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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95

    <495 – 불화의 불씨>

     

    측정기 들어가서 수치 뽑고 나와서 사탕이나 쭙쭙 빨고 있는데 갑자기 디스트로이어 교수님이 명호스님과 같이 나타났다.

     

    “받거라.”

    “히에에에엑!!”

    “뭔지는 알고 놀라는 거냐?”

    “스킬북이잖아요! 그것도 옛 신의 유지가 담긴 신급 아이템!”

     

    이벤트보상으로 잭팟이 터졌다.

    플레이어는 색깔만 봐도 알 수 있는 신급 이펙트가 두 눈을 사로잡는다.

     

    “모에요? 저 오늘 생일인가? 착한아이 스택 쌓여서 크리스마스 선물 댕겨 받는 거시가??”

    “훗. 그래, 선물이다. 스승이 제자를 걱정하는 마음이 듬뿍 담긴 화해선물.”

    “…큰 각오 하고 만든 건 소승인데 생색은 전대용사께서 내시니 참 마뜩잖소이다.”

    “명호스님도 고마워요!”

     

    주체할 수 없는 기쁨에 달려가서 볼뽀뽀를 해주니 명호스님의 이마에 내 천자(川)로 새겨진 고뇌의 주름이 한결 펴졌다.

     

    “이 스킬북은 함부로 펼쳐서는 안 됩니다. 옛 신의 심득이 담긴 심득서란 주류24신격이 모두 탐내는, 자신들의 힘을 강화할 권능서이기도 합니다.”

    “배낭배낭에 넣을게요!”

    “그 또한 곤란합니다. <공백>을 관장하는 악신 언노운이 마법배낭의 <공백>을 통해 심득서를 빼돌릴 수 있습니다.”

    “헉?”

    “즉, 이 심득서를 지니고 있는 동안에는 마법배낭뿐만 아니라 시야에서 덮어지는 외투 주머니, 보자기, 서랍장, 그 어디에도 심득서를 넣어서는 안 됩니다.”

     

    히에엑!

    비싼 아이템이 가끔 0.1%의 확률로 제멋대로 배낭에서 증발하는 경우는 있어도 100% 확정소멸 이벤트라니 이건 너무 무섭다!

     

    “그럼 어떡해요?”

    “최대한 빨리 심득서를 정독하여 옛 신의 심득을 소화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단,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심득을 받아들이면 오크노디양의 영육이 폭발해서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질 겁니다.”

    “으아앙. 사망이벤트는 싫어요!”

    “걱정마십시오. 오늘부터 당분간 소승이 곁에 머무르면서 가르침을 전수할 겁니다. 스킬북을 통한 심득 습득을 겪더라도 영육이 폭발하지 않도록.”

     

    디스트로이어 교수님도 고개를 끄덕였다.

     

    “외부의 간섭은 내가 막아주지.”

    “아카데미는요?”

    “걱정하지 마라. 습득 기간에는 강의를 쉬겠지만 길드원을 통해 휴강 및 보충 강의 공지를 따로 올릴 터이니.”

    “아니 제 출석일수요!”

    “포인트로 사라. 신들도 탐하는 심득서를 얻을 기회인데 그깟 출석이 대수냐?”

     

    힝. 그건 그렇긴 해.

    개근상 2학기 초에 날려 먹기도 했고 인제 와서 며칠 더 쉰다고 달라질 건 없겠지.

    애초에 강의도 시험도 다 아는 내용이고.

    1학년들이랑 놀러다니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파워 업 이벤트는 참을 수 없다.

    다른 신의 심득을 얻을 기회라면 사도계약의 제안이 불법사이트의 팜업창마냥 쉴 새 없이 떠대서 줘도 마다했겠지만 옛 신의 심득은 다르지.

    명호스님이 선물한 동방의 옛 신 <석가>의 심득을 스킬북으로 습득한다면 신의 권능은 얻어도 이를 빌미로 강제할 주체는 존재하지 않는 상태.

    사도계약 스팸팜업창 없이도 자유롭게 권능을 구사할 수 있다.

     

    “할게요!”

    “그럼 1일차 교육으로 교리에 대한 이해부터…”

    “근데 저희 측정값은 언제 봐요?”

     

    명호스님이 마뜩잖은 표정으로 측정결과를 뽑은 진단서를 내밀었다.

