로라도 존대를 하며 비위를 맞추던 명호스님이 분을 참지 못하고 얼굴을 붉히며 삿대질을 했다.

     

    “감당할 수 없는 깨달음의 격류는 인간을 백치로 만들어 죽일 수 있소. 상급무공의 스킬조차도 불구가 될 위험이 있거늘 신성이 담긴 심득서의 위험을 어찌 모른단 말인가!”

     

    기프트 아카데미의 도서관에서 <스킬북>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어떠한 깨달음이든 모두 담아낼 수 있는 무명백서, 텅 빈 스킬북은 어떠한 기술도 담아낼 무궁한 가능성이 역으로 위험해진다.

    자격 없는 자가 책을 쓰거든 책 한 권을 가득 채우지도 못해 인격이 통째로 뽑혀 나간다.

    반대로 자격 없는 자가 거대한 깨달음이 담긴 책을 읽거든 안면칠공에서 피를 쏟으며 쓰러지거나 반신불구가 되어 식물인간으로 전락한다.

     

    공백의 신은 <공백>을 다루는 자.

    인과의 과정을 <공백>으로 생략하는 신이다.

     

    과정 없는 결과를 허락하는 책.

    듣기에는 편리하지만, 과정이 없기에 한 번 읽으면 스스로 멈출 수도 없다.

    공백의 신의 권능이 담긴 스킬북을 한 장이라도 넘기는 순간, 독자가 맞이할 운명은 정해진다.

    습득하여 살아남던가.

    습득하지 못하여 반병신이 되거나 죽든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스킬북에 담긴 깨달음을 습득한다는 결과가 확정된 시점에서 인간의 빈약한 두뇌가 망가지든, 신체가 박살 나든 개의치 않고 결과만을 이루도록 만든다.

    병신이 되거나 죽은 이들은 능력 밖의 스킬북을 탐한 죄로 그런 잔혹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평범한 아카데미 학생이라면 아무리 신격을 상실한 옛신의 깨달음이라도 취하라 하지 않았다. 오크노디는 평범한 아이가 아니다.”

    “고작 11살에 불과한 아이에 불과하거늘 어찌 인명을 지니고 도박하려 한단 말이오!”

    “그 아이의 한계를 가늠하는 것은 스승인 내가 정할 일이다. 네가 걱정할 것은 오크노디의 명이 아닌 자신과 옛 신들의 명이다.”

     

    명호스님이 오크노디를 향해 쌓았을 유대 따위, 디스트로이어는 모른다.

    교장의 주구가 구축한 관계 따위, 알고 싶지도 않다.

    그런데도 그를 기회를 틈타 죽이지 않고 살리고자 교섭을 취하는 까닭은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다.

     

    ‘악을 멸시하거나 두려워 멀리하는 자, 스스로 기회를 놓치게 되리라.’

     

    혁명가를 멀리하여 하비의 지원에 실패한 결과, 그는 소꿉친구를 잃었다.

    오크노디마저 같은 최후를 맞이하게 만들 수는 없다.

    그렇기에 적으로 분류되는 명호스님을 이용하는 행위마저도 기꺼이 저지른다.

     

    “그것이 이유의 전부라면 소승은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이겠소.”

    “…진심인가?”

    “천존과 석가의 이름이 더럽혀지길 원치 않기에 주류 24신격의 속삭임도 견뎌왔소. 힘을 주겠다. 그러니 신격을 내게 바쳐라. 모시던 신을 잃은 이 초라한 승려가 신의 유해마저도 앗아가려는 자들의 속삭임을 하루에도 몇 번이나 듣는다고 생각하시오?”

     

    분명 별것 아닌 사내였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죽일 수 있었다.

    그런 명호스님이 죽음을 불사하는 순간, 기묘한 압박감이 디스트로이어의 영역을 밀어냈다.

     

    <명경지수>

     

    세상에서 가장 불리한 특화영역.

    맑고 고요한 마음만을 유지할 뿐인 영역.

    세상의 모든 신들의 속삭임으로부터 흔들리는 자신의 마음을 다잡기 위할뿐인 영역.

    그렇기에 역으로 그의 정신방어력은 가히 세계 최고봉에 손꼽혔다.

    <세계제일>이라는 이름표가 붙으면 뭐든지 수집하고 보는 악룡의 눈에 들 정도로.

     

    ‘생명을 앗아갈 수는 있을지언정 누구도 죽음을 각오한 그의 마음을 강제할 수 없다.’

     

    신들조차 뜻을 이루지 못하는 현실을 재밌다고 평한 교장은 명호스님을 거두어주었다.

    그렇기에 그가 진정으로 드래곤교장의 수족이 될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그런 작자에게는 협박이 아닌 설득이 필요했다.

     

    “전대용사 니알라토텝은 주류 24신의 신격을 훼손시키는 신에 반하는 행보를 벌였다. 그의 동료인 나 역시 신들의 미움을 받기는 마찬가지. 그렇기에 우리는 성녀들의 도움을 받지 못했고 암흑마나가 체내에 쌓여 용사행의 한계를 맞이했지.”

    “일리가 있군. 더 말해보시오.”

    “그런 내 제자인 오크노디 또한 신들의 미움을 사게 되는 건 당연한 순서다. 그녀의 자질을 탐내면서도 가질 수 없다면 부숴야 한다고 느끼는 신들이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겠지. 자네가 지닌 옛 신의 파편이 그렇듯이.”

     

    오크노디는 나와 같은 운명에 처할 것이다.

    그리고 너와 같은 운명도 맞이할 것이다.

    그 모든 이야기에 조금의 거짓도 없다는 사실은 오히려 두 남자를 슬프게 만들었다.

    무거운 짐을 짊어진 당사자이기에 더욱 잘 안다.

    아이 하나가 짊어지기엔 지나치게 가혹한 무게다.

    한 명도 아닌 두 명 몫의 짐이라면 더욱.

     

    “그러니 너의 사명의 반절을 넘겨라. 이것으로 너는 지켜야 할 것을 오크노디와 공유하는 몸이 되고, 내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명호스님은 탄식 끝에 고개를 조아렸다.

     

    “그리하겠소.”

     

     

    * * *

     

     

    그냥 친구 따라 놀러 왔을 뿐인 매스각키 황녀는 측정실 밖에서 들리는 대화에 눈만 데굴데굴 굴렸다.

     

    -천존의 권능을 탐내는 신격이 석가의 권능을 탐내는 신격보다는…

    -…타락의 신 안라게나 계약의 신 미트라는 오크노디에게 호의적일 수 있으니…

    -…결정하였소. 그 아이에게는 석가의 운명을 맡기도록 하겠소.

     

    이거 내가 들어도 되는 이야기 맞나…?

    교수님들 나 여기 있는 거 까먹은 거 같은데.

    들키면 입막음을 위해 살해당하진 않을까.

    나 어떡해.

    집 가고 싶어.

    엄마 보고 싶어.

    매스각키 황녀는 울적한 얼굴로 다리를 모아 웅크려 앉았다.

    황녀는 한참을 측정기 안에서 숨죽인 채 허접스럽게 공포에 떨어야만 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교수님을 걱정한 착한아이에게 주어지는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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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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