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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94

        

       이해할 수가 없다.

       세상의 이치라는 것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라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분명히 이질적인 면이 있는 것이었다.

         

       “이상하군요, 정말로 이상해요….”

         

       이상하고, 기이하고, 낯설다.

       그래, 낯설다.

         

       빙의술사가 본 박진성이라는 인물은 그야말로 ‘낯선 것’ 그 자체였다.

         

       살아가면서 마주할 수 없는 것을 보았을 때의 그 감각.

       난생처음 보았고, 앞으로도 보기 힘든 진귀한 것을 보았을 때의 그 기분.

       너무나도 다르고 이질적이기에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없는 데서 오는 그 뒤틀림.

         

       그 모든 것이 빙의술사의 감각을 자극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달라지는 것은 없겠군요.”

         

       하지만 낯설다는 생소한 감각을 느끼면서도, 빙의술사는 크게 흔들리지는 않았다.

       아예 흔들리지 않았다고 하면 그것은 거짓말이었겠지만, 그렇다고 그의 가치관이 뒤흔들릴 정도의 충격은 아니었다.

         

       그 이유는 그의 마음이 너무나 견고하다는 것이라.

       광기에 가까울 정도로 견고하게 쌓아 올려진 그의 마음의 성벽이 있었기 때문이라.

       그렇기에 잠시 흔들릴 수는 있으되 그것은 그 자리에 제 형체를 유지한 채 그대로 있었고, 어디 하나 부서지고 금이 간데없이 우뚝 서 있을 수 있었다.

         

       “안과 밖은 서로 교류하되 명확히 구분되어있는 법입니다. 마치 산 자와 죽은 자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기는 하지만 그 세계가 명확하게 구분이 되어 있는 것처럼, 저의 마음 역시 그러합니다.”

         

       그는 목적을 위해 살아왔다.

       도를 깨닫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고, 진리를 알기를 갈망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는 하나의 목적을 위하여 수행하고, 유황불 위에서 맨발로 걸어가는 것만큼이나 힘겨운 길을 망설임 없이 걸어온 사람이다.

         

       그렇기에 눈을 현혹하는 것이 있더라도, 미혹하려 하는 것이 있더라도.

       그는 그것에 빠지지 않을 수가 있었다.

         

       그것은 그 자체로 견고한 정신이요, 사라지지 않을 집념이었다.

         

       “황금의 번쩍임이 탐욕을 자극하려 한다고 할지라도 마음에 흔들림이 없다면 그것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것에 불과할 것이요, 보석이 찬란함으로 유혹한다 한들 눈으로만 즐기면 그것은 한때의 즐거움으로 남게 될 것이요, 아름다운 여인이 있다고 한들 현혹되지 아니한다면 그것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입니다.”

         

       견고한 정신은 말했다.

       눈앞의 존재가 어떤 본질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어떤 특별함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중요한 것은 그 자신이며, 자신의 목적이며, 자신의 가치관이라고.

         

       그리하여 빙의술사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기에 저는 당신을 저울에 올리고, 평하겠습니다.”

         

       눈앞의 존재가 어떻든 간에 자신이 할 일은 변함이 없다고.

       언제나 그러했듯 천칭에 올려 무게를 재고, 죄를 판별해야 한다고.

       죄인이 아니라면 아무 짓도 하지 않을 것이요, 죄인이라면 마땅히 온 힘을 쏟아 죽인 뒤 영혼을 자기 몸에 봉인시켜야 할 것이라.

         

       그렇기에 그는 평한다.

       사람인지 사람이 아닌 건지 모를 저 존재의 죄를 가늠한다.

         

       그리고.

         

       “저울에 올라갔고, 업이 있습니다. 하지만 미욱한 저로서는 당신을 판단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습니다.”

         

       그는 인정했다.

       자기 능력으로는 진성이 죄인인지 아닌지조차 알아볼 수 없다고.

         

       그리고 그 아리송함은 곧 판결로 이어지니.

         

       “Tout homme étant présumé innocent jusqu’a ce qu’il ait été déclaré coupable-”

         

       모든 사람은 유죄로 선고되기 전에는 무죄로 추정되는 것이니-

         

       빙의술사는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Déclaration des droits de l’homme et du citoyen)’의 일부를 읊었다.

         

       “판단컨대, 당신은 죄인이 아닙니다.”

         

       그렇게 판결이 내려졌다.

         

       차이네, 무죄.

       박진성, 무죄.

         

       이제순….

       유죄.

         

       판결을 끝마친 빙의술사는 시퍼렇게 빛나는 눈으로 진성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도저히 정체를 알 수 없는 주술사에게 물었다.

         

       “제가 죄인을 데려가도 되겠습니까?”