    그러나 디스트로이어 교수님은 내 물음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멈칫했다.

     

    “저희…?”

    “매스각키 황녀도 같이 왔잖아요!”

    “…이런 초보적인 실수를 저지르다니. 나도 참 이번 일로 어지간히 놀랐나보군.”

     

    디스트로이어 교수님이 손을 뻗자 매스각키 황녀가 들어갔던 측정기 문이 저절로 열렸다.

    아무도 없는 척 측정기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있던 매스각키 황녀가 교수님의 손짓 한 번에 히양! 하고 비명을 지르며 데굴데굴 굴러 나왔다.

     

    “들었나?”

    “뭐, 뭐를 말이죠…? 저 매스각키 2황녀는 엘리트 교육의 폐해로 자유시간에는 뒤통수가 땅에 닿기만 하면 눈을 감고 잠드는 허접버릇이 있어요…”

    “안 닿았잖나. 매달려있었으니까.”

     

    풉풉.

    허접황녀답게 변명도 허접스럽다.

    둘러댈 거면 잘 둘러대기나 하지, 어떻게 1초 만에 곧바로 논파 당하지?

     

    “결국 다 들었군. 들어선 안 될 이야기만 모조리.”

    “살려주세요…”

    “황녀의 입을 꼭 죽여서 막을 필요는 없소이다.”

     

    명호스님이 황녀를 감쌌다.

     

    “제국황제의 귀에 오크노디가 심득서를 얻었다는 정보만 올라가지 않는다면 되는 일 아니오.”

    “비, 비밀. 비밀로 할게요!”

    “그런가. 지킬 수밖에 없는 비밀로 만들면 되겠군. 정신을 파괴하는 약이…”

     

    사색이 된 매스각키 황녀를 명호스님이 한층 더 보호하였다.

     

    “그럴 것 없소. 금제만 걸어도 족하니.”

    “황실에 들르거든 존재를 간파당하고 순식간에 풀릴 금제가 아닌가.”

    “어차피 만신들도 오크노디가 심득서를 습득한 사실을 머지않아 깨닫게 될 것이오. 이 아이는 본래부터 신들의 관심을 받는 <특별한 아이>였으니.”

    “…그렇기는 하지.”

    “제국황실의 아이여,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있는 한, 디스트로이어 교수는 당신의 목숨을 거둘 수 없습니다. 순순히 금제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매스각키 황녀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나는 심득서를, 매스각키 황녀는 금제를 얻는 나한테만 개꿀인 이벤트가 시작됐다.

     

     

    * * *

     

     

    와이히엠하이 재단본부.

    상층부 공중정원.

     

    “비공정의 주재료인 허공석을 건물 사이에 설치한 공중정원이라니, 재단의 이사장님도 참 사치스러운 취미가 생기셨군요.”

    “말을 삼가라. 혁명가의 개. 이사장님을 향한 언동은 사소한 실수만으로도 돌이킬 수 없는 징벌이 돌아온다. 살아온 세월이 길어 인생이 지루하지 않다면 가급적 침묵을 지켜라.”

    “시른데요~?”

    “…”

     

    비서실장은 특별한 손님을 이사장에게 안내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부러울 정도로 자유로운 사람이군. 혁명가의 동지라는 작자는.’

     

    적색마탑 최대파벌로 유명한 작렬학파의 상징, 폭탄과 막대기가 교차한 표식을 망토와 견장에 새긴 여마법사가 싱글벙글 웃으며 비서실장을 따랐다.

     

    “전에는 이런 시설은 없었는데 갑자기 정원은 만들어서 뭐 하신대요? 소일거리 삼아 뒷마당에 텃밭 일구는 노인마냥.”

    “비슷하게 보기는 했군.”

    “오?”

    “우연한 계기로 습득한 <세계수의 씨앗>을 공중정원에 키우고 계신다. 땅에 뿌리가 닿지 않아도 세계수는 세계수로 자라날 수 있는지 시험하겠다며.”

    “우와… 역시 세계에서 가장 막 나가는 미치광이다운 발상! 존경스럽네요.”

     

    공중정원의 문을 개방하자 탁 트인 정원이 비좁게 느껴질 정도로 밀도 높은 마나가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두 사람이 향한 공중정원의 심부에는 육안으로 바라보기가 겁이 날 정도로 농밀한 마나의 중심부에서 셔츠 소매를 걷고 물뿌리개를 든 이사장이 있었다.

     

    “취미생활이란 기분전환에 좋답니다. 갑갑한 방 안에서 세계 전도나 바라보며 질리도록 강한 상대와 대국을 두는 것보단 훨씬 즐겁죠.”

    “어음… 지금 그거 제국의 황제와 수 싸움을 하고 계신다고 하시는 건가요?”

     

    이사장의 미소에 장난기가 섞였다.

     

    “어떨 것 같습니까?”

    “상상은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니, 마음대로 사유하고 만끽하라. 혁명가라면 그렇게 말할 대목이네요. 대답하기 싫을 때 그리 얼버무리더라고요.”

    “혁명가는 나름 풍류를 아는 자입니다. 이중 첩자 생활에 재미를 붙일만한 상대이죠. 일은 즐기고 있습니까? 웨스커 양.”

     

    비서실장은 급히 고개를 숙이며 표정을 감추려 애써야만 했다.

    아케미 웨스커.

    적색마탑 최대파벌 작렬학파의 차세대를 책임질 신진고수이자 혁명군과 손을 잡은 혁명의 불씨.

    비서실장이 아는 웨스커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웨스커가 이중 첩자라니.

    대체 언제부터였냐고 물어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으나 간신히 충동을 억눌렀다.

    적어도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혁명가의 계획은 지켜보는 재미가 있죠. 적색마탑의 따분한 불꽃보다는 훨씬요. 물론 세상을 불태울 가장 성대한 불꽃은 우리 이사장님만이 보여주시지만요.”

     

    흠모하는 남성을 바라보듯이 얼굴을 붉히며 한 손으로 뺨을 쥔 여성스러운 모습에도 이사장은 큭큭 웃을 뿐, 이성을 대하는 감정은 보이지 않았다.

     

    “따로 키우는 개를 현장에 보내 동태를 파악했다고 들었습니다. 어땠습니까?”

    “많이 달아오르셨나 보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먼저 물어보시는 적은 처음인데.”

     

    웨스커가 손을 딱━! 튕기며 허공에 불꽃을 피웠다.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불의 너머로 화산지대에서 대치한 교수들과 마인들의 형상이 떠올랐다.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흩어지는 형상 사이에는 디스트로이어 대신 막타를 치는 오크노디의 모습도 어렴풋이 떠오르다가 사라졌다.

     

    “보다시피 교수들은 이미 정보를 알고 있었어요. 전대용사라고 불리기엔 디스트로이어의 정보력이 아주 뛰어났죠. 적색마탑의 비주류파벌을 이용해 시간을 벌 정도로 인적자원도 견고했고요. 반면에 마인들은 실망스러웠죠. 애 하나 지배하지 못할 정도로.”

    “하하하. 저 아이도 참. 누구 딸이라 저리 겁도 없이 씩씩하게 막타를 치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그거 말인데요. 소문이 정말인가요? 재단의 수석장학생 다크프린세스 오크노디. 그녀의 육성 목표가 마왕의 좌를 탈환하기 위함이라는 소문.”

     

    이사장이 유감이라며 손을 저었다.

     

    “아쉽게도 이번 대의 마왕은 강합니다. 그 위세가 수백 년을 이어질 정도로요. 미식의 마왕은 그리 간단히 노려볼 상대가 아닙니다. 손을 잡을 동료라면 모를까요.”

    “세상에 무슨 동료가 남의 부하 멱을 따요?”

    “친해지고 싶어도 아직 깊이 친한 사이는 아니라서 그런가 봅니다. 우리 트리 양이 새집에서 싹을 틔우지 못하고 투정을 부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사장의 ‘트리’양이 거칠게 내지른 뿌리 모양의 의념이 이사장의 주변 공간을 짓누르고 휘저으며 공간에 왜곡과 차원균열 현상을 일으켰다.

    교수니 마인이니 하는 작자들도 대경실색하며 방어에 급급할 재난현상의 한복판에서도 하하하 웃으며 물뿌리개를 뿌리는 이사장의 모습에 웨스커의 미소에 곤란한 기색이 떠올랐다.

     

    “당황했군요. 근무처를 바꾸기 전에 알던 것보다 더 강해서 난감합니까?”

    “무슨 말씀이실까. 제 충성을 의심하는 거라면 매우 섭섭한데요.”