         

       질문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큰 의미를 가진 질문은 아니었다.

       데려가도 된다고 답해도, 데려가선 안 된다고 답해도 빙의술사가 해야 할 행동은 같다.

       어떤 대답을 듣는다고 한들 그가 저 죄인을 죽이고 영혼을 거두는 것은 반드시 일어날 일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가 던진 이 질문은 결론이 바뀔 만큼 큰 의미는 없으되 과정이 달라질 수는 있었다.

       진성의 대답에 따라 그의 협조를 받으며 편하게 영혼을 수확할 수도 있었고, 무관심 속에서 평소처럼 약간의 수고와 함께 영혼을 수확할 수도 있었으며, 적의 속에서 격렬하게 싸우게 될 수도 있었다.

         

       “데려가도 되기는 한다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제순의 목숨을 취해도 상관이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완전한 허락은 아니고, 무언가 여지가 남아있는…묘한 대답이기도 했다.

         

       “하지만 다만- 그래, 약간의 시간을 줄 수 있겠는가?”

         

       “어째서입니까?”

         

       “흐, 아직 이 작자가 해야 하는 역할이 있기 때문이라네….”

         

       진성은 기절해 있는 이제순을 바라보며 눈웃음을 지었다.

         

       “마땅히 세상의 모든 것에는 쓰임이 있는 법. 그렇다면 마땅히 그 쓰임을 다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 아니겠는가?”

         

       “중요한 일입니까?”

         

       쓰임.

       쓰임이라.

         

       하지만 그것이 며칠 더 명줄을 붙여놓을 정도로 중요한 일인가?

         

       빙의술사는 그런 의미를 담아 진성에게 물었다.

         

       “자네에게도 나쁘지 않은 일일 것이네.”

         

       나쁘지 않은 일.

         

       빙의술사는 그 말을 듣고 진성이 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어떤 방식입니까?”

         

       “집착하는 것이 손아귀에서 빠져나가고 멀어지는 상실감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처벌에 걸맞지 않겠는가?”

         

       재물에 집착하는 이의 손아귀에서 재물이 모래처럼 빠져나가는 것처럼.

       관계에 집착하는 이의 주변에서 모든 이들이 떠나가는 것처럼.

         

       “명예가 땅에 처박히는 처벌을 받게 될 것이네. 자네에게도 좋은 일이 아닌가?”

         

       “그렇군요.”

         

       빙의술사는 진성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죄인에게 대가를 주는 것.

       죄인이 고통받게 하는 것.

       그것이라면 며칠 정도가 아니라 몇 달도 미룰 수 있었다.

         

       “얼마 정도 걸리겠습니까?”

         

       “사흘.”

         

       “알겠습니다.”

         

       빙의술사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흘.

       고작 사흘이다.

       사흘 동안 살려두는 것만으로, 죄인은 상실의 처벌을 받으며 고통받게 되는 것이다.

         

       나쁘지 않은 거래였다.

         

       “사흘, 사흘이라. 길고도 짧겠군요….”

         

       그는 그렇게 말하곤 팔을 자신의 가슴께로 모았다.

       그리곤 오른손으로 자신의 왼쪽 손목을, 왼손으로는 오른쪽 손목을 잡았다.

         

       그리곤 손에 핏줄이 설 정도로 강력하게 힘을 주고는, 동시에 아래로 꺾어버렸다.

         

       뿌드드득-!

         

       스스로 왼쪽 손목과 오른쪽 손목을 동시에 부숴버린 것이다.

         

       끄윽.

       끄으으윽-!

         

       그리고는 고통에 겨운 듯 몸을 한껏 웅크리더니, 온몸의 뼈가 뒤틀리는 듯 이상한 움직임을 보였다. 그리곤 허리를 뒤로 확 젖히더니 ‘고오오오-‘하는 소리를 내며 숨을 크게 마시기 시작했다.

         

       코오오오—

         

       공기가 통로를 지나가면서 소리를 내었고, 사람의 몸을 울림통으로 사용하며 거대한 소리를 내었다.

         

       스아아악-

         

       그리고 그 거대한 소리와 흐름에 맞춰, 엑토플라즘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여있는 저수지에 물길이 트이기라도 한 것처럼 엑토플라즘은 미친 듯이 헤엄치며 빙의술사로 돌아갔다. 액체 형태의 엑토플라즘은 콧구멍과 입 구멍을 통해 빙의술사의 몸으로 들어갔고, 기체 형태의 엑토플라즘은 귓구멍과 눈알 안쪽으로 파고들며 들어갔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기체와 액체가 옷 안으로 들어가 피부에 흡수되기도 하였고, 배꼽에 송곳처럼 파고들며 안으로 들어가기도 하였다.