    “하하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의심으로 행동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 정도 잡음을 멈추는 것쯤이야 우리 비서실장에게 맡겨도 충분하죠.”

    “아하하.”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세상을 불태울 불씨가 되고 싶다며 당돌하게 찾아온 소녀가 있었죠. 아쉽게도 소녀의 불꽃은 한계를 맞이했지만 저는 작은 불도 지피는 방법에 따라 능히 세계를 불태울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하…?”

    “아니면 타오를 곳을 잘못 고른 불꽃이 태울 수 있는 모든 것을 불태우다가 재만 남아 덧없이 꺼질 수도 있겠지만요.”

    “……”

    “다가오는 혁명의 날에 너무 큰불을 피우지는 마십시오. 당신이 빛나야 할 날은 그곳이 아닙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아 참. 디스트로이어의 도적길드 본부좌표가 특정되었다고 합니다. 웨스커 양도 돌아가는 길에 혁명군에 자랑스럽게 내밀 공적이 생기면 좋겠군요. 하하하.”

     

    <세계수의 영혼 뿌리>가 실시간으로 고통에 몸부림치게 만드는 물뿌리개를 바라보며 웨스커는 웃음이 경직된 얼굴로 돌아섰다.

    조용히 뒤따라붙은 비서실장의 기척을 감지한 그녀는 공중정원을 벗어나고도 이사장의 영역에서 충분히 벗어났다고 판단한 뒤에야 입을 열었다.

     

    “오크노디, 그 아이는 정말로 이사장의 친딸이 아닌가 보네요. 자기 딸이 암흑마나 중독을 치료받으러 향한 시설을 습격할 정보를 넘겨주다니.”

    “웨스커 양. 알고 지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지 않지만 나쁜 버릇 하나는 알겠군.”

     

    비서실장이 경고했다.

     

    “당신은 호기심이 너무 많다. 지켜보는 사람이 두려워질 정도로 위태로운 선을 넘나들었어.”

    “말하기 싫음 말고요.”

     

    새침하게 돌아선 그녀의 눈에 줄곧 감추려 애썼던 살기가 흐릿하게 새어 나왔다.

     

    “나야 확인하려고 그랬죠. 꼭 살려야 하는 아이인지 아닌지. 아무 말 없었으니 내 맘대로 해도 되죠?”

     

    불꽃이 크게 피어올라 웨스커의 전신을 뒤덮었다.

    불의 꽃이 사그라진 자리에 사람은 온데간데없이 불씨만이 꽃잎처럼 흩날렸다.

    허공에 남은 열기를 손으로 재던 비서실장은 느릿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웨스커는 강하다.

    배경도 좋다.

    이용할 세력도 많다.

    그러나 이사장을 칠 칼로 쓰기에는 너무 성급하고 빠르게 타올랐다.

    이 칼은 쥐어서는 안 되는 칼이다.

    비서실장은 통신마도구를 들었다.

     

    “비서실 내 모든 비서는 지금 즉시 모든 업무를 중지하고 정보유포를 최우선으로 한다. 수취인은 제국의 황제파 필두로 손꼽히는 궁내부의 대신. 매스각키 황녀가 혁명가와 적색마탑에게 노려진다는 정보를 흘려야 한다.”

     

    쥘 수 없는 칼은 남이 휘둘러야 한다.

    휘두르던 도중에 부러지면 더욱 좋겠지.

    적이 하나 더 다칠 테니까.

    하지만 여유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의 불꽃은 웨스커처럼 빠르게 타오르진 않을지라도 너무 오래 기다린다면 언젠가는 그 또한 웨스커처럼 성급해질지도 몰랐다.

    다행히도 그에게는 기대되는 칼이 있다.

    웨스커의 것보다는 짧은 단검이나 비수에 가깝지만.

    칼은 꼭 길어야만 목숨을 취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오크노디는 작으나 치명적인 비수였다.

    그 아이는 어떨까.

    웨스커보다 쓸만한 칼이 될 수 있을까.

     

    ‘암흑마나를 온전히 수습만 할 수 있다면 가능성은 있을지도 모르겠군. 이 단기간에 보여준 무서운 성장세를 고려한다면 승산은 충분히 있다.’

     

    재단의 다크프린세스가 부디 빨리 자라주길.

    비서실장은 오늘도 이사장을 죽일 기회라는 달콤하되 위험한 독이 든 함정 하나를 흘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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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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