         

       그렇게 모든 엑토플라즘은 빙의술사의 몸속으로 회수되었고, 그와 함께 빙의술사의 몸 곳곳에 떠올랐던 귀신들의 형상 역시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마치 빙의술사의 몸 안쪽에서 누군가가 귀신들의 몸을 옥죄던 사슬을 붙잡고 그들을 심연 속으로 끌고 가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귀신들은 가기 싫다고, 밖으로 나가고 싶다고, 하다못해 밖을 바라보기라도 하고 싶다고 손발을 허우적대고 입으로는 절규하였지만….

       아무리 절규하고, 비통하다고 소리를 친다고 한들 그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요 의미 없는 반항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다.

         

       그렇게 귀신들은 너무나도 허무하게 자취를 감췄다.

         

       귀신들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양손의 손목을 덜렁거리고 있는 남자 한 명이 서 있을 뿐.

         

       빙의술사는 담담한 눈빛으로 진성에게 말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자신이 할 일이 더 이상 없기 때문일까?

       그는 그 무엇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작별을 고했다.

         

       진성에게 그 어떠한 질문도 던지지 않고.

       바닥에 쓰러진 차이네에 대한 연민이나 동정도 보이지 않고.

       이제순에 대한 집착도 보이지 않고.

         

       그냥 무관심 속에서, 그는 담담하게 그렇게 가겠다고 말하고는 그대로 몸을 돌려 사라져버렸다.

         

       목적 외에는 관심이 없기에.

       죄인은 수확하고, 죄인이 아닌 이들은 신경을 쓸 가치가 없기에.

       그렇기에 빙의술사는 더 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진성이 얻어낸 사흘의 시간 동안 이제순에게 무엇을 할 것인지.

       어째서 이제순과 연이 닿아있는 것인지.

       이제순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그리고, 어렴풋이 알게 된 ‘세 번째 전염’의 의미가 정확히 무엇인지….

         

       그는 그 무엇도 궁금해하지 않고, 관심도 가지지 않고.

         

       그냥 떠났다.

         

       “흐음.”

         

       그것은 진성의 기억 속에 있는 횔레와 비슷한 모습이기도 했고.

         

       “아직은 꽤 인간적이군….”

         

       아직 자신의 목적을 이루지 못한 미숙한 면모가 보이는 것이기도 했다.

         

       진성은 회귀 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가, 미약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잘 풀리기도 하였구나….”

         

       그 미소는 일이 잘 풀리지는 않았으되 훨씬 좋은 방향으로 나아간 것에 대한 기쁨이 담겨있는 것이었다.

         

       진성은 미소를 지으며 오른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러자 가면의 황금이 액체라도 되는 것처럼 줄줄이 녹아내리기 시작하였는데, 녹아내린 황금은 한 곳에 맺히더니 고드름처럼 땅을 향해 자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길어진 고드름은 끝이 뾰족한 지팡이를 닮은 형태로 변화하였다.

         

       진성은 황금으로 만들어진 지팡이를 들고 이제순의 몸을 쿡 찔렀다.

         

       꿈틀.

       꿈틀.

         

       아주 자그마한 동작.

       정말 살짝 가져다 댄 수준의 동작이었지만 그 반응은 격렬했다.

       이제순의 온몸의 근육이 미친 듯이 경련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발작이라도 일으키는 것처럼 몸이 미친 듯이 튕겼다.

         

       투두둑.

       콰직.

         

       그리고 그 움직임에 맞춰 이제순의 몸에 붙어있던 벌레 사체가 땅바닥에 떨어지기 시작했고, 곳곳이 파먹힌 이제순의 흉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었다.

         

       꿈틀.

         

       그리고 그 살점들 사이로 무언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실.

       검은색, 분홍색, 하얀색….

         

       수많은 실이 앞다퉈 상처가 출구라도 되는 것처럼 밖으로 빠져나왔고, 밖으로 빠져나오자마자 공기에 닿아 그대로 녹아내리며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혹여 싸울 일이 있을까 하여 기생충에 절여놨거늘.”

         

       기생충.

       진성이 횔레를 상대로 싸우기 위해 준비한 것들이었다.

       그 자체로도 활용하기 좋고, 기생충을 제물로 오염이나 전염과 관련된 주술을 쓰기에도 좋고, 기생충들을 이용해 이제순의 몸 안에 상징을 새겨넣기에도 좋은 것들이었는데….

         

       정작 횔레가 싸우지 않고 사라졌으니, 이제는 쓸모가 없었다.

         

       “참으로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다투지 않았으니 좋은 일이요, 다툼에 주술을 사용하지 않았으니 또 좋은 일이요, 주술을 사용하지 않았으니 대가를 지불할 일도 없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참으로 좋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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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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